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해외여행은 저자처럼 ‘친구’와 함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3박 4일간 다녀온 일본 고베/교토/오사카 여행이다. 짧다면 짧은 여행 일정이었지만, 우리는 퇴근하고 혹은 휴일에 만나서 여행일정을 짜는 게 정말 즐거웠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꽤 오랜시간 여행을 다녀왔던 이야기를 하며 행복했다. 회사에 있으면서도 “조간만 또 가야지!”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조만간’은 없었다. 서로의 일상이 있었기에. 확실히 한국이라는 나라는,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휴가를 맞춰서 여행을 가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어려운 점에는 변함이 없다). 심지어 지금 그 친구와 나는 회사도 다르지만 서로 근무하는 시간대 자체가 다르니, 서로 만날 시간조차도 정하기 어렵다. 아- 어쩌면 이건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 친구와 나는 걸어서 15분 거리에 사는 같은 동네 주민이기도 하니까. 그저, 서로 일하고 돌아오면 너무 피곤하고 그러니까,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피로를 동반하기 때문에, 사회에 썩을 대로 썩은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집 밖으로 안나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내게 주는 기쁨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 중 제일은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어린 나이에 독립해 혼자 살아온 나는 늘 바빴다. 학교에 다니며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학교 행사를 맡아 진행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몇개씩이나 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나에게 모든것을 중단하고 잠시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은 떠난다는 그 자체로 정말 달콤한 것이었다.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든 비로소 지긋지긋한 과제와 정신없는 아르바이트로부터 떳떳하게 해방될 수 있었다. - P5

사실 아주 친한 친구 사이를 들여다보면, 각자 성격이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사고영역을 조금 더 넓어지게 만들어주기도 하며, 같은 성격이면 분명 싸웠을 법한 일에도 서로 져주기도, 참아주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비슷한 성격의 사람과 친구인 게 이렇게나 좋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 P143

그리고 나는 꺠달았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했다. 온통 하얀 세상, 아늑한 숙소, 좋아하는 친구들, 맛있는 음식 …. - P2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대문명’, ‘피라미드’, ‘공룡’, ‘미이라’, ‘미스테리’. 나에게 고고학이란 이런 개념들이다. 아마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인욱 교수님의 강연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쭉 저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연을 본 뒤,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내가 생각한 저런 것들이 아니라, 아 물론 부수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인류’였다. 고대부터 가까운 역사까지 ‘인류’와 관계된 유물을 연구하고 발굴하는게 바로 고고학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은 상상력의 산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상상하는 그런게 아니다. 고고학자들이 하는 상상력은 인문학적 요소가 필수불가결이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해 추론한 내용이라고 해도, 근거가 있고, 당연히 그럴 것 이라 생각이 드는 그런 학문인 것이다.

이 책에는 신나는 보물찾기도, 실무적인 고고학 이론도 없습니다. 대신에 저는 이 책에서 과거의 사람을 직접 만지고 냄새 맡는 고고학자로서의 생생한 느낌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다소 낯설게 들릴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생생함이야말로 고고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가진 놀라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P2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 P9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 P10

땅 속의 흙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마치 케이크처럼 쌓여 있다. 한 층 한 층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쌓인 것이다. 발굴장에서 곡학자들이 솔이나 꽃삽으로 조심스럽게 작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따. 순간의 부주의한 발굴로 지나치는 층위는 두고두고 고고학자의 실수로 남게 된다. - P22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발해의 음악은 당시 일본과 중국에도 널리 퍼졌다. 발해의 사신이 전한 음악은 일본 도다이지에서 공연할 정도이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송나라에서는 발해의 음악이 너무 유행해 이를 강제로 금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도대체 발해의 음악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렇게 주변 나라의 사람들을 매혹시켰을까 궁금했다. 구금이 등장한 것을 보니 발해는 초원, 중국, 그리고 고구려의 여러 음악을 조화시켰던 건 아니었을가. 비록 과거의 음악은 복원하여 듣기 어렵지만, 그들이 이뤘던 문화의 힘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 P105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의 문화재를 약탈한 이유는 단순한 유물의 수집이 아니라, 일본 민족의 기원이 북방 어딘가에 있었다는 설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근동지역을 약탈한 서구 열강이 유럽 문명이 근원인 성서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선 거라고 주장하는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 P219

기마민족설은 역설적으로 일본이 패망한 후에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일본인들은 아시아 전체를 정복할 것이라는 정부의 허황된 선전 아래 전쟁에 내몰렸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다시 섬으로 쫓겨났다.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일본인들을 위로해준 것은 일제의 전장을 따라다니며 발굴하고 문화재를 약탈해 조사했던 고고학자들이었다. - P220

프랑스가 내세우는 주요 논리는 제3세계 국가는 후진국이어서 문화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프랑스의 자랑 노트르담 성당도 화재로 불타버렸다. 프랑스가 다른 나라보다 문화재를 더 잘 관리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없음이 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속내는 외규장각의 의궤가 반환되면 그들이 수백 년 간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문화재를 다시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 P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 구름이 사라진 청명한 하늘 아래로 핑크빛 석양이 비스듬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몹시 차가웠지만, 갑판 위에서 헬싱키 도심의 뽀얀 풍경이 석양에 물드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황홀한 그 풍경인 마치 어린 소녀의 두 뺨에 발그레 피어난 홍조 같았다. _P 048 - P48

