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맨을 찾아서
리처드 치즈마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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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미국 메릴랜드주의 소도시 에지우드에서 참혹한 연쇄살인이 벌어집니다. 피해자는 모두 긴 머리의 10대 소녀들이었고, 참혹한 폭행을 당한 후 교살된 채 발견됩니다. 엽기적인 범행 때문에 언론에서는 범인에게 부기맨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대대적인 수사가 소도시 에지우드를 휩쓸지만 범인은 작은 단서조차 남기지 않은 채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범행을 이어갑니다. 범죄미스터리와 공포물 소설가의 길을 꿈꾸는 22살의 청년 리처드 치즈마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잠시 돌아온 고향에서 마주한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물론 또래 기자인 칼리 올브라이트와 함께 부기맨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실화와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 파격 범죄 스릴러라는 띠지의 문구대로 부기맨을 찾아서는 범죄 실화를 추적하는 르포와 허구의 세계를 그리는 소설이 절묘하게 믹스된 작품입니다. 1988년 당시 22살이던 작가 리처드 치즈마가 자신의 고향 에지우드에서 직접 겪은 연쇄살인사건을 1인칭 시점의 서술과 함께 수십 장의 사진(피해자, 사건현장, 담당수사관 등)까지 동원하여 디테일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교과서적인 르포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소설로서의 미덕도 제대로 갖춘 특이한 작품이란 뜻입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실화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이 독특한 형식의 소설을 십분 즐기고 싶다면 부디 첫 페이지부터 순차적으로 따라가 보라.”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일단은 화자인 22살 리처드 치즈마의 부기맨 추적기를 한 페이지씩 음미하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DNA 분석이 정교하지도, 신속하지도 않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범인의 행적 때문에 경찰은 미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라일 하퍼라는 훌륭한 수사관이 있긴 하지만 부기맨을 추적하는 역할은 주인공 치즈마와 기자 칼 리가 맡습니다. 치즈마가 장르물 소설가의 촉을 동원해 연쇄살인의 진상을 밝히려 한다면, 칼리는 정보원과 취재를 통해 경찰이 놓친 부분을 포착하려는 맹렬 기자로서 활약합니다. 또한 두 사람은 부기맨으로 보이는 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위협을 당하기도 하는데, 안 그래도 범인은 에지우드 사람이 분명하다.”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난 터라 그 위협은 두 사람에 대한 실질적인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집니다.

 

읽으면서 가장 놀란 점은 챕터 사이사이에 배치된 다양한 종류의 사진들입니다. 살해된 10대 소녀들의 생전 사진, 사건이 벌어진 현장, 수사 중인 경찰, 취재 중인 칼리 등 다양한 사진들이 게재돼있는데, 조금 전까지 활자로 접한 인물과 풍경이 생생한 사진으로 눈앞에 나타나자 부기맨의 공포는 더 이상 소설 속 허구가 아닌 피부에 와 닿는 실체로 전화됩니다. 동시에 다시 한 번 과연 어디까지가 실화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르포와 소설의 미덕이 절묘하게 믹스된 부기맨을 찾아서의 진면목은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범죄미스터리로서도 매력적이지만 형식이 어떻게 내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 무척 색다른 간식 같은 쾌감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독자에 따라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듯한 얼얼함도 즐길 수 있으니 작가의 말을 절대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족이자 쓴 소리를 한마디만 보태자면, 어쩌다 한 번씩 눈에 거슬렸던 의아한 번역 때문에 아쉬움을 느끼곤 했는데, 오역은 아니지만 매끄럽지 않거나 능동태와 수동태가 뒤바뀐 문장들은 편집과정 상의 옥의 티로 보였습니다. ‘부기맨을 찾아서가 좋은 성과를 거둬 증쇄를 하게 된다면 꼭 수정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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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킴 스톤 시리즈 3
앤절라 마슨즈 지음, 강동혁 옮김 / 품스토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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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인 9세 소녀 두 명이 문화센터에서 납치당합니다. 13개월 전 벌어졌던 사건과 판박이라 경찰은 당황합니다. 당시 한 명의 소녀만 살아 돌아왔고 다른 소녀는 생사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미제사건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건을 조사 중이던 킴 스톤은 피해 가족 중 한 명이 자신을 담당수사관으로 지명했다는 소식에 크게 놀랍니다. 더구나 요청한 사람이 어릴 적 위탁가정에서 함께 지냈으며 극도로 혐오했던 캐런이란 사실에 킴은 당황합니다. 결국 팀원들과 함께 수사에 나선 킴은 이 사건이 모방범죄가 아니라 13개월 전 사건의 범인들의 소행이라고 확신합니다. 더 높은 몸값을 제시하는 가족의 아이만 살려주겠다는 범인의 문자 때문입니다. 가족 간에도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두 소녀의 가족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이른바 걸 크러쉬 형사인 킴 스톤의 캐릭터는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앞서 두 작품의 서평에도 썼지만 제로에 가까운 사교술, 휘발된 감정과 공감능력, 상대는 안중에도 없는 거친 태도, 조직의 논리나 정치적 맥락 따위는 무시하고 오롯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만 걷는 타고난 반골인 킴의 거침없는 행보는 사이다 이상의 짜릿한 쾌감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띠 동갑 연상인 남성을 부하로 둘 정도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게 만든 그녀만의 뛰어난 수사능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에 그런 폭주가 가능했던 것이고, 비록 시기와 질투가 뒤섞이긴 했어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킴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유능한 경찰이 됐습니다.

