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란을 날려라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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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실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으로 인해 고든 콤스톡과 로즈메리가 결혼 이후 첫 말다툼을 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엽란은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있다. 그러한 유형의 말다툼은, 돈은 적으나 숨길 것이 많은 부부라면 시대와 국가를 불문하고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사소한 언쟁과 실존하는 아이 앞에서 모든 환상은 현실로 돌아가는 법이다. 


 이 소설은 조지 오웰이 책방에서 일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쓰였기 때문에 자전적인 소설로 해석될 수 있지만, 고든 콤스톡은 조지 오웰의 어두운 자아에 가깝다. 가난과 계급사회와 제국주의에 대한 사유 뒤편에 자리잡은,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여 세간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있다. 물론 조지 오웰을 돈과 명예에 집착하는 이로 해석하는 것은 그의 생애에 대한 모독이다. 영국 문학사에서, 아니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오웰만큼 실천적인 작가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책방 점원 시절이 묘사되어 있지만, 작품의 주 무대는 서점 밖이기 때문에 자전적인 소설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그의 추태를 보고 있자면, 소위 말해 좀 '깬다'. 


 『엽란을 날려라』의 단순한 줄거리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꼽자면, 고든이 미국 문예지에서 받은 50달러를 탕진하는 날이었다. 그 장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돈의 신에 굴복하기 싫다면서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 일을 그만두고 책방 점원이 되기를 선택한 고든이, 막대한 돈을 얻자마자 조력자인 래블스턴과 연인인 로즈메리에게 자랑하듯 돈을 막 쓰는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서글프다. 고든은 지속된 가난으로 피해의식과 자기혐오에 빠져 있다. 그래서 래블스턴의 호의를 가난한 자신에게 베푸는 동정으로 간주해 왔고, 여자들은 가난한 남자와 결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적대적으로 대한다. 두 사람은 성인군자처럼 고든을 챙겨주었지만, 10파운드를 하루만에 날리고 만취하여 경관을 폭행한 고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가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정말 대단한 용기를 지녔다고 말하고 싶다. 고든에게 있어서 그 날은 삶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일 것이다.


 통속소설 같은 갈등의 해소, 평면적인 인물 관계, 다소 늘어지는 심리묘사 등의 단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흥미롭게 읽히는 까닭은, 인간 내면의 모순과 드러나는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도 실패작이라고 인정했지만, "역시 조지 오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과 돈,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망가뜨리는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영제국의 위대함과 제국주의의 정당함을 부르짖을 때, 조지 오웰은 밑바닥 세계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그들과 동화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절을 함께 감당했다. 그가 이 작품을 다시는 출판하지 말라고 부탁했던 까닭도, 오로지 '돈'을 위해 창작을 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아무렴 어떤가, 절실함이 없으면 창의력이 솟아나지 않는 것을. 만약 시간을 돌린다 해도, 그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든이 로즈메리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결말은 다분히 해피엔딩이다. 그는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환상은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을 돕지 않는다. 


