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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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엄마가 있는 행운을 얻은 당신, 당신의 엄마를 부탁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쯤인가보다. 방학인지 휴일인지 모를 석양때의 늦은 오후. 잠에서 깨었다. 푸욱 잠이 들었던지 깨어나니 개운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적막. "엄마~엄 마아~" 대답이 없자 순간 내가 누워있던 안방이 주욱 늘어나서 세 배의 크가 된다. 높이도 마찬가지 크기로 높아지고 있다. 크나 큰 방에 홀로 남겨진 기분. 황.망.함. 어려서 알 수 없었던 헛한 기분의 단어일 듯 싶다. 눈물이 흘렀다. 흘러 턱 밑지나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난 크게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을까 알 수 없지만 어디 있는 지 모르지만 당신이 있는 그곳까지 들리게끔 목청껏 한참을 울었다. 한참만에 옥상에서 이불빨래 널고 뒤집고 있는데, 다 큰 녀석이 왜 우냐고 들어와 어깨를 때리신다. 호된 매가 아팠지만, 눈물은 흘렀지만 웃었던 기억. 안심해서 일거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작가가 그러라 시켰다면서,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쌍과부 넋두리가 필요하다며 지방에 홀로 계신 이모댁으로 내려 가셔서 한참 만에 올라오신 적이 있다. 밑반찬을 잔뜩 만들어 냉장고가 터지게 채워놓고, 아름드리 솥에는 사골을 가득 채워 끓여놓고 가셨지만, 잠이 깰 때만 되면 오십 센치씩 방이 커져서는 엄마가 오신 날 아침에는 콧구멍만한 방이 운동장만큼 커졌더라며 왜 이리 늦게 왔냐고 푸념하는 동생녀석의 말을 들었을 때, 어린 시절의 그때가 생각났다. 오십 센치는 녀석이 느끼는 엄마의 부재감이었다.
 
  잔치를 앞두고 상경한 노부모. 그리고 지하철 문이 닫히는 바람에 칠순의 아내를, 칠순의 어머니를 눈 앞에서 실종되는데 그 후에 벌어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소설가 신경숙의 손을 빌어 한 권 가득 엄마의 부재감을 말하고 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한 가족이 엄마를 찾으면서 저마다 느끼고 있는 엄마를, 아내를 더듬는데 구구절절 가슴이 시린 기억들로 가득하다.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거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40 면)
 
  아버지는 걸음이 빨라 엄마보다 늘 앞서 걸으셨고, 종종걸음을 바알간 얼굴을 해서 뒤를 쫓았다. 그렇게 살아왔었다. 하지만 단지 엄마는 뇌졸증을 앓아 몸이 성치 못해 그날은 그렇게 하질 못했던 뿐. 당연히 쫓아올 줄 알았던 아버지는 지하철을 탔고, 엄마가 타기 전에 문이 닫힌 것 뿐이다. 그리고 엄마는 머리가 아파 아들 집을 찾지 못하고, 연락처를 몰랐던 것 뿐이다. 자식들은 저마다 바빠서 서로 마중나가지 못했던 것 뿐이다. 그것 뿐인데 엄마는 온 데 간 데 없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아버지와 엄마를 갈라놓은 지하철 문 때문이었다.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149 면)
 

함께 있을 때는 의식하지 못한 당신의 말과 행동을 추억하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고 탓하고, 그동안 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탄식한다.
 
  "당신은 이 집을 내키는 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도 아내가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 아버지의 말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의 부재를 경험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공허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생각을 되돌려 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의 그녀를 더듬으며 '어쩌면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부터 내 마음 속에는 엄마를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후회를 거듭한다. 육 년전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보내고 난 회한이 작가의 손에서 되살아나 '당신의 글이 내 맘 같았다'고 자꾸만 말하게 했다.
 
