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치>라는 책을 많이 참조했습니다.

[클린턴 부부가 차를 몰고 길을 가다가 주유소에 들렀는데, 거기서 힐러리의 고교시절

남자친구를 만났다. 클린턴이 말했다.

"당신이 저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지금은 주유소 직원의 마누라가 되어 있을걸"

힐러리의 답변이다. "아니, 그랬으면 저 사람이 대통령이겠지"]

이 얘기가 널리 퍼진 걸 보면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창렬 경기지사의 부인 주혜란씨를 '경기도 힐러리'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그런 그녀가 뉴욕 시장인 줄리아나를 꺾고 상원의원이 되었고, 대선후보로도 거론되는 걸

보면, 배후의 역할에 싫증을 느끼고 전면에 나서기로 한 모양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나온다면 그건 힐러리일 거라고 누가 그랬다나. 참고로 말하면 힐러리는 부통령 직을 매우

우습게 봤는지,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난 남의 나라 장례식에나 참가하는 것엔 관심이 없거든요"

그러니, 그녀의 야망은 상원의원은 아닐 것이다.



힐러리의 외모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난 사실 힐러리가 매력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힐러리와 예일법대 동기인 마이클 메드비드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데이트 상대로는 생각지 않을 여자였어요. 살도 좀 쪘고, 외모도...허허,

다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엄청난 상상력을 동원한다 해도 절대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죠. 힐러리는 그저 우리의 좋은 친구일 뿐이었습니다"

이 친구 말고 다른 동창들도 힐러리와 자고 싶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 걸 보면, 나만 그녀를

매력적으로 생각하는가보다. <비치>의 저자는 한술 더 떠서, 힐러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애를 몇이나 낳은 것같은 펑퍼짐한 엉덩이에, 튼실한 근육질의 다리하며, 오늘 아이 하나

낳고 내일 당장 옥수수 포대를 나를 수 있을 것만 같은 건장한 어깨..."

이렇게까지? 영부인이 그정도면 이쁜 편 아닌가 싶은데...



그런데....클린턴은 달랐다. 빌은 힐러리를 처음 본 순간, "그 여신 같은 모습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면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는 표현까지 동원하고 있다. 웰즐리

대학-여자대학으로 최고 명문-시절 '냉장고 언니'로 알려진 힐러리도 빌에게 녹아내려,

힐러리는 빌과 같이 졸업하기 위해 1년을 쉬었다. 둘이 서로 반했는데 왜 빌은 바람을

폈을까? 힐러이야 이견이 있을지 몰라도, 클린턴은 참 잘생겼다. 정치인의 뒤에는 여자들이

많이 꼬인다는데, 클린턴의 경우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거다.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킨 것은

그의 잘못이지만, 미국 정치판이 워낙 그런 곳이고, 그 유혹을 이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년간 클린턴의 정부였던 제니퍼 플라워즈를 비롯한 숱한 여자들과의

스캔들을 힐러리는 잘 참아냈고, 인터뷰에서 이렇게 멋진 말을 하기도 했다.

"기자 너는 어떻게 살아왔나요.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고, 투쟁하고, 미친 시절을 통과하기

마련이죠. 그래요. 우리에게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내 남편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많은 난관을 헤쳐나갈 겁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이 나라 국민을 위해...열심히 뛰어다닐 것입니다"

하여간, 인물은 인물이다.



하여간, 제니퍼 플라워즈의 폭로는 정말이지 너무 노골적이다. "빌의 가랑이 사이에 붙어

있는 물건 자체는 그리 훌륭한 것은 못되었지만, 이를 그녀를 만족시키고야 말겠다는 열정으로

만회해 왔다...." 그녀의 폭로엔 이런 말도 들어있다. 제니퍼가 클린턴에게 힐러리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자, 빌은 관심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힐러리는 아마 나보다 더

많은 여자들을 먹었을 거야"

제니퍼는 이런 얘기들을 여러 잡지에 팔아먹으면서 돈을 챙겼는데, 그래서 폴라 존스같은

이상한 애들까지 그와의 스캔들을 폭로하면서 한몫 벌려고 했다. 우리나라의 배우 J모는

언제쯤 전두환에게 당했던 고난의 나날을 책으로 쓸까?



저자는 말한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나쁜 책인 것은, "사흘 동안의 불륜의 사람은

진정한 것이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수십년 동안 지속된 착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은

허구라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라고. "사랑이란 축적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양이

질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질보다는 양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부 등도 "닥쳐 온 위기와 지속적으로 타협하며 살아왔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말한다.

