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하라 하쿠슈 시선 민음사 세계시인선 54
키타하라 하쿠슈 지음, 양동국 옮김 / 민음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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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하라 하쿠슈의 시는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감각적인면이 있습니다. 더욱이 이 책은 일본어로 된 원문도 같이 소개하고 있어 하쿠슈의 시에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네요!
(개인적으로 ‘고양이‘와 ‘푸른 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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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침묵 열린책들 세계문학 13
베르코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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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저항(레지스탕스) 문학가 베르코르의 소설들을 모아놓은 선집이다.

베르코르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거친 저항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학적 표현과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설이 잔잔하게 흘러가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절절하다. 한 마디로 ‘고요한 저항‘인 셈이다.

작가는 이런 ‘고요한 저항‘의 대상들을 주로 ‘무력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사람‘들과 ‘방관자‘들로 세워 우리가 비슷한 상황에 빠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또한 동시에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처참히 무너지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가의 잘못된 이념과 강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한 ‘바다의 침묵‘이 있다.
1940년대 초, 독일이 프랑스를 침략하기 시작하던 시기, 어느 프랑스의 작은 집에 독일군 장교가 찾아와 숙소겸으로 그곳에 잠시 묵게 된다. 그 집에는 할아버지와 그의 조카딸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침략자나 마찬가지인 그에게 시종일관 침묵을 지킨다. 그 독일군 장교는 자신은 프랑스를 아주 사랑하며, 이번 전쟁이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한 과정 중 하나로 프랑스의 아름다운 문학과 정신이 독일을 온화하게(?) 바꾸어 줄 것이라는 등등의 말을하기 시작한다. 또한 군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나타나 매일같이 안부인사를 건낸다. 이에 할아버지와 조카딸이 어느 정도 그의 진심을 알아주려던 때, 어느날 갑자기 그는 야전군으로 지원했다며 작별인사를 한다. 이유인 즉슨 동료 군인들의 말(독일이 프랑스를 먹을 것이다, 서로 조화가 아닌 침략일 뿐이다 등)을 듣고서 그제서야 이 전쟁의 의미를 깨달았고 자신의 생각이 한낱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떠나기 직전, 할아버지의 조카딸은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그에게 ‘안녕히‘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장교는 이 말에 매우 인간적인 환한 미소로 답하고 결국 떠난다.

언뜻 보면 독일 장교가 굉장히 위선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떻게 자신이 좋아하는 나라를 침략하는 주제에 그 나라의 문화나 가치를 찬향하다니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다르다. 소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의 배경과 행동의 이유가 어느 정도 추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음악가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들은 프랑스에 대한 무한한 환상. 그가 군에 입대한 것도 프랑스를 보기 위한 목적도 있기에 그가 얼마나 프랑스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전쟁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그 장교는 어떻게 됬을까? 아마 그저 평범한 관광객으로서 프랑스에 와 그 집 할아버지와 조카딸과 친분을 나눴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군인으로 프랑스에 왔고, 그런 생각은 순전이 자신만의 생각이기에 결국 이뤄낼 수 없는 헛된 소망이 되버린다. 그는 순순히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 절망하고 떠나버린다. 여기서 베르코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념에 의해 파괴된 개인‘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떠나가는 그를 보고 화자이자 할아버지인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저렇게 굴복하고 마는군. 그들이 할 줄 아는 건 그게 다야. 그들은 모두 굴복해. 저 사람마저도.˝
‘나‘가 말하는 말은 ‘파괴된 개인‘과 함께 저항하지 않는 ‘방관자‘ ‘무력한 개인‘의 정곡을 찌른다.

