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명작소설을 새롭게 해석한 영화를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의 불후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76051>는 2007년에 <톱 텐>이라는 책에서 발표한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 순위에서 당당 1위를 차지한 까닭인지,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화 된 바 있습니다. <톱 텐>의 순위는 영국, 미국, 호주의 유명작가 125명이 뽑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문학작품 10권을 종합한 것이었으니 아무래도 전문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개봉된 <안나 카레니나>는 조 라이트 감독 작품으로 키이라 나이틀리(안나 카레니나 역), 주드 로(알렉시 카레닌 역), 애론 테일러-존슨(브론스키 역), 돔네일 글리슨(레빈 역), 그리고 알리시아 빈칸데르(키티 역) 등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영화의 틀을 깨트리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우들이 플로시니엄에서 연기하는 장면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기법을 적용한 것인데, 단순히 플로시니엄으로 국한되지 않고, 플로시니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이 배우들의 연기공간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무대에서 퇴장한 배우가 무대장치 등을 조정하기 위하여 무대 위 공간에 설치된 비계로 이동하여 다른 장면으로 연결시킨다거나, 퇴장한 배우가 대기실을 통하여 연결된 회랑을 따라서 무도회장으로 이동하는 등입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다중의 공간으로 변형되기 때문에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숨가쁘게 배우들을 뒤쫓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무대가 경마장의 관중석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무대 뒤 공간이 마차가 질주하는 거리로 변모하기도 합니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귀족사회가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에 화려한 모습의 연극무대가 제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레빈으로 상징되는 러시아 농민들의 세계는 열린 공간의 현장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리얼리티를 살리는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 원작의 <안나 카레니나>의 원작을 읽고서 브론스키를 매개로 하여 카레닌-안나 부부, 레빈-키티 부부의 상반된 사랑의 행로를 대비시키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젊은 장교 브론스키를 처음 만나는 순간 마음을 빼앗긴 안나가 고위관료인 남편과 8살 된 아들을 버리고 브론스키와 불륜의 관계에 빠지고 카레닌에게 이혼을 요구하다가 결국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리는 과정에서 카레닌은 자신의 위치를 고려하여 안나와 브론스키가 세인의 주목을 끌지 않는다면 눈감아 주겠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세인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는 행동을 보인 끝에 카레닌의 분노를 사고 말아 결국은 “복수는 내가 하리라, 내 이를 보복하리”라는 결말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원작을 보면 당시 러시아 사교계에서도 비밀리에 불륜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는 것인데, 안나-브론스키 커플이 파경에 이르게 된 것은 자신들의 사랑을 드러내고 인정받겠다는 두 사람의 도전정신이 사교계의 일반적 정서에 반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결국은 브론스키를 완전하게 소유하려는 안나의 끝없는 욕심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파멸에 이르게 되는데... 

 

톨스토이의 원작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화르르 타버리는 불꽃같은 사랑과 브론스키에 팔려 레빈의 청혼을 거절했던 키티가 안나에게 빠진 브론스키 때문에 받은 상처가 아문 다음에 레빈의 사랑이 진실함을 깨닫게 되면서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성적인 레빈의 사랑이 때로는 편집증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키티의 원만한 대응으로 이들의 사랑은 원만하게 무르익어가는 것으로 안나-브론스키의 정열적인 사랑과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안나의 불꽃같은 사랑이 시작하고 마무리되는 과정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 레빈과 키티의 사랑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새겨볼 수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1796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원작에서 영화의 스토리전개에 꼭 필요한 장면을 원작에서 추출했다고는 하지만 등장인물의 행동 배경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생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를 우리가 흔히 보는 막장드라마 수준으로 이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원작을 읽으면 등장인물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부의 고위관료인 카레닌과 브론스키 사이에서 안나가 갈등을 보이다가 결국은 브론스키로 기울게 되는 것은 카레닌이 안나보다 스무 살이나 연상이라는 점도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카레닌과 브론스키 사이에서 안나의 생각이 여러 번 바뀌게 되는게, 첫 번째 변곡점은 안나가 브론스키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출산하는 시점입니다. 안나와 이혼을 결심한 카레닌이 모스크바에서 머물고 있을 때, 안나로부터 돌아와 달라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출산과정에서 얻은 산욕열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된 안나가 죽음을 앞두고 카레닌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쓸 무렵 만해도 산욕열에 걸리면 백명 가운데 아흔 아홉 명은 죽는 치명적 부작용이었습니다.