 현실이 언제나 환상보다 나은 것은 아니다. 어떤 환상은 다양한 이름으로 변신하여, 세상을 바꾸는 데에 기여한다. 물론 그것은 현실에 적절한 방식으로 접목했을 때의 일이다. 작가를 꿈꾸었으나 훌륭한 카피라이터가 된 남자가, 그 일을 하면서 부끄러워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현실은 언제나 환상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현실이 더 구체적인 환상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조지 오웰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는 데에 그쳤다면, 그저 사실적인 묘사에 탁월한 르포르타주 작가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불멸의 우화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작품들을 기꺼이 기억한다. 조지 오웰의 삶과 작품은 우리가 환상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환상으로 유연하게 사고를 바꾸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식당 안에는 정확히 셀 수 없을 정도로 엽란이 많았다. 그것들은 찬장 위에, 마룻바닥에, 보조 탁자 위에 등 식당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창문 쪽에 여러 개의 화분이 놓여 있는 스탠드가 서 있는데 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사방에 엽란이 둘러싸고 있는 어둑어둑한 방에 들어오면 마치 수중화의 따분한 잎들에 에워싸인, 햇빛 없는 수족관 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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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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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선란 작가에 대해서는 입소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국내소설에, 아니 요즘은 문학 전체에 관심이 통 없던 나에게 한국형 SF 소설의 대가가 나타났다는 것이 신문 기사를 통해, 영상을 통해 전해졌다. 그 당시에는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얼마 전에 그녀의 신작 단편집이 출간되었다는 말을 듣고 불현듯 구매했다. 제목인 『노랜드』에 대한 첫 인상은 "방황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일까, 였다. 그리고 모든 작품을 읽고 난 뒤 든 느낌은 "no homeland"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비유하자면 <노 웨이 홈(no way home)>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작품 중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묘사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기에 떠나야 했던 자들의 심정이니까. 

 

 나는 이 작가의 소설들을 처음 읽어보았는데, 전체적인 감상평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필립 K. 딕의 스타일에 자신만의 주제를 덧붙여 한국의 정서에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종말 이후의 이야기 또는 종말론적 분위기에 지배되고 있는 세계관은 앞서 언급한 작가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21세기 SF 문학의 대표적인 추세이므로 딱히 흠 잡을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색채를 얼마나 고유하게 녹여내었느냐인데 나는 그녀가 그것을 잘 해냈다고 본다. 우선 갑자기 얻은 명성을 의식해서 작품에 힘을 준 흔적이 없는 것이 좋았다. 그냥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는 인상, "소설이 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조소 섞인 분석 등이 그렇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 갇히지 않고 차분하게 하지만 재치 있게 주제를 풀었다. 그리고 가볍게 한 말이 곱씹어 보면 작품들을 관통하는 단어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유 없이 살아가자. 문학, 그중에서도 SF 문학은 장르의 특성답게 부연 설명을 참 좋아한다. 사실이든 허구든 도구를 동원하여 인물의 동기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대담한 시도는 해야 할 말에 대해서 침묵하는 일이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는다는 구차한 변명 대신, 정말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는 도전 말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에게」다. 이름을 불리기 전까지 이승에 남아야 하는 존재라니,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은가? 유령으로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고 마침내 이름 세 글자가 불리는 순간의 감동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 천선란은 주인공의 이름에 대해 침묵했다. 대신 단서를 남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이름을 가진 모두의 이야기로 말이다. 그 절제가 이야기의 보편성을 확보한다. 오히려 너무 흔한 소재가 되어버린 좀비를 기이한 마을의 분위기와 접목시켜 심리 스릴러처럼 그려낸 「이름 없는 몸」이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한 것은 아이러니이자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담긴 구성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제목과 가장 부합하지 않을까 싶었다. 공간은 있지만, 사람이 없기에 더 이상 고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아닐까? 물리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등장인물들은 수없이 언급되었으나 정신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의 이야기는 소수이다. 고향에서 도망쳐왔다가 귀환한 자들에게 환영 인사는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순수한 상상력이 빛난 단편이었다. 바로 「두 세계」였다. 소재부터 전개까지 모두 매혹적이었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설 속의 세계에 풍덩 빠져들고 싶은 욕망을 품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실현시켜 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다니! 심지어 온몸을 알집에 가두고 요란하게 흔들리는 기계 따위가 아니라, 마그네틱 버튼을 관자놀이에 붙이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획기적이고 기발한가! 게다가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 상호작용할 수도 있으니, 이보다 신나는 게임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러한 애서광들에게 천선란은 예상 밖의 대답을 던진다. 그렇게 문학을 사랑하던 당신은, 당신이 그토록 아낀 등장인물에 의해 잡아먹혔다. 우리는 아락스와 신규영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락스는 가상현실 밖의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습득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규영을 설득했을 것이다. 규영은 순수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절대 해서는 안 될 거래를 했다. 현실에서든 프로그램에서든 몸을 죽이면 영혼도 소멸하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소름끼치는 설정이 압권이다. "아락스가 죽었다"는 문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대목이다. 인공지능과 함께 떠나는 신나는 모험은 씁쓸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어쨌든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만약 천선란의 작품에 매력을 느낀 독자라면, 다른 작품을 구매해서 읽고 싶은 욕망이 생길 것이다. 특히 이렇게 인상적인 한국형 SF소설은 존재만으로 반갑다. 하지만 잦은 모험을 떠난 이들이라면 느낄 것이다. 나를 완벽하게 기쁘게 하는 소설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소설가가 된 이들은 어쩌면 더 큰 목적을 찾아 끊임없이 방랑하는 '노랜드' 속 등장인물들과 같을지도 모른다. 설명할 수 없는 맹목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다. 그들은 돌아갈 곳을 파괴하면서까지 기꺼이 먼 길을 떠난다. 누군가는 고작 글자들의 나열일 뿐이라고 말리지만, 그 안에서 엿보는 새로운 세계에 한 번 감동한 자는 이전과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없다. 그 환희를 위해 아락스는 살아간다. 별다른 이유 없이도 말이다.

