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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20년 전, 여름캠프에 참가한 네 명의 아이가 사라진 사건은 격렬한 소송 끝에 거액의 위로금이란 판결로 종결됐고 이후 세상은 아이들을 잊은 듯했다. 어느 날 코플랜드는 주변에서 벌어진 사건의 단서를 찾던 중 여동생을 비롯한 네 명의 아이들이 실종된 20년 전 사건과 재회하게 된다. 20년 뒤에야 나타난 뜻밖의 단서는 “사라진 아이들 중 하나가 성인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과 누군가 “아이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덮으려 한다.”는 것.
여동생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려는 남자와 진실을 덮으려는 부모의 갈등, 그리고 사건 이후 처참하게 해체된 가족의 비극과 함께 20년 전 은폐됐던 충격적인 진실이 천천히 조금씩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주로 일본 미스터리를 탐독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할런 코벤을 알게 됐습니다. 그의 명성이나 작품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던 상태에서 말 그대로 우연히 서가에서 집어든 책이 ‘용서할 수 없는’이었습니다. 이후 몇 편의 작품을 접하면서 편차가 심한 작가가 아니라는 신뢰를 갖게 됐습니다. 덧붙여, 단 한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숲’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함의 덕분에 다시 한 번 할런 코벤과 만나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코벤 특유의 중저음 같은 필력이 초지일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허망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곳곳에 적절한 트랩을 잘 설치해놓았습니다. 긴장감이 팽팽합니다. 20년 전 숲에서 벌어진 사건과 현재 사건의 연결 고리도 매력적이고 ‘비밀과 거짓말’이라는 가장 중요한 코드는 (조금은 질질 끄는 느낌도 있었지만) 좀처럼 중간에 책갈피를 끼우거나 한숨 쉴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사건, 서사가 잘 어우러졌고 너무 무겁지 않은 메시지도 위화감 없이 녹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네 개에 그친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 대비 과도한 분량’ 때문입니다. 분량만 차지한 사족과 과도해 보이는 부연 설명은 수시로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작품의 구조가 ‘기-승-승-승-전-결’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초중반에 독자를 지치게 만드는 페이지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좀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했던 클라이맥스와 엔딩은 오히려 거의 숨이 넘어갈 정도로 그 호흡이 빨라서 더 아쉬움이 컸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신뢰할 수 있고 편차가 별로 없는 작가인 건 분명하지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B+에서 A- 정도에 머물렀던 느낌이라, 다음에는 확실한 A+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족으로 두 가지만...
작품 중에 꽤 많은 노래가 등장하여 분위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노래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한 탓에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다는 생각입니다. 노래 제목은 일종의 ‘고유명사’이니 원제 그대로 살렸어야 되지 않을까요?
또 하나는, 요즘 들어 영미권 소설이나 드라마에 한국 또는 한국인이 자주 등장하는데, 아직까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도 짧지만 강렬하게 한국인에 대한 비호감이 드러나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울컥하기도 했지만, 그게 현실일 수도 있으니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합니다. 다만, 맥락 상 굳이 그렇게 묘사 안 해도 되는데 일부러 ‘강조’하면서 비호감을 드러낸 점이나 여느 책과 드라마보다 수위가 높았던 점은 눈에 무척 거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