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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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건 가뿐히 초월해 버릴 수 있는 작가가 구병모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목이 있을 법한 모든 것이라니 무대는 마련되었고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는구나, 숨을 죽이게 한다. 있고도 남을 만한 일, 있지만 없는 척, 모른 척 하는 일, 이게 말이 돼 싶은 일 등은 탁월한 언어 조련사인 작가의 펜 끝에서 막힘 없이(다른말로 마침표 없이) 연속하여 풀려 나오거나, 때로는 짧게 끊기며 무한 행간을 장착한 모양새로 자유자재 넘나든다. 독자는 페이지를 넘기며 저도 모르게 추임새와 같은 감탄사를 여기 저기에 덧대느라 분주하다. 말 그대로 장르가 구병모니까.

 

<니니코라치우푼타>는 딸이 쓰는 엄마의 이야기다. 노인성 질환으로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엄마는 딸을 알아보지 못한다. 딸은 엄마의 소망대로 칠십 년 전에 만났던 외계 행성 생명체 니니코라치우푼타와의 재회를 위해 애쓰지만 미션은 실패한다. 이후, 엄마의 수첩에서 발견한 흔적을 조합해 가려졌던 베일이 조금씩 걷혔을 때 엄마를 돌봤던 딸은 온전한 의식이 해체되면서까지 붙잡고 있던 니니코라치우푼타의 정체, 자신을 돌보고 아꼈던 순전한 모성에 닿는다. 자못 긴 마지막 문장으로 뭉클하게 부연한다. 붕괴한 의식이 마지막까지 붙잡은 힌트는 비로소 목적지에 닿는다.

 

<노커>는 엄마 민주가 쓰는 딸 다정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느닷없이 다정의 어깨를 치고 간 후드 인간, 괴한, 노커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은 기이하다. 말이나 글을 사용한 일체의 표현이 불가능해져 원인을 추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모녀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어서 소통이 불가하지만 민주와 남편 사이에서는 대화는 이루어지나 를 위한 ”, 한 길로만 흐르는 무의미한 대화일 뿐이다. 일주일 후 피해자가 서른 두 명으로 늘어나면서 문제는 공론화된다. 소통의 채널이 다양해지고 대응법도 추가되나 결국은 총체적 비상사태, 비정상사회로 치닫고 불통이 곧 지옥임을 확인시킨다. 필력이 다했다 싶을 만큼 상징과 은유가 빽빽한, 구병모다움이 폭발하는 작품이다. 엄마는 딸 다정의 곁에 남고, 다가오는 다정을 기꺼이 맞는다.


표제작인 <있을만한 모든 것>은 로맨스 콘텐츠 집필 제안에 응한 C가 꿈과 현실, 가상과 경험을 넘나들며 익명인 대상과 맺을 수 있는 관계를 주목한다. 책 속의 책에서 그려내는 경우의 수는 남자는 방문을 열고 뛰쳐나간다”(p.101)는 문장으로 시작해 네 번 변화를 주면서 있을만하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지점을 모색한다. 어릴 때 심부름을 갔다가 매점에서 보았던 광경은 시간이 지나서도 그림자 속 사람, “그림자 사람”(p.106)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반영하는데, 키오스크 앞에서 분을 내는 노인에게서 다시 소환한다. 존재와 비존재, 비존재의 기준(p.113), 비대면 상황의 출현, 말과 얼굴을 가졌는가 다채롭게 조명하는 작품으로 무엇보다 반복되는 구조가 흥미를 높인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인터뷰 의뢰를 받고 만난 여성 스타트업 대표는 국민학교이던 초등학교 시절 동급생이었다. 자태로나 미모로나 왕비 같았던 그녀와는 무엇도 공유하기 어려울 듯 했으나 , 그래요? . 그런 거 있잖아요. 그렇죠?” “맞아요. 딱히 뭔가 큰 사달이 나는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이건 아니다 싶은 그거요.”(p.159)라는 대화에서 두 사람은 정확하게 그거를 인지한다.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니었던 때, 여성 노동과 인권의 불모지대를 기록으로 남긴다. 사사기 말씀을 제사로 삼는 <이동과 정동>이 마지막에 실린다. 이동과 통과의 자유가 사라진 시대,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는 사람들의 원념”(p.202)이 그득하나 각자도생이 삶의 원칙인 피폐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얼의 변화는 희망적이고 마지막 작품에 실린 희망은 작가의 당부로 들린다. “당신도 움직이기를.”(p.242)

