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인간의 시계로부터 벗어난 무한한 시공간으로의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보희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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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동화를 연상케 하는 시적인 제목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은 다양한 주절을 붙여 문장을 완성해 보게 한다. 문학 작품의 주제로 시간은 매력이 넘치기에 그런 책들은 더욱 각별하다. 한동안 여운에 사로잡히는 <트리갭의 샘물>부터 초침 소리가 진동하는 듯한 <타타르인의 사막>, 과학자 류비세프의 도전을 담은 기록물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가 떠오른다. 시간은 거울과 같이 인간을 그 앞에 세우고, 재판관처럼 과오를 드러내는 전천후 저울이자 사라지지 않는 기준이라는 시선은 보편적이다.

 

그에 비해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김보희 옮김, 이중원 감수, 쌤앤파커스,2021, 2014, 220쪽 분량)은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기존의 시공간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과 이탈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초청의 책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로, ‘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다. 현재 프랑스의 대학에서 이론 물리학센터 교수로 강의 및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저서로 <모든 순간의 물리학>,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등이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함께 꿈을 꿀 벗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상상 속 여행과 길 위의 여행”(p.9)을 떠났던, 그리고 진리를 찾기 위한 모험을 위해 홀로 여행했던 청춘의 때를 회상한다. 책은 호기심과 꿈이라는 푯대를 향했던 모험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과학의 길을 넓히고 새로운 차원에 접근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복기한다. 20세기 과학적 대혁명은 양자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두 가지 축으로 대변할 수 있으나 이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개념에서 각각 서로 모순되는 과거의 개념으로, 둘을 연결하는 것은 양자중력”(p.21)의 핵심문제다.

 

막다른 길이라는 스승들의 만류에 청춘의 즐거운 고집”(p.22)과 어릴 때 읽었던 동화는 그를 나아가게 만든다. 저자는 동료 리 스몰린과 함께 공간을 재정의한다. 공간은 일차원 물체인 루프들로 짜여 있으며, 이 루프들이 세 개의 차원상에서 서로 엮이며 삼차원의 직물을 형성한다는 이해는 공간이란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p.60)고 공간 대신 입자들, 장들, 중력자의 루프들과 이들의 상호작용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데 이른다.

 

저자는 계속해서 악화되어온 과학의 이미지와 왜곡된 시각을 우려하며 과학적 사고의 힘은 과학적 사고의 특징인 스스로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오고 이것은 자신이 확언한 내용까지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신의 신념은 물론 가장 확실했던 신념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험대에 올리는 능력”(p.81)이라며 과학의 핵심을 변화라고 꼽는다. <공간의 역사>편에서는 고대 역사까지 거슬러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의 공간을 사물간의 관계에서 보는 관점과 뉴턴의 항상 존재하며 하나의 구조를 가진 개체로 보는 시선을 비교하는데 흥미롭다.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시간 테마다. 우주 속 모든 물체는 각각의 고유한 시간을 가지고 있으므로 시간에는 지역적 조건이 있다, 일기예보와 같다, 분리된 시간과 공간이 아닌 시공간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등의 전개는 솔깃하다. 그리고 시간의 부재를 선포한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중략) 이 세상을 비시간적인 표현을 통해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p.144)는데 이는 우리에게 유익이 될까, 만일 사실이라면 유익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최신의 전자기기를 들여와 완벽히 다룰 수 있을 때의 기쁨을 상상하며 부지런히 매뉴얼을 익힐 때의 설렘을 연상하며 적극적으로 방법-비 시간적 표현을 통해 세상 이해하는 법-을 요청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때 저자의 벗 리 스몰린은 시간을 부활시킨다. 항상 시간이 문제다.

 

저자는 수학자 알랭 콘과 시간은 거시적인 차원에서만 드러나는 창발현상이라는 지점까지 이른다. 창발의 사전적 정의는 하위 계층(구성 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이다. 시간은 엔트로피화의 방향에 지나지 않고 엔트로피의 증가가 관찰되는 방향을 시간이라고 부른다. 물체가 낙하하는 방향이 아래, 열이 식는 방향이 시간이라는 결론이다. 이 책은 관심과 사유가 질문이 되고 과학적 성취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한 과학자의 추구와 지향, 관계를 맺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홀로 실험실에 또는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혀 숫자와 공식만 파고들지 않는다. 행동하는 지성의 진면목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경청하고 인정하는 의사소통 방식에서 빛난다.