유라는 원래부터 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책을 많이 읽거나 글을 직접 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책이라는 물질 자체가 좋았다. 그래서 학생 시절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서점에 찾아가 아무 책이나 샀다. 구매한 책을 전부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글자와 글자가, 단어와 문장이 서로 얽혀 독자적인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게 늘 신기했다. 유라에게 책은 소비재라기보다 소장품에 가까웠다. 그래서 되도록 어떤 형태든 책이 주가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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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9-0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09-08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arover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starover 2022-09-10 0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양철북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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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이미지에 비례하는 현실에 대한 고발은 강렬하다. 오스카의 정체성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시점 등은 20세기의 독일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필연적인 부패를 드러낸다. 귀에 거슬리는 양철북 소리가 역사 속에서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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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 2017 신판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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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거지는 재밌고 유익한 일이다. 그래서 "설거지는 가사노동 중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로, 그것은 소비와 부패에 관련되는 일입니다. 설거지에는 아주 작은 비전이나 상상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명예 따위는 관심도 없다. 설거지를 하는 과정 속에는 널브러진 그릇과 식기를 씻는 자신만의 체계가 있고 미리 세운 계획대로 진행될 때, 더러운 것들이 씻겨나갈 때의 기쁨이 서려 있다. 나는 매사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안일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매번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설거지에 대해 고통의 상징 내지는 절망의 노동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는 없다. 일상은 문학의 소재가 될 뿐, 실현되는 공간이 아니다.


 2. 영어영문학과 전공 수업을 들으면, 반드시 접하게 되는 구절이 있다. "Carpe diem(Seize the day). Memento mori(Remember to die)." 호라티우스의 시구에서 가져온 이 라틴어 구절들은 르네상스 이후의 사조에 종종 등장하는 주제이다. 죽음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르기에 모든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동일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은 또 천차만별이다. 저자는 신과 죽음에 대해 알지 못했던 여섯 살의 시절부터 이어진 '메멘토 모리'를 한민족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이때는 왜 한국인의 특성을 그토록 강조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3. 한참 뒤에야 한국인의 특성을 강조한 이유를 이해했다. 가족주의의 온정과 효를 지선의 가치로 삼아온 한국인들은 가족이 중심이라는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하곤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구약의 인물들이나 자신의 어머니께 "여자여"라고 하는 예수님의 언행에 반발한다. 하지만 그것은 중립적인 호칭이며, 마리아를 한 사람의 어머니가 아니라 모두의 어머니로 만드는 선언이었다.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은 물론 소중하지만, 기독교인은 그 이상의 도전이 필요하다. 문득 자기 가족이 아니면 무섭도록 무관심하다는 <인터스텔라>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요지는 "너의 가족만 사랑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나의 원수나 약한 사람들까지 품을 수 있느냐는 그 물음에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4. 보들레르의 짧은 시구를 보며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생각했다. 용서는 가장 강력한 형태의 사랑이라고 했는데,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기 어려운 상태일까? 사실은 그렇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도로 용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수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존재로 기억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기에, 내가 그런 존재로 다른 이에게 인식되는 것이 여전히 두렵다. 그렇게 될 때 나 자신을 용서할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 언제나 우리를 향해 다가오지만, 매번 우리는 돌이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돌아온다. 기적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기적으로, 가슴이 굳은 자들에게는 사랑으로, 마음만 앞서는 자들에게는 말씀으로. 


