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의 시끄러움은 도시만의 자랑이 아니었다. 오히려 농촌 더 시끄러울 수도 있었다. 색깔도 다양한 선거운동 차량이 … 중략 … 줄줄이 이어지는데, 집들이 대게 도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고 늙은이들 귀가 대체로 어두우니 스피커 음량이 무지막스레 높았다. - P162

요새 가장 만만한 타작거리가 이태백이란다. 스카이를 나온 젊은 놈이 왜 시골에서 어영부영하고 있는가. 모자라고 부실하고 능력 없고 그러니 도시에 못 살고 기어이 내려와 농촌 백수로 빌빌대는 거지 …….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암튼 그러니 이태백들이 다 수도권에 있는 거다. 촌구석에는 백수 짓도 못한다. 좀 있어보이려고 해도, 말질에 된똥 쌀 판이니 배겨날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 P190

민주주의로 뽑아놓은 시장 군수 것들 다 감옥 가 있는 거 보면, 민주주의란 것도 빛깔 좋은 호박댕이여. 그래도 민주주의밖에 방법이 없다니께 따르기는 하는디 - - P200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도 솟값이 안 오른다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떠들던 어떤 박사 말대로, 그 정도 죽어서도 솟값이 안 오를 만큼 이 땅에 소가 많은 것일까. 그렇게 한국 소가 많다면 미국 소는 왜 또 수입하는 걸까? - P235

어떤 노인도 소리 질렀다. "먼저 사람이 돼야지, 사람이! 아무리 장기 잘 두면 뭐해. 사람이 안 돼먹었는데!"

무서웠다. 울면서 뛰쳐나갔다. 아빠가 노인들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나를 뒈지게 야단쳤다. - P37

엄마도 분해서 소리쳤다. "다시는 거기 가지 마! 아니, 내가 못가게 할 거야! 그깟 놈의 장기 끊어. 그딴 거로 애를 왜 데리고 다녀서 애를 욕먹게 해!" - P39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푹 빠져 있던 아들 녀석은 손님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녀석의 머리통을 툭 건드리며, 인사드려야지, 했다. 녀석은 아이씨, 할 뿐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좋게 말하자면 숫기가 없고 나쁘게 말하자면 버르장머리가 없다. - P251

초등학생이 되자 당연하게도 힘이 세졌다. 녀석이 인정사정없이 날리는 주먹이나 발길질에 얼굴이나 사타구니 같은 데를 맞으면 무척 아팠다. 아내는 아이 버릇 나빠지게 왜 맞아주느냐고 힐난하곤 했다. "애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거 아냐. 아빠 말고 누가 맞아주겠어" - - P277

자식 많은 늙은이는 꿈에도 상상 못 했던 주차장 건설 공사를 벌여야 했다. 마당이 넓다고 소문난 집도 마당을 더 넓혀야 했다. 주차장 만들고 마당 넓히는 김에 아예 집을 새로 지어버리는 집이 속출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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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저자를 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고,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야공주의 흔적을 찾기 위한 저자의 답사는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히미코 여왕=수로왕의 딸, 가야공주’ 라는 주장이 아직까지 받여들여지는건 아니나, 적어도 야츠시로를 비롯하여 갓파(가랏파), 레이후 신사, 에비야 고원, 선견왕자 이야기, 오레오레 데리이다 축제 등 저자가 가야와 연관이 있을거라고 생각한 그 모든 것들은 현재 가야계 도래인 집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고 관련 서적도 나오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 저자가 주장한 가설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고대사는 지금도 수 많은 미스테리에 쌓여있으니까!

서기 187년 일본 규슈 지역을 통치한 가야공주. 그녀의 부왕은 김 수로왕이고 어머니 허왕후는 인도에 본국을 둔 아유타국 공주였다. 어머니의 꽃가마 배가 혼례길에 오른 것은 서기 48년 여름, 두 달 가까운 항해 끝에 마침내 낙동강 어귀에 닻을 내리고 예식을 올림으로써 수로왕의 부인이 되었다.

이들 사이에는 10남 2녀의 자제가 잇엇으며 두 딸 가운데 한 명이 일본에서는 ‘히미코’라는 이름으로 건국신화 속 인물로 전해지고 있는 가야공주로, 서기 103년 거북선을 타고 큐슈로 건너가 가락의 또 다른 나라를 세웠다. 이 여성은 남동생 선견왕자와 함께 일본의 현 큐슈의 야쓰시로시 일대에 ‘야마이’국이라는 일본 최초의 고대왕국을 세운 여왕과 일치한다

일문(日文)으로 적은 문장은 한문을 풀이한 번역이 아니라, 한문의 위치를 그들이 창안한 법칙에 따라 바꾸면서 군데군데 가나를 박아서 읽은 일본식 한문읽기이다. 더 설명할 것 없이 어계가 다르고 구문법이 다른 한족의 글을 여지없이 일본어로 둔갑시켜 읽은 절묘한 기교를 그들 일본인은 긴 세월 끝에 만들어 낸 것이다. P085 (일본식 한문 읽기의 함정) - P85

깡마른 체구에 곧추세운 허리가 유난히 꼿꼿해 보이는 미노다씨는 내가 야쓰시로에 온 내력을 듣더니 작업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자신이 쓴 《야쓰시로시의 역사》라는 책자 두권을 선물로 주었다. 국판 462쪽의 두꺼운 책으로 책장을 넘기니 삽화가 많이 들어 있어 무엇보다 반가웠다.

