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일상이란, 그저 반복되는 하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새로운 거 하나 없는,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그런 일상이었다. 저자의 일상도 나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반복되는 일상인건 분명 다를 바가 없 는데, 그는 달랐다. 매 하루마다 감동을 받았고, 고마워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 걸까? 싶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고, 찾고 싶었다. 단순히 문장 속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게 아닌, 내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아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내 일과를 들려주면, 대단하다든가 너무 금욕적이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과 일을 소중히 생각한 결과이자,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라는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며 솔직하게 감동하기 위한 컨디션 만들기라고 할까. - P3

발견하는 것은 감동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감동하는 만큼 발견할 수 있다. P 28 - P28

사람이든 물건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너그러운 마음의 눈으로 내 안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드러나기 않았던 근사한 부분이나 자랑할 만한 모습, 숨어있던 다양한 면모가 보인다. 모두 얼핏 봐서는 보이지 안는 것들이다. P 33 - P33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내게 일어난 모든 일에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며 감사의 말을 반복했다. P 56 - P56

일이나 일상에서 상대방의 편리를 위해 애써 작은 수고를 들이거나 마음을 기울여도 실제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배려가 상대방을 알게 모르게 기분 좋게 만들고 이것이 요리에서는 맛있음으로 연결된다. 일상에서는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쾌적함, 즐거움으로 연결된다. P 83 - P83

주택 한 채와 만난 나는 오늘의 일상, 오늘의 일, 오늘의 모든 것에 깃든 ‘보이지 않은 곳의 몸가짐’을 정비하고 싶어졌다. P 121 - P121

종이컵에 "Thanks!"라고 적어준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닌지도 모른다. 여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잘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에 수고를 들여 감사의 말을 써주다니, 서서히 감동이 스며들었다. 한마디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소중한 것을 배웠다. 늘 감사하다. P 142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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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조금도 아니고 어떻게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서로 행복한 시기가 다를 뿐이다. 자기가 행복할 땐 남을 보지 않아서 서로 엇갈릴 뿐이다. 이 글을 쓰다 네이버에서 ‘행복이란’을 검색해 보니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 뭐야, 언제부터 인생에 그런 복표가 있어야 했던거야. 그럼 지금부터라도 행복해 볼까. 아, 귀찮은데. - P3

인맥이나 팔로맥(follow脈)이나 모두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한ㄴ다. 그러나 인맥의 수나 팔로어 수가 그 사람의 완성도는 아니니 이 숫자의 많고 적음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제일 구려 보이는 사람은 인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인맥이 넓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이다. P 065 - P65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오조오억 명이더라도 나는 누군가가 싫어하는 오조오억 명에 들어가기 싫은 게 사람의 마음. P 085 - P85

그렇게 콘서트에 가기 시작한 지 4년째 봄에는 헬로콘, 여름에는 스콜콘, 겨울에는 헤프닝콘을 꼬박꼬박 가고 있다. 딸이 아이돌 그룹 덕질 할 때 "걔네는 무슨 콘서트를 일 년에 한번 씩해!"그랬는데, 막상 덕질을 해 보니 일년에 서너 번도 적더라고요. P 196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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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을 고민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하면 남들 눈에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 고민한다. 내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아닌, ‘남들 눈’에 보이는 좋은 사람 말이다. 물론 나 역시도 그렇고 말이다. 이런 생각이 워낙 당연한 거였기에, 이게 내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내 스스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벗어나보려 한다. 타인이 보는 내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내가 눈치를 보는 사람이 타인이 아닌, 오롯이 내가 되기를 바라며 올 한해를 살아보려 한다.