 

모든 작품이 작가의 인장 같지만 가장 좋았던 작품은 <Q의 진혼>이다. 자유롭고 실험적인 소설로 압축미가 뛰어나면서도 현란하다. 화려한 전개를 보이나 말 이전의 1이 소망과 의지를 피력하며 치열하게 시도하고 요청하고 바랄 때에 미세하게 차오르는 감동은 눈을 뗄 수 없다. 마그리트의 그림들을 연상케 하고 거의 시처럼 읽히는 초현실적 이미지는 낯선 낱말들을 무한히 만나는 것 같은 즐거운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구병모 작가의 이야기는 후루룩 페이지를 넘길 수도 없고 꼭꼭 곱씹는다고 씹어지지도 않는다. 소화는 다른 문제로 치더라도 말이다. 아이러니와 위트는 무거움이 마냥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막는다. 은유와 상징은 여러 겹의 옷으로 독자만의 의미를 발견할 것을 응원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장문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갖게 하고, 등장하는 단어들은 하나씩 어루만져보고 싶어진다. 과도하게 현학적인가 싶지만 언어, , 소통, 연대 등 그가 건네는 생각거리와 고민은 지금 꼭 필요한 주제들로 독자를 초청한다. 이런! 쓰고 보니 이 서평은 나 구병모 작가를 좋아하오라는 연서의 성격을 띠고 말았다. 마성의 문장, 빼어난 통찰, 구병모라는 장르를 추천한다.

 



책 속에서>

그것은 엄마가 유년에 실제로 만난 외부의 방문객. 혹은 젊은 날 쌓아올린 수많은 지성과 교양의 성채에 금이 가서 허물어진 뒤, 베수비오 화산의 유적지와도 같은 인지 공간에 남아 있는 스키마를 동원하여 말년에 조악한 상상으로밖에 빚어낼 수 없었던, 세상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존재. 누구도 그 이름의 의미를 알지 못하며 어떤 국가의 글자로도 쓸 수 없으나 태초의 우주 어디에선가 내려와 지금 이 자리에 실존하는 말. 세상 어느 민족에게서도 발견되지 않은 기원전 신화의 끝자락에서 왔을지도 모르는 이름. 낱낱의 발음을 입속으로 찬찬히 굴리는 동안 그것은 일자一者이자 진리이자 세계정신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되었다.(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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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Andersen, Memory of sentences (양장) -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
박예진 엮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 센텐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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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유년을 펼쳐놓을 수 있다면, 그래서 교집합의 범위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안에는 분명 안데르센이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건 안데르센에서 비롯한 파편은 처음 떨어진 그 자리에 핀처럼 박혀 녹슬지 않은 채 그때의 감정을 오래도록 일깨운다. 안데르센의 흔적은 스치고 흘려보내는 상황들, 또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멀어져가는 모퉁이마다 깃들기에 재회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그리움과 반가움은 늘 혼재한다. 어슐러 K. 르 귄은 안데르센의 힘, 섬세함, 창조적 천재성은 바로 자신의 영혼이 지닌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고 활용함으로써 나온 것이라며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리얼리스트 중 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괴로움에 눈 감지 않고 현실을 직시한 예술가는 이야기 하나 하나를 완벽하게 빚어낸다. 이 책은 그가 집필한 160여 편의 동화 중에서 잔혹함이 부각되는 작품을 간추려 소개한다.

 

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안데르센 원작, 센텐스, 2024, 272면 분량)은 고전문학 번역가 박예진이 꼽는 욕망, 사랑, 마법, 철학이라는 네 개 주제의 안데르센 동화 모음집이다. 각각 네 편의 동화 중에는 <인어 공주>와 같이 유명한 대표작도 있고, <마쉬왕의 딸>처럼 익숙하지 않은 작품도 실렸기에 안데르센을 다양하게 만나볼 기회를 선사한다. 책은 동화를 읽다가 역자가 발췌한 영문 문장과 해석에 주목하고 다시 동화가 진행되는 방식이 반복되며 말미에 필요한 정보와 해설을 덧붙여 독자가 한 번 더 사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석까지 곁들인 친절한 기획은 생각의 물꼬를 안내하는 반면 주도적 읽기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긴다. 자연히 완역 원전으로 재독하겠다는 다짐이 다음 독서 계획으로 잡힐 것이다.