 

에필로그에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짚으며 같은 토양에서 자란 과학과 민주주의를 연결할 때 이는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내리는 과학의 정의는 유토피아처럼 근사하고 그가 학교에 바라는 공부의 참모습은 르네상스적 인간이 자랄 토양과도 흡사하다. 책에서 스승과 동료에게 돌리는 헌사와 미래 과학자들을 향한 애정 가득한 격려를 만난다. 끝까지 수학은 나를 눈물 나게 했고 물리는 나의 뇌구조를 평면이 아닐까 좌절케 했다. 그럼에도 시적 제목의 밤하늘 같은 커버를 지닌 친절한 분량의 과학서가 페이지를 뚫고 나오는 저자의 진심을 그대로 전달한다. 한 겹이 아닌, 여러 겹의 감동을 경험케 하는 책이다. 명랑한 위트와 적절한 비유,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까지, 곧 당신도 저자의 또 다른 책을 펴게 될지 모른다.

 

 

 책 속에서>


결과적으로,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관계적인 개념이 된다. 시간은 사물들의 다양한 상태 사이의 관계를 나타낼 뿐이다.(p.152)

 

한편 이러한 모험은 합리성에만 기반을 두고 있지는 않다. 물론 과학적 모험을 공식화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은 직관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과학은 꿈에서 출발하고, 그 꿈이 지배적인 기존의 꿈들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밝혀질 때 이는 비로소 전 인류의 공통의 꿈이 된다.(p.101)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라는 볼테르의 말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동시에 과학적 방식의 핵심이기도 하다. 결국 정확히 동일한 시대에 동일한 지역에서 함께 태어난 과학과 민주주의는 동일한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고요한 합리성, 지성, 대화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우리 문화를 뒷받침하는 한 축을 맡고 있다.(p.207)

 

과학은 과학 그 자체로서 가르쳐야 한다. 과학은 매력 가득한 인류의 모험인 동시에, 대혼란 속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끈질기게 탐구할 때 어지러울 정도의 개념적 도약을 거쳐 마침내 퍼즐 조각들이 맞아떨어지는 번득이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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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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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0, 1952, 176쪽 분량)는 우리가 바라고 감당해가는 일생이 어떠한가 묻는 상징과 은유 가득한 희비극이다. 일생은 하루 하루를 잇대어 나갈 때 만들어지고 각각의 날들은 조바심을 일으키다가도 무료하고 적막하게 숨을 짓누른다. 에스트라공에게는 시간과 추억을 공유하는 의미 있는 타자가 있고 일상을 비롯해 속 깊은 감정까지 교환하지만 소통은 충분하지도 적확하지도 못하다. 말은 조리를 잃고 기억은 불확실하며 육신은 쇠약해간다. 만담처럼 주고받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대화가 갈팡질팡 하는 가운데서도 묵직한 의미를 드러낼 때 독자는 그 문장이 함축하는 뜻을 이미 알고 있다. 각본대로 움직이는 인물과 무대는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와 그 삶의 반경으로 대치된다.

 