 5. 그래서 나는 though보다는 therefore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이어령 씨는 오랫동안 글을 써 왔지만, "작가가 글을 쓰는 심정도 대개는 다 그럴 것입니다"라는 말로 타인을 쉽게 오해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절망을 기록하거나 저항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작업이 즐거워서, 그 안에 자유롭게 내 생각을 담아내고 싶어서였다. 나의 삶을 고백하기보다 더 큰 상상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다루는 내용이 꽤 달라졌지만, 글쓰는 과정 속에서 내 생각을 털어놓고 마음을 비우는 경험은 다른 어떤 활동보다 유익하고 소중하다. 현재의 목표는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이끌어주었던 소중한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소설에 기록하는 것이다. 어렵지만, 차근차근 해보려고 한다.


 6. 신기하게도 나 역시 '문턱'이라는 소재에 오래 전부터 매료되었다. 이어령 씨는 문지방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하지만 두 개념은 비슷한 듯 다르다. 저자의 표현은 전환점의 또 다른 말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에는 두 가지 선택지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문턱은, 이분법의 갈래가 아닌 또 다른 방안에 대한 은유다. 문턱에 서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거나, 왔던 길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있다. 이때 문턱에 머무르는 것은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논리가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답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문턱 위에 서 있다. 이를 테면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는 분명한 이원론에 대한 솔직한 생각이다. 나는 내가 천국에 가든 지옥에 가든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는 지금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고 싶다. 


 7. 지인의 선물로 받은 책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고 언젠가 읽어 보아야지, 라는 마음을 품었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선물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똑같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어령 씨의 시 쓰는 방식이 나에게 거부감을 준 탓일까? 그의 진솔한 고백이 설거지에 대한 편협한 생각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일까? 어쩔 수 없는 생각의 차이가 거리감을 줄이지 못한 이유일까? 뭐가 됐든 몇몇 생각이 맞닿은 것은 반갑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꺼내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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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0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arover 2022-05-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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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았어. 네가 본 산은 처량하게, 나목으로 남아 있었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며 꽃이 꺾였고 나무들이 베였어. 전쟁 중에는 군인들의 피와 포탄 자국을 품었고 격전지가 바뀌면서 나무 뿌리까지 캐먹으려는 굶주린 이들이 찾아왔지. 그때마다 그 산은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내어주었어. 비가 오면 쌓인 흙이 점점 벗겨지고 누구도 돌보지 않아 계절의 변화에 야위어 갔대. 하지만 그 산은 단지 그곳에 우뚝 서 있었어. 여전히 생명을 품은 채 말이야.

 

 젊은 남자들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을 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또 다른 방식의 전쟁을 치러야 했어. 어린 나이의 너는 그 모든 현장에 목격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참여했지. 오빠는 다리에 총을 맞고 돌아와 존경했던 모습을 상실했고 너는 올케와 함께 가족을 부양하는 처지에 놓였어. 북한군이 점령한 버려진 서울의 광경은 실로 암울했어. 너와 올케는 담을 넘어 빈 집에서 양식과 팔 것을 훔쳤고 공산당의 앞잡이에게 굽신거리며 버텼지. 네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이것이냐 혹은 저것이냐로 생사가 갈리는 순간이었으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구려 예술에 기꺼이 박수를 치고 불편한 사람들과 살을 맞대며 사는 것쯤이야 감당할 수 있었지.