  울컥대는 마음을 끝까지 잡지 못했던 대목은 '처음보는 새'로 변한 엄마의 가족에 대한 마지막 인사 장면이었다. 아쉬움이 남아 차마 저세상을 가지 못하고 가족 모두를 마음으로 나마 보듬는 그녀는 내 엄마를 닮았고, 세상의 엄마를 닮아서 언젠가 있을 내 이야기만 같아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뭍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낸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언니, 언니는 엄마를 포기하지 말아줘. 엄마를 찾아줘."(262 면)
 
  너의 여동생이 이탈리아로 떠나는 언니에게 보낸 편지의 말은 나에게 우리에게 말하는 듯 하다. 나의 하루만 힘든 것이 아니라 당신의 하루 또한 두 세배의 나이만큼 힘들고 고된 하루였던 것을 알라 말하는 듯 하다. 그리고 알고 있음을, 공유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조금은 덜 후회스러운 하루가 될 것임을 명심하라 말하는 듯 했다. 책을 덮으며 전화해 보니 최근에 재미붙인 외국드라마를 시청하다 쇼파에서 곤히 잠든다 동생이 말했다. 추우실라 이불 꺼내 덮어드리라 말하고 안심하며 수화기를 내렸다. 틈이 나는대로 당신의 하루를 공유하고, 순간을 기억하리라 마음먹었다. 기회가 닿는대로 사랑도 전해야겠다. 곧 당신이 떠난 나중에 거듭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같아 얄궃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굳게 다짐하게 된다. 엄마라는 이름의 나무가 한껏 커진 기분, 이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 가득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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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4 로마사 트릴로지 1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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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마음을 알았던 지도자, 키케로를 재조명한 최고의 팩션!
 
  한동안 남성운전자들의 사랑을 듬뿍 담았던 라디오 드라마 [제O 공화국] 시리즈가 그토록 많은 인기를 얻은 이유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우리 시대에 있었던 지난 역사에 대해 철저한 고증과 증언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는 데 있었다. 특히 드라마속 주인공 중에는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인물들도 조명이 되어 진위논란도 있었고, 인기를 몰아 TV 드라마로 제작이 되었을 때는 수많은 반대에 부딪혀 난항을 겪다가 두루뭉수리 이야기를 줄여 일찍 종영하기도 했다. 이렇듯 '숨겨진 역사적인 사건의 진실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어떨가?' 하는 역사에 관심 많은 이들의 의문은 사실들이 밝혀지지 않는 한 '판타지'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엄연한 차별을 보이는 것은 우리 선조의 역사이기에 한 시점에서 변곡점이 있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에서 '상상뿐인 환타지'와는 다르다. 반면 현재 우리가 기정사실로 여기는 역사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두는 시도들도 만나게 되는데, 시대마다 요구하는 역사관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 소설 [폼페이]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진 로버트 해리스가 새로운 시각으로 로마사를 들여다 보는 작품이 있다. 지금껏 유럽사에 대해서만 책을 써 온 그가 오래되고 방대한 역사를 지닌 로마사로 시선을 거슬렀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처럼 익숙한 인물이 아닌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부드러운 지도자 키케로에 시선을 고정시켰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카이사르와 함께 항상 반대되는 개념으로 소개되었던 그래서 늘 그에 가려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인물 키케로의 일생을 그의 노예비서이면서 속기기술을 지녔던 티로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는 소설이 나왔다. 로버트 해리스의 [임페리움IMPERIUM] 이 그것이다.
 
 



  이 소설은 키케로의 생을 조명한 3부작 가운데 그 첫번째로 그를 정치에 입문하게 한  ‘베레스의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낸 키케로의 활약과 재판의 승리로 위상을 확립한 키케로가 당시 로마 최고의 귀족들과 군인들 사이에서 입지를 굳히며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로마 최연소 집정관으로 당선되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팩션을 즐기는 최고의 맛은 과거의 사실을 마치 옆에서 보는 듯 읽혀지는 유려한 필체에 있다. 그 맛은 로버트 해리스의 손끝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귀족이 아닌 로마의 제2인자 변호사이자 원로원 의원 키케로가 지방유지 스테니우스를 만나게 되고, 그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로마사 최고의 법정싸움인 '베레스의 재판'을 시작하게 된다. 호르텐시우스의 비호을 받고 있는 아들 베레스와의 싸움은 바로 귀족정치와의 전면전과 다름없었고, 그 재판에서의 승리로 그는 시민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게 된다. 그의 최종목표인 집정관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견제와 암투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연소 집정관에 오르게 된다.
 
 

 
 
  신제국주의로도 평가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현실 속에서 제국주의의 산물인 카이사르를 조명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공화정 민주주의를 꿈꾼 키케로에 시선을 던진 로버트 해리스의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권력과 부의 핵심인 귀족세력에 맞서 홀홀단신으로 논리에 맞는 유창한 변론과 국민의 심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언변으로 아낌없는 지지를 얻으며 그들과 대립하는 키케로는 오늘날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는 기득권에 대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지도자상을 제시한다. 또한 일개 변호사인 그가 로마 정치인들의 궁극의 목표인 임페리움을 손에 넣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를 묘사하고 있어 대리만족의 기쁨도 선사하고 있다.
 
