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감독의 <매치 포인트>를 봤다. 미모의 여인(스칼렛 요한슨 분)을 사랑하지만 돈많은 여인과 결혼한 크리스는 결국 미녀를 다시 만나 바람을 피운다. 불륜을 소재로 한 것이면 대충 환장하는지라 시종 손에 땀을 쥐고 봤는데,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행동이 바람을 피우는 혹은 피웠던 내 지인들의 행동과 유사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파악한 바람피우는 남자의 특징을 적어본다.
스칼렛 요한슨, 정말 예쁘지 않는가?
첫째, 회사일이 갑자기 많아진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떻게든 미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데, 주로 대는 핑계는 역시 회사일. 평소 일찍 들어와 외식도 하던 자상한 남편은 갑자기 워커홀릭이 된다. 심지어는.
몸 단 남편: 회사에 좀 가봐야겠어.
놀란 아내: 추수 감사절 연휴인데?
뻔뻔한 남편: 결재 안한 서류가 있어서.
그놈의 결재, 연휴 끝나고 해도 될 텐데 남편은 부득부득 차를 몰고 나간다. 회사가 있는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바람을 피우던 내 선배도 회사 핑계를 대며 러브호텔로 출장을 갔고, 거기서 새벽이 다 가도록 야근을 하곤 했단다. 그러니 남편이 회사일로 갑자기 바빠진다면, 몸 걱정을 하는 척 밤참을 싸가지고 회사로 찾아가볼 일이다.
둘째, 집에서도 분주하다.
<매치>의 주인공은 집에서도 수시로 사라진다.
매형,“크리스 어디 갔어?” 놀란 아내, “어, 방금까지 있었는데. 크리스. 크리스!”
그가 자주 사라지는 이유는 미녀와 전화를 해야 했기 때문. 아내들이란 남편 전화기에서 여자 목소리만 나도 긴장을 하는데, “나도 사랑해.” “어떻게든 시간을 내볼게.” 같은 말을 어떻게 아내 옆에서 하겠는가. 그래도 크리스는 부잣집으로 장가를 갔으니 숨을 곳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갈 곳은 화장실이 고작일 터, 남편이 화장실에 갈 때 전화기를 가져가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 아까 말한 그 선배처럼 집에서 늘 휴대폰을 꺼놓는 것도 역시 의심의 대상이다.
셋째, 아내와의 잠자리를 피한다.
한창 때인 20대라면 모르겠지만, 남자는 서른을 넘기면 하루 한번 하기도 힘들다. 오죽하면 “일주에 한번”이라고 수줍게 대답한 내 지인에게 다들 “변강쇠다!”고 놀랐겠는가. 그러니 바람을 피우는 사람은 아내와의 잠자리 횟수가 줄기 마련이다. 영화에서, 오랫동안 애가 없어 아내의 배란기 때마다 꼭 해야 하는 크리스건만, “그날이야. 아침 먹고 한번 하자.”는 제의를 회사에 늦는다고 거절해 버린다. 그리고 나서 크리스가 미녀와 열나게 한 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회사 안늦냐?”는 미녀의 질문에 “늦어도 상관없어.”라고 대답할 땐 어찌나 얄밉던지 쥐어박고 싶었다.
배란기 때도 이러니 평소엔 어떻겠는가. 영화에선 주인공이 미녀에게 등을 보인 채 자는 장면이 나오고, “오늘 어때?”라고 아내가 요염하게 물었을 때 “피곤해.”라고 자버린다. 바람을 피우는 내 선배는 평균 두달에 한번 하는데, 선배 말마따나 그건 순전 ‘예의상’이다.
그밖에도 신용카드 청구서를 회사로 변경한다던지(러브호텔 결재한 걸 들킬까봐) 생각에 잠겨 있는 시간이 많다든지 (어떡하면 아내를 따돌리고 애인을 만날까?) 갑자기 잘해준다든지 (애인 만나고 왔으니 기분이 좋고, 양심이 있으니 미안하거든)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한번쯤 남편 뒤를 밟을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도덕적인 척하고, 클린턴이 바람피운 것에 놀라 자빠지는 시늉을 하는 우리나라지만,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의 불륜은 세계 상위순위에 있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러브호텔들이 왜 안 망하고 있겠는가? 내가 있는 천안도 러브호텔 촌이 불야성을 이루는데, 해가 갈수록 수가 더 늘어나는 추세다. 남자는 성욕이 강한 동물이니 어느 정도의 바람은 봐줘야 된다고? 남자들이여, 그렇게 성욕이 강하다면 마누라랑 하시라. 넘치는 성욕을 풀고 싶은데 아내가 힘들어한다면 바람피우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되겠지만, 두달에 한번 하면서 그런다면 좀 너무 하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