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쏘시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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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리뷰

1.

한번 생각해보자.

전쟁이 벌어졌다.

그 전쟁의 영향으로 세상은 폐허로 변하고,

밖을 돌아다니면 폭력의 희생양이 될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건물에 머문다.

폭격이 자신의 건물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당연히 그 상황은 자원이 부족하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난로를 때우기 위한 나무마저 거의 다 떨어졌다.

만약에 서재가 있다면 

책이 불쏘시개로 쓰일 상황이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책부터

불쏘시개로 쓸 것인가?

 

이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2.

무인도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것만큼이나

힘겨운 불쏘시개용 책 고르기는

세 사람의 신랄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노통 특유의 독설과 언쟁으로 이루어진

논쟁은 어떤 해답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한 사람의 눈물과 분노,

다른 한 사람의 독선적 행동등을 유발한다.

 

결국 불쏘시개용 책 고르기는 해답이 없는 것이다.

각자가 서로의 논리가 있는 데다가

자신이 책에 대해 느끼는 감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논리로 무장한 그들의 말다툼은

책 각자가 저마다의 생명력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삶을 지니고 있음을 역설한다.

 

자기만의 운명과 삶을 지니는 책들.

그 책들 중에서 과연 어떤 책을

불쏘시개로 쓴 단 말인가?

 

3.

책이 타는 순간 자신이 느꼈던 감동과

환희의 세계가 사라지고,

우리의 흔적이 사라진다.

 

몇분,몇 시간의 따듯함을 위해

영원한 인류의 유산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영화 투모로우에서는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책을

불쏘시개로 쓰며 눈물을 흘린다.

 

노통은 눈물을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경고한다.

 

책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지는 것이라고.

인류라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책이 사라지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과거의 짐승같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리라.

아니, 그것은 우리의 존재의미가 사라진다는

의미이리라.

 

책이 없는 세상.

그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4.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이제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다.

 

여러분이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책을 가장 먼저 불쏘시개로 쓸 것인가?

 

*이 책은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았다.

노통이 너무 사변적으로 떠들어댄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

대신 소재의 참신함과 상황적 특수성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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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리뷰

 

리뷰를 쓰는 한 사람의 이룰 수 없는 욕망

 

나는 지금 리뷰를 쓴다.

나는 리뷰를 쓰며 내가 읽은 책의

줄거리와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더듬고

미약하나마 내 생각의 흔적들을 남기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욕망은

내가 느꼈던 감정이,

마음에 맞는 한 구절과 책 한권이 주는 감동에

젖어 순간의 환희를 느끼는 경험이

그 현상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내 능력으로 불리는 언어적 사용의

한계앞에서 무참하게 짓밟힌다.

 

나는 안다.

결코 지금의 내가 쓰는 이러한 리뷰로는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군다나 그 책이 나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진실의 문을 열어주고,

정신의 성숙을 향한 계단이 되어주고,

정서적인 엑스터시를 경험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면

내가 느꼈던 것은 거의 표현되지 못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어떤 책들에 관해서는

리뷰를 쓰기가 두렵다.

 

내가 느꼈고, 생각했던 것들의

일부의 일부의 일부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리뷰로 어떻게

나와 그 책이 나누던 교감을 말한단 말인가?

아니 그러한 행위는 심각한 기만 행위가 아닌가?

장님이 코끼리 더듬는 리뷰를 왜 써야만 한단 말인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도

리뷰 쓰기가 두려운 책이다.

나는 명확하게 알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과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나는 오늘 이 리뷰를 쓸 것이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내가 느꼈던 일부나마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에 내가 승복했기에,

내가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것 같은 어떤 클럽을 위해서

리뷰를 자주 쓰기로 내 자신과 약속했기에.

 

모모, 몽도 그리고 다시 모모



독일의 마지막 낭만주의자로 불리는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

 

동화이자 환상소설인 이 작품의

주인공 모모는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삶의 의미와 잃어버린 가치의 소중함을 깨우치기 위해

시간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존재다.

 

도시안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처럼 여기는 도시의 공터에서

살아가는 모모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친구이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순간에

우리를 위해 일어서는 존재였다.

