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러시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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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인 히가시노 게이고

수많은 책을 출간했지만 소재 역시 다양해서 일반 범죄물에서부터 힐링 소설 그리고 과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과학지식을 토대로 한 소재에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까지 참으로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작품을 출간했다.

이 작품 화이트 러시는 설산 시리즈라는 명칭이 따로 붙은 작품으로 기존에 나왔던 작품을 재출간한 작품이지만 책에서 다뤄지는 생화학 무기는 최근 몇 년 새 전 세계에 고통을 줬던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겹쳐서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작가의 작품답게 가독성 있고 스피디한 전개에 군데 군데에서 앞으로의 전개를 짐작 가능하게 하는 적당한 밑밥까지... 여러 갈래로 꼬이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전개는 누가 읽어도 오롯이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스키장의 출입 금지 구역에서 나무 밑에다 뭔가를 파묻고는 주변 사진을 찍어대는 의문의 남자

그리고 누군가에게 협박이 담긴 메일을 보낸다.

사실 그가 숨긴 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탄저균이었고 자신이 근무하던 전 직장에서 훔쳐 와 그걸 빌미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려던 범인은 계획과 달리 협박을 하기도 전에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게 되면서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 탄저균이 숨겨져 있는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빠른 시간 안에 회수를 해야 할 처지가 된 연구소는 다급해졌다.

도대체 그게 어디인지 알 수 없고 단지 위치를 알 수 있는 수신기가 테디베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거기다 범인이 숨긴 탄저균은 온도차에 민감해 자칫하면 한마을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을 만큼 치명적인 무기나 다름없지만 협박 받은 연구소의 소장은 경찰에 알리기를 거부하고 부하직원에게 은밀히 그 장소를 찾아 물건을 회수해올 것을 명령하면서 온갖 소동이 벌어지게 된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자극하는 생화학 무기라는 존재를 탄저균이라 구체화해서 이를 이용해 돈을 뜯으려는 범인과의 한판 승부를 펼치는 화이트 러시는 다루는 소재의 특성상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지만 작가 특유의 힘 빼기로 지나침이 없으면서도 생화학 무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위험성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각인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눈으로 덮인 겨울산을 스피드 있게 즐길 수 있는 스키와 스노보드의 매력을 군데군데 배치해놓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스키장을 살리기 위한 지방 사람들의 노력과 애환까지 섞어 놓아서 이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재미를 찾을 수 있는데 특유의 미스터리까지 넣어서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솔직히 미스터리적인 요소만 본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달랑 눈 덮인 산과 나무만으로 수많은 스키장 중 한 곳을 특정 짓는 과정에서부터 모두가 합심해 그곳을 찾고 문제의 장소를 찾아가는 과정이 더해져 훨씬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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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블루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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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바로 오승호 고 가쓰히로가 아닐까 싶다.

남들은 일생에 한번 이름을 올리기도 힘들다는 나오키상 후보에 세 번이나 이름을 올렸고 장르문학 관련상을 거의 대부분 수상을 했거나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만큼 작가의 신작에 대한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가장 많이 사랑받고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출간된 작품 면면을 보면 어느 하나 겹치는 소재가 없을 만큼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식으로 나오는 책마다 색다른 재미를 주는 건 물론이고 밑바탕에 깔린 고발 의식 또한 날카롭다.

이 작품 라이언 블루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봐선 인정이 넘치고 이웃 간의 정이 넘치는 걸로 보이는 작은 도시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구태의연하고 부정이 판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바로잡아야 할 공무원까지 합세해서 서로의 부정에 눈을 감거나 심지어는 동조된 모습을 보인다.

결국 자신들끼리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팽배해서 더 이상의 발전도 없는걸 떠나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변화의 노력을 보이면 찍어누르기 바쁘다.

파출소 순경인 사와노보리 요지는 겉으로는 아버지의 병환을 이유로 오래전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런 그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히려 같은 파출소 내의 순경들조차 그를 꺼리는 기색이 확연하다.

사실 이곳 시시오이초의 파출소에는 총기를 소지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순경 나가하라 사건으로 한때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던 터라 그와 같은 교장 출신인 요지의 출현이 반가울 리 없다.

게다가 요지는 대놓고 나가하라 사건 당시를 묻고 다녀 동료들로부터 경계를 사던 중 마을의 골칫거리 영감이 집에서 난 화재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이 겨우 마무리된 후 이번에는 마을의 폭력조직의 두목이 총으로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조용하던 마을에 위기감이 팽팽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은 두목을 살해하는 데 쓰인 총이 바로 사라진 나가하라의 총기였기 때문

이제 모두가 외면하며 그저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했던 나가하라 사건마저 재수사가 불가피해졌을 뿐 아니라 거대한 이권이 달린 문제에 반으로 나눠졌던 마을 주민들 사이의 이해관계마저 도마에 오르게 된다.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의 이면에 개발을 둘러싼 치열한 이권다툼이 숨어있고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고 나눠져 버린 채 막대한 이익을 위해 서로의 약점을 찌르기 바쁜 사람들

그런 시시오이초를 소수의 유지들이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야합하고 눈감아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왔고 누구도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수도 하지도 않았다.