사무엘 베케트는 영어와 프랑스어, 두 가지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한 이유를 모국어보다 습득해서 배운 언어가 스타일 없이 쓸 수 있어 쉽기 때문”(p.159)이라고 밝힌다. 이는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이야기이며 언어의 정수에 도달할 수 있는 이야기”(p.160)에 접근하도록 이끈다. 작가는 고도의 의미를 묻는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에게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하니 독자는 자기만의 고도를 헤아려볼 수 있겠다. 개인적인 고도 역시 시와 때에 따라 달라질 것은 자명하다.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출간 다음 해, 파리 초연 이후 "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파스칼의 명상록"(피가로)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명성을 얻는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와 실존주의 사상을 빼어나게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2막으로 구성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느 날 저녁,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길을 배경으로 한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긴 시간을 함께 해왔지만 언제라도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동시에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미 무용하다는 입장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고도. 이 기다림은 유일무이한 가치이고 사명이기에 모든 악조건은 진지한 푸념의 대상은 못되고 단지 지루함을 떨치려는 소소한 시도 중 하나가 지껄이기다.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침묵 대신 지껄임을 택하고 청각에 의지해 모든 소리를 민감하게 모으기도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심각함을 농담으로 희석하고 영 이치에 맞지 않는 행인들에게 주의를 돌리기도 한다. 포조와 럭키의 관계는 터무니없을 만큼 부조리하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주목하며 비합리의 근거를 넌지시 건네나 포조의 변은 또 다르다. 포조와 럭키의 2막 재등장은 어떤 의미에서 저놈과 내 처지가 바뀌지 말란 법도 없지.”(p.49)라는 1막의 대사를 상기하게 만든다. 게다가 막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어린 소년은 고도가 오지 않으리라는 소식만을 전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에 오래 머문다. 뒤에 생략된 말은 무엇일지 가늠하자니 고도를 기다리며 떠나 보낸 삶”, 고도를 기다리며 채워간 인생, 고도를 기다리며 견딘 시간, 고도를 기다리며 받은 고통, 얻은 홧병 아니 우울까지 이르더니 고도라도 기다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나. 그렇기에 감사한 인간의 조건, 실존에 닿는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간격을 고도를 기다리면서 메꾼다. 울고 웃고 화내고 애원하며, 이성과 감정을 두서없이 섞어 다져 넣는다. 그러다 보면 난데 없는 걸작도 만들어내고 원하지 않는 엉망도 쌓으며 부지런히 부산물을 분리수거하고 반복적으로 지쳐 떨어지기도 할 것 같다. 구두를 탓하고 외투를 탓하며 체중을 또는 마른 나뭇가지를 탓하며 졸고 바라고 다시 잠들고 깨는 인생을 책은 너무도 잘 보여준다. 또한 기다린다는 행위가 애초에 주체적일 수 있을까? 이에 주목할 때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이 겹친다. 드로고가 요새를 향해 첫 발을 뗀 9월 어느 아침부터 혼자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시간의 돌이킬 수 없는 도주와 삶을 바스러뜨리는 시계추를 숨 막히게 형상화한 작품을 불러낸다.

 

고도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이미 스쳐갔는데 못 알아본 것은 아닌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데 여전히 불순물 과도한 선함이기에 눈에 띨 새라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고도는 영적 존재일까, 절대자이며 구원자일까, 꿈과 희망, 행운이고 기회일까, 아니면 일상을 혼란시키고 몰입을 흔드는 유혹자일까, 고대하는 변화이고 성장일까, 탈 매너리즘 또는 부단한 깨어있음일까, 역시 모를 일이고 애쓰고 힘써 알기 원하는 날들의 부피 없는 덧댐이 살기일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주기적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다. 이런 책은 열 살 이후로 5년 또는 10년 주기로 재독하고 감상을 남기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군가 이 사실을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쩌면 알려줬는데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열 살 독자는 이 책을 읽다가 잠이 들지 모른다. 스무 살 독자는 모호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견할까. 밑줄 부분이 포개질 수도 추가될 수도 있겠고, 지워야할 밑줄도 생길까? 읽을 때마다 감상은 겹치는 면적과 어긋나는 면적이 차이를 보이고 그러다 언제쯤엔 슬프고 눈물 쏟을 나이도 있을 테다.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힐 작품이다. 간결한 대화는 다양한 감정을 불러내고 주의 깊은 사유로 이끌 것이다. 글로 읽어도 소리로 들어도 좋겠지만 지금 공연 중인 국립 극장의 연극으로 만난다면 벅차오를 것 같다. 가장 기대되는 장면은 물론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갈 순 없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와 럭키의 쉴 틈 없는 독백 장면이다. 70여 년 전에 쓰여진 글이 페이지에서 튀어나와 노배우들로 분한 현실 매직을 꼭 직관하고 싶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마지막 페이지에 투명한 도돌이표가 찍힌 듯 다시 첫 페이지를 열게 만들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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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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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울분(정영목 옮김,문학동네,2011, 2008, 248쪽 분량)태생적 조건을 넘어서 주류세계에 편입하고 싶었던 한 청년의 성장과 좌절을 부모와 자식, 타인과의 관계 맺기, 권위에 대응하는 태도, 사랑, 감정과 이성 등을 통해 다각도로 살피는 중편소설이다. 간결하면서도 무엇 하나 회피하지 않는 집요한 글쓰기는 독자에게 직접 질문하는 듯하다. 청춘의 치열함과 순수가 녹아 있다는 점에서 존 놀스의 <뷴리된 평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필립 로스는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1950대 말 데뷔작인 소설집 안녕 콜럼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이후 오십 여년 동안 작품을 발표하면서 전미도서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포크너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울분2008년에 칠십 세가 넘어 발표한 작품으로 청춘의 격정으로 불탈 만큼 여전히 분노하고 동시에 그 격정이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 있음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현명한 작가로부터 나오는 폭발을 볼 수 있는 소설”(워싱턴 포스트)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이 폭발은 독자를 긴장시키며 휴화산부터 활화산, 그리고 사화산으로까지 삶의 서사에서 긴밀한 변화를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사랑했고 더없이 행복했지만 얼마 후 파괴적인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을까봐 겁을 먹기 시작하는데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사촌들이 전사했듯 진행중인 한국전쟁이 아들 목숨을 빼앗을지 모른다는 게 가능성 중 하나다. 여기에 더해 아버지는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듯 염려와 분노를 숨기지 않고 파수꾼 역할을 자처한다. 냉정한 논리주의자로 토론왕이었던 아들은 좌절감에 사로잡혀 거의 울부짖으며 대학을 옮긴다. 아버지의 감시로부터의 도피였다. 울분은 그렇게 아들 마커스의 여러 감정 중 주요하게 대두된다.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옮긴 마커스는 배정받은 기숙사에서 세 명의 유대인 아이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된다. 이상하고 실망스러운 일이었고 특히 바로 위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버트럼 플러서는 아버지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마커스에게 고통을 준다. 다시 플러서를 피해 공대생 엘윈의 방으로 옮긴다. 마커스는 자신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애쓰는 부모님 앞에서 당당하기 위해서, 전사한 사촌들과 달리 생존 가능성”(p.44)을 높이기 위해서 모든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모든 일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p.45) 아마도 행복에 근접한 안심지대에 입성할 수 있으리라.