 오빠가 죽고 나서 너희 가족이 겪었던 아픔을 기억해. 오빠가 무덤 틈으로 다시 기어나오는 악몽은 올케와 엄마의 갈등으로 현실이 되었어. 문득 내가 올케였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하곤 해.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 동안 그를 보살폈지만, 그이는 속절없이 세상을 등졌어. 생계를 위해 올케는 양놈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준 뒤, 그 역겨움을 이기지 못해 입을 게워내야 했지.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너의 눈에는 동정심이 없었어. 올케 역시 험난한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인물이라는 그 평정심이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되었어. 그래서 올케와 엄마가 그 문제로 싸운 뒤, 홀로 걸으며 네가 품었던 생각이 더욱 와 닿는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을까? 엄마는 건강하여 손자들을 잘 돌보고, 올케는 사나흘에 한 번씩 주머니마다 돈을 하나 가득 벌어 오고, 아이들은 살지고 기름이 흐르고, 나는 한 달에 사십만 원이나 되는 수입이 보장돼 있고, 집 안에는 구메구메 양키 물건이고, 오빠가 살아 있어도, 전쟁이 안 났어도 이보다 잘 살기를 바라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은 점점 추비하고 남루해지는 걸까. 도둑질해서 먹고 살 떄도 이렇지는 않았다. 온 식구가 양키한테 붙어먹고 사는 거야말로 남루와 비참의 극한이구나 싶었다. (p.279~280)


 그때 나는 네가 본 산이 무엇인지 알았어. 네가 왜 과거를 돌아보는 기록들 사이에서 선명하게 기억날 이름을 담지 않았는지도. 일제강점기, 해방, 6˙25 전쟁을 거치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았고, 몸과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 헤맸어. 하지만 자신들을 보호할 줄 알았던 산은 나목 투성이였고, 이미 줄 것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지. 도시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미군에게 빌어먹으며 불법을 일삼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다시 빌어먹는 양아치들과 부랑자들로 가득 차 있었어. 그속에서도 악착같이 희망을 보려 하는 너의 집요하게 객관적인 시선이 기억 난다. 백목련, 교하, 박수근, 지섭, 그이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병든 사람들 틈에서 너는 그 시들지 않는 향기를 담아냈어.


 왜 너의 고백은 이토록 생생할까? 누구에게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들이 있지. 변한 시대의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문득, 사라진 사람들의 감각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를 테면, 숙모가 쑨 시뻘겋고 걸쭉한 팥죽을 아귀아귀 먹기 위해 달라붙은 식구들의 체취나 출근할 때마다 살색 스펀지를 달고 캐넌 중사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는 티나 김의 목소리, 그런 것들. 세상을 잘 몰랐던 시절에 체험했던 과격한 기억들이 그동안 얼마나 깊이 너의 영혼에 새겨져 있었을까? 나는 글의 힘을 믿는다. 어떤 글을 통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치유되는 존재는 바로 작가 자신이야. 이제 네가 본 산의 모습을 모두 담아내어 너를 괴롭혔던 기억들을 털어놓으렴. 세상의 파도에 마모되고 싶지 않았던, 최소한의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너를 위해서. 


 -비로소 산을 찾은, 누구보다 험난했지만 아름다웠던 20대를 보낸 이를 기억하며.

이렇게 그이는 멋이라고는 없는 남자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지섭이와 그이를 비교하다가 뭣 하러 비교를 하는지 자신을 의심스러워하곤 했다. 아무리 비교해 봤댔자, 그이가 지섭이보다 나은 점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나은 점이라기보다는 명확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그이하고 있을 때는 내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전혀 부담이 안 된다는 거였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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