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사냥 나비사냥 1
박영광 지음 / 매드픽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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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납치사건을 맡은 형사 하태석은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고 살인혐의로 체포하지만 아무런 물증도 없고 사체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과잉 수사라는 비난만 받은 끝에 고향인 전남 영광경찰서로 좌천됩니다. 여동생 미숙과 친구 근식 외에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상황에서 하태석은 영광경찰서 동료와 선후배들에게도 요주의 혹은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강력팀이긴 해도 단순 업무에 발목이 잡혀있던 하태석은 미심쩍은 실종사건과 교통사고를 들여다보던 중 그만의 특유의 을 발동시킵니다. 납치에 이은 연쇄살인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그는 수상한 탑차 운전자를 체포하지만 이번에도 운은 그의 편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벌인 치명적인 실수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하태석은 직감만 믿는 어리석은 폭주형사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2013나비사냥이 출간됐을 무렵 현직 형사가 쓴 범죄소설이란 카피 때문에 흥미를 가졌지만 구토를 유발하는 잔혹함이 전부라는 몇몇 독자의 서평을 읽곤 관심목록에서 제외시켰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선지 4년 후인 2017년 후속작 시그니처가 나왔을 때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는데, 2022년 들어 세 번째 작품인 소녀가 사라지던 밤까지 출간되고 여기저기서 호평을 발견한 덕분에 더는 이 시리즈를 외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90년대 지존파 사건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끔찍한 연쇄살인마를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목격하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나비사냥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는 바로 그 지존파를 차용하여 만든 캐릭터로 납치, 고문, 폭행, 살해를 태연히 자행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인용하면 범인은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사회의 냉대와 무시로 인해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그리고 멍청한 신을 대신해 배부른 돼지들을 모조리 살해하려는 야망을 가진 사이코패스입니다. 외진 곳에 살인과 고문을 위한 아지트를 마련하고, 특별한 기준도 없이 닥치는 대로 피해자를 납치하는가 하면, 미래에 저지를 살인을 위한 예행연습으로 피해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살해합니다. 그리고 그 인육을 먹는 엽기적인 행태까지 보입니다.

 

이런 사이코패스를 상대하는 주인공 하태석은 왠지 영화 살인의 추억에 어울릴 것 같은 아날로그 스타일의 형사입니다. 사소한 단서에서 출발하여 추리를 통해 범인을 특정하긴 하지만 결국 그가 가장 의지하는 것은 직감 또는 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물증도, 피해자의 사체도 없는 상태에서 그는 자신이 찍은 범인을 오로지 강압적인 방법으로 다룰 뿐입니다. 외모 역시 조폭인지 형사인지 구분할 수 없는데다 한번 꽂힌 사건에는 물불도, 낮밤도 가리지 않고 전력을 다 하는 그는 과학수사가 발전한 21세기와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입니다.

 

서장이며 과장이며 처음 보는 선후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 파트너였지만 지금은 팀장이 돼있는 인물조차 자신을 꺼리는 상황에서 하태석은 또다시 물증도, 사체도 없는 사건을 연쇄납치살인이 확실하다고 여기며 단독수사를 감행합니다. 경찰 내부에서 갖은 방법으로 압박을 가해오지만 여동생마저 실종되자 하태석은 눈이 뒤집힌 채 폭주하기 시작하고, 끝내 도저히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희대의 사이코패스와 마주하게 됩니다.

 