 

그런 킴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있는데, 어린 시절 비극적으로 가족이 해체된 이후 위탁가정을 몇 군데나 전전하며 얻은 끔찍한 상처들이 그것입니다. 어떻게든 과거를 망각의 상자 속에 가두며 살아왔던 킴이기에 두 소녀의 납치사건은 여러 면에서 킴에게 큰 충격을 가합니다. 하나는 납치된 한 소녀의 어머니이자 킴을 담당수사관으로 요청한 캐런이 과거 같은 위탁가정에서 트러블을 겪었던 인물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납치된 두 소녀가 어릴 적 끔찍한 비극을 겪었던 자신과 남동생 마이키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과거에 한쪽 발을 담근 채 수사를 진행하게 된 킴은 어떻게든 두 소녀를 안전하게 데려올 것을 다짐합니다. 만일 누구 하나라도 범인의 의도대로 죽는다면 그건 과거 못잖은 큰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릴 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중납치극이라는 단선적인 사건 설정에도 불구하고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조금도 지루할 틈 없이 엄청 빠른 속도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더 높은 몸값을 제시한 가족의 소녀만 살려주겠다는 범인의 잔인한 경매에 맞선 킴과 팀원들의 분투가 가장 눈길을 끌지만,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절친했던 가족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두 가족의 갈등도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고, 경찰과 피해 가족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희롱하는 것은 물론 납치된 소녀들을 위협하는 범인들의 잔혹한 행태 역시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작인 악마의 게임’(구판 상처, 비디오, 사이코 게임’)이 킴과 소시오패스 정신과 의사의 1:1 대결에 치중하느라 다른 팀원들의 활약을 덜 보여줘서 무척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말 그대로 팀플레이를 통해 범인과 맞서고 있는데다 킴의 감정적 폭주도 최고조에 달해서 주저하지 않고 별 5개를 매겼습니다. “킴 스톤의 인간적인 모습과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에도 100%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시리즈 세 편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다 보니 작가의 개성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점 - 막판의 불친절함과 다소 비약에 가까운 킴의 추리 은 개인적으론 무척 아쉬웠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독자에 따라 생각이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비록 한국에는 이제 세 편의 작품만 소개됐을 뿐이지만, 작가의 홈페이지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20편까지 출간(예정)된 상태입니다. 작가의 왕성한 필력도 놀랍지만 이 많은 작품들이 언제쯤 한국에 모두 소개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라진 소녀들2년 만에 나온 신작이긴 하지만 다음 작품은 좀더 빠른 시일 내에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이 서평을 쓴 게 지난주인데, 그 사이에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죽음의 연극이 출간됐네요. 그저 반가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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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라진 날
할런 코벤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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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유능한 투자자문가 사이먼 그린은 직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누리고 있었지만, 큰딸 페이지가 대학 입학 후 한 학기 만에 마약중독자가 되어 가출한 뒤로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어느 날 공원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던 페이지를 발견하고 쫓아가지만 에런이라는 남자의 방해 때문에 오히려 폭행범 신세가 됩니다. 가까스로 피소를 면했지만 사이먼은 얼마 후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자신을 방해했던 에런이 실은 페이지의 남자친구이자 그녀를 마약중독에 빠뜨린 장본인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했으며 페이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이먼은 아내 잉그리드와 함께 직접 페이지를 찾기로 결심하고 위험천만한 마약소굴로 향합니다.