참을만 하니까 그런 건지, 아니면 정치적 야망 때문인지 힐러리는 클린턴의 온갖 바람을

참아 냈고, 그래서 지금까지 멋진 커플로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부부의 앞날에 정답은

없지만, 이들 부부는 온갖 풍파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부부의 좋은 예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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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대학동창 사이트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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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날 안쓰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 사이트를 살리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2년 전만 해도 활황세를 유지하던 우리 사이트가, 이젠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같이 글 한편에 의존해서 주황색의 불을 켜곤 한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끌어갈 수 있을까 우려하는 친구도 있겠지만, 내 특기가 원래 무에서 유를 만들고, 별거 아닌 것도 긴 글 한편으로 우려먹는 것인지라 마음만 독하게 먹는다면 몇년이고 주황색 불이 켜있게 할 수는 있다 (게다가 다른 친구들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이 사이트에 불이 꺼진 걸 보고도 글을 안쓸 때가 있다면, 그건 글을 쓸 소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회의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맞을거다. 너무 극단적인 비유 같지만, 우리 사이트의 현재 모습은 산소호흡기를 단 환자같은 생각이 든다. 소생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해, 호흡기를 떼는 동시에 숨을 거두는 그런 환자.

난 지금, 다른 이들이 글을 안쓴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이트에 가입하고 있는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게시판들이 황무지가 되어가는 판에, 우리 게시판은 그래도 꽤 잘나간, 그리고 오래 버틴 곳이다. 내가 거기에 보탬이 된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그건 내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난 그들에게 고맙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했다. "세일이가 만든 건데, 왜 내가 (이곳의) 책임을 져야 하는거야!"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뿐이고, 난 이곳을 개설해 준 세일이에게 감사하는 편이다. 이 사이트 덕분에 학생 때 마이너리티에 속해 있던 내가 친구들로 하여금 "쟤도 잘하는 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고, 학생 때 말도 한마디 나누어 보지 않았던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여기서의 만남이 없었던들, 난 권정혜나 이란, 김지영 등과 말 한마디 못해본 체로 일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이 사이트가 없었다면, 비록 동창이라 하더라도,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내 친구의 이름이 박힌 병원에 감히 놀러갈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포항은 동준이와 준태, 상호, 윤근이 등-한명이 빠졌는데...누구더라?-이 근무하는 반가운 곳이지만, 이곳이 없었다면 포항은 그저 포항제철과 포항공대만이 존재하는 삭막한 도시였을 거다. 이곳은 그러니까 내게 커다란 혜택을 준 고마운 곳, 내가 여기다 열심히 글을 쓰는 건 그 은혜를 갚고자 함이다.

예전 얘기를 잠깐만 한다. 몇몇 친구들끼리 사이트를 만든 적이 있다. 지금 그곳은 일주에 한편 정도의 글이 올라오는 곳이 되었는데, 모든 사이트가 그렇듯이 초창기에는 꽤 잘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두달이 채 못지나서 보니까 나 혼자만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썼다.
"니들끼리 잘해봐!"
그리고 거의 한달간 글을 안쓰고, 들어가보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화 풀어"라고. 놀랍게도 그 한달간, 친구들은 정말 많은 글을 올려 놓았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계속 삐질 수 있나 싶어서 다시금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달도 안되어 친구들은 다시 빠져나가고,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나였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아까 말했듯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별 말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도 긴 글을 쓰는 재주는 아무나 갖는 게 아니라고. 남이 쓰든 안쓰든, 힘이 닿는 데까지 이 사이트를 지킴으로써 내가 받은 은혜를 갚겠다고. 결심은 이럴지언정, 이 글을 보고나면 단 몇명이라도 이곳을 가꾸는 걸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한다. 너무 얍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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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가 끝났다. 끝난지가 언젠데 이제와서 그러느냐고 하겠지만, 시상이란 건 원래 갑자기, 문득, suddenly 떠오르는 법, 오늘 아침 오지않는 기차를 기다리다보니 다모에 관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한 얘기겠지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도대체 어떤 글이 가능하겠는가. 혹시 모르는 일이다. 지루하더라도 참고 읽어주면 복 받을지.