 

동화의 선구자 안데르센의 작품들은 이야기의 힘을 잘 보여준다. 영화, 연극, 발레, 애니메이션 등으로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독자를 찾아 왔지만 원형은 가장 빛이 난다. <어머니 이야기>에서 죽음에게 빼앗긴 아이를 찾아가는 모성의 여정은 고통과 사랑의 정점을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조선경 작가가 그림 작업을 한 그림책을 다시 꺼내본다. <빨간 구두>에서 욕망과 억압, 모순을 읽을 때 구병모 작가의 <빨간 구두당>은 한 발 더 나아간 전복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여전히 가장 아끼는 이야기는 <성냥팔이 소녀>. 다시 그날 밤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바꾸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던 아이는 지금도 소녀 앞에 있다. 나에게 최고의 안데르센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왜 그랬는지, 지금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이 동화의 기승전결 중 백미는 어디였을지, 내가 선택하는 명문장은 역자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가장 행복한 작품, 가장 가슴 아픈 작품, 이 동화는 작가에게 어떤 매듭이었을지, 어린이에게 성장이란, 성인에게 카타르시스란 어떤 의미인지, 메타포와 현실, 글과 삶은 어느 각도로 대치하고 있을지 또는 평행 이동일 뿐 합동에 근접할지 질문은 계속된다. <문장의 기억>시리즈의 두 번째 책, 안데르센에서 역자의 진심을 읽으며 다음 작가를 기대한다. 완역 또는 전작읽기를 향한 마중물이자 기록하고 기억할 활용서로 추천한다.

 

 

책 속에서>

-작품 속, 소녀가 성냥을 켤 때면 따뜻하고 맛있는 요리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가 나타납니다. 이것을 소녀가 죽어가며 보게 된 환각 증세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할머니를 보기 위해 성냥을 모두 꺼내 불을 붙였을 때는, 당연히 엄청난 양의 백린 연기가 뿜어져 나왔을 것입니다. 소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단순히 가난과 추위가 아니라 사회와 어른들의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성냥불 이면에 숨겨진 내막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미처 읽지 못했던 동화의 배경을 성인이 되어 이해했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동화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내막을 알고 나니 어릴 적과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p.234)

 

-인생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같다. 가사만 망가져 있다.(p.262)




(서평단_출판사 도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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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셰프들 - 프랑스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요리 이야기
크리스티앙 르구비.엠마뉴엘 들라콩테 지음, 파니 브리앙 그림, 박지민 옮김 / 동글디자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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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서평단 활동을 막 시작하던 2014, 그러니까 벌써 10년 전이다. 우리 가족은 2년 예상으로 이곳에 왔고, 일생일대의 지방생활을 시작하며 회사로부터 텃밭도 신청해서 당첨되었다. 텃밭이라, 상추와 배추를 조금 심었음에도 우리가 농사를 짓는구나 마음만은 이미 농부였다. 그때 자연을 배우는 만화 텃밭 백과를 읽고 서평을 쓴 후, 눈에 띄는 곳에 책을 세워두고 오고 갈때마다 어루만졌다. 텃밭 대전을 치르던 우리에게 이 책은 금도끼이자 은도끼였고(서평에 이렇게 써있네), 돌아보면 애잔한 추억템이 되었다. 위대한 셰프들이 그런 계보를 이어 기분이 하강할 때면 몰래 꺼내먹는 다크 초콜릿 역할을 하리라 본다. 물론 지금 셰프의 길에 들어서려는 것도 아니고 요리와 미식에 관심도 약하지만 위대한 셰프들은 미식기행 간판을 건 인생 여행 요약본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셰프들(파니 브리앙 그림, 박지민 옮김, 동글디자인, 2024, 224면 분량)은 프랑스의 미슐렝 스타 셰프들의 요리와 그 안에 담긴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미식 탐방기다. 미식 평론가를 꿈꾸었던 할아버지는 손자 기욤에게 미식 평론가 인턴을 해볼 것을 권한다. 학교를 졸업한 후 시간에 쫓기고 불분명한 꿈에 초조한 평범한 청년이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며 변화해가는 현장은 정감 가득하고 때론 화사하다. “요리사는 그저 요리만 무척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각자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지. 사상이자 미학이라고 할 수 있지. 미식 평론가는 마치 번역가처럼 그걸 드러나게 하는 거야! 요리는 단순히 맛있거나 맛없는걸 만드는 게 아니란다!“(p.9)라는 할아버지의 조언을 지침 삼아 기욤의 탐방은 시작된다. 그는 5개 지역에서 8명의 위대한 셰프들을 만나 약 30가지의 요리를 맛보며 미식의 진가를 깨우치고 그때마다 조금씩 성장한다. 요리사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라는 말은 작가 또는 예술가의 의도를 읽어내기 원하는 모든 감상자의 행위와도 연결된다.