이런 폐쇄된 마을을 유지는 단숨에 뒤흔들었던 것... 이제 판이 바뀔 시점이다.

오래전 단 한 번의 패배로 모든 의욕을 잃고 삶에 별 기대가 없었던 유지에게 경찰로서의 길을 알려주었던 존재가 바로 나가하라였고 그런 나가하라의 실종을 모른척할 수 없었던 유지는 혼자서 그날의 사건을 되짚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나가하라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 결과는 유지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결국 나가하라의 선택을 이해하고 깨달은 순간...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게 된 유지는 가족의 소중함도 그리고 경찰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임무 역시 받아들이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도 그렇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아웃사이더로서 관찰자적 시선을 가진 유지의 모습에서 작가의 모습을 떠올린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 특유의 느낌... 즉 어디로 튈지 전혀 예측하기 쉽지 않은 전개와 방향은 단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떼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출간이 예정된 작가의 또다른 작품 폭탄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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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어둠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 / 모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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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재출간된 백광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렌조 미키히코

이번엔 소설집 열린 어둠으로 나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겨줬다.

직설적이거나 사건의 묘사에 치우치기보다 전체적으로 마치 아름다운 풍경화 속의 이질적인 한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전체적인 느낌을 비틀어버리는 데 탁월함을 보여주는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도대체가 사건사고가 있을 것 같지 않은 풍경 속에 살짝 보이는 틈 속에서 비치는 어둠은 전체가 어두운 것보다 밝음 속에 가려져 그 어둠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아홉 편의 단편 중 첫 번째인 두 개의 얼굴은 처음부터 헷갈리게 했다.

화가인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는 낯선 호텔에서 아내가 살해되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처 입은 피해자가 자신의 아내임을 인정했지만 사실은 그녀가 자신의 아내일 수 없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역시 남편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내는 자신이 이미 집에서 살해한 후 마당에 묻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내와 똑닮은 호텔방의 시신은 누구란 말인가?

목이 졸린 채 발견된 반신불수의 소녀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화석의 열쇠는 소녀가 발견된 곳이 밀실이라는 점도 그렇고 그 열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었다는 점에서 누가 범인인 지 금방 알 수 있을 듯하지만 작가는 의외의 허를 찌르고 들어온다.

아홉 편 중 가장 독특했던 건 밤이여, 쥐들을 위해였다.

어린 시절 아무와도 말하지 않았던 소년이 쥐에게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유일한 벗이었던 쥐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도 그렇고...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자신의 아내를 위한 복수극이 기괴하지만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려져있다. 거기에다 나름의 트릭을 준비한 것도 그렇고...

또 다른 복수극인 베이 시티에서 죽다는 자신을 배신한 여자와 부하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이야기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가 상당히 쓸쓸함을 느끼게 했다.

피의 복수라고 하면 연상되는 후련함이나 속 시원함 따윈 없고 그저 인생의 막다른 곳에 몰려 그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린 여자의 모습에서 짙은 허무감이 느껴졌다.

평생을 자신이 만든 캐릭터의 모습으로 산다고 생각했던 배우의 이야기를 다룬 대역에서 밝혀진 진실은 그로 하여금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에서 어떤 부분이 진짜고 어떤 부분이 만들어졌는지 헷갈리게 한다.

이야기 전체에서 대체로 이런 느낌이 강하다.

살인을 함에도 강렬한 원망이나 복수심 혹은 분노가 느껴지기보다 뭔가 한쪽 귀퉁이가 허물어진 느낌이랄지... 그래서 반전이 나오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 왠지 모를 허무함이 느껴진다.

엄청난 트릭이 있거나 사건 자체를 기괴하게 비틀어 놓지 않았음에도 반전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온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어있는 인간의 욕망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작가의 필력은 미스터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처럼 보인다.

잘 짜인 스토리, 복선마다 방점을 찍어놓은 친절함... 그리고 마지막 한 줄에서 전제의 이야기를 뒤틀어놓을 수 있는 능력

역시 렌조 미치히코 다운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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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고미네 하지메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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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는 순수했지만 중간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맞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 결과만 보고서 그 사람을 단죄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했어도 결과가 참혹한 비극이라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 책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에 나오는 고등학생들의 처지가 그렇다.

여고생이 낙태수술을 받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그 부모는 외동딸을 잃은 슬픔에 누군가 원망할 대상을 찾기 시작했고 죽은 아이를 임신시킨 채 숨어 있는 남자를 찾고자 노력하지만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짐작되는 또래의 친구들은 굳게 입을 닫는다.

