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공놀이 노래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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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공놀이 노래
요코미조 세이시
451p

 


 

5.죽은 이복형에게 바치는 슬픈 추모의 노래
이 소설은 반드시 마지막의 해설까지 읽어야만 한다. 만약에 해설까지 읽지 않고, 단순히 평범한 추리소설로 여기고 책을 덮는다면 그건 반쪽짜리 독서에 불과할 것이다. 반드시 해설까지 읽어야만 이 소설이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에게 어떤 의미이고, 그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의 명맥을 이어, 전후 일본의 정통추리소설에서 진가를 발휘한 요코미조 세이시는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도 유명한 일본의 국민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로서 명성을 얻은 작가다. 여기까지 생각한다면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단순히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한편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해설까지 읽으면 이 소설이 작가의 가슴에 맺힌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 감정을 중심으로, <악마의 공놀이 노래>의 감상문을 추리 소설과는 상관없는 방식으로 써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여기 유부남인 기이치로라는 남자가 있다. 마찬가지로 유부녀인 하마라는 여인이 있다. 둘은 각자의 가정이 있었지만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고,역시 운명처럼 각자의 가정을 버리고 사랑의 도주를 감행한다. 고베로 도망친 두 사람은 세이시라는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그런데 기이치로의 본처와 그녀의 아들인 가나오는 그들과 달리 절망의 늪에 떨어져 삶이 망가져버린다. 기이치로의 본처는 기이치로가 자신을 버렸다는 배신감에 치를 떨다 자살하고, 아들인 가나오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다. 혼자 남겨진 가나오. 하지만 가나오는 다시 아버지와 배다른 동생인 세이시와 만난다. 고베에서 살던 하마가 병에 걸려 죽고, 기이치로가 재혼을 했는데, 이 기이치로의 새부인인 아사에가 가나오와 세이시를 모두 거둬서 키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배다른 두 형제. 하지만 두 형제의 동거는 가나오가 젊은 나이에 '극단적 신경쇠약으로 인한 각기병'으로 사망함에 따라 불행한 결말로 끝맺는다.-

위의 글을 읽어보면, 요코미조 세이시가 가나오 모자에게 가지고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린 나는 죄의식에 시달렸다. 그것이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강한 열등감으로 남아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건 아닐까.'

요코미조 세이시는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가나오 모자에게 죄스러운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와 흡사한 이 감정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가진 커다란 짐이자, 살아가면서 평생 마음에 붙어다닐 죄책감이 되어버린다. 

시간이 흘러 요코미조 세이시는 전후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명성을 이어가던 그는 일본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사회 자체가 변화하면서, 거기에 발맞춰 미스터리 소설계도 따라 변화화면서 고리타분한 작가가 되어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변화의 기로에서 요코미조 세이시는 가슴 깊숙이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작품으로 써낸다. 그 작품이 바로 <악마의 공놀이 노래>이다.

이복형과 그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감정을 담아 써내려간 소설 <악마의 공놀이 노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변화의 모색이 엿보이는 이 작품의 핵심에는 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가 아니라 가나오라는 인물이 있다. 이복형인 가나오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이 인물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엄청난 고통을 겪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잃는 지경에까지 처한다. 소설 속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아버지를 잃은 그는, 귀수촌에 전해 내려오는 공놀이 노래의 가사에 따라 진행된 살인사건에 의해, 사랑하는 연인과 여동생과 어머니까지 모두 잃는다. 

피해자 몰살이라는 전매특허를 가진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와 피해자를 지키는데는 최악의 재능을 발휘하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와 소설 속 범인이 합작해서 벌인 이 끔찍한 상황 앞에서 가나오는 현실의 가나오가 겪었을 법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요코미조 세이시는 현실의 가나오에게는 전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 속에 묵혀두었던 말을 작중인물인 여배우로 성공한 오조라 유카리의 입을 빌려 소설 속 가나오에게 말한다.

'오빠, 여자인 저도 참고 견뎠으니 설마 어엿한 남자인 오빠가 견디지 못할 리 없어요. 강해지세요. 언제까지나 강하게 살아주세요.'