<다모>는 방영 첫회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찌나 반응이 뜨거웠는지,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하지원이 자신의 홈피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감격에 겨운 인사말을 남겼을 정도. 이서진, 김민준 등 다모 출연진들은 하나같이 스타덤에 올랐ㄱ소, 시청자게시판에 오른 글의 수가 무려 2만개, 한때 게시판이 다운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어찌보면 평범한 무협극에 불과한 다모가 이렇게 인기를 끈 이유가 뭘까. <홍국영>의 실패에서 보듯, 어설픈 무협극은 이제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대가 됐고, <다모>의 액션 또한 그리 대단한 게 아닌데 말이다. 딴지일보 기자인 노바리님은 <다모>의 액션을 이렇게 혹평했다.

[나뭇잎 하나 디딤돌로 삼지 않아도
수평으로 붕 날아다니는 중력 예외의 법칙은 뭐며,
공중 부딪힘 씬에서 각도가 전혀 안 나옴에도
쿵 떨어지자 어깨에 칼 맞고 피 흘리는 건 또 뭐며,
<와호장룡>에서도 장즈이와 양자경의 무술 스타일은
명확히 대조된 바
황보윤과 장성백과 장채옥 사이에
전혀 차이 없는 무협 안무는 또 무엇이었는가 말이다....(9/21, 나도 한때 다모폐인이었소)]

과히 웃기지 않은 <조폭마누라>가 조폭영화 중 최초로 여자인 신은경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공전의 히트를 했듯, <다모>의 주인공이 여자, 그것도 걸출한 매력을 지닌 하지원이라는 게 드라마의 인기에 결정적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그 드라마의 배경은 조선시대. 요즘이야 성공한 직장여성들이 많지만, 그 시대는 그야말로 남성들의 시대였다. 여성은 능력이 있어도 사장시켜야 했고, 그저 남편 잘 모시고, 자식 잘 기르면 족했다. 행여 남편이 죽은 후 따라죽으면 열녀비를 세워주며 칭송했고, 현대의 대표적 마초 이문열은 <선택>이라는 책을 통해 조선시대를 본받으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니 조선시대에 기억할만한 여성이 없는 건 당연하다. 이상적 여인상으로 회자되는 신사임당은 사실 이율곡의 어머니라서 유명한 것일진대, 요즘 여성들이 "신사임당을 존경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안타깝다. 오죽 인물이 없으면 여성단체에서 "신사임당 대신 허난설헌을 기리자"는 운동을 하는가. 허난설헌이 훌륭한 누나라는 건 동의하지만, 그녀도 사실 시나 읊을 줄 알았지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게 없지 않은가. 그 시대 여자들 중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남자를 홀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켰던 장희빈 류다. 그런데, 그 조선시대에 다모라는 여형사가 있었다니. 쌀 한가마니를 우습게 들고, 막걸리 세사발을 숨도 안쉬고 원샷하며, 공중을 날아다니며 무술을 하는 여성이 있었다니, 여성들로서는 난데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일이다. 남성들의 상당수가 하지원을 보기 위해 그 드라마를 봤다면, 여성들은 바로 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다모>를 봤다.

소위 다모폐인 중 여성들이 많은 건 이해하겠는데, 왜 패기발랄한 20대가 아닌, 30대 여성이 주를 이룰까? 미국의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지적한 것처럼 20대 여성은 페미니즘의 불모지다. 20대 여성이 갖고 있는 싱그러움은 남성 욕망의 대상이자 마케팅의 타겟으로 칭송된다. 하지만 남성과의 경쟁에서 일상적 차별을 당하고, 성적 매력마저 시나브로 잃어가는 30대가 되면 그제서야 여성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페미니스트가 되어간다. 30대 여성들은 <다모>를 보면서 그들의 한을 발산하지 않았을까?

두터운 매니아층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다모>의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20대는 좀더 밝은 트렌디 드라마를, 여성이 설치는 게 못내 불편한 40, 50대는 또 다른 드라마에 채널을 고정시켰을테니, 열광적인 반응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건 당연해 보인다. 게시판에 글이 2만개 올랐다 하더라도, '일인당 100개씩 올렸으니 실제 매니아는 200명 뿐'이라는 어떤 '반다모이스트'의 지적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

아쉬웠던 점은 8회까지 "탄탄하게 짜인 스토리를 자랑하"던 이 드라마가 9회부터 점점 변질되었다는 것. 다시 노바리님의 기사를 인용한다.