 

정육점이 아버지의 세계였다. 그곳은 작고 큰 칼이 있었고 피 냄새와 주검이 풍기는 냄새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아버지 가계를 구성하는 대부분 인척은 유대인들의 코셔 정육점을 했고 삼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스너 집안 사람들은 그들의 피에 잠긴 채 계속 살아가야 했”(p.47)으니 전사한 사촌들도 결과적으로는 매한가지였고, 마커스 입장에서 혈흔 가득한 아버지의 세계에서 가장 멀어지는 길이 법률가가 되는 것이었다. 자신을 밀어붙이며 목표를 추구했던 마커스는 어느 날 새로운 목표를 발견한다. “이제 목표는 올리비아 허턴이었다.”(p.61)

 

소설은 마커스 매스너가 겪는 갈등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갈등은 충돌 실험장의 모의 테스트처럼 예측하거나 대비할 수 없고, 강도를 더하며 덧씌워질 뿐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끌고 들어온다. 마커스는 아버지의 세계로부터 탈출을 꿈꿨다. 그러나 태생적 굴레를 넘어서고 싶어 도망친 곳에 기다리는 건 자유와 존중의 이상향이 아니었다. 세대 갈등, 종교의 강요, 반유대주의, 감정과 이성의 혼란, 사랑이라 여겼으나 ”(p.184)이라 못박는 어머니, 감정보다 큰 사람이 되라는 게 인생의 요구라며 네 감정을 처리하라고 약속을 받는 어머니까지, 그의 내면은 울분을 억누르며 시달리고 결코 진정할 수 없다. 결국 도덕적 관습과 독선에 말려들어 김빠진 존재”(p.203)가 된 자신을 직면한다.