 

셰프들이 안내하는 요리의 현장은 고유한 가치와 개성을 구현하는 화학자의 실험실, 자연의 보고이며 마법의 공간이다. 화려한 고난도의 요리를 설명하면서도 내일 죽는다면 메뉴에는 없는 할머니의 레시피 요리를 먹겠다고 한다. 늘 아이디어를 채집하며 맛 조합의 팔레트를 넓혀가고 레시피를 찾아내는 성실함은 기본이다. “난 쓴맛을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아의 맛이라고 불러. 첫 한입을 베어 물면 다시 먹고 싶어지지만, 왜인지는 모르는 거야.”(p.136) 라는 설명, 미식은 자기다움, 명철함, 끈기가 필요한 인생 수업(p.168)이라고 말은 공감을 부른다.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다채롭고 힘있게 변하는 기욤의 평론도 주목하게 되고 음악과 미술, 발레까지 비유와 인용도 찾아보게 만든다. 숨어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은 또 하나의 매력이다. 독자는 화자인 기욤을 통해 오감을 일깨우게 된다. 텍스트 중심 또는 텍스트와 사진, 텍스트와 삽화 등 가능한 여러 구성 중에서 만화 형식을 취한 건 빼어난 선택이다.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구현되는 조리현장과 재료부터 세팅까지의 과정, 핵심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상상을 만족시킨다. 시간의 모든 결을 간직하기 원하고 함께 하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예술의 여러 갈래 중에서 요리를 만났을 때, 삶은 선물이 된다. 이 여행 나도 가고 싶다.




(서평단_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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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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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을 뒤늦게 읽을 때면 저절로 형성된 예상치 혹은 기댓값과 견주는 행위를 무심결에 반복한다. 그 결과 기대 범주 내로 안착하는 작품도 있지만 이를 빗나가는 경우에는 더욱 당혹스럽고, 이 당혹감은 한동안 여운을 남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장 자끄 상뻬 그림,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 1999, 1992, 122쪽 분량)를 당돌하고 유쾌한 소년의 성장 소설로 상상했으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책의 제목은 소년의 이야기가 아닌 좀머 씨 이야기다. 좀머 씨는 120쪽 내외의 많지 않은 분량 중에서도 간헐적으로 잠깐씩 출현하지만 인상은 강력하다. 주로 주인공 소년의 눈으로, 가끔 이웃의 눈으로 해석되는 좀머 캐릭터는 픽션 세계와 현실을 남모르게 넘나드는 인물처럼 가공적이면서 동시에 생생하게 육화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모든 문학상 수상과 인터뷰를 거절하고 사진 찍히는 일조차 피하는 기이한 은둔자로 이는 D, J. 샐린저를 연상케 한다. 그는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스로 찬사를 받은 이후 좀머 씨 이야기와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향수등으로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언어의 연금술사다. 작가의 기량은 작품들이 증명하나 그의 기피는 독자가 추측하는 한편 존중할 뿐인데 좀머 씨 이야기는 세상을 향한 작은 힌트가 아닐까. 그와 같은 힌트의 메신저가 주인공 소년이다.