뒤에 나오는 ‘무기력‘과 ‘꿈‘, ‘베르됭 인쇄소‘, ‘별늘 향한 행진‘은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프랑스가 친독일적인 정부를 세우고 독일의 목적인 ‘유대인 청소‘를하면서 겪는 유대인들과 프랑스인들의 고통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무기력‘은 ‘나‘의 친구인 ‘르노‘가 레지스탕스 내에서도 유명했던 동지가 독일군에 잡혀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고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각종 문학책과 예술 작품들을 태우는 모습을 보인다. 놀란 ‘나‘가 말리지만 ‘르노‘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 그래. 시적 감정, 윤리적 사상, 신비주의적인 갈망 등등으로 가득 채워진 피조물. 맙소사! 자네와 나 같은 종자들은 이것들을 읽고 환희에 차서 말하지, ‘우린 감수성이 풍부하고 지적인 개인들이야‘ 그리고 서로 정중하게 인사하고, 손을 마주 잡으며 가는 정 오는 정을 주고 받지. 이 모은게 도대체 뭔가? 다름아닌 개지랄! 구역질 나는 개지랄! 인간이란게 뭐냐고? 가장 더러운 피조물! 가장 비열하고, 가장 음험하고, 가장 잔인한! 호랑이? 악어? 그것들은 우리에 비하먄 천사나 다름없어! 게다가 그들은 결코 성인인 척, 사상가인 척, 철학자인 척, 시인인 척 하지 않아! ……… 저들이 성당에서 여자와 아이들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저녁마다 불가에 앉아 스탕달 씨, 보들레르 씨, 지드 씨, 발레리 씨와 우아하게 대화나 나누기 위해? ………… 그 만행(친구가 고문에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손가락 까딱 않는, 비겁하게도 모른 척하려는, 또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심지어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사람들에 에워싸여 있는 걸 위안으로 삼자고?˝
그러면서 ‘르노‘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앞으로 더 이상 이것들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끝에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르노‘는 온갖 잘란 척이란 척은 다 하면서도 정작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 만족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르노‘의 말에서 굉장한 수치심을 나 자신에게서 느꼈다. 우리처럼 평범한 ‘소시민‘들이 과연 저항이라는 걸 쉽게하려고나 할까? 마찬가지로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에 살고 있다고하면 제대로된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다른 사람들처럼 조용히 내 할 일만하고 숨죽이고 살아갔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망국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가슴을 두드리고 뼈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역적을 죽일 놈이라고 비난라면서 왜 그저 앉아만 있는가?˝처럼 어느 것 하나 행동을 옮기기를 어려워하는 지식인들의 모습 말이다.

‘베르됭 인쇄소‘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유대인 청소에 무너지는 프랑스에 대한 자부심이, ‘별을 향한 행진‘은 프랑스에 대한 환상으로 이주했던 유대계의 사람등의 비참한 말로가 그려져 있다.
이것들 또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사실적인 묘사와 감정으로 읽는 이에게 글쓴이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안타깝게나마 접할 수 있다. (읽는 내내 울었다 ㅠㅠ)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저항 문학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내 친구가 책을 골라달라고한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이 책을 줄 것 같다.

끝으로 ‘꿈‘이라는 작품에서 나온 구절을 소개해드리겠다. 읽으면서 우리가 일제강점기의 독립 운동가나 저항가들을 위해선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 하나의 생각이, 하나의 감정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우리처럼 머리와 심장을 가진 많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를, 우리의 비참한 삶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돈을 벌고 사랑을 나누고 식사를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 않는 채 매일 세상과 세월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 심지어 그런 사람들도, 가끔 우리를 생각하면서 야비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쓰라린 아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비통함, 차갑고 황량한 절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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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단편 선집 부클래식 Boo Classics 2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대호 옮김 / 부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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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공포 소설/추리 소설의 창시자이자 대가인 포의 단편 작품을 엮은 책이다.
나는 그 중에서 ‘검은 고양이‘와 ‘어셔가의 몰락‘을 읽었는데 과연 최고의 공포소설이라 칭할 만큼 무시무시했다. ‘검은 고양이‘는 인간성의 공포를 조성했고 ‘어셔가의 몰락‘은 엄청난 우울감을 조성했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내가 중학생 때 처음 읽었던 작품으로 다 읽고 나서 그날 밤 잠을 거의 못 잔 것으로 기억한다. 그 경험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포의 작품 중에서 ‘검은 고양이‘가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을 사랑하고 온화했던 한 남자가 어느 순간 술과 악에 받쳐가는 모습이 검은 고양이가 만들어 내는 기괴한 일들과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두번째로, ‘어셔가의 몰락‘은 공포보다는 깊은 우울감이 특징이다. 여기서 어셔가의 마지막 자손 로더릭을 관찰하며 그의 분위기, 즉 우울한 분위기를 관찰해 나가는 ‘나‘의 관점은 아마 포가 느꼈던 우울감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정신적 우주와 물질적 우주의 온갖 대상에 어둠을 마치 영혼 자신의 내재적인 성질인 것처럼 쏟아부어 대상들이 끊임없이 우울감을 뿜어나게 만드는 그런 영혼˝
이 구절은 우울의 본질, 그것들이 뿜어내는 어떠한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리라. 사실 이 작품이 큰 반전은 죽은 줄만 알았던 로더릭의 여동생이 관에서 나온 것과 어셔 가의 저택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무시무시했지만 로더릭니 어째서 살아있는 여동생을 무슨 생각으로 생매장시킨 것인지, 그리고 저택에 남아있는 하인들은 어떻게 됬는지 제대로 나와있지 않아 아쉬웠다. (그리고 거의 직역에 가까웠던 번역도 ;;)