 

소설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스무 살 생일을 석 달 남기고 죽은 마커스 매스너의 삶을 조망한다. 서두에 이를 밝히고 시작하는 소설임에도 연속되는 사건과 그로인한 사고의 진행, 심리 변화가 생생하여 주인공의 행적에 깊이 이입하게 된다. 또한 E.E. 커밍스를 인용한 제사 중 나는 어떤 똥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는 문장은 일관된 분위기를 형성한다. 무신론자인 본인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채플 참석 의무는 그 시간을 참아내기 위해 속으로 군가들을, 나아가 울분이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중국의 국가까지 부르게 한다. 나아가 마커스가 코드웰 학생 과장과의 면담에서 두 번에 걸쳐 멋지고 오래되고 도전적인”(p.238) 미국의 욕설을 내뱉기에 이른다. 울분을 참지 못한 대가는 무자비했다. 회복 불가능한 일이었고 아버지의 근심을 그대로 입증하고 만다.

 

작가는 간결하고 적확하게 필요한 문장을 선별해 독자에게 건넨다. 죽음 직전 모르핀을 맞고나서 짧은 생을 회상한 이후 벗어나에서 폭압과 울분으로부터 벗어나는 소설의 구조는 탁월하다. 마커스는 정작 으로부터도 벗어나니 그의 노력은 허무를 향한 치열한 경주였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떤 장면은 곱씹어 다시 읽게끔 하는 명문이다. 장면을 전환하여 죽음을 고찰하는 부분, 병실에 찾아온 어머니의 당부, 시간을 소급하여 했다면또는 하지 않았다면하고 가정문을 잇는 서술도 마음을 울린다. 수식 없는 문장은 웅변하고 잇달아 질문한다. 논리를 다듬고 말로 겨루는 데에 자신 있었던 청년은 처음 만나는 세상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일은 서툴렀다. 당연한 이치다. 안온한 환경과 멘토, 시대를 만나지 못해 너무 일찍 표류하다 자기만의 성 쌓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비단 마커스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이 비극은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상 같다. 그래서 여운은 길고 오래 숙고하게 만든다. 필립 로스를 만나는 첫 작품으로 추천할 만 하다



책 속에서>

이제 갑자기 네 아버지도 다른 메스너들처럼 나빠졌어. 너는 그러지 마. 너는 네 감정보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해. 너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인생이 요구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는 네 감정에 쓸려가버릴 거야. 바다로 쓸려나가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을 거야. 감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감정은 가장 무시무시한 속임수를 쓸 수 있거든.(p.184)

 

하지만 결국은 역사가 너희를 따라잡을 것이다. 역사는 배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그 무대 위에 있다! , 그렇게 지독하게도 자기 시대를 모르고 살다니 정말 역겹다! 가장 역겨운 것은 너희들이 와인스버그에 들어와서 없애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무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도대체 어떤 시대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대답할 수 있나? 알고는 있는가? 너희가 어떤 시대에 속해 있기는 하다는 건 알고 있나?(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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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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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뿌쉬낀의 대위의 딸(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2009, 1836, 229쪽 분량)은 푸가초프의 반란(1772년부터 1774)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자 작가의 유일한 장편 소설이다. 서술자의 안목과 견해, 판단과 실천의 지향을 담고 있는 성장 소설로도 읽히며, 가정 소설의 면모도 볼 수 있다. 뿌쉬낀은 현재의 에티오피아 황태자의 후손인 어머니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어려서부터 현명한 외할머니와 유모에게서 러시아 민담과 전통을 습득할 수 있었다. 아름답지만 경박한 아내”(p.207)로 인한 고통은 결혼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허황한 결투를 초래하고 때 이른 죽음의 원인이 된다.

 

지혜롭고 사려 깊은 대위의 딸은 작가의 바라는 이상적 여성상도 포함하는 듯하다. 길지 않은 생이지만 뿌쉬낀은 소설가보다는 시인으로 불멸의 자리를 차지한다. 역자는 그가 러시아 문학과 예술에 끼친 영향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한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이라며 아직도 <라디오 모스끄바>에서는 뿌쉬낀의 시가 낭송되고 있고 어디선가 누군가는 뿌쉬낀을 읽거나 뿌쉬낀을 연구하고 있다.”(p.213)고 설명한다. 셰익스피어가 연상되는 지점이다. 근대 러시아문학의 기틀을 확립하였으며 후대 작가와 시인들에게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었던 뿌쉬낀의 작품으로는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스페이드의 여왕, 대위의 딸, 청동 기사등이 있다.

