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한 조직이 선한지 악한지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두목보다 착한 부하가 생존이 가능한지를 살펴보는 것일지 모른다. - P190
평범한 사람이 악당이 되는 것보다, 악당이 자신을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여기기 시작하는 것, 그게 훨씬 두려운 일이 아닐까. - P193
개인과 마찬가지로 권력 집단 역시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심연을 향해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다. 간혹 계획이 좌절될 때, 문득 정신 차리고 뒤돌아설 수 있을까. 그보다는 더 끔찍한 다음 단계로 질주하는 것이 보통 아닐까. - P201
원고를 읽는데 ‘전쟁‘ 옆에 ‘극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 편집자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군사학 용어로 전쟁이 진행되는 영역을 뜻하는 theater of war를 번역자가 ‘전쟁 극장‘이라고 무심코 옮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P202
전쟁 극장은 클라우제비츠 이전부터 있던 말이다. 속설에 의하면 전황이 궁금한 왕과 영주들이 지도를 가지고 보고받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 좀 더 실감할 수 있도록 전쟁을 극화해 궁정 무대에 올리게 한 것이 어원이라고 한다. - P203
클라우제비츠는 극장을 외부 현실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공간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서양 문화에서 극장이 이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인가 하고 놀랄 때가 있는데, 우리는 수술실의 옛 명칭이 수술 극장(operating theater)이었음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 P203
군사(軍事)라는 것의 극장적 요소들은 흔히 지적되고 있다. 실용적이라 보기 어려운 번쩍이는 군복이라든지, 해마다 광장에서 펼쳐지는 열병식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이런 것은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 P203
실제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전략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 같은 민간인 지역을 초토화시켰다는 뉴스가 나온다. 물론 이는 공격자가 자신들이 이처럼 무자비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알리려는 것이다. - P203
전쟁은 자체의 목적과 효율성을 따르는 게 아니라 정치에 복종할 뿐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치의 연장"이라는 경구처럼, 전쟁 중에도 외교 협상은 계속된다. 전쟁 중 정치가 사라지거나 우위를 잃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의 입장에서 최종 목적은 유리한 강화 조약의 체결이며, 전쟁은 이를 위한 협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이 평화 협상과 반대이기는커녕 바로 그 테이블에 펼쳐 놓는 수단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전쟁의 민얼굴에 좀 더 접근하게 된다. - P204
그 극장의 진짜 무대는 스크린이 아니라 관람석이라는 것 - P204
챗지피티(chatGPT)-3는 샌프란시스코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오픈에이아이가 공개한 프로그램이다. - P206
화이트칼라 노동을 기계가 대신해 주는 미래가 갑자기 우리에게 맛보기로 제공된 것이다. 몇 초 만에 끝나는 것을 노동이라고 부르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 P206
사람들의 의견은 대체로 ‘약간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이걸 기계가 썼다니 놀라울 따름‘으로 수렴된다. - P206
그 이름이 가리키듯 챗지피티는 대화용 프로그램인데, 중요한 건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 P207
우리는 인공지능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어려운 문제를 "사람이 이 기계를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는가?"라는 판별 가능한 테스트로 바꾸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화하면서 기계가 기계인지 사람이 못 알아차리는 지경이 되면, 그 기계는 지능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207
체호프의 단편 「문학 교사」(1894)에는 세상 사람이 다아는 것밖에 말할 줄 모르는 인물이 나온다. - P207
편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자신의 체험을 문학화하려는 욕구인데, 이는 문학가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곤경의 탈출구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 P208
자신의 경험을 문학의 언어로 재발견하려는 욕구는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할" 가능성이 있다. - P209
농민공(農民工)은 중국에서 이주 노동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 P210
"인간은 시적으로 산다."라는 하이데거의 말 - P211
하이데거가 예로부터 사회주의권에서 언제나 인기 철학자였다는 사실 - P211