잔혹한 묘사가 거북한 독자라면 아마 범인의 첫 시퀀스를 절반도 채 마무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구토를 유발하는 잔혹함이 전부라는 서평이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형 형사 캐릭터인 하태석의 매력과 범죄스릴러로서의 이 작품의 미덕까지 부정한 건 좀 지나쳤다는 생각입니다. 수많은 영화를 통해 익숙해지긴 했지만 현직 형사가 묘사한 한국 경찰의 현실과 민낯도 생생했고, 긴장감 가득한 추격전과 액션 장면도 기대 이상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직감과 에 의지한 아날로그 방식의 수사라든가 경찰 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하태석의 처지에 대한 묘사가 다소 지루하고 느슨했던 점은 아쉬웠지만, 후속작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기대감을 자아낸 걸 보면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아쉬움으로 보입니다. 모르긴 해도 조만간 후속작인 시그니처가 제 장바구니에 담기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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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미스터리 컬렉션
홍정기 지음 / 북오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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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캐리’(스티븐 킹), ‘검은 집’(기시 유스케), ‘노조키메’(미쓰다 신조) 등 오싹함과 짜릿함을 선사하는 장편도 좋아하지만, 때론 짧고 강렬한 단편이야말로 머리를 쭈뼛하게 만드는 호러물에 제격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호러의 농도가 옅어질 수밖에 없고 이것저것 사족들이 따라붙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호러의 정수만 담은 임팩트 있는 몇 십 페이지짜리 단편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마 저만의 경우는 아닐 것입니다.

 

8편의 단편이 수록된 홍정기의 호러 미스터리 컬렉션은 다양한 코드들이 잘 버무려진 흥미로운 호러물입니다. 희귀하고 오래된 책에 깃든 악의가 일으킨 피의 참극(‘쓰쿠모가미’),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중독시킨 신비한 약이 빚어낸 지옥도(‘Low Spirit’), 슬럼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미스터리 작가가 겪게 된 영원한 공포(‘슬럼프’), 아들과 함께 조난된 남자에게 닥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조난’), 아이를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일으킨 기괴한 상황(‘떠도는 아이’), 남자의 몸을 숙주로 삼은 정체불명의 생명체 이야기(‘번식’) 등 한여름에 잘 어울리는 다채로운 소재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슬럼프조난은 단편영화나 단막극에 잘 어울리는 영상미까지 갖추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고, SF 코드를 좀더 가미한다면 이야기의 깊이와 폭이 더 확장될 것으로 기대되는 ‘Low Spirit’번식도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11페이지에 불과하지만 단번의 반전으로 이야기를 뒤집은 미안해역시 왜 짧은 호러물이 더 인상적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입니다.

 

소재 또는 호러 그 자체에 매몰돼 정작 이야기엔 공을 덜 들인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호러 미스터리 컬렉션은 수록작 대부분이 두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트릭이나 반전의 묘미도 맛볼 수 있어서 한국 호러물 중에는 꽤 좋은 기억으로 남을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다만, 다소 가벼워 보인 문장과 서사가 아쉬웠는데, 전작인 전래 미스터리에서도 비슷한 점을 느낀 걸 보면 작가 고유의 스타일인 듯 싶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장르물에서 가장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매년 여름 홍정기의 호러물을 기다리게 만들려면 문학성까진 아니어도 좀더 묵직한 문장과 표현으로 무장하기를 조심스레 바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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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청년, 호러 안전가옥 FIC-PICK 3
이시우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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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나 미쓰다 신조의 극강의 호러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영상 호러물은 거의 못 보는 편인데, 비주얼에 대한 두려움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활자로 된 호러물은 초자연적인 소재든 현실에 기반을 둔 소재든 가리지 않고 찾아 읽는 편입니다. 이시우를 비롯하여 여섯 명의 작가가 힘을 모은 도시, 청년, 호러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무서움 자체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를 다룬 것 같아서 더 관심이 간 작품입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거나 모르는 척 외면하는 세상의 아래쪽이야기를 서울의 지하관로 정비 일을 했던 한 비정규직 청년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이시우의 아래쪽’, 꿈에 그리던 복층집에서의 독립을 손에 넣었지만 얼마 못가 집이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25살 사회초년생의 이야기를 다룬 김동식의 복층 집’,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낡은 고시원에 들어간 공시생이 사람 몸 크기의 얼룩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자꾸만 물건들이 사라지는 기이한 경험을 거듭하던 끝에 끝내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를 다룬 허정의 분실’, 정당방위로 살인을 저질렀다며 경찰서에 자진출두한 한 여성의 끔찍한 이야기를 그린 전건우의 ‘Not Alone’, 유흥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최악의 월세방을 벗어나려 하지만 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이 없는 집주인과 흉흉한 동네 분위기 때문에 분노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조예은의 보증금 돌려받기’,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액정화면을 들이받고 참혹한 죽음에 이르는 기이한 현상을 그린 남유하의 화면 공포증이 수록돼있습니다.

