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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평점 :
섬에서 찾은 조선의 역사
역사의 현장엔 어제와 오늘이 함께 공존한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역사의 흔적이 사라지기도 하고 때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하지만 현장엔 그 뿌리가 어떤 형태로든 남아 후손들에게 당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든 기록문화의 형태로 남아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역사적 현장과 그에 얽힌 사연 그리고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역사적 현장은 오늘과 밀접하게 관계 맺으며 건재하게 살아 있음을 안다.
순전히 타의에 의해 그것도 정치적인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있다. 유배자라는 이름을 달고 정치의 중심이었던 한양을 떠나 가깝게는 강화도 멀리로는 제주도, 흑산도 등 육지에서 떨어진 섬으로 밀려나 한양을 바라보며 유배에서 풀러날 만을 기다리다 죽어간 사람도 있고 운이 좋게 풀려나 보란 듯이 재기한 사람도 있다. 유배신분에 억울해 하며 암울한 시간을 살았던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학문과 시문에 열중하여 후대에 남을 성과를 올린 사람도 있다.
이 책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바로 그런 유배자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그들이 살아왔던 현장에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고자 하는 후대사람들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조선에서 유배는 대부분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였다. 간혹, 정치적인 이유와는 상관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당파의 세력 판도에 의해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에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배를 가는 죄인의 신분이지만 당당하게 현지에서도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짧게는 수십 여일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섬에 갇혀 지내야했던 유배자들의 삶은 세월의 무게에 의해 대부분 사라졌다. 저자 이종목과 안대회가 주목했던 것은 그들이 남긴 기록이다. 유배객의 신분으로 울적한 마음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던 사람이나 지역의 지리지를 작성한 사람도 있고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그 기록에 근거하여 유배자들이 머물렀던 섬을 찾아 현재의 모습에서 당시 흔적을 따라가 보는 일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찾은 유배의 섬은 위도, 거제도, 교동도, 대마도, 진도, 백령도, 제주도, 흑산도, 녹도, 남해도, 신지도, 임자도, 추자도를 찾아, 그곳에 머물렀던 유배객 이규보, 이행, 연산과 광해군, 이건명과 조관빈, 최익현, 노수신, 이대기, 조정철, 정약전, 신헌, 신기선, 김만중, 이광사, 이세보, 조희룡, 안조원, 이진유 등이다. 주로 남해안 인근의 섬으로 한양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정치적 이유가 대부분이었기에 정치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당연하게 유배지로 선택된 것이다. 섬은 그때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졌다. 연륙교가 놓여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닌 곳도 있다. 또한, 정치적 상황이 변해 당시 죄인이었던 사람에 대해 평가가 달라지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편안하고 대접받은 유배객이 있는가하면 먹을 것을 구걸하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야 했던 유배객도 있었다.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유배된 섬에서 한탄 속에 숨을 거둔 객도 있었고, 유배에서 돌아와 다시 죽을 때까지 높은 벼슬을 한 이도 있었다. 벼슬아치로 살 때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학문적 성과를 거둔 이가 있는가하면, 외로운 섬에서 예술혼을 불사른 이도 있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에 의해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남긴 기록이 있었기에 섬 또한 사람들 사이에 기억되었다.
저자들이 유배의 현장 섬을 찾아 섬의 자연풍광과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유배객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사진에 담긴 섬들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경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유배객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내용 중 확실한 사실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조희룡 편에서 김정희의 수하로 이야기 된 부분이 그것이다. 저자들의 전공이 역사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