[9회부터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대략
스토리의 난
플롯의 난
캐릭터의 난
을 겪으며
삼천포로 빠져나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늘어짐과 엇박자를 자랑하다가
사미, 즉 뱀꼬리는커녕
토룡미, 즉 지렁이꼬리가 되고 만
기막힌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8회까지 다모에 열광하던 다모폐인들은 할수없이, 분에 떨면서, 짜증을 내면서, 허탈한 맘으로 나머지 부분을 봤을거다. 한국축구의 고질병이 문전처리 미숙이듯, 우리나라 드라마들의 약점도 끝이 안좋다는 것인데, 이 점에서 <다모>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혹자는 내게 물을 거다. "근데 너 이 드라마 봤어? 봤냐고?" 안봤다. 내가 안봤으니 드라마 내용 얘기할 때 노바리님 기사를 인용했던 거 아닌가. 그리고 <앞집여자>를 보느라 <다모>에 눈울 돌릴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 혹자는 다시 물을 거다. "보지도 않고 어떻게 글을 써? 그게 말이 돼?" 난 이렇게 대답하련다. "넌 꼭 애를 낳아봐야 애 낳는 게 아픈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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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져리그 포스트시즌 경기를 보느라 정신없는 요즘, 야구를 보는 짬짬이 <은밀한 유혹>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100만달러에 당신 아내와 하룻밤을 자겠다!"는 도발적인 문구로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영화. 십년쯤 전에 개봉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로버트 레드포드도 참 멋있지만, 데미 무어의 미모는 정말 100만달러를 주는 게 아깝지 않을만큼 빛이 난다.

중간부터 봐서 왜 돈이 필요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미 무어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하룻밤을 보내러 가는데, 내 기대와 달리 배에서 보낸 그 하룻밤이 잘렸다 (일부러 자른 게 아니라, 궁금하라고 안내보낸 것 같다). 어쨌거나 데미 무어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초조하게 그녀를 기다리던 남편은 돌아온 그녀를 껴안으며 "사랑해"라고 말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돈을 필요로 하게끔 만든 사람도 자기고, 데미 무어는 원하지도 않는 하룻밤을 보낸 거니, 미안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그는 달라진다.
그놈: 도저히 그날 일을 잊을 수가 없어.
무어: 알려고 하지 마.
그놈: 진실을 알고 잊어버릴께. 말해줘.
무어: 싫어.

참나, 왜 그런 걸 알려고 할까. 첫날밤에 '다른 남자와 경험이 있냐'고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해놓고선 막상 진실을 말하면 그걸 빌미로 학대하는, 남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이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그놈: 말해봐. 그녀석과 좋았어?
무어: (어이없다는 표정) 그래. 섹스를 너무 잘해, 밤새도록 사랑을 나누었어.
그놈: 거짓말!!!
무어: 어차피 안믿을 거면서 왜 물어? 당신이 바라는 건, 그 남자가 형편없었다는 대답 아냐?


정말 그렇다. 믿지도 않을 걸 왜 묻는담? 그 일이 남편에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 것처럼, 아내에게도 그건 악몽일 것이다. 도대체 그 일을 실토하게 해 그때 일을 다시 떠올리는 건 왜일까? 남자는 "당신이 그놈한테 먼저 꼬리쳤잖아!"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고, 급기야 물건을 부수며 화를 낸다. 그렇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그는 심지어 아내의 지갑을 뒤지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것은 뻔한 이치, 데미 무어는 결국 남편을 떠난다. 때로는 묻어 둬야 할 진실이 있는 법이고, 그 배에서 데미 무어가 얼마나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십분의 일만 이해했다면,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믿었다면 이런 파국은 없었으리라. 야구가 재미있어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친구의 말에 의하면 결국 둘이 갈라선단다.

남자란 동물은 섹스를 소유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넌 나와 잤으니 이제부터 넌 내거야'라는 식의. 자기는 다른 여자와 자도 되지만, 자기 여자가 남과 자는 것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이미 수많은 경험을 했을 유부녀를 꼬시는 데 공을 들이는 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뺐는다는 쾌감 때문이 아닐까? 소유욕에 얽매여 있으니 자기 부인이 강도에게 강간을 당하는 게 이혼사유가 되고, 아내의 바람은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된다. 소유욕에 얽매인 정신적으로 미숙한 존재, 그게 바로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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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7시부터 8시 반까지, 어머님은 컴퓨터를 배우신다.
처음에는 내게 컴퓨터를 배우려고 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을 가르쳐 줄만큼의 실력이 되지 못하는데다, 선생의 자질마저 없다. 자기가 아는 걸 남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난 유감스럽게도 그런 능력이 없다. 내가 공부를 제법 잘했던 고등학교 때도 내게 뭔가를 물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 내가 받은 질문이라야 "오늘 야구 선발투수 누구냐?" 따위가 전부다.