자기 삶의 자유를 찾기 위해 철학을 추구하는 태도가 훨씬 훌륭 - P212
‘그가 뭘 읽든 넌 신경 쓰지 마‘ - P212
핸디캡 (지적이든 경제적이든)은 참견쟁이들을 모여들게 하는 좋은 조건 - P212
경제적인 욕망도 네 처지에 맞게 가지라고 충고하는 세상에서 독서에 관한 참견쯤이야 애교일지도 모르겠다. - P212
노동과 가난. 사람들을 가차없이 책과 멀어지게 하는 이유들이 첸지의 경우에는 반대로 책을 집어들게 했다. - P213
‘못 찍은 사진도 지우지 말 것‘ - P214
물건을 줄이는 삶, 간소한 삶에 대한 담론은 늘 있었지만 대유행이 되기도 했다. 공간은 비울수록 아름답고, 옷은 몇 벌이면 충분하고, 매일 물건 하나씩 줄여야 하며, 그게 지구에도 이롭다는 것이다. - P215
이 담론이 다이어트와 똑같은 갈망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나는 이 삶을 지고 가는 것이 힘들고, 출발점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으며, 자신과 주변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해야겠다는 것이다. 물건들은 체중과 같고, 물건이 없거나 버려서 생긴 불편은 배고픔이나 운동의 고통과 등가이다. - P215
간소한 삶과 다이어트의 유사성은 피상적인데서 그친다. 다이어트는 자기의 지방을 태우지만, 간소한 삶은 물건을 내버릴 뿐이다. - P215
지방은 본래 태우라고 쌓아 두는 것이므로, 다이어트는 지방의 본질을 존중하고 목적의 실현을 돕는다고 할 여지도 있다. - P215
물건을 버리는 것은 이와 다르다. 여기에는 일방적인 관계 단절이 있을 뿐 물건의 특성을 존중한다거나 적절한 사용법을 찾아보려는 관심은 들어 있지 않다. 자신이 물건뿐 아니라 다른 대상에도 이런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면, 과연 간소함으로 삶의 변화를 얻을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 P216
‘우리는 허기진 사람처럼 물건을 사서 공간을 채우므로‘ 따라서 ‘뭔가 반대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진실은, 큰 시간 단위로 보면, 우리가 열심히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 P216
우리는 공간이 좁아서, 또는 새 물건을 들이기 위해, 또는 심리적, 심미적 이유에서 많은 사물들과 작별한다. - P216
일상이 된 이 버리는 삶은 삶의 허망함의 주된 원인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허망함은 정직한 감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건과 의미 있는 연관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물건의 가능성을 완전히 써 버리지도 않은 채 버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가 인생을 다루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 P216
물건을 끝까지 다 사용했을 때 쾌감이 일어난다고 말했던 스토아 철학자들이 있었다. 예컨대 치약이나 장판 테이프를 끝까지 다 쓰면 우리는 실제로 기쁨을 얻는다.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감정이라는 건 확실하다. - P216
삶의 목적은 자신을 생산하는 것이고 인간은 그것을 완전히 소모해야 한다고 말한 키르케고르 - P217
자신을 소모할 때 인간은 출발점에 서게 되는 거라고 - P217
인생의 실마리는 물건을 치우는 쪽보다. 사용 방법을 이해하고 끝까지 써 보려고 하는 쪽에 섰을때 더 찾기 수월해지는 건지 모른다. - P217
셰익스피어의《겨울 이야기》. 배우자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연극이다. - P219
에리크 로메르의 영화 「겨울 이야기」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언제 시작할 수 있는가? - P219
죽음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유예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인생을 사는 날도 계속 연기되고 있는데, 내가 준비가 안 되었거나 객관적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19
"지금까지 난 대충 산 겁니다!" - P219
자신이 임시적으로 사는지 진짜로 사는지 타인이 알아차릴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본인들은 그걸 구분하면서 산다. - P220
어쩌면 우리가 타인을 공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그의 진짜 삶과 임시적인 삶, 양보할 수 없는 것과 어찌되든 상관없어 하는 것을 가려서 살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 P220
내게는 중요한 일인데 이 일에 엮인 상대방은 이게 자신 인생의 본령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온도차를 내가 감수하면 되는 걸까? - P220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실무적이든 윤리적이든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 P220
왜 우리는 인생을 살지 않는가. 사랑했던 것을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의 죽음과 부재를 받아들이고 애도를 표하자. 그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간으로 돌아오는 첫걸음이다. 부활은 아마 그 다음에야 가능한 것일 게다. - P221
슈레버는 1903년 『어느 신경병 환자의 회상록』을 출판했다. 여기서 신경병(Nervenkrankheit)은 정신병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신경증(neurosis)과는 다르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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