 

이 이야기는 소년이 자신의 유년을 회상하면서 우연히 쓰게 된 글은 아니다. “좀머 아저씨의 이야기를 하려고 작정”(p.14)하고 기록한 결과물이다. 늘 걸어 다니기만 했던 좀머 아저씨, 어디서나 쉽게 식별되는 사람이었던 좀머 아저씨의 모습을 꼼꼼히 묘사하지만 결코 알 수 없던 것은 그대로 남겨둔다. “그런데 정작 그가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 것인지? 그러한 끝없는 방랑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잰 걸음으로 하루에 열둘, 열넷 혹은 열여섯 시간까지 근방을 헤매고 다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p.22)라고.

 

좀머 아저씨는 단 한 번 분명하게 말한다. 빗줄기가 우박으로 변하여 수백만 개의 얼음덩이를 쏟아 붓던 날, 여전히 걷고 있는 좀머 씨를 발견한다. 그러다 죽겠다며 차에 타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지팡이로 땅을 내려치며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p.35)라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던 순간도 완벽히 혼자라 여겼을 때였다.

 

현재 시점에서 돌아보면 대수롭지 않은, 그러나 당시에는 상황을, 감정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힘을 집중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카롤리나 퀴켈만이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p.47) 라고 말했을 때의 환희, 계획과 실망, 마리아 루이제 풍켈 선생님 댁에서 배우던 피아노, 선생님의 어머니가 과자를 주는 미세 연결 동작, 무엇보다 코딱지 사건과 참담함에 죽기를 각오하고 결행하려던 심정, 자신의 장례식을 그려보며 저절로 눈물을 쏟는,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상상 등 소년의 결정적 순간들은 독자의 유년기 한 순간을 불러낸다. 그 때마다 우연히 엿보게 된 좀머 아저씨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그에 대해 쓴다.

 

윌리엄 홀먼 헌트의 <세상의 빛> 그림 속 문에는 손잡이가 없다. 안에서 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문이다. 이런 문을 닫아 걸고 묵묵하고자 의지를 벼린 사람들이 있을 테고 그 중 한 사람이 작가 자신의 일정 부분을 대변하는 좀머 씨다. 좀머 씨가 소통의 문 손잡이를 내쳐버린 이유는 전쟁과 연관한 트라우마였을지, 다른 무엇이었을지 명확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그를 조금 별난 사람으로 여긴다.

 

사람들에게 좀머 씨는 궁금하지만 굳이 본인이 원치 않는데 나의 시간과 품을 들여 그의 의식세계에 노크할 정도는 아닌 무명 씨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걱정거리들이 있”(p.97)기도 하니까. 소년의 기록으로 남은 은둔자의 몰락은 없음으로 수렴하기까지 멈추지 않고 그 원인은 짐작하고 추측할 뿐 미스테리로 남는다. 한편으로는 어떤 인생이건 미스테리 없이 쨍할 수 있을까 싶지만 좀머 씨 경우는 일상적 수용의 범위 밖에 있다. 우리 곁에는 좀머 씨가 과연 없을까.

 

좀머 씨 이야기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소설이다. 어린 소년이 화자인 성장 소설이고 숲과 나무가 자주 등장해 청량한 분위기를 지닌다. 장 자끄 상뻬의 삽화는 완벽한 마침표 역할을 한다. 성장과 죽음, 수용과 거절, 빛과 그림자 등 상승하는 이미지와 하강하는 이미지를 고루 담아낸 소설은 인간의 삶을 요약한다, 자신의 상황을 동화 속 장면에 견주거나 자라면서 읽게 되는 오디세이아까지 문학 작품들이 언급되는 부분에서 소년의 민감함 뿐 아니라 아무에게도 좀머 씨에 대해 말하지 않고 대신 기록하는 선택을 수긍하게 한다. 간결하지만 긴밀하게 연결시킨 문장은 활자를 읽는 느낌이 사라지고 이야기 속으로 단번에 몰입하게 만든다. 마치 문장은 이렇게 쓴다는 사례집과도 같다.

