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처방소 1
오일구 지음 / 코치커뮤니케이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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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명: 색채처방소

 

주모자: 오일구(519라는 표식을 남김. 예전에도 몇 건의 사건을 주동한 경험이 있으나 이 건을 위해 새롭게 6년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짐. 스스로를 색채방랑자라고 칭함)

 

사건개요:

1.     색채처방소는 환자에게 색을 처방해 질병을 치료하는 곳으로, 비엘과 도원이라는 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음.

2.     비엘과 도원은 노란 송장 해프닝이라는 기사 사진 속에 실린 CCI 소속의 인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투명 물질을 둘러싼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됨.

3.     사건을 파고들던 비엘과 도원은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고조선 이전에 존재하던 색의 터전 황공과 그곳에 거주하면서 우리나라의 순색을 만들어냈던 아홉 가문, 또한 이들 아홉 가문과 색을 보호하는 호위가문이 얽혀 있는 복잡한 사건임을 알게 됨.

4.     이들이 사건을 추적해 가는 동안 황공과 황공의 멸망을 불러온 사폐를 추적하는 일에 CCI, C2P, DE 케미칼 등 여러 조직들이 뒤엉키기 시작함.

5.     서로에 대한 호감 속에서 도원과 호위가문의 호위장은 3900년을 이어온 미스터리를 풀어나갔던 것으로 보임.

6.     자세한 내용은 색채처방소 원본 1, 2권을 참조하기 바람.

 

특이사항:

1.     이 사건은 색이라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보지만 사건의 소재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관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킴.

2.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색이 아닌 우리의 순색 9가지를 고유의 언어로 설정함으로써 사실감을 높여줌(9가지 순색의 이름이 정말 사실인지는 스스로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함).

3.     3900년에 걸친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얽히고 설킨 사람들과 가문들의 이해관계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사건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지만 사건 초기에 비해 후기에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 결말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다소 매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임.

4.     감탄사를 절로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반전을 토대로 결말까지 사건에 몰입하게 하는 장치들이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음.

 

주모자의 동기

1.     주모자는 사람, 개성, 감정, 시대를 흐르는 사상이나 역사를 색으로 표현함

2.   주모자는 잡색(인간의 본성/순수한 마음을 가리는 잡다한 것들)이 아닌 순색(인간의 본성/순수한 마음)을 보기를 원하면서 이렇게 말함. 우리가 같은 곳을 보고 있다고 같은 것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인간이 인간을 보지 못한다면 무엇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사랑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본문 중에서)

3.     주모자는 CCI, C2P와 같은 가상의 조직이 오로지 서로의 이권을 위해 대립하는 구조, 또한 DE 케미칼 같은 외국 기업이 돈과 권력으로 지도층을 뒤흔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 세계를 비꼬아 말하고 있음.

4.   주모자는 색에 빗대어 옛 선인들의 사상과 꿈이 사라지지 않고 후손에게 온전히 이어져 그 사상과 꿈이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함. 조상들이 추구했던 색의 본질은 희미해졌고, 후손들이 추구하는 색(이상)도 달라졌습니다…. 조상들께서 꿈꾸던 세상은 사라졌지만 후손들은 다시 색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결론

본 건은 색을 소재로 한 새로운 사건으로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는 역사 추리물의 형태를 띄고 있어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관계자에게 어울리는 사건이지만 단순한 추리물 이상의 사상이 담겨 있음으로 모두가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사건이라고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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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처방소 1
오일구 지음 / 코치커뮤니케이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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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명: 색채처방소

주모자: 오일구(519라는 표식을 남김. 예전에도 몇 건의 사건을 주동한 경험이 있으나 이 건을 위해 새롭게 6년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짐. 스스로를 색채방랑자라고 칭함)

 

사건개요:

1.     색채처방소는 환자에게 색을 처방해 질병을 치료하는 곳으로, 비엘과 도원이라는 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음.

2.     비엘과 도원은 노란 송장 해프닝이라는 기사 사진 속에 실린 CCI 소속의 인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투명 물질을 둘러싼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됨.