또한 죽은 아이 역시 아이 아빠에 대해 절대로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는 점에서 강제에 의한 성관계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마지막 순간에 남긴 아르키메데스라는 단어가 유일한 단서일 뿐...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같이 어울렸던 무리 중 한 사람의 도시락을 대신 먹은 남학생이 독살당할 뻔한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학교에서 벌어진 독살 미수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낙태수술을 받다 죽은 여학생의 사건을 알게 되면서 두 사건 사이에 뭔가 연결점이 있음을 발견하지만 뚜렷한 단서를 잡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던 중 두 사건 모두에서 한 학생이 공통적으로 엮여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 소년의 집을 탐문하던 중 이번에는 또 다른 살인사건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야규라는 학생을 중심으로 이 모든 사건이 연결되어 있지만 사건 자체로만 보면 서로 전혀 별개의 사건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집에서 발견된 남자의 시신을 둘러싼 사건의 전말을 수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용의자인 야규에게는 좀처럼 깰 수 없는 알리바이가 존재하지만 누가 봐도 엄마 혼자서 사건을 저질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렇게 혐의는 분명하지만 그걸 입증할 수 있는 증거의 부재는 경찰 내부에도 혼란을 가져오고 용의자인 엄마조차 단독범행을 주장하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온 단서로 사건의 수수께끼는 풀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사건은 부모의 원통함은 이해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건성은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론적으로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거기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누군가에겐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점도 그렇고 그 가해자를 단죄하기 위한 행동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해 이 모든 사건들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그걸 실행에 옮긴 사람이 아직 어리다고 여긴 고등학생이었다는 점이 의외이면서 어쩌면 그 나이이기에 가능한 행동이 아니었나 납득이 갔다.

그러고 보면 표지에 쓰인 글 순수와 당위로 의도 없이 만들어진 미스터리라는 문구는 이 책의 의도를 제대로 꿰뚫고 있는 말임을 느낄 수 있다.

배경이 1970년대 즉 고도성장으로 주변에 돈은 넘치고 경제는 성장하지만 그 성장에 못 따라가는 사회 분위기와 커져가는 빈부격차 그리고 철학의 부재로 인한 병폐는 약한 곳에서 터져 나오기 십상이고 그런 현실과 이상의 부조리를 참을 수 없었던 순수함이 빚어낸 비극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술술 읽히는 것에 비해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절대로 가볍지 않아서 인상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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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요코제키 다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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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인연으로 여러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친해지기도 한다.

만약 그 사람과의 인연이 좋은 쪽이면 좋겠지만 고의든 아니든 안 좋은 쪽으로 연을 맺게 되면 그걸 우리는 악연이라고 하고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연으로 기억하게 된다.

게다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은 자신이기에 자신에게 어떠한 해를 입힌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기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잊어버릴 수 있는 사소한 마찰도 당한 내 입장에선 억울하거나 그걸로 인해 2차적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된다면 그 기억은 오래갈 수밖에 없고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이 책 악연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있었던 일이 어느 날 도미노가 되어 여러 사람의 일상이 무너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돌은 아이돌이지만 지상파방송에 출연하거나 정규 앨범을 내지 않지만 소극장 같은 곳에서 꾸준히 노래하며 아이돌 활동을 하는 걸 지하 아이돌이라 칭한다.

그리고 그런 지하 아이돌 멤버 중 한 사람이 공원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꾸준히 누군가에 의한 스토킹으로 피해를 보고 있었고 그 스토커를 피해 낯선 곳으로 이사 온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살해당했다는 게 밝혀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그 스토커가 어떻게 새로 이사한 곳까지 알 수 있었을까?

시청 공무원인 유미는 어느 날 자신이 당번인 점심시간에 한 통의 찜찜한 전화를 받는다.

그 사람은 이런저런 유도신문을 하면서 한 사람의 주소를 집요하게 물었었고 그가 알고 싶어 했던 사람이 바로 살해된 히토미였다.

유미는 주소를 알려 주진 않았지만 작은 틈을 보였던 사실에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불안에 시달리다 결국 그녀가 그날 그 전화를 받은 당사자였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모든 사람들의 질타가 쏟아진다.

마치 그녀 역시 범인과 공범인 것처럼...

3년이 지난 지금 그 모든 것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있던 그녀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진다.

그날 그녀가 무심코 받았던 그 전화...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그 전화가 과연 우연이었을까?

히토미의 팬이었던 남자 호시야는 유미가 일하는 곳으로 당시의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와 자신과 같이 히토미의 팬이었던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그 사건을 새롭게 검증하자고 제안하면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게다가 그때 당시 검거되었던 범인은 집안에서 발견된 범죄 증거물에도 불구하고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 전화가 만약 처음부터 누군가가 유미를 노리고 건 전화였다면... 이 사건은 어쩌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를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이제는 익숙한 스토킹 범죄와 개인정보 유출에 관련된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해놓고 사실은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있었던 악연은 일본 소설답게 가독성 있게 전개되고 중간에 늘어짐이 없이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게다가 모두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 전제를 약간만 비틀어도 사건 전체의 양상이 달라지는 과정을 보는 것 역시 흥미로워서 과연 이 사건의 끝에는 뭐가 기다릴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했다.

원죄가 죄의 인과성이라는 데 유미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억울한 부분이 많지만 피해 당사자에게는 그 사소한 일이 모든 걸 바꿔놓은 원인이었기에 십분 이해가 가기도 하나 결과론적으로는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몰입감 좋고 가독성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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