어쩌면 요코미조 세이시는 '강하게 살아 주세요.'라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른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어 확신할 수 없지만, 생전에는 하지 못한 걸로 여겨지는 이 말을, 가슴 속에 깊숙이 감춰두었던 이 말을 위해 가나오는 그렇게 힘든 고난을 겪어야 했고, 소설 속 인물들은 죽어가야 했는지 모르겠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특유의 음습하고 어두운 분위기에다 작가 자신의 슬픔까지 더해져서 더욱더 슬퍼진 <악마의 공놀이 노래>라는 이복형에게 바치는 추모의 노래가 끝나고 나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추리 소설을 이렇게 슬픈 가족소설처럼 읽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읽는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너가 만약 요코미조 세이시처럼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 죄가 되는 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과연 이 질문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아니 우리 모두는 이 질문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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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길들이기 - 전예원세계문학선 310 셰익스피어 전집 1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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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길들이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전예원
154p


4.책담화: 진짜 웃음과 헛 웃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웃은 건 처음있는 일이다.  영국의 대문호의 작품을 읽고
웃음이 나올 줄이야.
예상치 못한 웃음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 책을 읽고 웃어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이 참을 수 없는 욕구에 굴복한 어리석은 동물인 나는 결국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미흡하지만 작은 분량이나마 이렇게 글을 남긴다.
주체할 수 없는 어리석음의 욕구가 빚은 이 작은 결과물이 내 머리 속을 조급이나마 가볍게 하리라는 기대를 품은 채.

먼저 독자적으로 내가 어떻게 웃었는지 분석을 해 보았다.
그러니 내가 크게 두 가지의 웃음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두 가지 웃음을 여기에 따로따로 적어보겠다.

첫번째 웃음-진짜 웃음

첫번째 웃음은 말 그대로 진짜 웃겨서 나오는 웃음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지금까지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머러스하고,가장 황당한 사건들이 많이 나오는 희곡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어딘가 과장된 모습으로 희화화되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엉뚱하고 과장된 행동을 저지르며, 읽는 독자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부분은 캐더리더와 페트루치오가 처음으로 만나 대화하는 장면.
말괄량이라기 보다는 왈패에 가까운 캐더리더는 페트루치오를 보자마자 줄기줄기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보통 남자같았으면 기가 죽어 같이 욕하거나 버럭 화를 낼 만한 상황에서
페트루치오는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그녀가 욕설을 할때마다 칭찬을 한다.
그녀가 욕설을 내뱉으면 칭찬을 하고, 또 저주를 퍼부으면 마찬가지로 칭찬을 하는 것이다.
욕과 칭찬의 등가교환.  이 능글맞음을 통해 캐더리더의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받아낸  페트루치오는 그렇게 오직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자신의 목적을 훌륭히 이뤄낸다.

그 외에도 이 희곡은 중간중간 유머러스한 상황을 계속 만들어낸다.
아름답고 조신한 동생 비앵커가 마음에 안 들어 캐더리더가 그녀를 의자에 묶어놓고 때리는 장면이나, 비앵커와 결혼하기 위해 루첸티오가 자신의 가짜 아버지를 만들었는데,
갑자기 진짜 아버지가 등장해 당황한 가짜 아버지와 루첸티오의 하인들이
진짜 아버지를 비난하고,고발하는 장면등은 그 자체로서 재미있고,
우스운 장면으로서 셰익스피어의 유머스런 이야기 구성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다고 여겼다.
오히려 여기까지는 셰익스피어의 색다른 면에 이끌려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작품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진짜 우스워서 웃는 장면에서 더 멀리 나가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오는 지점까지 내용을 끌고 가 버린다.

여기서 두번째 웃음인 헛웃음이 나온다.

두번째 웃음-헛 웃음

두번째 웃음은 상황과 인물들의 행동이 너무 황당해서 나오는 헛웃음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희화화의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당대의 가치관과 고정관념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서 핵심적인 사항은 여성을 비하하고,
순종을 강요하는 정도가 아니라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페트루치오에게 캐더리더는 인간으로서 중요한 게 아니라 돈을 가진 여성으로서 중요한 존재였다. 그에게 캐더리더는 얻어야만 하는 하나의 재산이었고,
그러기에 온갖 모욕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능글맞음을 발휘해 그녀를 획득한다.   