 

네가 사라진 날까지 한국에 출간된 작품이 18편이고, 그중 8편을 읽었으니 아직 제대로 된 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명성과 필력에 비해 저에게 무척 야박한 평점을 받아온 작가가 할런 코벤입니다. 최근 읽은 작품들은 비교적 호평과 함께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줬지만, 초기에 만났던 작품들에겐 무슨 이유에선지 혹평이나 다름없는 서평을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개정판으로 출간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를 읽은 뒤에도 절감했던 바지만, ‘네가 사라진 날을 읽고 나니 혹평을 남겼던 그 작품들을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런 코벤의 진가를 뒤늦게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네가 사라진 날은 할런 코벤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실종이 또 한 번 매력을 발산한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마약에 중독된 채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종적을 감춘 큰딸 페이지를 찾으려는 사이먼의 분투이고, 또 하나는 사이비종교단체와 연관 있어 보이는 살인청부사 커플이 도처를 돌아다니며 살인행각을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두 이야기는 사이먼이 사립탐정 엘레나 라미레스를 만나면서 접점을 맞이합니다. 바로 이 지점부터 사이먼의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되는데, 동시에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페이지의 비밀과 비극까지 드러나면서 사이먼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혹독한 시간들이 밀려듭니다.

 

나는 누군가 죽는 이야기보다 사라지는 이야기에 매료되는 편이다. 살인은 사건 해결에 초점을 두지만 실종은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자, 우리를 산산이 깨부술 만한 거대한 것이다.” (할런 코벤, 출간 인터뷰에서)

 

독자 입장에서 사이먼에게 이입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희망때문입니다. 만약 페이지가 살해당한 상태에서 사이먼이 범인을 찾는 이야기라면 이 이입의 쾌감은 결코 만끽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이먼은 페이지를 찾는 내내 자책과 절망을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겠다는 희망하나로 위험천만한 고비들을 넘곤 합니다. 반면 우리를 산산이 깨부술 만한 거대한 것이라는 표현대로 희망은 순식간에 그 얼굴을 뒤집으며 사이먼을 심연 속으로 집어던질 수도 있는데, 실제로 사이먼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희망에게 배신을 당하곤 합니다. 영영 페이지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가족들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사이먼의 희망에는 셀 수 없는 균열이 일어납니다.

 