 

모모를 읽고 나는 모모라는 소중한 친구를

얻은 느낌이었다.

그 친구는 그렇게 내가 구축한 생각의 도시에서

공터를 차지하고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르 클레지오의 단편집인 <어린 여행자 몽도>.

 

이 책의 처음을 장식하는

작품이 <어린 여행자 몽도>이다.

 

거기에서 몽도는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간직하고

도시를 방황하는 존재였다.

 

도시인들이 잃어버린 아이적인 순수함,

인간적인 가치, 삶과 인간에 대한 사랑같은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 몽도는

바로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기에

도시를 방황할 수 밖에 없는,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역시 몽도도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몽도가 비록 도시를 떠나서 어딘가로 가 버렸지만

그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알기에,

내가 그 무엇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도시안의 다른 누군가가 나와 함께 노력한다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그를 친구로서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어린 친구를 만났다.

 

바로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인

또 다른 모모가 그 주인공이다.

 

슬픔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소년, 모모

 

모모는 파리에 살고 있다.

모모의 원래 이름은 모하메드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모모라고 부른다.

모모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창녀들의 아이를 맡아 키워주는

창녀 출신의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아간다.

 

세상 밑바닥의 삶.

인종 차별과 가난과 무시와 고독과 무관심의

그늘에서 자신들의 모진 삶을 이어가는

빈민들과 유색인과 창녀들과 고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모는

세상에 대한 기대따위는 하지 않는다.

 

모모는 단지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로자 아줌마가

조금 더 자신과 함께 살아주면서

자신이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힘들지만 자신에게 웃음을 보여주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 이웃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세상의 냉혹함은

모모를 끊임없이 절망으로, 슬픔으로 내 몬다.

 

절망 속에서, 슬픔 속에서 모모는 깨닫는다.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슬프게 하는 것도 삶이라는 사실을.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삶이 고달프고 힘겨울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고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모의 삶과 경험이 가르쳐 준

그 깨달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눈물 몇 방울을 흘리는 것 정도였다.

 

나는 감히 이 책을 추천한다.

 

사실 1년 반 정도만 해도

나는 거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논리적인 글이 보여주는 날카로운 지성과

치밀한 구조, 세상에 대한 시야의 확장과

지적인 충족감에 중독되어

소설은 멀리하고 지적인 쾌감을 얻기 위한

독서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다.

그런 나의 독서가 반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심하게 반발할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소설이 주는 감동과 정서적 울림은

논리적인 글이 줄 수는 없다.

 

소설이 보여주는 세계를

논리적인 글이 보여줄 수는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정서와 감동을

논리적인 글로는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적인 쾌감만을 위해서 독서를 하는 것은

불균형한 독서 이전에

절름발이가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이 지적인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 또한 지성과 더불어 감성이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냉정한 것만으로, 논리적인 것만으로는 안 된다.

날카롭고 냉정한 것만으로 이룰 수 있는 세상은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연대기>가 보여주듯이

기계들이 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거기에 우리가 인간적인 것이라

칭할 수 있는 그 무엇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이 포함되어야 기계가 아닌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된다.

 

<자기 앞의 생>은 나의 그런 생각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는 소설이었다.

 

논리적인 글로는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없다.

아니 이런 감동을 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삶의 의미를 절절히 깨닫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감히 이 책을 추천해본다.

소설을 읽고자 하시는 분들이라면,

지성과 더불어 감성을 충족시키기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시고 계신 분들이라면,

냉정함만이 아닌 삶의 감성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한번 꼭 읽어 보셨으면 한다.

 

읽고서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따듯한 사랑이 전해주는

울림과 삶의 의미를 한번 음미해보셨으면 한다.

 

삶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달았으면 한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의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었으면 한다.

 

자기 앞의 생이 던져주는

그 무엇을 우리 모두가 받아 먹었으면 한다.

 

그것이 자살한 이 소설의 작가가 우리에게 남긴

최후의 유산을 우리가 제대로 이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필명이다.

가리가 에밀 아자르란 필명으로 글을 써서 상을 받고

자살하기 까지의 과정이 책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는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란

이름을 내 상상 속 문학의 전당에 아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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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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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는 구속되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첫 문장

 

나는 구속되었다. Q&A를 읽은 대가로.