그녀를 얻는 순간 페트루치오는 그녀가 자신의 물건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신부는 내 소유물이니, 나의 동산이요 나의 집이요 나의 가구요 나의 밭이고 나의 외양간이요. 또 나의 말 나의 소 나의 당나귀요. 나의 이것도 저것도 다 되는 거요.'

하나의 물건으로서 페트루치오의 소유가 된 캐더리더.
하지만 페트루치오는 그녀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의 물건인 캐더리더가 순종하는 여자가 되길 원했다.
그는 캐더리더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반항하고,자유롭게 행동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말이라면 무조건 듣는, 어떤 터무니 없는 일이라도 시키면 듣는 존재가 되길 원했다.
그는 물건으로서 그녀를 얻고 나서 그녀가 노예를 되기를 원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페트루치오는 그녀를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나선다.
헌데, 그 과정이 지금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어이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페트루치오는 그녀를 순종적인 여자로 만들기 위해,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잠도 거의 재우지 않으며,하는 일마다 못 하게 하고. 그녀 앞에서 하인들을 의도적으로 엄청나게 핍박하는 행위 등으로 그녀를 압박하고,그녀의 기세를 짓누른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야만적이었던 여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극히 비인간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페트루치오.
그의 다방면에 걸친 마초적 압박에 결국, 캐더리더는 두 손을 들고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듣고 보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당신이 태양이 아니라고 하면 태양이 아니랍니다. ...
당신이 이름이 붙이면 뭐든 그대로 돼요. 캐더린에게는 늘 그렇게 됩니다.'

그녀를 순종적인 여인으로 만든 건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녀는 극의 마지막에 가서 모든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편들은 우리들의 주인이요 생명이며 보호자며 머리요 군주이십니다. ...
그러니 오만함을 버리세요. ... 그리고 남편의 발밑에 손을 놓고 엎드려요.'

이렇게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막을 내린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내 얼굴에서는 참을 수 없이 허한 헛웃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토록 황당할 수가 있나?
어떻게 여성을 이렇게 비인간적이고,야만적인 존재로 비하하고,그것을 웃음의 소재로 삼을 수 있나?
어떻게 이토록 가부장적이고,권위적이며,오만할 수 있을까?
역시 그 당시에 여성은 2등인간에 불과했던 것이었나?

대문호인 셰익스피어도 당대 가치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나는 황당함에 사로잡혀, 계속 실소를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희곡은 평론가들의 가혹한 혹평에 난도질당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으로 군데군데 불완전하고 거친 면이 보인다는 점,
시작할 때 보인 서극이 중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을 야만적.비인간적인 취급을 한 점에서
평론가들과 전문가들은 가혹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서극:취객 슬라이는 술집 여주인과 술값 때문에 싸우다 지쳐 길거리에서 잠든다.
그걸 무심코 보던 지방 영주는 슬라이를 골탕먹일 계획을 세운다.
그를 자기 성에 데려가, 그가 눈을 뜨면 그를 영주로 떠받들고, 그의 자신의 기억을 말하면
그건 그가 미쳐서 환상을 본 것으로 우기기로 한 것이다.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자신을 영주라 착각하기 시작한 슬라이는 한 연극을 본다.
그가 보는 연극이 바로 <말괄량이 길들이기>이다.
한마디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극중극인 셈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유머러스함과 황당한 상황 설정이 어우러진 스피디한 극의 구성상의 특성으로,
공연적으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 극의 성공은 1980년대까지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해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읽기는 불편하지만,극으로 보는 것은 즐거운 작품이라 평한다.

사실 나도 이 희곡을 읽으며 재미를 느꼈지만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재미 때문에 생긴 웃음과 황당함과 불편함 때문에 생긴 헛웃음지 공존한 독특한 읽기의 체험.
내게 있어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두 가지 웃음이 공존한 기억으로 뇌리에 남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한 최후의 의문을 말하고자 한다.
진짜 셰익스피어는 단지 재미라는 요소를 위해 당대의 가치관을 답습한 것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당대의 가치관을 답습하면서도 동시에 당대의 가치관을 비웃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든 것일까?
어쩌면 셰익스피어는 동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공감하면서도,
웃는 사람들과 웃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마저 비웃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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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미궁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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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책담화: 물의 미궁=꿈의 마궁
이것은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남자가 있었다. 열심히 살아가던 그는 어느날부터 망상에 가까운 거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남자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진짜로 노력했다는 데 있다.  바로 여기서 이 책의 모든 일이 시작된다.
망상에 가까운 거대한 꿈이라는 건, 실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실현하기가 아주,아주,아주 어렵다는 걸 의미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남자의 힘겨운 행보. 그러나 그 남자의 꿈은 너무 거대했기에,
그 남자는 꿈을 꾸다가 꿈에 사로잡혀 꿈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꿈 속에 갇힌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 꿈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꿈에 사로잡힌 상태의 삶을 이어가던 그는 어느날 불운과 우연이 겹치며 최후를 맞는다.

