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 다행이야 - 우리라는 이름의 사랑
오리여인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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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여인?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낯설지 않은 이름. 2020년에 에세이를 읽으면서 알게 된 작가였다. 어머나, 그때는 싱글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신랑과 아가가 구성원인 세 가족의 일상을 몽그러운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오리여인은 비혼주의였지만 아기는 너무 예뻤다. 완두 콩만 한 그 마음은 커져 결국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식장에 서 있는 신부가 되었다. 사람일 아무도 모르는 거다. 나도 6년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1년도 안 돼서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으니까. 사람은 다 때가 있고 만남의 인연이 있기 마련이다. 지나고 보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혼할 사람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냥 마음이 통하고 편하고 닮고 싶은 너그러운 사람이 있다. 나는 예민하고 마음에 모가 많이 나서 삐쭉 삐죽한데 그 사람은 둥그러워 나의 모서리를 감싸 안아 주고도 남을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오리 작가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닐까. 부드러운 현과 살면서 가끔 맹수가 되어버리는 오리씨. 나는 착하디착한 신랑이 답답해서 악다구니를 쓰면서 해결하는 데 열 올릴 때도 있다. 답답하지만 바르고 착하게 사는 그 사람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 그래도 세상은 거짓말도 적당히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긴 하다. 요즘은 내가 못됨에 조금 물든 것 같다. 화도 좀 내도 둘러대는 말도 늘어났다. 이런 게 바로 스며들어 동화된다는 거겠지? 부디 나의 못된 마음을 다 물들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글 쓰는 사람의 예민함은 비슷한가. 오리 작가는 주변에 친구도 많고 외향적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소심하고 카톡읽씹에 신경 쓰는 타입이었다. 나랑 되게 비슷하네 싶었다. 카톡 대화를 주고 받다가 인사 안 했는데 대화가 끊어지면 '내가 뭘 잘 못했나, 서운하게 했나?' 대화를 위로 올려 곱씹는다. 국밥 좋아하는 것도 비슷. 하얀 쌀밥에 겉절이나 김치를 올려 먹는 것도 좋아한다.

혼자였다가 둘이 되고 셋이 함께 살고 있는 이야기가 점점 추워지는 날씨와 역행한다. 데워지고 보드라운 마음에 센티멘털해지기도 하고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기도 한다. 가을 타는 건가? 가족이 꾸려진다는 낯설고도 두렵고 든든한 양가적 감정이 녹아들어 가 있다.


왼쪽에는 에세이 오른쪽에는 3칸, 8칸 만화 형식이다. 만화만 봐도 이해는 되지만 좀 더 작가의 생각을 나누고 싶다면 텍스트 타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예전에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를 좋아하는데 한국에도 간결한 그림이지만 풍성한 생각을 담은 작가가 있다는데 새삼 놀랐다.

행복과 불안

나는 행복해도 불안한 사람. 좋은 일이 많이 생겨도 언제 또 불안한 일이 생길까 봐 초조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 마음이 꽤 괜찮은 건 반대로 불행한 일이 닥쳐도 좋은 일이 곧 올거라는 작은 희망도 함께 품을 수 있다는 것.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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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
사사키 아이 지음, 양하은 옮김 / 모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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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참 좋아한다. 벌써 10년 전 영화다. 극장에서 봤던 재미와 감독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두 이모와 사는 서른 넘은 폴이 우연히 이웃 마담 프루스트 집에 방문해서 차와 마들렌을 먹고 과거의 상처와 추억을 떠올린다는 이야기다.


프루스트 효과는 반복된 습관으로 뇌가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거론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되었다. 소설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아주 긴 시리즈라 완독했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중도 하차를 유발하는 전설의 난해한 책이다. 그래서 더욱 홍차와 마들렌, 기억의 상징이 된 것만 같다.


책은 표제작 '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 '봄은 미완', '악보를 못 읽는다', '지독한 마침표' 네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이 슌지의 풋풋하고 달달한 그러나 씁쓸하기도 한 청춘 미완의 모습이 청량감 있게 담겨 있다.


주인공은 초콜릿 입힌 죽순마을 과자를 먹으며 공부한다. 기대효과는 죽순마을을 먹을 때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문제로 기억력을 높이려는 귀여운 발상을 하고 있다. 거기에 첫 키스는 상상도 못할 곳에서 하자는 발칙한 계획까지 더해져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읽을 수 있었다. 누군가와 사귀다가 헤어져도 음식, 장소, 물건, 사람 때문에 떠오르는 관성을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먹어본 적 없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알고 싶다.

그 맛에 떠오르는 사람과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만약 도쿄에 갈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을 사귀고 싶다.