우선 눈길이 간 것은 ‘최초의 야쓰시로 성’이라는 설명이 붙은 그림이었다. 해발 376m의 핫초야마 북쪽 비탈의 작은 봉우리마다 옛 성터가 표시되어 있는데 묘견궁을 향해 8개의 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삥 둘러 있었다. 그랬구나, 야쓰시로는 ‘여덟개의 성’ 이었구나! - P110 - P110

여왕의 궁터를 찾는 일은 또 하나의 가설로부터 출발했다. (중략) "아, 고미도상 말인가요? 묘켄님과 함께 온 신이지요." 말하자면 고미도상은 방위를 담당한 신으로서 그는 묘켄을 모셨다는 것이다. 현지에서는 ‘묘켄상’으로 불리는 일본 왕조의 첫 왕 비미호가 거북을 타고 뱀을 앞세워 상륙해서 70여 년간의 정착을 거쳐 신으로 받을리는데 이 묘켄상이 받드는 신, 즉 ‘레이후’님이라는 신을 모신 사당은 일본국 최초의 신사였다. - P128 - P128

‘언렴의 아들 신무(진무)가 즉위하여 다시 텐노로 칭호를 바꾸고 야마토주로 옮겨 다스렸다’ 이는 여왕 비미호 33세 손의 본격적인 일본 열도 개척에 관한 《신당서》의 증언이다. 즉 당시 왕인 진무가 즉위하면서 ‘텐노(천황)’이라 호칭을 바꾸고, 큐슈의 쓰쿠시를 더나 지금은 혼슈라 부르는 대화주로 왕도를 옮긴 사실을 밝히고 있다. 결국 진무는 일본의 역사가 최초로 받드는 천황이 됐다. 또한 그의 등장은 야마이의 시대가 끝이 나고 이른바 야마토 조정의 시작을 의미하며, 이로코 미모토의 칭호는 사라지고 텐노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분명 일본인의 역사다. 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삶의 뿌리를 좇아 해매던 나의 왜국 탐사도 이쯤에서 마감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 인줄 안다. -P234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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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국인으로서 진하승을 모른다는 것은 아일랜드 사람이 미국의 케네디가 아일랜드 사람임을 모르는 것과 같고, 스코틀랜드 사람이 미국의 카네기가 스코틀랜드 사람임을 모르는 것과 같은 셈이다. 그리고 이미 이민간 지 150년도 더 지난 하타씨의 진하승을 여전히 한반도 도래인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일랜드 사람이 케네디를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말하고, 스코틀랜드 사람이 카네기를 스코틀랜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결국 하타씨와 진하승은 한민족 이민사에서 첫번째 보이는 위대한 성공사례 정도로 기억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P 091 - P91

히에이산 연력사는 난폭한 승병으로 악명 높았다. 연력사는 창건 이래 왕족과 귀족의 기진으로 많은 장원을 소유하여 든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불교세력으로 성장했다. 돈이 생기니 이를 지키기 위해 승병까지 조직했던 것이다. 나라 흥복사와 세력다툼이 일어나면서 급기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됐다. 이를 남도북령이라고 했다. 남도는 흥복사, 북령은 연력사를 말한다. 남도북령의 승병들이 싸우면서 불태운 절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들은 무사들도 압도하는 무력을 갖고 있었다. - P195

이렇게 전투와 합전으로 군사력을 키우고 신불을 앞세우고 나오는 승병들을 조정에서도 감당하지 못했다. 이리하여 조정과 귀족은 경호와 진압을 위해 무사를 키웠다. - P198

일본에선 오래된 전문 상점을 노포라 쓰고 ‘시니세’라 읽는데, 그냥 오래된 것이 아니라 한자리에서 4대, 5대를 이어가며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는 전문 상점을 말한다. 단팥죽 장사를 해도 남에게 꿀릴 것 없이 당당히 살아가는 일본인의 생활 자세는 부럽고 배울 만 하다.

모두가 그 전문성을 높이 사고 장하게 생각해준다. 이거 해서 돈 벌면 때려치우고 딴 것 하겠다는 자세나 내 자식은 큰돈 되지 않는 이런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는 전통이 지켜지지 않는다. 전문인의 자부심, 장인정신을 존중하는 자세가 낳은 전통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정신적인 하나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된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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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



과연 그들은 광복 이후의 한반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후대에 들어 한반도가 둘로 갈리고, 갈린 지역에서도 또 서로 할퀴고 물어 뜯는 미래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해보긴 했을까?’