여기까지가 도입부다. 책의 몇페이지를 차지하지 않는 듯 보이는 이 부분. 그러나 <물의 미궁>은 이 도입부가 엄청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뒷부분은 이 앞부분의 내용에서 파생되는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을 잡아먹고도, 꿈은 너무나도 거대했기에 계속 살아남았고,살아남은 꿈은 다른 이들을 자신의 포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성과를 달성해 다른 이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
책의 도입부를 넘어선 본격적인 내용은 이 과정을 담고 있다. 거대한 꿈이 한 남자를 죽이고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다른 이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는 과정이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도입부의 남자가 죽고 3년 뒤에 벌어지는 정체불명의 협박자가 벌이는 협박과 의문의 죽음과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고가와 후카자와의 활약,그들이 밝혀낸 진실은 모두 꿈에게 사로잡혀가는 인간들의 모습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한 남자의 거대한 꿈은 실현된다. 꿈이 실현되는 순간, 꿈은 상상에 불과했던 자신이 실체화하는 것을 보고 만족하고, 그제서야 포로들을 놓아준다. 꿈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기에 드디어 책은 끝을 맺는다.
 

작가는 이 과정을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꾸미기 위해 노력한다. 거대한 꿈을 꾸는 남자가 남긴 꿈의 유산이 남은 이들에게 넘어가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추리 소설적 내용을 담은 감동극으로 그리려 했다.
 

그러나 최소한 내게 이 소설은 꿈의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공포극에 가까웠다.
책 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한 남자가 남긴 꿈을 좇고, 그러다가 꿈에 사로잡혀, 오로지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그러다가 꿈을 실현시킨다는 건, 꿈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꿈이 삶을 지배하고, 인생을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게 만들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그건, 그리스 신화 속의 테세우스가 괴물을 퇴치하기 전의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을 연상시켰다.
복잡하게 얽힌 길을 희생자가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괴물을 만나게 되는, 그렇게 희생자를 잡아먹는 소머리의 괴물이 있는 그 미궁을.
소설 속에 테세우스 같은 영웅은 없었다. 있는 건 오직 꿈이라는 괴물뿐. 책 속 등장인물은 그렇게 차례차례 그 괴물에게 잡아먹힌다.
 

희생자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나는 책의 제목을 내 식대로 바꿔봤다.
수족관 배경의 물의 미궁을,꿈이라는 괴물이 지배하는 꿈의 마궁 이라는 제목으로.
 

*꿈을 쫓다는 틀린 표현. 꿈을 좇다가 맞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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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풍경
페터 슈탐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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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라는 에세이에서 소설가 김중혁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보낸 며칠을 못 견디게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해가 뜨지 않고 밤이 계속되는 겨울철 북극권 극야의 날들, 어두움과 희미함이 뒤섞인 모호하고 희미한 풍경들,

밤을 환하게 밝히는 한국의 불야성과는 다른 희미한 빛으로 뒤덮인 도시.

그곳에서 보낸 며칠은 무엇하나 명확하지 않은, 희미한 빛에 휘감긴 나날들로서 감당 못할 우울함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겨우 며칠을 보낸 사람에게 우울함을 불러일으키는 그곳의 희미한 풍경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누군가가 그곳에서 희미한 풍경을 바라보며 살다보면, 그 누군가의 삶도 희미해지지 않을까?

확실한 의지를 가지기보다는 타성에 젖어 자신의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희미한 풍경>은 이런 상상을 나보다 먼저 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희미한 풍경에서 살다가 삶이 희미해진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2.
스웨덴보다 위도가 높은 노르웨이 북구 항구마을에서 삶을 살아가는 카트리네.