 

제목대로 수록작 모두 도시에 사는 청년들이 겪는 공포심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개입된 경우도 두어 편 있고, 문명사회의 종언을 예고하는 듯한 근미래 스타일의 호러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말미에 실린 프로듀서의 말대로 동떨어져 있는 공포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공포, 그래서 도시를 사는 우리가 깊이 공감할 만한 공포소설의 경향이 훨씬 더 두드러집니다. 특히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청년들이 공포심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흔히 말하는 호러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맛보게 되는데, 개인적으론 요즘 언론에서 자주 보도하는 영끌했다가 패닉에 빠진 MZ세대기사가 종종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들의 패닉은 초자연적 호러를 능가할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인, 즉 세상의 끝이 코앞에 닥친 듯한 공포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대부분이 비정규직, 공시생, 사회초년생이고, 그들의 주거지는 열악한 원룸이거나 낡아빠진 고시원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소 편향된 설정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주인공들보다 처지가 조금 나을지는 몰라도 집과 직장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공포의 무게는 이 시대의 도시 청년들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기댈 곳 없고, 의지할 대상 없이 오로지 혼자서만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담아내려 했다.”는 전건우의 후기에 무척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여름밤을 서늘하게 만들어줄 짜릿한 호러를 기대한 독자에겐 (한두 편을 제외하곤)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에 이입하다 보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호러와는 차별되는, 무척이나 실감 나는 공포, 또 피부에 들러붙는 듯한 공포를 맛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또래 독자들에겐 더할 수 없는 동지애를, 기성세대들에겐 청년들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만드는 특별한 호러물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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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테일 안전가옥 FIC-PICK 2
서미애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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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의 전래동화와 고전소설을 모티브로 삼은 다섯 편의 장르물이 수록된 모던 테일은 그동안 많이 봐온 잔혹동화, 즉 우리가 모르는 동화의 뒷이야기 혹은 그 동화를 이리저리 엽기적으로 비틀어 만들어낸 2차 창작물, 아니면 사람들에 의해 순하게 가공되기 전엔 실은 끔찍하고 잔혹했던 오리지널 판본을 독자 앞에 내놓았던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그 모티브 자체를 현대사회의 문제와 결합시킨 독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모티브로 삼은 서미애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법 제도의 허술함 속에서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가정폭력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삼은 민지형의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한 반발심에서 기획됐다는 작가의 고백대로 역 신데렐라 판타지’, 즉 상류계급의 여성에게 간택되기를 욕망하는 추잡한 남성들을 가차없이 공격합니다.

숙영낭자전에서 출발한 전혜진의 수경-나선 미궁 속의 여자들은 몽환적인 판타지 서사가 눈길을 끈 작품인데, 원작 자체가 막장드라마에 가까운 숙영낭자전을 현대에 부활시켜 독특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다른 원작들에 비해 다소 낯선 프랑스 동화 당나귀 가죽을 원전으로 한 박서련의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는 옷의 의미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이자 장년 남성들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힌 작품입니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도 잠깐 언급되는데 당나귀 가죽못잖게 작가의 의도를 잘 드러낸 원전이란 생각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모티브로 2039년의 정치 해프닝을 그린 심너울의 나의 퍼리 대통령님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누구나 정치를 이야기할 때 편협해질 수밖에 없고, 인지적 편향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작품입니다.