대화를 나눌 때 ‘무심코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즐거운 이야기를 해야 해’,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은 금물이야’라고 상대방을 계속 의식하게 됩니다. (중략) 따돌림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한 나머지 친구사이에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의견에 공감하고 있나요? - P5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타인을 많이 의식하는 유형은 쉬는 시간처럼 사람들이 모여 정해지지 않은 주제로 수다를 떠는 상황에 약하다. 얼굴을 아는 정도의 사람들과 우연히 방향이 같아 전철을 타는 등의 상황은 특히나 부담스럽다 P 033 - P33

사람들은 장소에 따라 어울리는 ‘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모범생 같은 행동을 할지, 쾌할한 모습을 연출할 지는 그 장소의 분위기나 평소의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P 039 - P39

메세지를 보고도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거나, 서먹서먹해질지도 모른다며 걱정한다. 다른 친구들은 답을 했는데 나만 답을 하지 않거나 하면 그룹에서 빠지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다는 오해를 사지 않을 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도 친구들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하는 데 신경을 쓰게 된다. P 056 - P56

특히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면 상황과 달리 SNS는 내 모습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친구의 글을 읽고 의견이 좀 달라도 ‘좋아요’를 누르는 일이 많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자랑하는 사진을 보고 ‘왠 자랑질이야!’라고 성질을 내면서도 ‘좋아요’를 누른다. 쇼핑할 때마다 사진을 일일이 올리는 친구,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외출하면 그 풍경을 찍어 올리는 친구의 사진을 보면서도 ‘자기의 일상을 하나하나 다른사람에게 알릴 필요가 있나?’라며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좋아요’를 누른다. (중략)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신의 포스팅에 모두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호의적인 댓글을 달아주면 굉장히 기분이 좋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올린 사진을 보며 자신처럼 ‘이런 사진을 왜 올렸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생각하면 SNS는 상대의 속마음을 매우 읽기 어려운 커뮤니케이션이다. P 076 - P76

타인의 비위를 맞추려고 세상을 사는게 아니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아’라거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라는 등 타인의 평가만을 걱정하는 삶이란 참으로 쓸모없다. 미움받는 것을 걱정하는 대신 자신에게 솔직해지자는 말은 실제로 큰 도움이 된다. P 094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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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문들은 인간 ‘박완서’가, 작가 ‘박완서’가 되기 전에 겪었던 그 사건들이, 훗날 작가 ‘박완서’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 가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분명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겠지만, 이 역시 작가 박완서가 직접 겪었던 이야기이기에 생각보다 강하게 와닿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이 서문집이, ‘박완서’라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기 내지는 수필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머니 책의 서문을 모아 이런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은 김윤식 선생님의 서문집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중략) 놀랍게도 서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리기도 하고 불끈 용기가 솟기도 하고 눈물이 어리기도 합니다. 타인을 생각하고 전체 속에서 자신을 낮추는 가식이 아닌 겸양, 진실과 책임과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반성이 밑받침이 된 오만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 P6

책을 다시 꾸밀 때마다 좀 손을 보려고 다시 읽어보게 된다. 지금의 안목으로 눈에 거슬리는 표현의 과장이나 치졸이 자주 눈에 띄어서 고치려면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못 고치고 만다. 유치함조차 그것을 썼을 당시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의 나타남 같아서 소중한 생각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처녀작을 느즈막이 사십 세에 썼지만 이십 세 미만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섰다고 기억된다. 그래 그런지 그것을 썼을 당시가 암만해도 사십 세 같이 않고 아득하고 풋풋한 젊은 날 같다. P 22 『나목』 재출간 - P22

혼자 사는 여자는 다만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하기만 한 것일까? 아내가 남편 외의 외간 남자에게 한눈 판 건 두말할 여지도 없이 부도덕하고, 이구동성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반면, 남편이 아내 외의 여자를 장난삼아 범한 것에는 그도록 관대하고 떳떳하다고까지 부추기는게 과연 미풍양속일까? P 67 『서 있는 여자』 - P67

이 이야기를 꾸민 나의 첫 번째 소망도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마음이 되어 아이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복동이 또래의 막내 손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략) 이 이야기를 꾸민 내 욕심도 재미 말고 또 하나 있는데 그건 아이들이 자기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남의 생명의 가치도 존중할 줄 아는 편견 없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감사하며 신나게 사는 것입니다. P 162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 P162