도쿄의 공기를 마셔도 오가와만 떠올리지 않도록.

p46


최근 <키리에의 노래>를 보고 이와이 슌지 영화 <하나와 앨리스>를 챙겨봤다. 접점인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허니와 클로버>까지 보다 보니 2000년대 일본 감성이 지금 감성과는 많이 달라졌음이 느껴졌다. 이 책은 부담 없이 읽어볼까?는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책이다. 


변하지 않는 일본 감성과 가을이 되었지만 곧 돌아올 여름을 상징하는 시원한 수영장의 표지가 내용과 잘 어울렸고 '사사키 아이' 작가의 차기작이 기대되었다. 잠시나마 고교 시절도 돌아간 듯 홍차와 마들렌을 보면서 추억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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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 - W. G. 제발트 인터뷰 & 에세이
W. G. 제발트 지음, 린 섀런 슈워츠 엮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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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없다면 어떤 글쓰기도 있을 수 없다

1944년 독일 알고이의 베르타흐에서 태어난 '빈프리트 게오르크 막시밀리안 제발트'. 영국 노리치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3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브리티시문학번역원 초대원장을 지냈고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하인리히뵐문학상, 베를린문학상 등 국제적인 상을 받았다. 소설 《현기증. 감정들》, 《이민자들》, 《토성의 고리》, 《아우스터리츠》, 세 권의 시집, 에세이 《공중전과 문학》을 남겼다.

이 책은 그가 2001년 자동차 사고로 급작스럽게 사망한 후 '린 섀런 슈워츠'에 의해 만들어졌다. 중요한 인터뷰와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엮어 만들어 냈다.

역시나 처음 만난 작가이기에 역자 후기부터 훑어봤다. 공진호 번역가는 같은 번역가로서 제발트의 번역 방식을 흥미로워했다. 《이민자들》독어를 영어 버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의역과 직역 논쟁으로 커졌다.

결국 독어 원작 보다 영어 번역 교정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훗날 제발트 전기 작가는 그래서 독어본 보다 영어본이 원작자가 공들인 완성체라 평가한다. 모르는 작가였지만 집요하고 성가신 완벽 추구 성향에 성격 지향점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교통사고 당시 죽음의 순간에도 친구가 낭송하는 자신의 시가 라디오를 흘러나왔다니 자존감이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다.

책 소에는 평소 그의 일화나 인터뷰 성향, 문학적 성향을 다루고 있다. 전쟁 직후 때어났다. 알프스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죽음과 늘 가까웠고, 그로 인해 다양한 관점이 생긴듯하다. 스스로를 유령 사냥꾼으로 지칭하며 독일 산문 픽션의 창조자로 불린다. 후반부의 연보까지 읽어보면 전 세계적인 '제발디언'의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될 거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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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뛴다
유준상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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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이야기 전달자다.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기준은 이야기가 재미있느냐 아니냐이다. 단순히 재미를 위한 재미가 아닌 이야기 안에 충분히 공감할 만한 요소가 있고, 연기적으로 다양한 접근 가능성을 열어주는 작품을 택한다.

배우 인터뷰 때 종종 일지에 대한 말을 듣는다. "그때 뭐라고 썼는지..", "얼마 전에 촬영 때 쓴 일지 같은 걸 봤어요"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참 피곤할 텐데 일기를 꾸준히 쓰네' 생각했다. 배우마다 다를 테지만 대략 그날 분위기, 특이했던 점, 기억 남았던 순간, 내가 잘한 것, 못한 것 등을 쓰는 것 같았다.

배우들은 그걸 끄적거리면서 인터뷰하는구나, 크랭크업은 1년 길게는 3, 4년 전 것도 끄집어내야 하니까. (기자들이 당시 촬영 분위기나 감독, 배우와의 호흡, 에피소드 등을 물어본다) 일지를 들춰 보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김혜자 선생님 책 이후로 오랜만에 또 배우 에세이를 읽었다. 배우, 감독, 뮤지션 등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유준상의 에세이였다. 머리말에 이런 말이 있어 눈길을 끈다. '스무 살 이후 지금까지 배우일지 와 공연 일지를 쓰고 있다. 분실한 일지들도 있지만 세어 보니 모두 서른대여섯 권의 노트가 남았다.' 글이 인상적이었다. 공연 일지로 분리해서 쓰는 배우도 있구나.

 

이 책은 그가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일지를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쓴 글 중 2015년 때와 <바넘: 위대한 쇼맨> 공연 일지를 엮은 것이다. 꾸준히 쓰는 사람은 조금씩 성장한다. 나도 일기는 가끔 쓰지만 영화글(리뷰, 한줄평, SNS 짧은 글)은 매일 끄적이는 직업병을 떠올릴 때. 성실한 지구력은 습관이 되고 쌓여서 자산이 된다는 걸 실감했다.