 

특히 아버지의 입을 빌어 작가는 틀에 박힌 빈말이라는 것은-너희들도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거야-어중이떠중이들이 입이나 펜으로 수도 없이 많이 사용했던 말이라서, 그 말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실제로 그렇단다.”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경고한다. “그런 말들은 인간의 삶에서 만들어진 말들이 아니라, 질 나쁜 소설이나 터무니없는 미국 영화에서 생겨난 말들이니까 그런 말들을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p.34) 늘 별표해 두지만 여전히 실천하기 어려운 상투어, 추상어 금지 규정도 이에 속한다. 말 뿐만 아니라 내 곁에 있는 누군가를 상투구가 아닌 꼭 필요한 진심으로 대하는 일은 기본일 것이다. 성장은 시기의 문제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성장을 꿈꾸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틀에 박힌 빈말이라는 것은-너희들도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거야-어중이떠중이들이 입이나 펜으로 수도 없이 많이 사용했던 말이라서, 그 말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실제로 그렇단다.”

 

“(전략)그런 말들은 인간의 삶에서 만들어진 말들이 아니라, 질 나쁜 소설이나 터무니없는 미국 영화에서 생겨난 말들이니까 그런 말들을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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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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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 없는 장소인 유토피아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이상향을 뜻한다. 최선, 완전, 이상이라는 단어는 늘상 우리가 선망하고 추구하는 목표지점에 배치되고, 무엇과 결합해도 만족스러운 덕목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이상 사회는 질병 없고 위험이 없으며 눈물도 없으리라는 환상을 주고, 환상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는 마땅해보인다. 그 많은 감시카메라는 더 이상 사각지대를 허락하지 않고 철두철미 지킴이 역할을 한다. 안심은 때로 두려움 일부를 동반한다.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아이러니를 내포하듯, 유토피아의 반쪽 얼굴이 디스토피아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조지 오웰의 1984(정희성 옮김, 민음사. 2003, 1949, 444면 분량)는 디스토피아 문학의 대표격으로 <우리들(1922)>, <멋진 신세계(1932)와 함께 3대 디스토피아 소설 중 하나다. 책이 나온 1948년에 설정한 미래 시점이 아주 먼 미래로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변화는 급진적일 수 있고 회복 불가의 낙인이 절대적일 수 있다는 경고를 소설은 잘 보여준다. 조지 오웰은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며 계급의식을 풍자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탁월하였다. 소설가이자 언론인, 비평가로 십 칠년간의 본격적인 작가 생활 중 마지막 작품인 1984는 그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된다.

 

소설 속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작가가 구축한 디스토피아다. 오세아니아는 무엇보다 선명한 계급사회로 인구의 2퍼센트도 안되는 지배 계층인 내부당, 18퍼센트를 차지하는 지식인층인 외부당, 나머지 85퍼센트는 프롤이라 불리는 노동자 또는 최하층 무산계급으로 구성된다. 과거와 철저히 결별 할 뿐 아니라 해체하고 무화시키는 곳, 희망을 차단당하고 욕구를 무력화하는 전체주의 감시 사회는 다양한 요소들의 공조로 흔들림 없이 지탱된다. 포스터 속 눈동자는 감시카메라 기능을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라는 글로 재차 강조한다. 영원히 끌 수 없는 텔레스크린은 영원한 세뇌를 장담한다. 슬로건과 신어는 시스템의 근간이다. 그 장치들이 어떻게 발명 되었는가 이의를 제기하고 여정을 추적하고 답변을 요구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잃었다. 시스템의 하위구조, 쳇바퀴의 부속품인 인간은 전적인 수용과 참여로 유일하게 허용된 삶의 방식을 따른다.

 

다만 윈스턴 스미스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가 시작하려는 일은 일기를 쓰는 것”(p.16)이다. 일기쓰기는 유익은 찾기 어렵고 위험은 분명한 행위다. 그에게는 마침 구입해둔 노트가 있었고, “이 분 증오를 기억하기 위해서 쓰기를 선택했는데 무의식중에 페이지를 채운 글은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로 이는 사상죄에 해당한다. 사상범들은 밤중에 사라지고 등록부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그에 관한 모든 기록도 삭제되어 결국 증발”(p.33)한다. 조작과 증발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진리부 내의 기록국에서 일하는 윈스턴은 누구보다 잘 안다. 인간이 소외되는 기록국의 광경은 카프카의 <>에 나오는 업무공간을 연상케 한다. 그의 일터는 오세아니아의 시민들,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에게 그에 알맞은 수준으로 낮춰서 되풀이”(p.63) 제공되는 거의 모든 분야의 정보를 생산한다.