집에서 끌려나간 나는 경찰서의 취조실로 급히 옮겨져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들이 내게 원한 건 Q&A의 내용과

십억 루피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밑에 글과 같은

나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1.Q&A에는 파란만장한 삶이 배어있다.

십억 루피가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한

일자무식의 웨이터는

버려진 아이였다.

 

성모 마리아 성당에 버려진 그 아이는

입양 실패 이후 티모시 신부의 보살핌을 받는다.

 

아이의 이름은 심상치 않은 삶을 예고하는 바

3교의 전통이 융합된

람(힌두교)모하마드(이슬람교)토마스(기독교)가

그 이름이었다.

 

이후 람은 모든 장르의 영화의 결합된 것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경험한다.

 

동성애자의 위협,

스파이와의 동거,

살인사건,

퇴역 군인의 슬픈 사기극,

부두교 주술사의 저주,

한물 간 여배우와의 묘한 연대감,

빈민가 가족의 비극등과 같은

그의 경험은

그가 12문제를 연속으로 맞히는

원동력이 된다.

 

2.Q&A에는 인도 빈민의 삶이 있다.

중국과 함께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인도는 그 급격한 성장만큼이나

빈부격차도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다.

 

상층부는 선진구의 어떤 부자보다

화려한 삶을 살지만

빈민층은 하루하루가 살아가기도 버겁다.

 

그 적나라한 삶이 이 소설 속에는

묘사되고 있다.

아버지가 가족을 때리고,

딸을 강간하는 것이 일상적인 빈민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그 모든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초라한 그들의 주택.

병에 걸려도 고칠 수 없어 죽어야만 하는 삶.

부패한 관리와 경찰들의 먹이가 되는 삶.

언제나 범조의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위험성.

거기다가 파키스탄과의 전쟁이 불러오는 위험까지.

 

람은 그런 빈민의 삶을 묵묵히 견디며

강렬한 의지와 생활력, 복수심을 키워간다.

 

그리고 그것이 퀴즈 쇼 우승의 힘이 된다.

 

3.Q&A는 손과 눈을 땔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비카스 스와루프는 

처음 소설을 쓴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흥미있고, 응집력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첫 문장부터 강한 흥미를 유발시키며

단시간에 읽어버리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손과 눈에 접착제를 발라서 책에서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

 

그 마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야기 구성이다.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가 퀴즈 쇼의

한 문제를 담당하는

이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지루함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다양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한가지 맛의 음식이 아니라

다양한 요리가 퓨전된 음식과 같은 책이

바로 Q&A이다.

 

4.Q&A는 꿈의 환상을 보여준다.

희망없는 삶을 모질게 이어가고 있는

인도의 빈민들.

마찬가지로 특색없이 이어지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

 

그 모두에게 이 책은

자본주의적 판타지를 선사한다.

 

거액의 획득.

그것을 얻기 위한 드라마틱한 경험.

그리고 사랑의 성공.

 

이렇듯

Q&A는 일상의 무력함을 벗어나게 만드는

판타지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들을

다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곳에서 쉽게 풀려나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나 같은 거리의 자식은

먹이사슬에서 가장 밑바닥.'

 

나 같은 거리의 자식은

가장 밑바닥이기에.

그래서 나는

변호사 스미타의 등장을 기다린다.

그녀는 나에게 목숨을 빚졌기에

반드시 와줄 것이다.

 

그녀가 온다면

나는 그녀의 도움으로

이곳을 벗어나고,

배운 대로 파란만장한 경험을 해서

퀴즈 쇼에 참가할 것이다.

 

그녀는 언제 올까?

그녀의 등장을 기다려본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사진들



그녀와 만난 람



퀴즈쇼에 출현한 람



어린시절의 람



타지마할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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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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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

단순히 길을 걷는 것 뿐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살기 위해,

다른 이들의 위협을 피하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걸을 뿐이었다.

 

그런데,

단지 길을 걷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행동이

이리도 절망적일 줄이야!

 

어둠다는 것을 넘어선

절망 그 자체인 그들의 삶.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실현된 것처럼

느껴지는 현세의 지옥은

벌레보다 못한 삶을 이끌어내고,

인간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상황까지

만들어낸다.