 

지방 귀족이며 중령으로 퇴역한 아버지는 아홉 자식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그리뇨프가 열일곱 살이 되자 만류하는 아내의 눈물은 아랑곳없이 뜻한 바를 실행한다. 빼쩨르부르그의 근위 장교가 되리라는 아들의 기대는 곧바로 무산된다.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버지가 정한 복무지는 오렌부르그라는 벽촌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자신을 돌보아 온 마부 사벨리치와 함께 눈물을 쏟으며 길을 떠나는 도중에 만난 기병 연대 대위 이반 이바노비치 주린은 그의 슬픔에 괴로움을 보탠다. 순식간에 1백 루블을 잃고 말기 때문이다. 다시 길을 재촉하다 악명 높은 눈보라에 갇혔을 때 한 길손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뇨프는 그 덕분에 머물게 된 여인숙을 떠나며 감사의 표로 토끼 가죽 외투를 건넨다. 사벨리치로서는 용납이 안 되는 일이다.

 

오렌부르그에서 조금 떨어진 벨로고르스끄 요새도, 그리뇨프가 묵을 오두막도 서글픈 처지를 한탄하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사령관인 이반 미로노프 대위와 그의 부인 바실리사 예고로브나, 대위의 딸 마리야 이바노브나과 교류하던 중 딸에게는 점차 사랑의 마음을 품고 고백시를 짓는다. 먼저 그녀에게 구애했다 거절당한 선임 장교 쉬바브린은 그의 시를 비웃고 결투 사건의 발단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도착한 장군의 편지는 뿌가초프의 반란 소식과 함께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일망타진할 것을 명한다. 그러나 대위 부부는 교수형으로 또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그리뇨프만 교수형 직전에 뿌가초프로부터 목숨을 건진다. 눈보라 속에서 길손으로 만났던 뿌가초프가 토끼 가죽 외투를 선사했던 그리뇨프를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부모를 잃은 대위의 딸은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참혹한 상태가 된다. 참칭자 뿌가초프가 도모하는 무시무시한 코미디”(p.99)가 끝나지 않는 가운데, 쉬바브린의 악의에 찬 술수를 피해 화자인 뾰뜨르 안드레이치와 대위의 딸 마리아의 사랑은 행복한 결말을 맺을 수 있을지 남은 고비가 여전히 많다.

 

소설은 명예는 젊어서부터 지켜야 한다.”는 속담을 제사로 삼는다. 이는 본문에서 속담에도 있듯이 옷은 처음부터 곱게 입어야 하고 명예는 젊어서부터 지켜야 하느니라.”(p.15)라는 아버지의 말을 빌려 다시 한번 강조된다. 명예는 시종일관 화자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견인추 역할을 한다. 쉬바브린과의 결투, 뿌가초프 앞에서 형식적으로도 타협하지 않는 패기가 이를 보여준다. 또한 열 네 개 장이 연결되는 소설은 장마다 소제목과 제사를 따로 갖추고 있는데 인용한 제사는 다른 유명 작품도 있고, 타 작품이라고 썼으나 작가 본인의 것을 아닌 양 재치 있게 가져오기도 한다. 제사와 에피소드를 연결해 보는 일도 흥미롭다.

 

대위의 딸은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로 몰입을 높이는데 일인칭 시점 서술도 힘을 보탠다. 화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귀족과 민중의 대비는 자신들만의 명예가 다르게 특정되기에 서로 공유할 수 없는 세계에 남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저항은 예견된 수순을 밟지만 작가는 뿌가초프의 반란이 가진 의미를 소설 안에 새겨두며, 이는 뿌가쵸프 반란사라는 작가의 순수 역사물과 병행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진정성의 정도를 가늠케 한다. 대위의 딸을 읽는 즐거움은 경쾌한 문장, 긴장과 유머의 조화, 우연과 복선의 개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숙명을 체감하며 저항하는 결의를 교수대 민요”(p.108)로 드러내는 부분도 인상 깊다. 다만, 결말을 주도하는 대위의 딸 마리아의 에피소드는 무척 환상적이라 아쉬울 수도 있겠다. 끝에 이르러 소설은 뾰뜨르 그리뇨프의 수기를 후손이 발행하는 형식을 밝히며 이중으로 안전장치를 사용한다.