오늘 하루는 왠지 느슨하게 보내고 싶었다. 숙소를 나설 채비를 하며 단순한 목표 하나를 세웠다. 탐페레의 호수를 바라보는 것. 오늘의 여정에 그 이상의 목표는 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_P 080 - P80

원작동화의 초기배경은 의외로 어둡고 무거운 편인다. 무민의 외모는 포근하고 귀엽지만 그들이 겪는 상황은 대홍수, 혜성 충돌 등 자현재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_P 112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내 머릿 속에 떠오른 페미니즘은 적어도 이 책에서 나온 여성들이 외치는 그런 부분은 아닌 듯하다. 서로 간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태도, 그러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진짜 페미니즘인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라고 생겨난 단어는 아닐진데 말이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내 머리속에서 정리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었다.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휴머니즘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사회 말이다.

세연은 진경을 보며, 정말 남자라는 족속은 왜 이렇게 내 친구를 피곤하게 할까, 생각했다. 너희들 때문에 진경이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하잖아. 그리고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왜 저렇게 남자가 없으면 못사는거야, 창피하게. 언젠가부터 세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중략) 하지만 세연은 진경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섭섭하고 무시당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진경을 좋아했고, 경외심을 품고 진경이 읽는 책들과 쓰는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중략) 세연은 진경을 동경하면서 남몰래 미워했다. P 134~137 - P134

네가 전에 말했었잖아. 여자들 사이에 갈등이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너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너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알고 정말 많이 놀랐어. 그날 집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결혼한 여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들을 찾아보았어. 그 말들에 대해 내가 반발심이나 슬픔이나 분노나, 혹은 어떤 사람들처럼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것 처럼 보여서 너는 놀았을지도 모르겠어. 그것에 대해 무엇을 느낄 만한 자리 자체가 내 삶에 없다는 걸 네가 이애하게 되면 더 놀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사실이야. 내가 삶으로 꽉 차서 폭발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헐어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얻어낸 공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 감정을 채울 수 없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전혀 모르고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미움을 집어넣을 수도 도저히 없다는 것, 그게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야. P065 - P65

때로는 내가 아주 융통성 없는 사람처럼, 단지 수천 수만개의 비뚤어진 잣대들을 뭉쳐놓은 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 말을 잘 못하곘어, 진경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삶을 사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겁이나서,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 그립고, 기분지 좋으면서 두려워. 내가 너한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는데. P 164 - P164

작가는 그렇게 나이 든 페미니스트와 젊은 페미니스트를 각각 ‘영악한 여자 꼰대/분노하는 천방지축 어린애’로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문제삼는다. 그 프레임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중략) 그리고 이러한 ‘늙은 여성/젊은 여성’으로 대변되는 페미니즘 이분법의 프레임은 선악의 마니교적 이분법으로 전화하면서 페미니즘을 ‘좋은 페미니즘/나쁜 페미니즘’. ‘진짜 페미니즘/가짜 페미니즘’으로 나누는 진풍명품쇼로 전락시킨다. 그런데 도대체 좋은, 진짜 페미니즘은 어디에 있나. P 189~190 -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에는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들른 카페들과 그 곳에서 겪었던 에피소드, 그리고 그에 대한 저의 감상들이 다채롭게 담겨 있지만 결국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무미건조한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그리고 내일을 다시 기대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언가에 깊은 애정을 쏟는것, 조금만 더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노력이 아닐까요? 나의 수더분한 일상 속에도 분명, 뭔가 의미가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것이 꼭 커피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은 언젠가부터 매일 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을 관찰하고 은밀히 동경하고 있다. 우리가 동경하는 누군가가 ‘인생 커피’라고 극찬하며 근사한 사진을 직어 올리면 우리는 그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며 그 카페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 동네, 나의 단골 카페, 내가 즐겨 마시던 커피는 얼마나 하찮아지고 마는가. 따지고 보면 다른 이의 ‘인생 커피’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그 순간 슬퍼지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현실의 우리 자신인 것이다. P 044 - P44

만약 당신이 어느 날 평생 잊지 못할 커피 한 잔을 마시게 된다하더라도 당신 또한 그날의 커피와 똑같은 커피를 다시는 마실 수 없단 이야기다. 그러니 맛있는 커피를 대할 때는 천천히 한 모금씩 입에 머금을 때마다 그 순간에 흐르는 음악과 주변의 공기, 빛과 온도, 앞에 앉은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기 위해 온 감각을 집중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근사한 순간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P 060 - P60

"아메리카노는 에프프레소를 뜨거운 물에 섞는 거잖아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물과 에스프레소는 서로 다른 성분이라서, 서로에게 완벽히 섞이고 녺아들 시간이 필요해요. 그제야 진짜 아메리카노가 되죠." P 138 - P138

사람과의 관계도 그가 말한 아메리카노처럼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이 필요한 것일텐데 나는 왜 그리 성급하게 그를 놓아버렸을까. P 142 - P1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