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이 대학생일 때, 검정고시 야학에서 교사 노릇을 했다. 야학에 오는 도중 그는 시커멓게 흐르던 개천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을 보면서 분노를 느꼈다. 그는 학생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여기 오면서 썩은 하천에서 미역을 감는 어린이들을 봤는데요, 여러분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무리 생활이 어렵더라도 절대로 아이들을 저렇게 키우지 마십시오. 책임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될 수 있을 대 결혼하십시오"
그는 나중에 후회한다. "그랬다. 그것은 어린 가슴들에 깊은 상처를 주는 폭언이었다. 비록 나 자신 가난한 집안에서 컸더라도 그나마 대학에 들어갈 정도는 됐다는 자각이 그 시절 없었다. 중학교를 장학생으로 다녔다는 오만이 중학교에 입학할 여건마저 안된 학생들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로막았다....(280쪽)"
이런 폭력은 나 또한 부지기수로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닐까. 엊그제 누군가와 술을 마실 때, 깡소주를 많이 마셨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술 마실 땐 안주를 많이 먹어야 몸을 안버려요. 안주 시킬 돈이 없으면 차라리 마시지 마세요!"
손석춘의 말이 폭력이었다면, 내 말 또한 폭력이다. 농촌서 자란 그에 비해, 난 제법 괜찮은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도 그렇지만, 나 스스로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싶다. 얼마 안되는 용돈을 받던 시절, 나 또한 시원찮은 안주를 놓고선 소주를 마신 적이 얼마나 많은가. 돈이 없어도 너무나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며, 깡소주라도 마셔야겠다는 걸 간섭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깡소주가 건강에 안좋다는 걸 그라고 모를까.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정신까지 부르조아가 되버린 게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96년에 만났던 의사의 말이다.
"난 말야,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돼. 사람도 많고, 지하로 내려가야 하니 공기도 안좋잖아? 자가용을 운전하든지 아니면 택시를 타면 되지, 왜 지하철을 타?"
너무나도 진진한 그의 표정에 할말을 잃었었다. 정신의 부르조아화가 더욱 더 진전되면 나도 이렇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