 

출산이나 유산을 한 뒤 첫 10일 동안 38℃ 이상 되는 열이 있는 경우에 산욕열을 의심하게 됩니다. 분만이 진행되는 동안 여성의 생식기계통에 많은 손상을 입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세균감염이 일어나게 되면 골반염, 복막염 나아가서는 패혈증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어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세균이 감염병을 일으킨다거나 소독법으로 감염을 줄일 수 있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출산은 죽으러 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헝가리 출신 산과의사 젬멜바이스가 산욕열이 분만의사의 위생상태에 따라서 생긴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고, 소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고서야 산욕열이 줄어들게 되었고, 항생제의 발견은 산욕열에 희생되는 산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기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젬멜바이스가 산욕열의 정체와 예방법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맞는 불행한 인생행로는 핼 핼먼이 쓴 <의사들의 전쟁; http://blog.joinsmsn.com/yang412/5157822>에서 상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산욕열이 그만큼 무서운 병이었기 때문에 안나는 자신의 잘못된 사랑으로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브론스키와 이별하는 조건으로 카레닌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안나의 생명을 그 사랑만큼이나 끈질겼던지 산욕열의 위협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안나와의 이별을 이겨내지 못한 브론스키가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이 다시 안나의 생각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입니다만, 톨스토이 원작에서는 레빈의 형 니콜라이가 결핵으로 죽음을 맞는 장면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이 죽어가고 있다는 전갈을 받은 레빈은 형을 만나러 모스크바로 가게 되면서 키티에게는 영지에 머물도록 요구하지만 키티는 레빈과 동행하여 모스크바의 호텔로 가서 니콜라이를 헌신적으로 간병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레빈의 마음을 감싸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키티에 대한 레빈의 사랑이 한층 깊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죽어가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환자는 홀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특히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죽어가는 니콜라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키티의 특별한 능력이 영화에서는 병든 형이 레빈의 영지로 찾아와 죽음을 맞기까지 과정을 짧은 에피소드로 처리하고 있어 이 장면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해졌을까 싶기도 합니다.

 

폐결핵은 초기에는 대부분 특별한 증상이 없습니다만, 병이 진행함에 따라 권태감, 미열, 식은 땀, 기침, 가래 등의 증세가 나타납니다. 폐결핵의 진단은 흉부엑스선검사와 객담에서 결핵균을 검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하여 조기에 진단을 하고 집중적인 약물치료로 완치가 가능한 전염병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정리를 하면, 조 라이트 감독은 안나와 브론스키 사이의 위험하고도 절절한 사랑에 집중하는 대신,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며 개인을 파멸의 길로 내모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의미를 깊이 파고든 원작자 톨스토이의 의도를 되새겨볼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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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찍힌놈들>은 극단 내여페가 소극장 ‘내여페 The Stage’의 개관작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조인스 이벤트에서 관람기회를 주셔서 감상하게 되었는데, 마침 공연하는 날 오후 늦게 시작한 회의가 다행히도 개막시간에는 넉넉할 정도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덕분에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 붕어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서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정말 아담한 극장은 휴먼다큐팀 PD와 카메라맨이 신세를 논하는 주점이 객석 오른편에 조금 높게 자리하고 있고, 정면으로 밴드악기들이 늘어서 있는 무대는 출연하는 밴드가 연습하는 강당이며, 무대 아래 공간은 기타 등등의 상황이 처리되는 복합공간입니다. 객석과 무대가 가까워서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들을 수 있어 관객과 배우가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무대입니다.

 

스토리는 시사다큐팀에서 징계를 받아 휴먼다큐팀으로 쫓겨난 PD대주는 언젠가 한건 올려 시사다큐팀을 복귀할 속셈인데, 평화소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소년장기수들이 어언 나이가 들어 정규교도소로 이감해야 하는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는 뉴스에 착안하여 이들 소년장기수들이 밴드활동을 통하여 교화되는 모습을 담아 감동스토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절도, 폭력, 방화, 살인 등 살벌한 죄목으로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은 대주PD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막내 소민을 꼬이는데 성공하여 일단 밴드에 참여하도록 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연습은 대주PD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순조롭지 않아 공연일을 맞출 수 있을지 불확실해집니다.