 

전래동화 혹은 고전소설을 현대사회의 문제와 접목시킨 점에서 예전의 잔혹동화들과는 확실히 결이 다른 작품집입니다. 가정폭력, 신데렐라 판타지, 젠더 이슈, 연쇄살인 등 첨예하거나 비극적인 주제들이 전래동화와 고전소설의 원형과 믹스되면서 좀더 극적이고 현실감 있게 묘사됐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론 서사 자체가 다소 단순하긴 해도 딱 떨어지는 장르물의 미덕을 갖춘 서미애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와 민지형의 신데렐라 프로젝트가 편하고 재미있게 읽혔고, 박서련의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는 연쇄살인 스릴러를 예술적으로(?) 그려낸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어떤 형태가 됐든 동화를 차용한 장르물은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모던 테일은 그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것 자체가 돋보였고, 혹시라도 시즌 2’가 출간된다면 꼭 찾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다만,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어떤 작품은 너무 단조롭거나 쉬웠고, 어떤 작품은 너무 애매모호해서 원전과의 연관성조차 떠올리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만일 시즌 2’가 기획된다면 원전의 미덕과 미스터리&스릴러 서사에 충실한, 말하자면 과정과 결과가 좀더 선명한 이야기들이 수록되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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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 미스터리 - 어른들을 위한 엽기적이고 잔혹한 전래 미스터리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홍정기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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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을 담은 동화들이 실은 그 이면에 잔혹하고 엽기적인 진짜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는 건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발상입니다. 기류 마사오의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시리즈나 아오야기 아이토의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같은 잔혹동화에 끌렸던 건 바로 그런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처음으로 우리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어른들을 위한 엽기적이고 잔혹한 전래 미스터리를 그려낸 홍정기의 전래 미스터리역시 같은 이유 때문에 찾아 읽게 된 작품입니다.

 

콩쥐와 팥쥐’, ‘선녀와 나무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여우 누이’, 그리고 혹부리 영감등 대표적인 전래동화를 기반으로 말 그대로 피와 살이 난무하는 끔찍한 이야기 다섯 편이 수록돼있습니다. 동화 자체에 충실한 경우도 있지만 다른 동화와 슬쩍 믹스된 경우도 있고, 동화에서 출발했지만 거의 새로운 이야기나 다름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콩쥐와 팥쥐를 원전으로 한 콩쥐 살인사건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대신 콩쥐의 잘린 발목이 등장하는 후더닛 미스터리입니다. 콩쥐의 발목을 자른 범인을 찾기 위해 원님 앞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대결이 흥미진진합니다.

나무꾼의 대위기는 우리가 잘 아는 선녀와 나무꾼에다 금도끼 은도끼가 믹스된 작품인데, 불륜(?), 살인, 원죄(冤罪) 등 동화와는 거리가 먼 코드들이 잘 버무려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게 읽은 살인귀 VS 식인귀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원전이지만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텔레파시가 통하는 남매, 가족까지 잡아먹는 식인귀, 타고난 살인마가 등장하는 엽기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우 누이를 원전으로 한 연쇄 도살마는 집 전체가 밀실인 상태에서 벌어지는 흉흉한 살육극을 그립니다. 짐승과 사람을 무차별로, 그것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살해하는 범인의 정체와 동기가 마지막에 밝혀집니다.

스위치는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과 연관 있긴 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혹부리 영감의 거짓말에 격분한 도깨비와 파란 눈을 가진 백정의 아들이 이끌어갑니다. 도깨비와 거래를 한 이후 70년 가까이 사이코로 살아온 백정의 아들이 1인칭 화자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예상보다 독한 엽기성과 잔혹함이 눈길을 끌었고, 원전에 매몰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상상력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다만, 살짝 가볍게 느껴진 서사와 (분량 때문에 불가피해 보인) 쉽거나 허술하거나 갑작스러운 미스터리가 아쉬움으로 남은 것도 사실입니다. 스릴러의 미덕이 잘 살아있는 살인귀 VS 식인귀가 가장 흥미롭게 읽힌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나무꾼의 대위기는 미스터리 자체보다 설정의 재미가 압권이어서 읽는 동안 몇 번이고 저절로 웃음이 터진 작품인데,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입니다.

 

전래동화라는 원전의 특성 상 10명의 작가가 달려들면 10개의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에서도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좀더 창작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화 속 인물이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실존인물처럼 여겨지는 주인공들이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의 틀을 넘어 잔혹하고 엽기적인 이야기 속에서 다양하게 변신하는 모습은 매번 색다른 매력을 전해줄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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