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게를 위한 브랜딩은 달라야 합니다 - 초보 사장님을 위한 영화 속 마케팅 공식 15
정나영 지음 / 청림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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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팬톤 2021년 컬러 같아서 마음에 들었던 책. 소상공인, 작은 가게를 위한 브랜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마케팅 관점에서 글을 쓰는 방법도 있구나 새삼 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초보 사장님을 위한 영화 속 마케팅 공식 15'은 15개의 공식에 맞는 영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국제시장>에서는 MD(머천다이징)와 VMD(비주얼머천다이징)를 연결한다. 부산 국제시장의 명물 꽃분이네를 주축으로 명소와 볼거리, 흥미로운 경험까지. 시장 자체를 팔라고 조언한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노인의 노하우만큼 오래된 스토리텔링으로 고객을 끌어모으라 한다. 도라야키 가게, 직접 팥소를 만드는 장인을 통해 일본의 문화와 우리나라의 한과를 엮은 점이 흥미로웠다.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취재했던 갈골산자 최봉석 명인의 수작업 제조 방식이 소개되어 놀랐다.


<극한직업>은 형제치킨의 수원왕갈비통닭을 비유하며 고객이 원하는 메뉴의 종류와 수를 찾아내는 메뉴 엔지니어링을 제안했다. 천만영화에 숨겨진 마케팅 원리를 배워보는 시간이었다. 수사를 위해 위장취업한 치킨집이 오히려 대박나는 아이너리가 재미있는 영화였다.

지금까지 맥 라이언과 톰 행크스의 로코로만 인식했던 <유브 갓 메일>은 거대 자본(대기업)으로 폐업 위기에 놓인 작은 서점이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영화였다. 이렇게 보니 완전 다른 영화였다니. 저자는 작은 서점 만의 감정을 파악한 후 고객과 지적인 소통과 교류를 하라고 말한다. 즉 제3의 공간을 만들고 독립서점의 생존 공식 3c(커뮤니티, 큐레이션, 모임 convening)를 기억하라고 했다.

어머니의 오래된 식당을 자신만의 메뉴와 운영 방침으로 꾸려가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단골, 나만의 고객이란 목표 고객 집단을 이해하고 골목상권을 키우기를 권유했다. 마치 '22세에서 60세까지의 교육 수준이 높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회 중산층과 상류층, 사회적 의식수준이 높으며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고객'이 스타벅스의 타깃인 것처럼 말이다.

인류 호텔 출신 셰프가 전국을 떠돌며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파는 <아메리칸 셰프>에는 SNS로 폭망해 SNS로 재기하는 소셜 미디어 마케팅의 순기능을 설명한다. 시골의 작은 가게에서 시그니처 초콜릿으로 고객을 끌어 들이는 <초콜릿>은 개인화, 감각 마케팅을 권하며 고객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해 개인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오래된 동네의 생필품을 책임지는 슈퍼 장수마트의 전신 <장수상회>에서는 사라져가는 동네 슈퍼를 살리며 이 책의 주요 목표기도 한 브랜드 마케팅을 설명한다.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 변화하는 시장에 대비하는 재정비가 작은 가게의 브랜드 마케팅의 근간이다.


인적 드문 한적한 바닷가에 오픈한 카페는 어떨까?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은 번화가가 아니더라도 작은 가게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MOT '진실의 순간',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15초를 주목하라며 심리적 거리를 설명한다.

동네 터줏대감이자 주민들의 결점을 보완해 주는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은 과거와 현재, 미래. 온고지신 정신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쇼핑의 심적 안정 치료 효과인 리테일 테라피의 장점과 고객 감동을 실천하는 양장점 주인만의 비법이 소개되어 있다.

마니아를 위한 음반가게를 소재로 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는 틈새시장 공략, 니치마케팅을 설명한다. 소수가 모여 다수가 되고 티끌 모아 태산이 되듯 목표로 삼기 좋은 틈새시장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일본에서 먹던 음식을 핀란드 현지 재료로 만드는 <카모메 식당>에서는 두말할 것 없는 힐링과 먹방을 선보여 영화팬들에게도 인생 영화로 꼽힌다. 여기서는 낯선 곳에서 가게 운영 시 현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현지화 마케팅'을 예로 든다.