 

2부의 기록은 사상경찰이라고 오해했던 줄리아와의 조심스런 밀회로 방향을 전환한다. 당의 강령에 관심이 없는 그녀에게 중요한 일은 오로지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그들이지만 함께하기 원하기에 둘만의 사생활을 누리고 싶다. “그것은 일부러 무덤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것과 같았”(p.198)으나 게의치 않는다. “그런데 단순히 살아남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는 게 목적이라면, 궁극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들을 자신들과 똑같이 개조시킬 수 없듯 그들 또한 사람들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없다.”(p.236)는게 윈스턴의 확신이다. 그는 자신과 동일한 입장이리라고 여겨왔던 오브라이언으로부터 형제단에 초대받는다. 비밀리에 넘겨받은 그 책은 조작된 세계를 설명하는 치밀한 지침서로 슬로건과 사회 구조, 빅 브라더 밑으로 내부당과 외부당, 프롤이 어떤 역학관계로 존재하는지 설명한다. 윈스턴은 새로운 가능성에 거의 근접했다고 여겼다. 적시에 필요한 소통이 이루어졌음을 의심치 않았다. 희망은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에게 있다고 다시금 확신하는 그때 새로운 대결, 막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카뮈식 인간조건을 윈스턴도 따르고 있었다. 그는 기록하는 자, 즉 깨어있는 자였고, 사랑하기 원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지켜냄으로 체제에 저항하고자 했다. 그는 조작된 인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 이중사고에 속지 않는 인간이기를,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도 독자도 비참 끝에 납득할 만한 결실을 기대했으나 작가는 다른 결말을 준비한다. 분량상으로 간결하고 내용상으로도 단순한 3부는 과도할 정도의 구체적인 묘사로 윈스턴이 전 생애애 걸쳐 지켜내고자 했던 희망을 부순다. 작가가 형상화한 1984년에서 다시 40년이 지난 현재, 소설 속 많은 부분이 현실로 평행 이동하였음을, 그를 넘어 합동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관은 바늘 하나 떨어질 틈 없이 치밀하기에 경고는 더욱 섬뜩하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 오히려 윈스턴의 상황과 심정을 가늠케 만든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는 허구가 아닌 지금도 진행중인 상황을 전달받는 듯하다. 희망은 무산계급에만 있다던 그의 믿음은 좌절되었다. 책은 여전히 묻고 있다. 왜 그들은 양은냄비와 같은 사소한 시비에만 사로잡히는지를. ”그런데 왜 그들은 좀 더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그 같은 함성을 지르지 않는 걸까?“(p.100) 그리고 의식이 없다면 반란 또한 기대할 수 없다고 답한다. 어디서부터가 감시 내 상태였을지, 처음부터였다고는 믿고 싶지 않고 소설이야, 라고 덮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안다. 작가는 마지막 작품, 마지막 부분에 부록으로 <신어의 원리>를 실었다. 사람을 규정하는 건 그가 쓰는 언어다. 그가 쓰는 말이 곧 그 사람이기에 생각을 규정하고 말을 왜곡하고 기록을 금지하고 검열하는 일은 가장 두려운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미래인에게 남기는 공개된 밀서와 같은 작품의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실들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큰 것은 못 보고 작은 것만 볼 줄 아는 개미와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기억은 상실되고 기록은 날조되어 가는데도 인민들의 생활이 개선되었다는 당의 주장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주장을 반박하거나 검증할 기준이 없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다.(p.131)


그건 단지 소극적인 것보다는 적극적인 것을 택했으면 하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금 벌이고 있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어. 하지만 같은 패배여도 더 나은 패배가 있는 법이야.”(p.192)

 

어떤 면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끔삑한 일인지도 납득하지 못할뿐더러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공적인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 파괴도 서슴지 않고 받아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무지로 인해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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