 

대위의 딸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 뿌쉬낀의 대답을 담고 있다. 사건과 연도와 공격과 수비, 전략의 성패로 채워지는 공적 역사보다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혼란한 세상에서 그 무엇도 계획할 수 없는 자기 의지 상실, 명분을 향한 희생, 하루를 더 살아남기 위한 고투, 가장 소중한 자를 잃어버리고 애도의 시간을 빼앗기는 일 등을 겪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이름과 얼굴을 부여한다. 기억되지 못한 자들의 역사를 이야기는 대신 기록한다. 뿌쉬낀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노래했다. 뿌쉬낀 문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대표 시와 산문이 필요하겠다. 소설은 시인의 치열한 생의 찬가를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로서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이것이 한때 우리 시대에 일어났음을 돌이켜볼 때,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알렉산드르 황제의 온화한 통치하에 있음을 상기해 볼 때 나는 문명의 급속한 발달과 박애주의적 법규의 확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청년들이여! 만일 나의 이 수기를 읽게 된다면 기억해 주기 바란다. 보다 훌륭하고 항구적인 개혁은 일체의 폭력적 강요를 배제한 풍속의 개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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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영화 언어
이상용 지음 / 난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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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영화 언어(난다, 2021, 312쪽 분량)』는 영화 평론가 이상용의 봉준호 감독 영화 비평집이다. 책의 제목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 수상 인터뷰 중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다.”(p.8)라는 감독의 말에서 취했다. 영화라는 언어로 한국은 물론 세계와 공명하는 동시대 감독의 작품을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일은 우선시 되어야 하겠지만, 채로 거르고 각을 맞춰 정련한 또 다른 언어로 살펴보는 일은 기대했던 것보다 근사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영화광은 아닌데 자칫 영화 비평집광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생겼다. 이상용은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첫 번째 영화 평론집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2008), 특별 프로그램인 부산 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를 묶은 『안나 카리나』(2010) 등을 썼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1993년 <백색인>부터 2019년 <기생충>까지 7개 장편과 5개의 단편영화 전작을 담고 있다. 챕터1 “짧은 연대기”는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아우르는 현재의 봉준호 감독이 되기까지의 주요 작품과 삶을 스케치한다.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상영되었던 <괴물>의 프랑스 잡지 인터뷰 제목이 “삑사리의 예술”(p.28)이었으며, 잡지 필진은 “삑사리”가 의미하는 아이러니와 유머를 봉준호 영화의 핵심으로 본다. 챕터2 “부치지 않은 편지”는 <기생충>의 마지막에 모스부호로 편지를 쓰는 아버지 기택과 답장으로 “근본적인 계획”(p.39)을 전하는 아들 기우를 소환한다. 과연 기우의 편지는 누가 수신인인가를 물으며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 이를 둘러싼 유명한 분석인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 슬라보예 지젝의 분석 중 대타자 개념까지 전개한다. “대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다.”(p.45)라며 봉준호 영화는 자주 관객에게 시선을 던져왔음을 밝힌다. 일종의 권력인 대타자가 된 관객은 봉준호의 편지를 잘 읽어내야 하는데 이 책이 그 작업의 일부가 된다.


챕터3 “추격하는 세계”는 봉준호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추격전에 초점을 맞춘다. 목표가 분명한 게 추격전인데 그의 영화는 예정된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고 관객은 이를 오히려 반긴다는게 주목을 끈다. “추격의 대상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현실이거나 현실이 담긴 심연”(p.62)이기에 관객은 다시 대타자로서 편지의 수신인이 된다. 또한 쫓는 자의 위기에 대해 니체의 저작을 인용하는데, 괴물을 추격하다 스스로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은 분명 경계할 지점이다. 챕터4는 괴물을 직접 조명한다. 한국 영화에서 괴물 캐릭터의 변천사에 이어 봉준호 영화에서 보이는 현실적인 괴물이 지닌 평범함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연결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괴물은 목격담 속에, 소문 속에, 미디어 속에서 일그러진 채 현실을 지배한다. 그 효과 자체가 괴물이다.”(p.94)라며 무지와 오인, 맹목성에서 벗어나 어둠을 응시할 것을 제안한다.