장난감 가게의 생명체로 혼란을 부르는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은 장난감 보다 경험을 파는 경험 마케팅을 한 수 배울 수 있다. 인적 드문 바닷가에 차린 빙수처럼 <바다의 뚜껑>도 시도하지 않은 것, 깊이 뿌리내린 정체성 등 연대의 고리를 촘촘하게 늘려 작은 가게가 북적이도록 만들라는 교훈도 얻는다.

마지막 <와인 미라클>에서는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크라우드 소싱과 마케팅을 설명한다. 더불어 고객에게 참여의 기회를 팔고 아이디어와 재능을 지속하면서 한배 타는 방법을 알려준다.

15개 중 솔직히 6개만 봤더라.(뭘 봤는지는 안알려줌) 나머지 영화는 빠른 시일 내에 보고 마케팅의 관점을 바라보기로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부제는 '영화 속'이라고 했지만 엄연히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4부작 드라마다. 2쇄가 들어가면 정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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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 이성을 넘어 다시 만나는 감정 회복의 인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30
신종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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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너무 감정적이야"란 말을 자주 듣는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MBTI는 INFJ. 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에도 쉽게 감염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인물이 울고 있으면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나도 울고 있는 상황. 어쩌면 드라마 [이로운 사기]의 과공감증후군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다.

유년 시절부터 친구들의 연애 및 삶의 상담은 내 몫이었고, 누군가와 싸우거나 불편하면 혼자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시나리오를 쓰곤 했다. 한 마디로 피곤한 유형이다. 절대 상담사 같은 직업을 찾으면 안 되는 인간이다.

자신을 감정 위에서 파도 타는 법을 알려주는 교육학자라 소개한 '신종호' 저자의 《저, 감정적인 사람입니다》는 괜한 것도 분석하길 좋아하는 INFJ가 좋아할 도서다. 시간과 돈이 된다면 심리학을 배우러 대학원에 가고 싶을 정도로 남을 탐구하는데 집착하는 내게 참 유익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부를 축적한 사람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자기감정을 잘 조절하는 '정서 지능'을 키워야 인간관계, 사회활동, 업무 수행력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자기 정서를 잘 알아야 올바른 행동으로 연결되고, 다양한 상황에서 정서조절에 용이해 건강한 방식이 이루어진다.


책에는 심리학의 다양한 종류, 기질 등이 정리되어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주변인, 영화나 책 속 캐릭터를 이해하게 되었다. 정신건강이 중요하다고 믿기에 매우 공감 가는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를 분석해 보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선천적인 낙천성이 50퍼센트,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같은 배경이 10퍼센트, 그리고 일상생활의 즐거움이 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즐거움이 행복을 경험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P196

제우스를 속이고 지옥에 떨어서 정산의 바위를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삶은 매일 무거운 바위를 올려 행복에 닿으려 하지만 도달하지도, 머무르지도 못하는 순간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너그러운 마음을 유지하려고 해야겠다.

사람 사이에서 자주 떠오르는 질문에 가까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지.." 정말 고민했고, 조용히 손절한 사람도 많아서였다. 그 첫걸음으로 나의 정서를 이해해야 했다.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먼저 이해하지 못하면 한계에 직면하게 되고 성장하지 못한다. 만약 잘 이해하게 된다면 삶의 의미나 타인의 이해, 성취감, 행복은 따라온단다. 오늘부터 시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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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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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얼마 전 열렸던 '서울국제환경영화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영화 <스트라이킹 랜드> 예매하면 책도 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영화는 못 봤지만 책은 읽어보게 되었다. 영화제에 참석해 보면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환경 관련 도서도 많이 추천받는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관객심사단을 했던 적이 있다. 그전에도 관객으로 여러 번 참여했는데 직접 환경 관련 영화를 보면서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었다. 그때 심사했던 영화 <펀치볼>이 관객심사상과 우수상 2관왕을 받으면서 더욱 뿌듯했던 기억이다. 꾸준히 자연과 생태, 기후변화와 탄소발자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중 좋은 책을 읽게 되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친구가 있다. 수박을 먹고 껍데기를 햇볕에 말린 적이 있는데 그때 그걸 먹으로 왔던 거 같다. 완전한 도심에 살지만 새벽에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음이 적은 새벽녘에는 녀석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그때 유심히 관찰하던 새가 있었는데 머리가 스포츠형이었다. "이 녀석 좀 터프하고 까칠해 보이네"라고 생각했는데 요리조리 찾아보니 도심 속 아파트 숲에 살아가고 있는 친구였다.