3.     사건을 파고들던 비엘과 도원은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고조선 이전에 존재하던 색의 터전 황공과 그곳에 거주하면서 우리나라의 순색을 만들어냈던 아홉 가문, 또한 이들 아홉 가문과 색을 보호하는 호위가문이 얽혀 있는 복잡한 사건임을 알게 됨.

4.     이들이 사건을 추적해 가는 동안 황공과 황공의 멸망을 불러온 사폐를 추적하는 일에 CCI, C2P, DE 케미칼 등 여러 조직들이 뒤엉키기 시작함.

5.     서로에 대한 호감 속에서 도원과 호위가문의 호위장은 3900년을 이어온 미스터리를 풀어나갔던 것으로 보임.

6.     자세한 내용은 색채처방소 원본 1, 2권을 참조하기 바람.

 

특이사항:

1.     이 사건은 색이라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보지만 사건의 소재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관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킴.

2.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색이 아닌 우리의 순색 9가지를 고유의 언어로 설정함으로써 사실감을 높여줌(9가지 순색의 이름이 정말 사실인지는 스스로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함).

3.     3900년에 걸친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얽히고 설킨 사람들과 가문들의 이해관계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사건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지만 사건 초기에 비해 후기에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 결말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다소 매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임.

4.     감탄사를 절로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반전을 토대로 결말까지 사건에 몰입하게 하는 장치들이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음.

 

주모자의 동기

1.     주모자는 사람, 개성, 감정, 시대를 흐르는 사상이나 역사를 색으로 표현함

2.   주모자는 잡색(인간의 본성/순수한 마음을 가리는 잡다한 것들)이 아닌 순색(인간의 본성/순수한 마음)을 보기를 원하면서 이렇게 말함. 우리가 같은 곳을 보고 있다고 같은 것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인간이 인간을 보지 못한다면 무엇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사랑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본문 중에서)

3.     주모자는 CCI, C2P와 같은 가상의 조직이 오로지 서로의 이권을 위해 대립하는 구조, 또한 DE 케미칼 같은 외국 기업이 돈과 권력으로 지도층을 뒤흔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 세계를 비꼬아 말하고 있음.

4.   주모자는 색에 빗대어 옛 선인들의 사상과 꿈이 사라지지 않고 후손에게 온전히 이어져 그 사상과 꿈이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함. 조상들이 추구했던 색의 본질은 희미해졌고, 후손들이 추구하는 색(이상)도 달라졌습니다…. 조상들께서 꿈꾸던 세상은 사라졌지만 후손들은 다시 색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결론

본 건은 색을 소재로 한 새로운 사건으로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는 역사 추리물의 형태를 띄고 있어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관계자에게 어울리는 사건이지만 단순한 추리물 이상의 사상이 담겨 있음으로 모두가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사건이라고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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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능력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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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열면 능력이 임합니다. 상처가 치유되고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생명력으로 충만해집니다. 생각과 언어가 하나님을 닮아 갑니다.

 

 

우리는 천만 기독교인 시대를 정점으로 기독교인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만 가는 시대, 또한 교회가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고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교회들은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에 의존하기도 한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것일까 

 

 

묵상과 기도로 얻은 깨달음과 체험을 성도들과 나누고자 하는 강준민 목사님은 <말씀의 능력>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려울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듭 기본을 다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은 말씀입니다.곧이어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말씀이기 때문이다 

 

 

<말씀의 능력>1부 생명, 2부 훈련, 3부 축복의 통로라는 세가지 주제 아래 말씀이 지닌 10가지 능력들을 성경 본문과 사례들을 통해 설명한다. 말씀이 지닌 10가지 능력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를 올바르게 세우는 힘이다. 말씀은 단순히 문자로 적힌 글이 아니다.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와 사랑의 표현이며, 우리가 복음을 믿고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이를 통해 영적 대각성을 경험하게 한다. 또한 시련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든다.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죄인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며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 회개의 물결이 솟구치고 이것이 다시 부흥의 역사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능력 있는 말씀을 삶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를 히브리서 4:2절의 말씀을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은 말씀의 유익을 누리지 못합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4:2)