그래도 난 어머님께 몇가지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 드렸다. 사이트에 회원으로 등록하기, 메일 보내기, 한글을 열고 저장하는 법, 기차표 예약하는 법. 이걸 가르쳐 드리고 나니 더 가르칠 게 없었다. 그래서 난 어머님께 "하산하세요"라고 했지만, 어머님은 뭔가 더를 요구하셨다. "아니 배울 게 더 뭐가 있어요? 이제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마음껏 누비세요"
컴맹이면서도 인생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는 게 당연했다 (가끔 불편하다. 중간고사 본 거, 엑셀에 저장했는데 아직까지 평균을 못냈다 T.T)

어머니도 특정 사이트에 가입한 뒤 거기다 글을 쓰고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잡지나 신문을 볼 수도 있고, 인터넷으로 쇼핑도 할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람? 게다가 내가 가르쳐드린 몇 안되는 것마저 어머님은 까먹으셨다.
"민아, 메일 확인을 어떻게 하더라?"
내가 인내심이 워낙 없다보니, 다시 가르쳐드릴 때 짜증이 묻어났나보다.
툭하면 "왜 구박을 하고 그러지?"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은 결국 학원을 등록했다.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는 곳으로 한달 수강료는 겨우 2만원.
"나도 이제 너한테 가르쳐달라고 안할거야!"라고 날 놀리시는 어머님을 보니, 평소 좀 잘해드릴걸 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하지만.... 학원이라고 해서 어머님께 마냥 관대한 건 아니었다. 서른살에 미혼인 남자 강사는 60을 넘긴 어머님보다는 20대 여성들에게 더 관심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어머님은 컴퓨터에 기초가 너무 없었다. 강사와 어머니 모두, 수난시대에 접어들었다.

강사: 엑셀을 여세요
엄마: 인터넷에 들어가서 하는 거에요?
강사: 아이 참, 미치겠네


강사: 잠깐 비껴봐요. 제가 해드릴께요.
엄마: 제가 해봐야 늘지요.
강사: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엄마: 선생님, 여기 좀 봐주세요.
강사: 혼자만 그렇게 질문을 하니 진도를 못나가잖아요.
엄마: 오늘은 아직 한번도 안물어봤잖아요.
강사: 평소에 그렇다는 얘기에요!

나중에는 어머님이 SOS를 쳐도 아예 외면해 버렸단다. "엄마, 엄마가 그 중에서 나이 제일 많아?"
"50대가 한명 있고, 나머진 다 20대야. 근데 그 50대, 참 컴퓨터 잘하더라"
내가 다녔어도 구박받았을 환경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어머니가 멋져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강사가 안되어 보였다. 엄마가 한달 더 다닐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그가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래도 어머니가 딱 하나 잘하는 게 있다. 바로 워드실력. 아버님의 간병을 하실 때, 어머니는 틈나는대로 노트북을 펴놓고 병상일지를 쓰셨다. 양이 제법 되고, 지금 그걸 보면 눈물이 나지만, 그 덕에 어머니가 워드 하나는 잘 치신다. 1분에 200타 정도니 대단한 건 아니지만, 학원선생이 엄마가 워드치는 걸 보고는 "제법이네"라고 했단다.
새로운 걸 배우길 싫어하는 나에 비해, 어머님은 뭐든지 열심이시다. 내 또래 중에도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못쓰는 사람이 있지만, 어머님은 곧잘 내게 문자를 날리신다.
"민아, 오늘은 술먹지 말고 일찍와라"라고 보내서 탈이지만....

나에 대한 어머님의 헌신에 늘 감사드리지만, 가끔은 어머님의 삶이 너무 재미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젊었을 때 연애도 한번 못해보셨고, 세번 만나고 아버님과 결혼하신 뒤부턴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마음고생이 심하셨다. 우리 넷을 낳아 기르느라 아무것도 못하셨고, 우리가 다 컸을 때부턴 아버님이 편찮으셨다. 아버님이 입원해 계시는 몇년간, 어머님은 병원에서 안주무신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인 간병을 하셨다. 그래도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자식들은 이제 컸다고 말도 잘 안듣는다. 과거를 아무리 뒤져봐도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는 어머님을 보면서, 우리 세대부터는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헌신하기보다는 자신의 삶도 좀 즐길 줄 아는 그런 어머니가 되었으면 한다.
한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아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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