곧 6.25가 났다. 오빠와 숙부님이 비명에 죽고, 고향 땅은 북쪽 땅이 되었다. 전쟁의 와중에 죽었으되 전사도 폭사도 아닌, 사상의 대립이 초래한 동족 간의 전쟁이라는 특구성에 희생된 고통스럽고 값 없는 그들의 죽음은 그 후 오랫동안 나에게 악몽으로 남아있다. P 38 『창밖은 봄』 - P38

6.25 때의 체험은 하도 여러 번 욹궈먹어서 6.25 때 내가 어떻게 지냈나는 많이 알려진 셈이다. 그러나 1.4 후퇴 후 텅 빈 서울에 남아서 겪은 일은 유일하게 이 작품에서만 울궈먹었다. 실은 이 경우 울궈먹었단 말도 합당치가 않다. 내가 울궈먹었다는 말을 쓸 때는 체험에다 적당히 소설적인 허구를 가미한 경우인데 이 소설 중에서도 그 시기(이 소설은 1950년 6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의 얘기를 월별로 엮어놓았다)는 의식적으로 허구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사실 묘사만 했다.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내가 과연 그 일을 꿈이 아닌 생시로 겪은 걸까 문득문득 의심스러워질 적이 있다. 이 거대한 도시가 하룻밤 새 텅 비고 인기척의 완전한 진공상태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대는 상상할 수 있는가. P 46 『목마른 계절』 재출간 - P46

여기 모인 글들은 내 개인의 흔적인 동시에 내가 작가로서 통과해온 70년대, 80년대, 90년대가 짙게 묻어나 있는 글들이다.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다가도 우리가 살아낸 시대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문득 뒤돌아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무의미한 현실도 좋은 추억이 있으면 의미 있는 것이 되고, 나쁜 기억도 무력한 현재를 고양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P 142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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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큰 사고 없이 잘 살아가는게 효도라고 생각하는 못난 딸이다. 그저 내 할 몫을 다하고, 엄마 아빠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게 효도라고 생각했다. 20대 중후반 언저리에 급 결혼한다고 부모님께 이야기 했었다. 거의 통보나 다름 없었다. 거기다 내 결혼에 대해 일체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내 돈으로만 진행할 거라고 통보했다. 난 내일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는 것이 당연히 효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걸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애교넘치는 성격도 못되었고, 낯간지러운 말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엄마에게,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아직까지도 말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내 모습은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냥...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곳을 갈 때 엄마, 아빠와 같이 가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이런 일상을 조금 더 많이, 그리고 같이 보내야지.

"엄마와 내가 병실에서 계속 기다려온 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경험이었습니다." - P5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부모와 이별하는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내 경우엔 서른세 살때였습니다.

우리 엄마만큼은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고,

그날이 올 때 까지도 굳게 믿었지만…

엄마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 P12

"아직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년이 지는데도

꽤 오래전에 해지한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를

아직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이면 참 자주 전화하셨었는데 ….



이제는 압니다.

한밤중에 계속 전화벨이 울리는 것도

늦게까지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도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그런 엄마의 번호이기에

나는 평생 지우지 못할 것 같습니다. - P17

"지뢰 같은 추억"

내가 자란 이 동네에는

여기저기에 지뢰처럼 추억이 묻혀있는데,

그건 가까운 마트도 예외는 아니라서

그 지뢰는 가차 없이 나를 덮쳐왔습니다.

건강하던 시절의 엄마 곁에는

언제나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인 어린 내가 있었습니다.

그때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앞으로 다시 찾아오는 일이 있을까요.

"1주기"

엄마의 1주기는 남겨진 사람들이

제각기 1년이라는 ‘세월의 약’의 효과를

확인하는 자리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1주기는

엄마가 추억이 되기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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