이야기는 긴박하면서도 무자비한 액션 장면과 함께 대미를 장식하지만, 독자는 에필로그에서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을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것은 희망이 사이먼에게 가한 가장 큰 배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이먼으로 하여금 새로운 형태의 희망을 품게 만드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책을 덮을 때까지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반전이 거듭된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 복잡하게 얽힌 심리와 감정들, 그리고 놀라움과 함께 애틋한 여운을 품게 하는 반전 어린 엔딩에 이르기까지 할런 코벤이 직조한 정교한 설계도에 감탄하면서 마지막 장을 덮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된 작품의 절반도 못 읽은 상태지만 단언컨대 할런 코벤 최고의 작품이라는 해외언론의 호평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네가 사라진 날은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조만간 보이 프럼 더 우즈를 읽을 예정인데, 점점 더 그 진가를 맛보게 되는 할런 코벤의 필력을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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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통제구역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세윤 옮김 / 오픈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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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탄 노인의 돈봉투를 노리던 한 남자를 제압한 리처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노인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다. 노인이 살고 있는 도시는 우크라이나인과 알바니아인 갱단이 구역을 나눠 지배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채업을 비롯해 여러 불법적인 사업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의 돈을 갈취하고 있었다. 리처는 노인을 대신해 사채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의도치 않게 두 갱단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에 휘말리면서 조직 간에 난투극이 벌어지게 만든다. 이 틈을 타 갱단들을 박살내려던 리처는 갱단을 움직이는 더 큰 세력이 존재함을 알게 되고 코어 집단을 파괴하기 위해 출입통제구역으로 향한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출입통제구역잭 리처 시리즈24번째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는 제게는 무척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중고로 구매한 7편을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읽은 적이 없고, 유일하게 읽은 건 우연히(?)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나이트 스쿨한 편 뿐입니다. 구매한 작품들을 읽지 않은 건 언젠가 순서대로 시리즈를 읽고 싶은 욕심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벌어진 사태이고, ‘나이트 스쿨은 어쩌다 보니 대출한 책에 끼어 있어서 우발적으로 읽게 됐을 뿐입니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잭 리처 시리즈초기작이 뭉텅이로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것도 읽고 싶은 마음이 덜 들게 만든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3~8, 12편 등 모두 일곱 작품이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원톱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시리즈인데 그의 성장과정중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읽을 수 없다 보니 좀 맥이 빠진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에 뜬금없이 읽게 된 출입통제구역은 이야기는 술술 읽히지만 잭 리처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기는 여러 가지로 무리인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퇴역 후 미국 전역을 떠도는 잭 리처는 칫솔 하나만 달랑 들고 마음 내키는 곳에 머물며 법의 영역을 벗어난 범죄자들을 모조리 처단한다.”는 시놉시스에서 알 수 있듯 고정 조연들이 없다 보니 더더욱 잭 리처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맛볼 수 없었습니다. 역시 빠진 작품들이 많더라도 시리즈 첫 편인 추적자부터 차근차근 읽어봐야 할 것 같긴 합니다.

 

줄거리대로 잭 리처는 위기에 처한 노인을 돕는 아주 작은 선행 하나 때문에 거대한 갱단의 살육전에 말려드는 것은 물론 그보다 더 큰 세력과의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육군 헌병대 출신인 잭 리처를 돕는 건 해병대 출신의 드럼연주자와 냉전시대를 겪은 기갑부대 출신의 노인입니다. 갱단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던 웨이트리스와 재즈 밴드의 리더 역시 잭 리처의 지원군으로 활약합니다.