  

 

그렇다. 이 시대는 말씀을 듣지만 믿지는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말씀대로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대신 인간적인 노력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 말씀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하는 대신 미움, 시기, 질투가 넘치고 세상 사람들처럼 권력, 재물, 명예를 위해 끝없는 다툼을 이어나간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에 교회의 부흥을 오로지 숫자와 외형적 성장으로만 파악한다. 나 자신은 또 어떠한가? 말씀이 주시는 능력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말씀을 통해 위로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그들을 축복하는가?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는가? 부끄럽지만 그렇지 못한 내 모습을 본다. 그저 내가 편한대로 말씀을 받아들였던 나 자신을 회개한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말씀의 회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고, 심령의 부흥을, 가족의 부흥을, 교회의 부흥을 체험할 수 있다. 말씀 충만을 통해 성령 충만을 경험할 수 있다. 숫자와 외형적 성장이 아닌 하나님이 예비하신 부흥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오로지 말씀을 통해서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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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괴테를 읽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류시건 옮김 / 오늘의책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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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xx

<폰 괴테를 읽다>의 첫 장을 열었다. 어린 시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비극적 사랑의 희열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던 바로 그 괴테의 작품이다. 첫 장을 넘겨보니 100살이 된 노학자 파우스트는 맹인이 되지만 심안은 더욱 밝아진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파우스트였구나. 괴테하면 떠오르는 작품 중 가장 대작으로 구상에서 완성까지 60년이 걸렸다는 파우스트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작품이지만 막상 책을 펼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바로 그 책이다. 에휴, 한숨이 나온다.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파우스트는 너무 어려웠다. 다 읽기는 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하얀 백지처럼 변해버렸던 그 기억이 다시 솔솔 떠오른다. 이번에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1부를 펼치자 바로 졸음이 쏟아진다. 내일부터 열심히 읽어야겠다.

 

 

20144xx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가? 책을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가끔씩 보이는 오탈자 때문에 책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에라, 맘 편하게 읽자. 괴테라는 천재가 60년에 걸쳐 쓴 책을 한 번에 다 이해하고야 말겠다는 내가 더 웃긴 거다. 맘을 편히 먹자 책이 조금씩 읽혀진다. 희곡 형태라 빽빽하지 않아서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도 점점 빨라진다. 1부를 읽는 동안 문득 성경 욥기의 내용이 떠오른다. 주님과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내기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상 지식의 한계와 인간으로써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사실에 좌절한 파우스트 박사는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말한다면 그때는 나는 기꺼이 망하겠다.(p.90)고 말하며 메피스토펠레스와 영혼을 담보로 한 계약을 맺는다. 마법의 힘으로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는 순진한 처녀 마르가르테(그레첸)를 유혹해서 타락시킨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로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인 마르가르테가 사형 언도를 받자 파우스트는 고통 가운데서 그녀를 탈출시키려 하지만 마르가르테는 이를 거절한 채 하나님을 심판을 받은 후 영혼의 구원을 얻는다. 이 장면을 끝으로 1부가 마무리된다. 파우스트는 괴테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하는데 1부에 나온 파우스트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아, 내 가슴에는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

그것들이 서로 떨어져 나오려고 한다네.

하나는 음탕한 정욕을 불태우며

현세에 집착하여 떨어지지 않는다네.

또 하나는 어떻게든 먼지 낀 속세를 피하여,

선현이 사는 높은 영의 세계로 오르려 하네.(p. 64)

 

 

결국 파우스트는 타락한 영혼에 져버린 패배자일 뿐인가? 내일 2부를 읽어봐야겠다.

 

2014 4 xx

늘 파우스트를 다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2부를 펼쳤다. 파우스트를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중간중간 삽입되는 수많은 시들과 신화와 비유를 사용한 내용 전개 때문인 것 같다. 잠깐 읽다 책을 내려놓는다. 머리 좀 식혀야겠다.