감히 생각해보건데 그들이 바란 미래는 이런 미래가 아니었을거다. 그들이 원하는 결과와는 다르게 되어버린 지금을 생각하면 조금은 씁쓸하다.

우리는 귀국정부가 한국인이 ‘합병‘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귀국 정부가 우리 국민 중에서 쓰레기들인 몇몇 간사한 부랑자들 때문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바랍니다.

한국인을 옹호해 주십시오. 한국인을 옹호함으로써 귀국은 권리와 정의를 옹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인을 수호해 주십시오. 한국인을 수호함으로써 귀국은 오랜 친구를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국민회선언서-

멀리로는 유학자들이 300년이나 당론이 나뉘어 조선이 멸망하게 되였고,

가까이로는 13도 지사들이 서로 다투느라 새로운 건설을 어지럽혔다.

이 같은 삼분오열로 일어난 비극을 눈앞에서 보고,

그 고통을 맛본 우리는 마음이 바르게 원하는대로 모두 모여서 힘을 합하자고 요구한다.

요즘 러시아에 의지하자, 일본에 의지하자, 중국에 의지하자, 미국에 의자하자 하는 선비와

문(文)이다, 무(武)이다, 남(南)이다, 북(北)이다 하는 의견과 주장이 뒤섞이고 뒤숭숭하여 갈 곳을 모른다.

1910년 8월 29일 융희 황제가 주권을 포기하는 순간, 그 주권은 국민과 동지들이 돌려 받은 것이다.

삼보(三寶)를 상속한 사람은 완전한 통일조직을 만들어야 비로소 그 권리와 의무를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대동단결 선언서-

일본의 전쟁을 즐기는 나쁜 습관은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지킨다고 말하더니

마침내 하늘에 반역하고 사람을 거스르면서 보호합방을 강제하고,

일본의 맹세를 어기는 못된 버릇은 영토보존이니 문호개방이니 기회균등이니 떠들다가

금방 의리도 잊고 법도 무시하며 강제로 조약을 맺었다.

아! 일본의 비천한 무인들이여. 작은 벌과 큰 타이름이 너한테는 복이니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가며, 대륙은 대륙으로 돌아갈지어다.

한마음 한 뜻인 2,000만 형제자매여

국민이 본래 갖고 있던 권리를 자각한 독립임을 기억할 것이며

동양 평화를 보장하고 인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자립임을 가슴에 새길 것이며

하늘의 밝은 뜻을 받들어 모든 그릇된 그물에서 벗어나는 건국임을 굳게 믿고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 대한 독립선언서-

일본 군국주의는 지금 중국으로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양제도(태평양) 역시 장차 그 손톱으로 할퀴고 어금니로 깨물 것이다.

연합국들은 세계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극동 평화가 꼭 필요한 조건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지금 조선 독립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앞으로 이번 세계 대전보다 한층 더 가공할 새 전쟁을

일본 군국주의가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 독립선언서-

우리 민족은 정당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자유를 추구할 것이나

만일 이로써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민족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온갖 자유행동을 취하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자유를 위하여 뜨거운 피를 흩뿌릴 것이니

우리 민족의 정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은 일본에 대해 영원한 혈전을 선언하리라

-2.8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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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저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이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 같은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지금만해도 딱 그렇지 않은가? 두 팔, 두 다리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데도, 난 오로지 내 자신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도..이제라도, 조금씩 내 마음가짐을 바꿔보고자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나름 위안이 된다. 내 자신만 생각 할게 아니라, 오로지 남으로써 타인을 바라볼게 아니라, 또 다른 시선에서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보는 것. 어렵겠지만 해봐야지!

나는 이들을 만나면서 학교에서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 진리와 지혜를 배웠다. 저들이 몇 십 년씩 몸으로 만들어 놓은 지혜와 지식을 불과 몇 시간, 며칠의 만남을 통해 순식간에 도둑질 할 수 있었으니, 이런 행복한 도둑질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들을 만나는 순간,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까지 덤으로 얻게되었다. 행복했다.

나는 십원짜리 인생이야.

아니, 화폐 가치가 절하되어 ‘백원 짜리 인생‘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다방이나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담이나 종업원들이 다가와 숨 돌릴 틈도 없이

잽싸게 십 원 짜리 동전 한 닢을 주고는 제발 나가달라며 몸을 마구 밀어내.

내 모습이 다른 손님에게 혐오감과 불안감을 준다는 것이지. - P23

우리가 사는데 F가 두개 필요해.

Forget (잊어버리라), Forgive (용서하라)

사고 난 뒤 그 고통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 누구 잘못이 어딨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 받는거야 . - P25

"참을 인자 세번이면 왜 살인도 면할 수 있는지 알았어요. 그만큼 그 고통을 참는게 어려웠지. - P44

어느 날 가게가 문을 닫을 정도로 곤궁해졌을 때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십시일반으로 모은 3천만 원 짜리 통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당신 없으면 우리가 걷지를 못하니, 당신은 꼭 돈을 벌어라" 하며

막무가내로 통장을 내밀더라고 했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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