잭 리처가 갱단의 살육전을 촉발시키는 초반부는 마치 블랙코미디처럼 전개됩니다. 잭 리처의 소행을 상대 갱단의 도발로 여긴 오해들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무자비한 보복전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갱단들이 잭 리처의 존재를 깨달으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고 잭 리처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갱단들과의 전쟁을 냉정하면서도 한 치의 자비심도 없이 벌여나갑니다. 그 와중에 자신에게 선의를 베푼 웨이트리스와 짧지만 강렬한 로맨스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하드보일드 캐릭터지만 나름 할 일은 다 하는 매력적인 잭 리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유일하게 읽은 나이트 스쿨과 달리 별 5개를 주지 못한 건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잭 리처에게 도무지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어쩌면 이건 이 시리즈의 가장 고유한 특징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읽는 내내 좀 혼란스러웠던 점입니다. 위기의 노인을 구하고 그를 돕는 과정이나 웨이트리스와 로맨스를 벌이는 대목에서도 잭 리처에게서 온기라곤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마치 비즈니스의 일환처럼 보였다고 할까요? ‘나이트 스쿨의 서평을 다시 찾아보니 딱히 그런 느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작품에 따라 인간미를 맛볼 수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아쉬웠던 건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장식한 거대 세력과의 일전입니다. 갱단들 역시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었는데 그보다 더 거대한 세력을 등장시켜 잭 리처를 폭주하게 만든 건 왠지 사족처럼 느껴졌습니다. 더구나 우연히 얻은 지원군들이 없었다면 100% 불가능한 작전이었기에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갱단들과의 전쟁으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훨씬 더 깔끔한 마무리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작품 자체보다 엉뚱한 소리가 더 많았던 서평이 되고 말았는데, 쓰다 보니 조만간 잭 리처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고 말았습니다. 분명 매력 넘치는 캐릭터인데 그의 초기 모습부터 제대로 맛보지 않으면 잭 리처는 물론 이 시리즈 자체를 만끽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뭉텅이로 빠진 초창기 작품들이 뒤늦게 한국에 출간될 것 같진 않지만 아쉬운대로 첫 편부터 차근차근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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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20분의 남자 스토리콜렉터 10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허형은 옮김 / 북로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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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특수부대 제75레인저연대의 유능한 장교였으나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제대를 선택한 트래비스 디바인. 월가의 신참 애널리스트로서 투자회사 카울앤드컴리에 근무하며 매일 아침 620분 열차를 타고 출근하던 그에게 발신자 불명의 이메일 한 통이 날아든다. “여자가 죽었어.” 실제로 직장 동료이자 헤어진 연인이 자살한 채 발견되고 디바인은 경찰의 의심을 받는다. 더 큰 문제는 디바인 주위에서 연이어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점. 그런 그에게 전직 장성인 의문의 남자가 접근해오고, 그는 군 시절의 디바인의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카울앤드컴리사에 대한 내밀한 조사에 협조할 것을 강요한다. 디바인은 졸지에 정부기관의 비공식 비밀요원이 되어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와 관련된 거대한 음모를 밝혀야 할 입장에 처하고 만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2020진실에 갇힌 남자를 끝으로 3년 동안 소식이 없어 궁금해 하던 차에 북로드에서 데이비드 발다치의 신작을 출간해서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특히 스탠드얼론이 아니라 미국에서 ‘6:20 Man series’라 이름 붙은 새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 더 기대가 됐는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이머스 데커에 맞먹는 매력을 지닌 주인공 트래비스 디바인은 데뷔 무대부터 압도적인 육체의 강력함과 명석한 지능’, ‘폭죽처럼 폭발하는 강렬한 액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540여 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에 적잖은 등장인물, 서로 연관이 있는지 끝까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두 개의 사건 - 연쇄살인과 국가안보의 위기 - ‘620분의 남자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겹겹의 층위를 쌓은 다층구조의 플롯을 지닌 작품입니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굴지의 투자회사 카울앤드컴리의 가공할 음모를 파헤치는 이야기에서 그쳤다면 이 작품은 평범한 스릴러에 그치고 말았겠지만, 데이비드 발다치는 범인도 동기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참혹한 연쇄살인사건을 잘 결합시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꾸며냈습니다. 밀접하게 연관된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별개인 것 같기도 한 두 개의 사건은 디바인은 물론 독자의 머리를 무척이나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막판에 밝혀진 의외의 진실은 데이비드 발다치의 설계와 구성이 얼마나 정교하고 빈틈없이 이뤄졌는지를 제대로 실감하게 해줍니다.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는 곳곳에 배치된 매력적인 조연들인데, 우선 디바인이 머무는 타운하우스의 능력자동거인들은 각각 러시아 출신의 화이트 해커, 변호사 시험을 준비 중인 법대 졸업생, 유망한 스타트업을 이끄는 MIT 출신 재원으로 디바인의 수사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그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620분 열차를 타고 출근할 때마다 디바인이 지켜보곤 했던 대저택의 비키니미셸은 예상치 못한 행보를 거듭하여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인물입니다. 대형 스포일러까지는 아니어도 미리 알면 그 재미가 반감되는 인물이라 더 이상 언급은 어렵지만 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전직 특수부대 장교답게 디바인은 수차례에 걸쳐 위험천만하면서도 카타르시스 만점의 액션 장면을 소화해냅니다. MBA 출신의 명석한 지능까지 겸비한 그의 화려한 액션은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특별한 매력인데, 덕분에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를 더욱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에 갇힌 에이머스 데커와 마찬가지로 불행한 가족사와 함께 특수부대의 마지막 날들을 악몽으로 간직하고 있는 디바인의 큰 상처 역시 그의 미래를 궁금하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결코 완치될 수는 없겠지만 그 상처들을 짊어진 채 점점 더 성장해나갈 디바인을 응원하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시리즈 2편인 ‘The Edge(2023)’까지 출간된 상태입니다. 빠르면 내년쯤엔 만나볼 수 있을 듯 한데, 우선은 곧 한국에 출간될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 사선을 걷는 남자를 읽으며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큰 미션을 마친 디바인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어떤 고비를 맞이할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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