 

 

 

2014 4 xx

2부에 나오는 파우스트는 대마법사로 변신해 황제를 도와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전설의 미녀인 트로이의 헬레나를 저승에서 불러내 그녀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들이 죽자 헬레나는 아들을 쫓아 지옥으로 떠나버린다. 홀로 남은 파우스트는 왕에게서 하사 받은 땅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사는 땅으로 만들 상상을 하면서, ‘멈추어라!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p.583)라고 외친다. 계약에 따라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잡으려는 순간 천사들이 나타나 파우스트를 구원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책을 덮지만 상당히 당황스럽다. 파우스트가 왜 갑작스레 구원을 받는 거야??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2014 4 xx

파우스트는 어렵다. 시대적 배경과 신화적 배경 등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과연 괴테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 나는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걸까? 파우스트의 구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책을 다시 훑어보자 문득 이런 구절들이 눈에 띈다.

 

 

“산더미 같은 책들로 굴속은 비좁기 한이 없다..

이것이 너의 세계다! 이것을 세계라고 할 수 있는가?...

신은 살아 있는 자연 속에서 살라고,

인간을 만들어서 넣어 주셨건만(p.32)

 

 

시끄러운 시간의 여울 속으로

사건의 와중으로 뛰어들자!

거기에서는 고통과 쾌락,

성공과 불만이 번갈아 덤벼들어도 좋다.

쉬지 않고 활동해야 비로소 남자다.(p.92)

 

 

자유와 생명은 날마다 싸워서 쟁취하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함께 살고 싶다.

그러면 나는 그 순간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어도 좋을 것이다.

멈추어라!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p.583)

 

 

종교적인 구원은 논외로 하고 사람이 사는 모습만을 보자. 파우스트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생각이라는 혹은 사상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살아 있는 삶 속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와 생명은 시끄러운 시간과 사건 속에서 날마다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 싸움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백성들을 위한 싸움이다. 결국 사랑의 힘이다. 현실 속에서 부딪치는 사랑의 힘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과 능력은 모두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오직 사랑의 힘만이

사랑하는 이를 인도해드립니다!(p.592)

 

 

“언제나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할 수 있습니다.(p.601)

 

 

2014 4 xx

폴레옹이 인정했던 천재 괴테. 괴테의 삶이 녹아있는 파우스트.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지금도 나에게 속삭인다. 삶의 모습을 한 번에 다 알 수는 없다고. 끝없이 노력하며 애써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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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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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꼴: 김별아 작가님, 반갑습니다. 예전에 <미실>이라는 작품으로 만나 뵌 이후로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미실>이라는 작품 외에도 여러 작품들을 쓰셨죠??
김별아: 감자꼴님, 반갑습니다. <미실> 이외에도 <백범>, <논개>,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등의 작품을 발표했답니다.
 
 
감자꼴: 이번 작품 <영영이별 영이별>은 개정판인 것 같던데요?
김별아: , 맞습니다. 2005년에 초판을 발표한 후 10년이라는 세월을 덧입혀서 2014년에 다시 펴내게 되었습니다.
 
 
감자꼴: 영영이별 영이별은 무엇에 관한 작품인가요?
김별아: 잘 아시겠지만 조선의 제6대 왕 단종은 숙부였던 세조에게 쫓겨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됩니다. 단종의 죽음을 슬퍼한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슬퍼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단종의 부인이었던 정순왕후가 아닐까 싶어요? 단종을 향한 정순왕후의 지극한 사랑이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감자꼴: 작품을 보니 49에서 0까지 역순의 형태로 단락을 써내려 가셨던데요?
김별아: 눈치채셨군요^^ 이 작품은 죽음을 맞이한 정순왕후의 혼령이 중음에 머무는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답니다. 단종의 죽음으로 홀로 65년을 살아온 정순왕후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살아 있는 귀신이라고 칭해졌던 여성들의 아픔과 서러움, 저잣거리의 이름 없는 아낙들의 삶에 대해서도 나누고 싶었고요.
 