 

 
 
  집정관에 오름으로써 막을 내리는 [임페리움]은 앞으로 있을 카이사르와의 동맹과 결별에 이르는 흥미로운 사건들에 있어 그가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그가 생각하는 정치관을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베레스의 재판과정'에서의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칼 만큼이나 날카로운 촌철살인의 입을 가졌음을 암시하는 주요사건으로 묘사된다. 카이사르에게 패한 '패배자'로 기록되고 있는 그가 정말 패배자였는지, 아니면 부드러운 내면과 올바른 정치관을 지녔던 진정한 승리자 였는지는 앞으로 펼쳐질 2, 3부에서 알게 될 것 같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HBO의 미국 드라마 ROME과 함께 비교하며 읽는다면 더욱 흥미를 더할 것 같다.
 
Consul sine armis(군사력을 갖지 않은 집정관),
Dux et imperator togae(토가 차림의 최고 사령관),
Cedant arma togae(文이 武를 제압하다)
 
키케로가 출세의 정점에 있을 때는 이처럼 자신을 표현하기를 즐겼다 한다. 로버트 해리스가 펼칠 키케로의 그 다음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진다. 로마를 이야기한 최고의 팩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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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더링
앤 엔라이트 지음, 민승남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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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혼란한 그녀의 심리를 차마 공감하기 어려웠던 소설


 
"우리는 죽은 이들을 비방하지 못하며, 오로지 위로할 수 있을 뿐이다."
 
  죽은 자 앞에서의 통곡은 먼저 떠나간 이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다 하겠지만, 어쩌면 '나를 두고 먼저 가면 어떻게 하라고~' 하는 남겨진 나에 대한 안타까움 인지도 모른다. 떠나간 이를 추억함에 있어서도 내가 담고 싶은 기억만을 생각한다. 그것을 알기 전에는 아무도 반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은 이를 비방할 것인가, 위로할 것인가는 나의 마음에 달려있다. 인간은 원래 지극히 이기적이니까...
 
 



 
  이 소설의 시작은 마흔 살의 오빠 리엄의 바다에서의 자살로 비롯된다. 11개월 늦게 태어난 여동생 베로니카는 그의 자살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그로 얽혀지는 복잡한 가족사를 되짚어 이야기하는 화자로 등장한다. 복잡다난하고 시공을 뛰어넘는 그녀의 생각들은 그녀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독자는 함께 혼란해질 뿐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사건'은 자신의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고 도피와 그리움의 교차하고 있다. 망자亡者를 추억함에 있어 영화로도 소개된 바 있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와 맥락을 같이 하지만, 정도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어머니의 죽음 후에 알게 된 불륜을 사랑으로 인정하고 이해할 것인지, 망자인 것을 수원수구하랴 용서할 것인지가 자식의 몫이었던 것처럼 소년기에 일어난 오빠의 불행을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이 이야기를 대하는 독자의 몫이 되겠다. 책을 읽으면서 더해지는 우울함도 독자의 몫이다.
 
  가족의 발생은 부모의 사랑에서 비롯된다지만 어디 그렇기만 할까? 나는 어떤 결실로 맺어졌는가를 고민함은 어쩌면 성역불가침의 영역인것을 베로니카는 감히 넘나들고 있어 독자인 나를 불편하게 한다. 조부모를 이름으로 대신하여 그들의 섹스를 언급하고, 있을지 모를 그들의 또 다른 불륜을 상상함은 불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못할 뿐 기억하지 못할 뿐 나조차 생각하지 못했으랴 라고 본다면 그녀의 불쾌한 추적은 가족애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싶어 안타깝기까지 했다. 오빠의 자살에 얽힌 가족사를 기억하는 여성의 심리란 차마 만나기조차 꺼려질 만큼 복잡하기만 했다. 순조로운 이야기의 진행를 예측했던 나를 꽤 혼란스럽게 만든 책이다. 그녀를 이해하기는 나에게는 벅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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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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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만, 꿈을 놓지 않는 사람을 닮은 어느 막대기의 이야기!
 
