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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동화 - 아는 힘을 두 배로 키워 주는 17가지
이영 지음 / 동화사(단행본)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교과서에서 철학을 배우던 무렵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칸트라고 부른 적이 있다. 철학자 이름에 무슨무슨 사상을 외우며 힘들어하다가 그 어려운 공부를 하게 만든 철학자를 강아지로 전락시켜놓고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댄 것이다. 그 당시 교과서 수업 대신 이런 철학 동화를 읽고 토론을 했더라면 '철학'이 성장하는 데 더 보탬이 되었을 것 같다.
그렇다 . 이 책은 철학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철학 동화'라고 했지만 '철학'이라는 단어는 제목 외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생각하는 힘이 키워진다. 그리고 철학은 책이나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고 아주 가까운 생활 속에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결국 살아가는 데 있어 영어나 수학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건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준다.
이 책에는 지구상의 모든 어린이를 꼬마 철학자로 만들고 싶어하는 소 선생님과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토론을 즐기는 네 명의 아이가 나온다. 이 책이 아주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엉뚱함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나 생활 속에서 부딪힐 수 있는 17가지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인간은 왜 동물과 다른지, 전쟁은 꼭 필요한지, 신은 있는지, 나의 주인은 누구인지, 생명은 왜 고귀한지, 동물의 생명을 인간 마음대로 할 수 있는지, 자연의 주인은 누구인지..... 사실 어른들이 생각하기에도 쉽지 않은 문제들을 짧은 동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수시로 '왜 그런가'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생각의 씨앗'에서는 주제를 콕 집어줌으로써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주고, '철학하고 놀자'에서는 나의 생각을 묻는 질문들이 들어 있어 나의 삶 자체가 철학임을 일깨워준다. 즉 내가 바로 철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여럿이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른 친구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어 사고의 확장을 기대해볼 수 있는 코너이다.
'영원히 사는 사람'을 읽으면서 지난 달 친구 아내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온 일이 생각났다. 아직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부인을 잃은 친구를 보며 '사람은 왜 죽어야 하나', '부부가 같이 죽을 수는 없는 걸까' 하며 함께 통곡을 했다. 한번쯤 죽음에 대해, 죽은 이후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가까운 지인의 죽음 앞에서 그렇게 당혹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생명을 파는 가게'나 '영원히 사는 사람'을 읽으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철학은 어렵지 않다' 라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철학을 어려워한다. 과학 동화나 수학 동화처럼 어려운 분야를 학습시키기 위한 한 장르로 이젠 철학까지 끼어들기를 한 것이다. 어려운 분야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어려운 분야를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동화책을 읽고 많은 상상과 감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 씁쓰름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