 

그 속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그들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지는 못한다.

 

죽음이 자신의 숨결을

옆에서 뿜어내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산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미 죽은 이들을 부러워하며

내일 눈을 뜨지 않고 이대로 죽었으면 하고

바란다.

 

2.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스타일리쉬 소설가 코믹 매카시의

이 소설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 중에서

가장 어두운 책이었다.

 

그야말로 절망의 묵시록이자 절망의 소설.

 

읽는내내 책에서 뿜어지는 다크포스에

책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지 못하고

헤매기만 했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지배하는

어두움을 넘어선

절망적 분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근데 왜 현실이 이 책보다 

낳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현실적인 모습은 우리가 그들의 삶보다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만의 악몽에서 살고 있다.

떨쳐낼 수 없고, 쫓아내지 못하는

우리만의 악몽들은

분명히 우리 곁에서 우리를 향해 웃고 있다.

 

'우린 죽나요?

언젠가는 죽지. 지금은 아니지만'

'나한테 영원한 희망은 무야.'

'모두가 사라지면 좀 나아지겠지'

'남자는 거의 매일 밤 어둠 속에 누워 죽은 자들을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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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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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

보수적인 아카데미가

코엔 형제에게 작품상을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난 영화의 원작을 읽고 싶었다.

 

그것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모호한 제목까지 있으니

호기심은 배가 되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책을 펼친 순간

내가 본건 유혈이 낭자한 잔혹 서부극이었다.

 

2.

한 소년의 사형 집행에 참여하는 보안관 벨.

그는 그것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저기 어딘가에는 살아 있는 진정한 파괴의 예언자가 있다.

다시는 그 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시체들이 널부러진 현장에서 우연히

돈가방을 얻는 모스.

그러나 그는 그 순간부터 시거의 추격을 받는

지옥의 레이스를 시작한다.

'인생은 매 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어느 순간 당신은 선택을 했어.'


달아나는 모스


부보안관을 죽이고 탈출한 살인마 시거.

그는 돈 가방의 행방을 찾아 모스를 추격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특별한 이유없이 살해한다.

소설 속에서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자신만의 궤변으로 살인을 꺼리낌없이 자행하는

그는 진정한 악의 화신이었다.

'이건 겨우 동전 아니냐고.

별다를 것 없는 동전일 뿐이라고.

...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이건 그저 동전일 뿐이오.

그렇소, 맞소. 그저 동전. 하지만 정말 그럴까?"

(동전 던지기로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시거)



두려움 없는 살인마 시거

 

마을의 보안관 벨. 그는 전쟁에서

비겁하게 혼자 살아왔다는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그는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스와 시거의 뒤를 쫓는다.



시거와 대척점에 위치한

인물인 벨. 그러나 그의 힘은

미약했다.

 

쫓고 쫓기는 그들의 유혈이 낭자한

지옥의 레이스.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3.

유혈과 폭력이 가득한 이 소설은

매카시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책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그것도 서부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받은

그는 이 책에서 그것들을

어두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총기난사,마약,폭력,선악의 대립,

전쟁의 후유증 같은 요소들이 그려내는

미국은 그 자체로 절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롤러코스터처럼 느껴졌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는

모호한 제목은

그런 매카시의 세계관을 토대로 살펴본다면

어렴풋이나마 윤곽을 그릴 수 있다.

 

노인.

단순히 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이 단어는 사회적 약자나 폭력의 희생자,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폭력과 범죄의 순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 안에서 언제나 위협받고 있는

평범한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광범위하고 모호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 노인은 보호받지 못한다.

책 속에서 시거와 벨의 대립은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하며 막강한 시거.

그에 비해 보안관 벨은

무력하고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벨의 좌절과 죄책감은

악의 막강함과 선의 무력함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4.

미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었다.

매카시는 그것을 이미 제목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한국은?

당연하게도 한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이 말은 진짜 노인과

상징적 노인 모두를 포함한다.)

 

그러면 더 나아가서

세상에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이미 책 제목에 나와 있다.

 

세상 천지 어디에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니

책을 읽으면서 각자가 해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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