배우란 이야기 전달자로서 인물을 더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곱씹는다. 말하는 직업. 사람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성찰하는 거라고 쓰여있다. 말하기는 발음을 꼭꼭 씹어서 한 호흡으로 내뱉는 것이다. 연습을 매일 반복해야 한다. 연기처럼 음악, 연출도 겸하며 느낀 소회도 적혀있다. 냉담함, 무관심을 버티고 불안함이 엄습하지만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는 게 인생이다.

 

유준상은 50이 되던 해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자는 다짐도 적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병상에 누워 '나를 위해 뛴다'는 말의 이유도 깨닫는다. 60이 되어서도 그 말을 되새기겠다는 선언이었다. 건강도 일도 명상도 창작도 게을리하지 않는 반백살 배우의 일기를 들여다보며 나 또한 고무되었다.

하루도 글 쓰지 않고, 영화 보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짧은 인생 동안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공연 일지가 대부분이었지만 곧 영화 <소년들>로 만날 것 같아 기대된다. 에세이를 읽은 후 보게 되는 유준상의 연기말이다.

어제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 3시간 반 동안 맨정신으로 이야기했다. 배우가 된 친구인데 주로 무대에 서고 영화를 하고 싶어 했다. 생각지도 못한 배우계 이야기, 업계 분위기, 사는 이야기, 신념 등을 듣고 영감도 많이 받았다. '영화'라는 매개체 하나만으로도 두런두런 몇 시간이고 술술 이야기가 나왔다.

배우란 직업을 더 알아간 기분이다. 집에 돌아와 아침에 읽다 중단했던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아침과 조금 다른게 느껴지더라. 앞으로 내 일을 하는 데 있어 용기와 위로가 될 것 같다. 10월 첫날 출발이 좋았으니 남은 두 달의 2023년도 잘 마무리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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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오쿠다 히로미 지음, 박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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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에서 조연으로,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면 '근사한 노인'이 된다.


흔히 100세 시대라고는하지만 돈, 일, 동기, 가족 등이 없는 노년은 불행하다. 저자 '나카무라 쓰네코'는 의사였지만 돈을 벌어오지 않는 남편 대신 가장으로 일하며 구십 언저리에 은퇴하게 된다. 은퇴 이유도 본인의 의지보다는 넘어져 대퇴골경부가 골절되면서다. 이후 재활과 요양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단다.


이 책은 54세 정신과 전문의 '오쿠다 히로미'가 인생 선배이자 평생 현역인 나카무라 쓰네코의 인생 방식을 알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이 듦을 즐길 수 있을지 혜안이 들어 있다. 나카무라 선생은 구십이 넘어 언제라도 삶을 등 질 수 있기에 정신이 온전했을 때 재산 장례비 등을 처리했고 유서도 썼다. 아들 부부에게 폐 끼치기 싫어 요양 시설을 찾았다. 자식들에게 남겨야 할 것은 돈이 아닌 지혜라고 했다.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입니다.

인간관계를 서서히 내려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도 필요합니다.


어차피 혼자 왔던 인생 혼자 가는 고독사도 싫지 않다고 했다. 떠날 때도 훌훌 사라지는 거다. 태평양 전쟁을 겪었던 세대라 의연한 마음이 생기기도 할 거다. 거기에 일본인 특유의 폐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이 독립적인 사람을 만들었던 거 같다.


죽을 때는 지위, 명예, 돈, 가족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으니 현실에 충실하자는 생각에 동의한다. 리얼충. 미래에 급급해 종종거리며 불안해하는 것보다 지금을 잘 살면 미래를 완성하는 거라고 믿는 거다. 내일의 걱정과 어제의 후회는 그만하고 오늘 잘 살기에 집중하자.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말자.

내담자의 사연은 각각이지만 불안한 노후의 걱정이 대부분이다. 그때 힘이 되는 말과 상황이 제시되어 있다. 나이 드는 것을 부정해 봤자 불행해질 뿐,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것도 행복이다. 나이를 한 해 두해 먹으니 주변 사람들 관계가 정리된다. 나카무라 선생은 친구가 많으면 좋기도 하지만, 고민도 커진다고 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크고 잘 풀리지도 않기 때문에 나와 맞는 친구와 사귀는 게 좋다고 한다. 무의미한 인사치레와 허울뿐인 관계는 정리하자는 것.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지인과 몇 마디 나누면 쉽게 그 생각이 전염되더라. 책에서처럼 행복한 모습, 자랑거리만 올리는 SNS에 휘둘리지 말고 고독을 즐겨 보기로 했다. 인간관계에도 에너지 절약이 필요하다.


지하철 1호선은 유독 천상천하 유아독존 노인이 많다. 가만히 있다가 린치 당하는 것 같은 분들이 참 많은데 나는 늙어서 저러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저렇게 뒤틀려버린 이유가 있지 않을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지도처럼 그려지는 것 같다. 곧 마흔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구십, 오십 대의 가르침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 같아 나의 사십 대가 기대된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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