책 속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다. 손으로 그린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감과 그림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가 잘 몰랐던 자연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면서 스토리텔링과 역사도 알 수 있다.

아카시아꽃은 원래 아까시나무였다는 것, 저자처럼 물건을 오래 쓰는 것도 공감했다. 나도 파우치 귀퉁이가 헤졌고 심지어 찢어져서 바꾸었는데 지금도 낡은 상태다. 최근엔 아파트에 무작위로 가지치기하는 것이 영 맘에 안 들었다. 주민 동의는 얻고 하는 걸까? 너무 잘라놔서 가여워 보이기도 했고, 어떤 나무는 주차공간을 만든다고 아예 베어버렸다. 책을 읽어보니 나뭇가지는 25% 이상 가지치기하면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못해 굶주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참 고마운 책.



몇 년 전부터 구매욕과 소비욕이 줄어들었다. 이게 다 환경영화제 탓이기도 한데 먹을 만큼 먹고 쓰레기 만들지 않고 음식 주문도 그에 맞게 한다.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고 찢어져서 못 입을 때까지 입다가 어쩔 수 없이 버린 옷과 가방에 뿌듯함을 느낀다. 대량생산과 과소비 시대 자고 일어나면 새 물건이 척하고 생기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집에 안 쓰는 물건이 많은 것도 스트레스라 주변에 나눠주고 팔고 버렸다.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에 소유욕을 줄이기 힘들었지만 여전히 애쓰고 있는 중이다.


영화 <기적>은 우리나라 최초 민자역인 양원역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유일한 발이 되어 준 간이역이 사라지는 것은 고속도로 발달에 있다. 기차는 기후 위기 시대 탄소중립 대안으로 각광받는 수단이라 여행을 다닐 때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저자는 간이역이 지방 소멸을 막을 좋은 대안이라 제시하고 도시 포화 상태와 교통체증을 이야기한다.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를 보면 미니멀리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재미와 의미 모두 찾는 영화니 시간 되면 보기를 추천한다. 저자님이 영화를 참 좋아하시네 또 생각하는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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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집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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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를 기억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소격효과'. '낯설게 하기'혹은 '제4의 벽 깨기', '소외 효과' 등으로 불리는 이론을 만든 사람이다. 연극에서 주로 사용되는 효과로 극의 몰입을 방해하여, 관객이 스스로 질문들 던지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게끔 한다. 영화에서 가끔 카메라에 말을 거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면 브레히트를 떠올린다.


독일의 극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시인이기도 했다니. 역시 글쟁이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쓴다는 데 공감하게 되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 당시 위생병으로 복무, 이후 연극과 창작의 길을 떠났다. 히틀러 정권 시절 14년 동안 망명 후 1949년 동독에서 정착해 활동했고 1956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2,300편이 넘는 시를 남겼다.

암울한 시대에

암울한 시대에

노래가 있으랴?

암울한 시대에 대한

노래가 있으리

책은 그중 몇 편을 꼽아. 그가 시대와 역사에 침묵할 수 없어 쓰라린 마음으로 펜을 잡은 고뇌가 서려있다. 수많은 시 중 절반 이상이 사후에 빛을 보았다고 한다. 뒤에 번역가 해설 부분이 너무 잘 되있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공진호 번역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는 인간의 욕망은 선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 정글의 법칙이 문제라 말했다. 기존 사회 질서가 전복되어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며 끊임없이 부조리를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도 공산당에 입당하지는 않았고, 성경을 품에 안고 놓지 않았다. 인간을 향한 마음은 종교를 떠나 예수와 동일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소외된 사람들을 시 소재로 삼으면서 인류애와 사명감을 잃지 않으려 했다.

시에 안 좋은 시대

물론 안다. 행복한 사람만이

인기 있다는 걸.

그런 사람의 목소리는

듣기 좋다.

얼굴은 밝다.

뜰에 있는 주접든 나무가

안 좋은 토양을 암시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주접들었다고 놀린다

그럴 만도 하다.