  길 위의 작가, 장똘뱅이 김주영님이 어느 날 가던 길을 멈춰섰나 봅니다. 크디 큰 백양나무 그늘 아래서 밀짚모자 벗어 부채 삼아 펄렁거리며 흐른 땀을 닦으며 쉬고 있다가 손 뻗으면 닿을 듯한 높이에 있는 옹이에 곁가지가 자란 듯 한데, 칼로 벤 듯 잘려나간 자리가 눈에 보인 듯 합니다. '저걸 누가 꺾었지? 어디로 간 거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인정없는 그 범인을 찾아 주위를 둘러본 듯 합니다. 서레질하는 농부와 새끼밴 암소 한 마리를 봤을까요? 아니면 댕강 짧은 머리 수줍음 많은 계집아이를 봤을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상황만으로 짧은 동화가 태어난 듯 합니다. 다름아닌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숱하게 길을 걸으며 말과 글을 주워담고 생각을 키워 명작 [객주]를 만들어낸 김주영의 손에서 말입니다.  짧은 글 속에서도 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곳곳에 숨은 '강산'의 그림은 읽는 맛과 느낌을 더합니다. 어제 읽은 그림소설, [똥친 막대기]입니다.
 
 


 





 
  주인공인 200 년 넘은 백양나무의 곁가지로 자라고 있던 '나뭇가지'는 어느 날 소치는 농부의 손에 의 해 잘려나가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어미의 보살핌에 자라던 그것은 그후 암소의 엉덩이와 재희의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로,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것이라면 줄행랑을 쳐버리는 똥친 막대기로, 그리고 낚싯대로 변신을 거듭합니다. 고통과 슬픔은 항상 있었지만, 늘 호기심과 꿈을 지닌 '막대기'는 거듭된 변신에도 계집아이 재희에 대한 연정과 제 어미나무와 같은 거목이 되는 하늘 오름의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막대기는 흡사 부모의 살핌을 떠난 우리를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세파에 시달리지만, 꿋꿋한 엄마와 아빠가 되고 싶은 꿈을 지닌 우리를 말입니다.
 
  "나는 침착하게 내 운명의 속살 안으로 가만히 손을 내민 행운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사방 어디를 살펴보아도 내가 뿌리를 내리고 다시 새잎을 피우려는 작업을 훼방놓을 천적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나는 필경 외로울테지요. 그러나 외로움을 사르며 자라나는 나무는 튼튼합니다. 외로움을 갉아먹고 자라난 나무의 뿌리는 더욱 땅속 깊이 뻗어 나갑니다. (...) 그녀가 암소를 몰려고 봇도랑으로 나왔던 그날, 그녀가 만약 나를 기억해서 또다시 집어 들었다면 그것으로 닥친 불운이 나를 어떤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나를 모른 척 지나쳐 준 것이 내가 살아갈 땅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입니다."
 
  외로움을 이기려 기대려 한다면 내가 꾸는 꿈은 꿀 수 없습니다. 나만의 꿈을 꾸고 있기에, 그것을 이루려 노력하고 있기에 외로울지도 모릅니다. 어미나무에서 떨어진 '막대기'가 싸릿문에 새끼에 얽혀 말라죽어가는 한 무리의 '작대기'가  되지 않고, 제 몸에서 뿌리내린 '작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라면 외로움은 필경 슬픈 경험은 아닐 겁니다.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어떤 분의 말이 생각납니다. 나라는 막대기가 '작대기'가 되어가는지, '어린나무'로 사는지를 살펴보게 합니다. 그리고 '독야청청'의 외로움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마친 길 위의 작가 김주영님이 다음에 멈출 곳은 어디인지 사뭇 궁금해 집니다. 사람을 닮은 어느 '막대기'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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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정원
이시다 이라 지음, 나가노 준코 그림, 정상민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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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숙적, 첫사랑'을 이야기한 얇은 어른 동화책!
 
  기억을 되돌려 내가 좋아한 처음의 여자를 더듬어본다. 네 살 때인가보다. 오 원인지 십 원인지 동전 한 개를 아저씨에게 주면 조그마한 국자에 설탕과 나무젓가락을 주셨다. 뽑기. 연탄불에 녹은 뜨거운 설탕에 소다를 약간 더하면 검붉게 녹은 설탕액이 핫쵸코의 커품색으로 연해지면서 부풀어 오른다. 넘치기 전에 아저씨에게 냉큼 되돌려주면 그것을 받아서는 '5초의 마술'을 부렸다. 5초 후엔 평평하고 뜨끈한, 게다가 모양이 박힌 설탕과자로 둔갑해서 나오는것이다. 늘 엄마에게 먹을 것을 얻어만 먹다가 독립적으로 처음해보는 요리는 '참여의 즐거움'과 '완성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했다. 먹지는 않고 계속 만들기만 해서 너덧 개를 집으로 가져온 기억도 나는 걸 보면 만드는 즐거움을 꽤나 즐겼던 것 같다. 서서히 녹아들어가는 설탕을 지켜보며 젓가락을 서서히 휘젓는 과정에 느닷없이 끼어든 나무 젓가락. 그 젓가락의 주인공 여자아이, 그 여자애를 처음보고 좋아했다. 무릎을 끌어앉고 앉아 '내 뽑기'에 나무 젓가락을 담궈서는 찍어 먹는 것이다.
 