우울과 공포.포는 이 둘을 전부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진정한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고 한 번은 지독한 우울에 빠진 적은 있었다. 모든 것이 허무해지고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면서 진지하게 도민해 본 적도 있다.
그 감정이 비록 한 순간이고 일생에서 그냥 지나가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때의 감정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면에 깊은 잔상을 남긴 것 같다. 그 점에서 포의 소설을 읽으면 원초적이고 순수한 우울과 공포를 경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읽으면 우울하겠지만 드것을 똑바로 바라보아야만이 극복할 수 있기에 앞으로도 가끔씩 읽어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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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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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읽은 몇 안되는 현대 문학 중 하나인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읽기엔 좀 도전적이었지만 읽어보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야기의 첫 부분은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파티에서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당시 젊은이들이 즐기는 화려한 파티, 누군가를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 그리고 그들 사이에 은밀하고 문란한 성생활 등을 거부하고 파티에서도 둥 뜬 채 서로 만난다. 둘은 금새 사랑에 빠지고 커다란 집 한 채를 사 후에 태어날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꿈을 가진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친척들은 옛날처럼 아이들을 많이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꾸는 일들이 지금은 어려운 일이라며 둘을 만류하지만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들 소원대로 4명의 아이를 낳고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마다 집에서 파티를 여는 등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해리엇이 다섯째 아이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가정은 점차 파괴되어간다. 뱃속에서부터 불길한 기운을 낸 '벤'은 마치 고대 원시인들이 가졌을만한 힘과 야성을 내뿜었으며 생후 몇개월도 안되 개를 죽이거나 생닭을 갈가리 찢는 등의 잔인성을 보인다. 그 기괴함에 데이비드와 친척들은 그를 따로 격리 시설에 맡기지만 해리엇이 다시 되찾아오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4명의 아이들은 각각 친척집에 살게 되었고 남편도 점차 집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리고 '벤'이 15살 즈음이 될 무렵 해리엇은 파괴된 가정에 허무감을 느끼며 집을 팔기로 결심하고 부엌의 커다란 식탁을 보며 자신과 가정, 그리고 '벤'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이 작품은 처음에 그저 평범한 가정소설 비슷한 평화로운 분위기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 '벤' 때문에 공포로 바뀐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로 빙하시대에 있었던 야성적인 인류의 유전자가 아직 남아있는가 하는 궁금증이었다고 한다. 이에 부응하듯이 소설 속의 '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저것이 과연 인간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호러스럽다. 그리고 작중 해리엇처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이코패스라던가 신체적으론 멀쩡하지만 무언가 우리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또 어디서 태어났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비슷한 작품으로 제라르 드 세르발의 공포 소설 '초록색 괴물'이 있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저택에 출동한 한 경찰은 그곳에서 각종 가구들과 식기들이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하고 그 중 포도주 하나를 훔쳐온다. 얼마 후 결혼을 하게 된 그 경찰은 결혼 축하 기념으로 저택에서 훔친 포도주를 마신다. 그 후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마치 악마 같은 외모에 성격까지 악마 같았다. 이에 부부는 나날이 괴로워했지만 아이는 13살이 될 무렵 홀연히 사라지고 꿈에서 저택의 귀신이 비웃으며 이야기가 끝난다.
이 소설에서 나온 아이는 한마디로 '저주' 때문에 태어난 아니다. 그렇다면 다섯째 아이인 '벤'도 저주를 받아서 태어난 것일까? 아님 어쩌다 운 않좋게 걸려든 변수일까? 도대체 그 유전자는 어디서 온 것일까?

책의 서문에서는 행복한 가정에 대한 환상이라고 나와있었지만 나는 그것보다 이 알수 없는 유전자의 유례가 이 작품의 중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물론 '벤'이 태어나면서 분유대신 모유를 먹이거나 아이를 산부인과가 아닌 집에서 낳는 등 전통적인 양육방식을 고집하던 해리엇 부부가 분유를 먹이거나 병원에 가는 등의 전통적 가정을 점차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한다)
만약 내가 해리엇이고 태어난 아이가 '벤'과 같은 아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 같았으면 남편 데이비드가 그랬던 것처럼 격리 시설에 계속 맡겼을 것 같다. 부모가 된 도리로서 자식을 그런 곳에 보냈다는 것은 가슴아프지만 아이의 행동을 보면 너무 도가 지나쳤다. 이건 가정의 화목 때문만이 아닌 사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들어 악질 범죄자나 사이코패스를 정부가 석방시킨다면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사람들이 환영할까?

결론적으로, 현대소설인 만큼 현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 소설이었다. 가정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독하게 마음먹고 읽어야 하고 특이하지만 공포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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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아트
J “네온 드래곤” 페퍼 지음, 이유민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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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방법부터 동선, 색체, 비늘 그리는 법까지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드래곤을 그리는데 참고용으로 보기에 딱 좋습니다. (그리고 드래곤 뿐만 아니라 기린과 그리폰까지 각종 판타지 생물들을 그리는 법도 나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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