 

 

대주PD는 이들을 개인적으로 자극하여 연습에 피치를 올리는 한편 이들의 개인공간에도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여 이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순수한 면을 담아냅니다. 겉돌기만하는 아이들과 대주PD의 마음이 시나브로 연결되고 연습도 궤도에 오를 무렵 살아계실 것으로 믿는 할머니의 부음을 전해야 하는 상황이라던가 실수로 죽인 친구의 아버지가 면회를 오면서 이들은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결국은 PD가 두고나간 핸드폰으로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이들의 사연이 사회적으로로 문제가 되어 공연이 취소되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고 대주PD는 공연대신 음악프로그램을 통하여 이들의 연주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연극은 실제 소년수의 사연을 바탕으로 스토리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더블 캐스팅으로 되어 있는 출연진 가운데 이날 출연하신 분들은 김대주PD역에 위명우씨, 재강역에 정성윤씨, 윤호역에 민두홍씨, 지성역에 이대희씨, 소민역에 정승욱씨, 그리고 멀티맨역에 신준철씨가 열연해주셨습니다. 무대나 소품 음악 등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앙상블도 아주 훌륭했고, 4인조 소년수밴드의 연주실력도 아마추어 수준은 넘어서는 것으로 연습을 아주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시청률을 의식하고 접근했던 대주PD가 이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빠져드는 모습이 조금 더 부각되었더라면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연주를 끝으로 공연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조금 애매해서 땀흘린 배우들에게 마음껏 박수로 격려할 수 없었던 것도 조금 아쉽습니다.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내신 배우들과 스태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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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만났습니다. 고수, 한효주 주연의 정기훈감독 영화 <반창꼬>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게 연결되지 않는 소방관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녀가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긴박한 인명구조현장에서 언제나 무모하다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아내의 생명이 경각에 이르렀을 때에도 현장을 지키느라 지켜주지 못한 소방관 강일(고수扮)은 여전히 죽은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한편 지나칠 정도로 똑똑한 의사 미수(한효주扮)는 응급실에서 만난 여자환자가 남편의 폭력에 의한 일시적 실신이라고 진단하고 돌려보내지만 환자는 곧 식물인간 상태가 되고 그 남편은 미수를 상대로 의료과오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소송전략상 환자의 남편의 폭력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강일의 도움이 필요한 미수는 의도적으로 강일에게 접근하지만 강일은 요지부동입니다.

 

결국 강일을 설득하기 위하여 사회봉사라는 명분으로 의무소방대원을 자원하여 강일과 근무를 같이 하게 된 미수는 강일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고, 강일 역시 천방지축인 미수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아직 개봉되지 않은 영화의 스토리를 미주알고주알 적는 것을 별로 반가워하시지 않을 것 같아 요정도로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의 고리를 조금씩 당겨가는 단초는 미주가 가지고 있는 ‘실신(syncope)'이라는 고질병입니다. <알기 쉬운 의학용어 풀이집 제3판>에 따르면, 실신은 전반적인 근육의 약화와 동반하여 서있을 수 없고 의식을 소실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원인에 따라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의식을 관장하는 대뇌부위에 산소결핍이 일어나서 생기는 현상으로 부교감신경인 미주신경의 흥분에 의하여 혈압이 떨어져 유발되는 미주신경반사성 실신, 혈관운동반사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일시적으로 혈압이 떨어지면서 실신이 동반되는 체위성 저혈압, 부정맥이 있는 환자에서 심장박출량이 갑작스럽게 떨어져 유발되는 심장성 실신, 목에 있는 경정맥동에는 혈압에 대한 수용체가 있어 혈압이 높을 때 뇌에 신호를 보내 심박출량을 줄이고 혈압을 낮추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데, 경정맥동이 낮은 혈압에서 작동되어 생기는 경정맥동증후군 등이 있습니다. 미주의 경우는 극 후반에 정밀검사를 통해서 뇌종양이 미주신경을 압박해서 실신이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지게 됩니다.