백야와 극야가 이어지는 이 마을은 희미한 풍경을 거의 일년내내 유지하는 곳이다.

그곳의 풍경이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것일까?

카트리네는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살기 보다는 타성에 젖은 채 수동적인 삶을 이어나간다.

알코올 중독자로 싸움이 잦았던 첫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실패였고,

타성적이고 희미한 삶을 탈피하기 위해 행한 부유한 집안에다 명확한 인생의 목표를 가진 두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도

마초적이고 권위적이며 거짓말 투성이인 남편의 행동때문에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길 원했지만, 언제나 어긋나버리는 그녀의 삶.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하고 희미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결국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자아를 찾는 여행에 나선다.

 

'너, 항상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언제나.'

 

3.

<희미한 풍경>은 이야기의 힘보다는 풍경과 일상 묘사를 바탕으로 한 분위기에 의존하는 소설이다.

평범한 풍경과 일상묘사이지만 다른 무엇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분위기를 실남나게 재현하며,

소설은 한 여인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조명한다.

 

희미해진 삶을 희미하지 않게 만들려는 여인의 여정.

그 여정에서 그녀가 겪을 일들이 그녀를 변화시키리라는 점은 누구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녀가 변화를 위해 스스로 나섰다는 바로 그점이다.

그녀가 변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의지를 품고 나섰기에, 여행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여행은 진정한 변화라는 마법을 그녀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녀 스스로의 의지가 만든 여행. 여행은 단지 그녀에게 그 기회일 뿐이었다.

 

4.

만약 지금 스스로가 표류하고 있다면 그녀처럼 여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거침없이 나서려는 의지가 이미 스스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에,

우리는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앞으로 나서자.

그러면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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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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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뉴햄프셔 플럼상' 수상작인 『19분』. 실제 있었던 고교 총기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가는 총기 사건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많은 사람들이 피터를 기억할 때 떠올릴 19분 동안의 피터가 아니라 나머지 9백만 분의 시간을 산 피터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두 권짜리입니다. 저는 아직 두 권을 다 읽지 못한 상황에서 1권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괴물을 만드는 방법

 

괴물을 만드는 방법을 한번 알아보자.

 

대상. 먼저 괴물이 될 대상이 있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내성적이고, 마음이 약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아이면 좋다.

얼굴이 잘 생기거나 예쁘지 않고, 발육상태도 좋지 않고, 키도 크지 않고, 운동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라면 더욱 좋다.

이 정도의 자격을 가진 아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또래 집단에서 왕따를 당할 확률이 높다.

아니, 유치원 시절부터 왕따 당해서 왕따 자체가 생활이 된 인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벌레보듯 처다보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정도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괴물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안 된다. 진짜 괴물이 되려면 이것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

 

가족. 형제가 있으면 좋다. 그것도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형이 있으면 더 좋다.

그 형이 왕따 동생을 무시하는 데 앞장선다면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형은 자신이 동생과 다른 인물이라는 점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 과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형은 동생을 수렁 속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선다. 

당연하게도,  형은 동생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부모에게나 다른 친구들에게나 모두 인정받는 인물이다.

 

부모도 중요하다. 어머니는 형과 동생 모두 진정으로 사랑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형과 동생을 똑같이 취급한다.

힘도 약하고, 운동도 못하는 동생이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하자 어머니는 동생에게 저항하라고 쉽게 말한다.

동생은 그 말을 믿고 저항 하지만, 저항은 부질없이 짓밟히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는 동생에게 형처럼 축구부에 들라고 강요한다.

잘 하지도 못하고, 재미도 없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들어간 축구부.

그러나 동생은 그 축구부에서 만년 후보에다 힘 센 아이들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한다.

당하고 당하고 당하고 당하고...

어머니는 동생을 너무 사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도 중요하다. 경제학자로 대학교수인 아버지는 어머니 만큼은 자식에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총기 사용과 사냥에 대해 가르치며 자식들과 일체감을 유지하려 한다.

피를 무서워해서 사냥도 하지 않고, 총 근처에 가지 않으려 했던 형 대신 동생은 아버지에게 총에 대해 배우고 사냥도 한다.

총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을 잊지 말자.

괴물은 자신의 쌓이고 쌓인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총이라는 도구를 얻었다. 그것도 아버지에게서.