챕터5, “보는 것의 변증법”에서는 봉준호의 인물을 가르는 기준인 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괴물>에서 강두는 잠이 많고 우둔한 캐릭터에서 보는 자로, 이에 더해 “끊임없이 보는 자”로, 다시 “깨어 있는 자”(p.121)로, 종국에는 “눈을 치켜뜬 파수꾼”(p.122)으로 바뀐다. <훔쳐보는 것>편에 등장하는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 개념은 눈에 띈다. 불쾌함과 매혹이 뒤엉킨, 더러운 동시에 자신(인간)으로부터 나온 것들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는 논리는 또 하나의 관점을 형성한다. 저자는 <설국열차>의 단백질 블록부터 다양한 아브젝시옹의 예를 손꼽는데 단연 <기생충>에서 정점을 이룬다. 챕터6 “헤테로토피아에서”는 유토피아와 대립되는 새로운 용어 헤테로토피아를 소개한다.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에 처음 등장하여 보르헤스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언어이건 공간이건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와해”(p.153)시키는 헤테로토피아는 독자를 각성시킨다. 봉준호 영화에서 변주될 때 특히 지하실이라는 장소가 헤테로토피아에 해당한다. 챕터7에서는 이야기의 기능과 효과를 영화를 통해 살피고, 봉준호표 가족멜로드라마를 환기시킨다. 챕터 8 “사물들, 기호들” 중에서 “골뱅이와 황금 돼지”에 나오는 “유사”와 “상사”의 비교, “상사”의 적극적 표현 방식 중 하나인 “패러디”(p.219)가 특히 흥미롭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봉준호 영화 전작을 보았어야 되는 게 아닐까를 염려했는데 다행히도 언급되는 장편은 다 관람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못했더라도 읽기는 가능하겠다. 그럴 경우 아마도 영화 비평서보다는 인문학으로 읽히겠지만 친절하게도 챕터10에 작품 리스트를 실었다. 영화 내용을 설명하는데 요약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라는 요약의 진수를 배우는 건 덤이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스크린 위에 흐르고 지나가는 영상을 활자로 붙잡아 전해주는 감사한 책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 나오면서부터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하는 영화라는 예술 종합선물세트를 그 시간을 아꼈던 관객이 놓치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매듭지어준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이 하나의 주제로 헤쳐 모일 때마다 비밀을 이해한 듯 뿌듯함이 차오른다. 영화의 그 장면, 배우의 그때 표정, 아슬아슬했던 긴장과 엉망진창인 사태, 삑사리로 인한 급작스런 웃음이 교차하며 과거의 시간이 지금 이 순간으로 한꺼번에 넘어온다. 또 다른 영화들 특히 히치콕 작품과의 비교도 다시금 감상하고 싶게 만든다. 무엇보다, 풍성한 인용이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늘리는 부담보다는 너무나 궁금하다는 설렘으로 기운다. 봉준호의 영화는 사소한,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집중한다는, 그의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최소”에 있다는, 도착하려는 목적지가 정복하다 또는 굳게 서다가 아니라 “흔들린다.”(p.263)라는 발견이 기쁘다. 우리 영화사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고 사회의 현주소, 삶의 진면목을 응시하는 일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 <무제>가 책의 표지에서 강렬하다. 압도하는 블랙 밑에서 붉은 생명이 눌리지 않기를 바란다. 푹신한 솜뭉치 그 뽀얀 완충제가 넉넉해야 가능할 것이다. 2023년 마지막 책이고 마지막 서평이다. 몇 해 전 김민영 선생님의 추천으로 계속 읽고 싶던 책을 비로소 읽었다. 이어서 도서관 동아리의 토론도서로 추천하였기에 논제를 만들어볼 차례다. 이 탁월한 비평서를 권한다. 일회독으로는 아쉽고, 여러 번 읽는다면 더 많은 것을 내어줄 책이다.



책 속에서>

-봉준호 영화의 시각적 변증법은 대립하는 두 세계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둠으로써 일어나는 착시 효과인 동시에 각성을 일으키는 비전이 된다. 그 시각적 형상은 입체파의 그림처럼 완전히 왜곡되어 있지는 않을지라도, 현실을 비틀어 그 틈새로 들여다보게 하는 인식의 공간을 만들어낸다.(p.147)

-“흔들린다.” 그것이 봉준호의 영화가 도착하려는 최종 목적지다.(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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