 

냉동창고의 현장에서 부상당한 대원을 응급구호한 미주가 현장에서 철수하던 중에 실신하여 쓰러지게 되고,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강일이 현장에 돌아와 미주를 구하려는 순간 냉동창고의 문이 닫히면서 두 사람이 갇히게 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두 사람의 사투가 이어지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의식을 잃어가는 미주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일은 서로의 옷을 벗긴 다음에 체온을 나누어주려 애를 쓴다는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온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옷을 벗기 보다는 오히려 복장을 더 단단하게 여며 열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영화의 줄거리에서 미주의 의료과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응급실에 실려 온 젊은 여성은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데, 그녀의 온몸에 멍든 자국과 그녀 남편의 몸에 새긴 문신을 본 미주는 남편으로부터 맞아서 생긴 것으로 판단을 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퇴원시키지만, 사실 환자는 혈액응고방지제를 먹고 있는 환자라서 멍이 쉽게 드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오만함과 단순한 선입관으로 오진을 한 것이지요. 문제는 자신의 잘 못을 쉽게 인정하여 환자 보호자에게 사과를 구하지 않은 미주는 병원에서 점차 입지를 잃게 되고, 식물인간상태에서 돌아오지 않은 아내를 지켜보다 지친 남편은 아내 곁에서 목을 매는 순간 미주가 뛰어들어 생명을 되돌려 놓습니다.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일 것입니다. 버리려 했던 자신의 생명을 미주가 구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미주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정재승과 김호교수님은 <쿨하게 사과하라; http://blog.joinsmsn.com/yang412/12147514>에서 쏘리웍스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의료과오와 관련된 상황에서도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으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투명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피해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미주도 사태 초반에 상황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잘못을 빌었으면 일이 이토록 꼬여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강일과 미주가 서로 만나야 할 인연이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붕괴하는 건설현장에서 건물잔해에 깔린 남자를 구하기 위한 강일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면서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라고 했다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의 절절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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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죽전역 근처에 있는 용인 포은아트홀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관람하였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레미제라블>은 1985년 10월 8일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27년 동안 43개국에서 21개 언어로 공연되어온 작품으로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4대 뮤지컬 가운데 이미 라이선스공연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다른 3편의 뮤지컬의 뒤를 이어 마지막으로 초연되는 만큼 뮤지컬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까닭인지 1층의 천여석을 꽉 메우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객석의 불이 꺼지고 1815년 쇠사슬에 묶인 노예들이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프롤로그의 합창으로 시작된 공연은 감옥에서 나와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던 장발장이 디뉴성당의 미리엘주교의 구원을 받게 되는 장면, 다시 세월을 건너 뛰어 1823년 몽트레이유쉬르메르에서 바닥인생으로 굴러 떨어진 팡틴을 만나 그녀의 딸 코제트를 돌봐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 몽페르메이유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코제트를 구하는 장면, 또 세월을 건너 뛰어 1932년 오랫동안 들끓어오던 민중들이 봉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1막이 숨가쁘게 이어졌습니다.

 

1막은 주인공 장발장과 숙명적으로 그의 뒤를 쫓는 자베르형사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이미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121404>에서 그의 연기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기에 기대했던 정성화씨의 장발장 연기는 소름이 일어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객석의 맨 뒷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장발장과 끈질긴 인연을 자랑하는 자베르형사 역의 문종원씨의 연기와 노래 역시 훌륭했고, 자칫 무거운 분위기로 내달릴 수 있는 무대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맡은 떼나르디에 부부역을 맡은 임춘길씨와 박준면씨의 연기와 노래도 훌륭했습니다.

 

20분의 막간휴식에 이어진 2막은 민중봉기에 가담한 마리우스가 걱정되어 같이한 에포닌이 죽음을 맞는 장면,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가 걱정되어 시민군에 동참하는 장발장이 시민군에 발각되어 죽음을 맞게 된 자베르형사의 목숨을 구해주는 장면, 장발장이 총탄에 맞은 마리우스를 구하는 과정에서 다시 조우한 자베르형사가 장발장을 놓아주는 장면, 시민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이 모두 죽어 혁명은 실패로 끝나지만 마리우스는 살아남아 코제트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장발장의 정체를 폭로하겠다는 테나르디에의 협박에 마리우스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두 사람을 떠난 장발장에게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찾아와 장발장에게 돌아와주기를 청하지만 장발장은 이미 죽음을 맞아 먼저 떠난 사람들, 팡틴, 에포닌 그리고 시민혁명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과 함께 하면서 극이 마무리됩니다.