 
감자꼴: 사실 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별아: 어떤 생각이죠?
감자꼴: 시간을 거슬러 회고하면서 0이라는 시점에 도착한다는 것은 정순왕후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었던 개인적인 고통과 분노, 소소한 기쁨과 행복 등 모든 감정과 기억들을 내려놓는다는 의미, 달리 말하면 모든 세월을 내려놓는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별아: 모든 세월을 내려놓는다?
감자꼴: 단종과 처음으로 만나 애틋한 사랑을 시작했던 열다섯 살의 어린 신부로 되돌아가서 오직 단종만을 바라보며 사랑하고자 했던 정순왕후의 단 한 가지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홀로 지냈던 65년 간의 세월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지 않았을까요?
김별아: 그렇다면 감자꼴님은 <영영이별 영이별>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감자꼴: 물론 영이별이란 표현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이별 다리, 영도교에서 헤어져 결국 살아생전에는 서로 볼 수 없었던 것을 뜻하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삶 혹은 삶에 대한 기억과의 영원한 이별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뜨겁기 음욕보다 더한 것 없고
독하기 분노보다 더한 것 없네.
괴롭기 몸보다 더한 것 없고
즐겁기 고요보다 더한 것 없네.(p.15)
 
 
나는 차츰 당신을 향해 가고 있는데, 애당초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던 여든두 해는 세간에 슬쩍 부려두고 떠나려는데, 긴 목숨만큼이나 질기고 모진 추억이 갖풀처럼 끈끈하게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홀가분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당신 곁에 서려면 누항의 먼지와 때는 다 털어 벗어놓고 가야만 하겠지요(p.117)
 
 
소설의 여러 곳에서 드러나듯이, 모든 기억과 감정을 떨쳐낸 영원한 고요함 속에서 단종과의 만남만을 생각했던 정순왕후의 사랑이 여기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 영이별은 역설적으로 단종과의 새로운 만남을 위한 첫 걸음이라 볼 수 있겠죠. 중음에 있던 정순왕후의 혼령에게는 다른 어떤 선택도 필요 없고 오로지 단종과의 만남만이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김별아: 삶과의 이별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감자꼴: 거기에 삶의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단종이 죽은 이후 정순왕후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고 65년을 더 살아야 했던 것은 삶이 가진 거부할 수 없는 명령, 즉 삶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라는 것과 그 삶이 지닌 신비 때문이었겠죠.
 
나는 시간을 믿기로 하였습니다. 기꺼이 그를 받들기로 하였습니다. 어떻게든 흐르고야 마는 시간을, 시간만이 해결하는 수다한 삶의 신비를. (p.116)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있듯이, 주어진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삶을 다 살아야만 영원한 이별도 가능하겠지요. 그러면서 이런 삶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법이 결국은 사람이라고 정순왕후는 고백하고 있지요.
 
 
김별아: 단종과 정순왕후를 그토록 힘든 삶으로 몰아간 이들도 사람이었죠.
감자꼴: 그렇지요. 혈육이기에 믿고 싶었던 세조와 그 무리들은 그들을 내쳤지만 단종과 정순왕후를 보듬어준 이도 결국 사람이었죠. 그들이 있었기에 정순왕후가 삶을 온전히 끝마치고 단종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세상 권력을 다 가진 자처럼 보이지만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결국 스스로를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몰아넣는 이들을 보여주면서 사람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다고 말하지만 먹사과 하나를 나눠주는 이, 함께 울어주는 이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래도 사람이 답이라고 말씀하신 것 아닌가요?.
 
 
사람이니까 그러할 수 있다고. 오직 사람만이 사람에게 그토록 집요한 괴로움과 슬픔을 줄 수 있다고. (p.243)
 
사람에게 그토록 가혹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지만, 온기를 나누어 괴로움을 어루만지고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사람뿐이랍니다. (p.254)
 
 
김별아: ^^
 
 
감자꼴: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정순왕후의 은밀하고 간절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 드리고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별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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