해협의 초록색 배들과 펄럭이는 돛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고 많은 사물 중 하필이면

어부의 찢긴 그물만 보인다.

나는 어찌하여

구부정하게 걷는 마흔 살의

마을 아낙네 이야기만 하는가?

처녀의 가슴은

예나 지금이나 따뜻하거늘.

내가 운율이 맞는 노래를 쓴다면

마치 들떠 떠드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마음속에 서로 다투는 것이 둘 있으니, 그것은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과

페인트공이 연설하는 소름 돋는 광경이다.

하지만 후자만이

나를 책상으로 가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인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은 이 시구에서 따왔다. 여기서 페인트공은 히틀러를 뜻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전원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다. 정치적인 상황(토양)이 좋지 못해 주접든 나무(브레히트)가 생겼다고 했다. 얼굴은 시를 암시하고 토양 탓이라도 사람들이 그럴 만도 하다고 했지만. 찢긴 그물을 통해 자연을 찬미하는 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를 말한다.


시의 시는 대부분 구연을 감안해서 썼다고 한다. 그것을 가리켜 'Gestisch'라고 한다. 제스처. 시가 극에서 활용된 탓인지 읽다 보면 영화의 장면처럼 떠오르는데, 바로 연극이나 영화의 대본으로 확장해도 괜찮겠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브레히트와 연이었던 여인이 참 많기도 하더라, 사랑도 시대를 고민했던 것처럼, 치열하게 했던 것일까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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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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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는 영화 <말 없는 소녀>의 원작이다. 영화 보기 전 긴 단편 소설인 원작을 읽어봤다. 책도 영화도 길다고 좋은 게 아니다. 시, 단편이 주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이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손에서 탄생했다. 100P가 채 안 되는 소설은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안에서 자란 소녀가 먼 친척 집에 며칠 머물게 되는 이야기다.

1981년 여름,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가족은 다섯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중 위로 둘 언니와 밑에 남동생, 곧 태어날 남동생 사이에 끼인 셋째 소녀는 킨셀라 부부네 집에 맡겨진다. 소녀의 집은 가난해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늘 피곤에 지친 엄마 곁에서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들은 말이 없다. 남들 눈에는 조용하고 조숙한 아이로 보일 거다. 손도 많이 가지 않으니까 키우기 쉽겠다지만, 주눅 든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거친 아빠는 부유하지만 자식이 없는 노부부 집에 며칠 소녀를 부탁한다. 처음으로 남의 집에 가보는 소녀는 따뜻한 환대를 경험한다. 첫날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시트에 실례를 한 소녀를 나무라지 않고 축축한 매트리스 때문이라고 자신을 탓하는 성정을 가졌다.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구두도 길들여주며, 우편함까지 달리기를 시키며 시간을 재주는 자상한 '존 아저씨'는 무심하고 거친 아버지와는 달랐다. 책 읽는 법, 대답하는 법, 따스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는 포근한 '에드나 아주머니'. 집에 있던 남자아이 옷만 입다가 시내에서 예쁜 옷을 사주던 날 우연히 장례식에 갔다가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비밀스러운 부부는 어릴 적 개를 따라 거름 구덩에서 빠져 죽은 아들이 이었고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던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의 딱한 사정을 동정하면서도 멋대로 안줏거리로 삼아 부부와 소녀에게 상처를 준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P28


소녀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이름 없는 소녀, 다섯 형제 중 셋째. 단식투쟁(영화 <헝거>속 상황) 등 정치적인 상황과 마름 병이 번진 흉작 등 1981년 아일랜드 상황의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다. 하지만 소녀는 먼 친척 집에서 생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조용한 아이'는 결코 흠이 아닌 칭찬임을 알게 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한 번 엎지르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의 위험성을 소녀의 진중하고 사려 깊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영화도 그렇다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전달되는 정서. 이 암시와 열린 결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상상력을 믿는다는 거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목가적이며 느슨하고 아름답다. 고요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며, 부부는 <빨간 머리 앤>에서의 커스버트 아주머니, 아저씨가 떠올랐다. 마지막에 "아빠"라고 부르는 두 아빠를 향한 소녀의 이중적 마음이 꽤나 먹먹하게 아파왔다. 원제 'foster'는 위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맡겨진 소녀'에서 영화 'The Quiet Girl'로 바꾼 제목도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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