 

2부에서는 합창의 비중이 조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오케스트라와 좋은 앙상블을 보여 감동을 더한 합창은 그 울림 탓인지 가사구분이 조금 애매하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공연이 데뷔작이라는 코제트 역의 이지수씨의 맑은 음색도 좋았지만 에포닌역의 박지연씨의 연기와 노래가 참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포은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뮤지컬<레미제라블>은 연기와 노래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스태프들과의 앙상블도 훌륭했습니다. 다만 최근에 민음사에서 나온 무려 2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달하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소설을 2시간여의 뮤지컬로 압축하려다 보니 원작의 많은 에피소드가 생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작을 미리 읽어야 뮤지컬 장면들의 의미를 따라갈 수 있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인간을 구속하는 감옥에서부터 개인의 행복을 구속하는 정부에 대항하여 봉기한 시민군이 전멸한 가운에 살아남은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결혼으로 마무리되는 뮤지컬의 결말이, <레미제라블>을 통하여 “한 저주받은 비천한 인간이 어떻게 성인이 되고, 어떻게 예수가 되고, 어떻게 하느님이 되는”지 그려내고자 했다는 빅토르 위고의 집필의도를 어느 정도 구현한 것인지 분명하게 느껴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원작을 모두 읽지 못하고 뮤지컬을 관람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일독이 마무리되면 다시 한번 관람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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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을 소개한 글을 여러 번 읽게 되었습니다. 박종호 선생님의 책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7325>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르헤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제목은 생각나지 않습니다만, 기억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보르헤스의 작품,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단편집 <픽션들>에 실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말을 타면 경마를 잡히고 싶어진다고 하던가요? 마침 민음사가 주관하는 민음아카데미에서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의 송병선교수를 초청하여 “보르헤스, 문학으로 읽기”라는 강좌를 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의와 출장 등이 겹치는 바람에 처음부터 참석하지는 못해서 아쉬웠습니다만, 드디어 26일 저녁에 출판문화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리는 강좌에 참석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의외로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송교수님의 재미있는 말씀에 빠져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송병선교수님은 강좌의 주요 텍스트가 되는 <픽션들>은 물론, 저도 읽은 적이 있는 <거미여인의 키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115661> 등 다수의 중남미 문학작품을 번역 소개하신 분입니다. 이날은 두 개의 단편집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과 ‘기교들’을 묶은 <픽션들>을 텍스트로 하여 강의와 토론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서문과 8개의 단편으로 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에서는 동명의 단편을 골랐고, 서문과 10개의 단편으로 된 ‘기교들’에서는 ‘죽음과 나침반’을 골라 설명하였습니다.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픽션들>의 리뷰를 통해서 소개하겠습니다만, 두 작품의 공통점은 미로(迷路)가 작품의 중요한 뼈대를 이루고 있는 추리소설이라는 것입니다. 미로에 착안하게 되니 아주 오래 전에 빠졌던 중국무협소설 생각이 났습니다. 미로를 의미하는 기관을 설치해서 사람들을 함정에 빠트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이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중국에서 미로가 발전했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는데 그리스 신화에서 이미 정교한 미로에 사람을 가둔다는 이야기와 미로깨기비법이 소개되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민음 아카데미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2시간씩 모두 4주 동안 진행이 되는 강좌를 격월간으로 열고 있다고 합니다. 금년 5월에는 헤밍웨이를 다루었다고 합니다. 9월에는 소설가 장석주 선생님이 국내작품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근대의 탄생과 경성의 작가들’이 그리고 11월에는 비평가 이현우교수님이 진행하는 ‘로쟈의 애매한 사랑이야기’가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주제가 되는 작품 혹은 작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참석해서 문학의 세계에서 시야를 넓혀나가는 기회로 활용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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