 

여기까지는 기본 베이스다. 시간이 흘러 이 가족의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형이 술 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여 죽은 것이다.

부모는 절망한다. 그리고 망가져서 괴물이 되어가던 동생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괴물의 탄생은 이렇듯 가족적 환경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 가족은 가망 없는 수렁에 빠져 있었어요. 그 아이는 화약통이나 다름없었고요.

부모들은 각자의 슬픔을 감당하느라 그 애한테 소홀했던 거예요.

피터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고요.'

 

사회문화적 환경. 작은 마을이 좋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한 가지 행동을 하면 순식간에 퍼져 버리는 그런 작은 마을.

이런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왕따가 되면 중,고등학교까지 쭉 왕따가 될 확률이 높다.

잊지 말자. 괴물이 될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또래 집단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괴물을 만들려면 사회적으로 경쟁을 장려하고, 경쟁에서 뒤쳐지는 존재를 가차없이 비웃고 무시하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

우위에 서 있거나 자신이 정상이라고 여겨진다면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존재들을 짓밟고

자신의 위치에 올라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쟁 지상주의적 풍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존재들의 내면에 엄청난 불만과 분노가 쌓일 것이다.

 

총에 관련된 문제도 있다. 사회적으로 총기의 자유를 허용하고, 총기 소유에 제한을 두지 않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지역이라면 분노한 인간이 총을 가지고 괴물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괴물이 자라지는 않는다. 누가 그렇게 몰아가지 않는 한 주부가 살인자로 변할 리도 없다.

... 피터의 경우에는 스털링 고등학교 전체였다.

약자를 괴롭히는 애들이 걷어차고 놀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꼬집었다.

그 모든 행동들이 피터가 속한 곳의 누군가에게 반격을 하도록 피터를 몰고 간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괴물이라는 폭탄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나 아직 괴물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남았다.

그건 바로 괴물이라는 폭탄을 점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괴물이라는 폭탄이 점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괴물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어린 시절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괴물의 단짝친구로, 어릴 때는 괴물이 괴롭힘 당하면 괴물을 도와주고,

왕따당해도 같이 어울리며 괴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친구는 괴물이 계속 주류에 끼지 못하자 괴물을 버리고 주류에 편입된다.

그 친구는 이제 다른 이들처럼 괴물을 무시하고, 상대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괴물이 그 친구를 같이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으려 하던 순간에는 문제없다.

 

문제는 그 친구가 괴물을 찾아오면서 부터 생긴다. 그 친구는 괴물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

그리고는 이용가치가 사라지자 다시 무시한다.

평상심을 가진 채 지내던 괴물의 마음은 요동치고, 괴물과 그 친구의 인연은 다시 시작된다.

사랑에 고민하던 그 친구에게 괴물은 지속적으로 접근하며 인연을 이어간다.

그렇게 접근하다 그 친구를 사랑하게 된 괴물.(그 친구는 여자다!!)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괴물의 사랑이 성공할리는 없다.

결국 괴물은 사랑에서 실패하고, 괴물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이 부분은 아직 완벽하게 나오지 않았다. 아마 2권에서 나올 것이다.

 

자, 이제 괴물이라는 폭탄이 완성되었다.

 

괴물, 폭발하다.

 

19분이면, 당신은 앞뜰의 잔디를 깎고, 머리를 염색하고, 하키 경기 3분의 1을 관람할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 치과에서 이를 하나 넣거나 다섯 식구의 빨래를 갤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세상을 멈추게 하거나, 세상에 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복수를 당할 수 있다.

 

그렇다. 19분은 범죄를 저지르기 충분한 시간이다.

19분이면 괴물이 학교에 쳐들어가 총기를 난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19분이면 10명이상이 죽고 수십명이 부상당하고 수백명이 무서워서 숨거나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이다.

19분이면 학교가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어, 지옥도가 펼쳐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19분이면 마을 전체가 공포에 빠지고, 국가가 경악할 만한 사건이 벌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는가?

그 괴물의 19분 이전에 괴물이 태어나기까지의 9백만 분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시간이 19분동안의 괴물의 폭발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되돌릴 수 없는 19분. 우리는 그 시간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내용은 2권으로 이어진다.

*1권의 경우, 감상보다는 내용을 적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식의 글을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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