  다른 아이였으면 먹이를 앞에 둔 강아지마냥 '그르릉'거리며 밀쳐냈거나 화를 냈을 것이다. 그건 고사하고 '이건 그렇게 먹는 게 아닌데...' 차마 한마디도 말을 꺼내지 못한건 너무 예쁜 아이였기 때문이다. 요술공주 세리 만큼 예쁜 그 아이는 '콕' 찍어 입에 넣고는, 나를 보고 말없이 웃었다. 설탕이 타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그 애의 웃음을 쳐다보던 기억. 꽃보다 이쁘다고 생각했다.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도 함께.우리 옆동네로 이사온 그애를 오랫동안 혼자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으면서도 미추美醜 를 구분지었고, 그 기억이 지금껏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난 상당히 '되발라까진 사내놈'인가보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에 시간을 던진 이유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80여 쪽 남짓되는 얇고 작은 양장본에 예쁜 동판그림들이 들어 있는 어른동화책, [시간의 정원]이 나를 잠시 과거로 되돌렸다.
 
 

 
 
  이 책의 저자 '이시다 이라'는 유명한 일본드라마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 파크]를 통해 알게 된 작가다. 소설이 아니라 재미있게 본 일본 드라마의 원작자가 그 라고 해서 원작은 읽지 않고(소설과 드라마의 원작을 만났을 때의 딜레마는 이미 아는 내용에 첨가되거나 빠진 것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것 같아서 읽기도 뭐하고, 안읽기도 뭐한 닭갈비'계륵鷄肋'를 닮았다) 몇 권의 다른 책에서 만난 적이 있다. 청춘의 연애를 바탕으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주인공을 만들어 낸 그가 이번엔 여섯 살의 꼬마아이들을 등장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것참, 안될 말이다 생각하면서 책을 펼쳤다.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고 있는 외톨이 미즈키에게 유일한 친구는 아사히다. 둘은 좋은 친구사이, 미즈키에게는 단 한 명의 친구다. 갈등은 전입생 여자아이 히카리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둘다 히카리에 반해 버리고, 셋은 친구가 된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는 우정 속에 끼어든 사랑이다. 이것과 그대로 닮지는 않았지만, 엇비슷하게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친구녀석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그녀를 만나는 시간만큼 녀석을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때 부끄럽게도 '빼앗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녀석의 여자친구가 주는 것 없이 미웠고, 그녀의 결점만 보려 했고, 때로는 친구에게 투정비슷한 짓을 원인으로 다툼도 했다. "야 이 자식아, 여자가 생겼다고 친구는 안보이냐?" 
 
우정은 영원하다고 하고, 사랑도 그렇다 한다. 좋은 여자를 만나 친구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녀석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기는 원치 않는다. 사랑과 우정, 의리와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고교시절의 그때가 떠올랐다. 남녀 모두에게 생기는 우정사이에 끼어든 이성의 출현은 묘한 갈등을 낳는다. 당연히 영원할 줄 알았던 우정은 어쩔 수 없이 끌리게 되는 이성에게 무릎을 꿇고, 우리는 처음으로 '배신'을 경험했다. 그리고 말한다. "치사한 자식, 넌 친구도 사내도 아니다." 하지만 곧 나도 경험하게 된다.
 
  다소 극단적인 방법(아니 상당히 극단적인 방법, 그래서 자꾸만 거슬린다)으로 그 갈등을 이야기하지만(그렇지 않으면 이 평온하면서 은밀한 갈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도 따로 두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그 시절의 갈등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아이들에게' 들려준 동화를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아마도 그것은 처음 겪은 사랑의 시련일테니까. 난 그 때 그 갈등을 어떻게 풀었던가? 그 때가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지난 해 동창회에서 밤을 세워 술잔을 기울였던 녀석이 그 주인공이란 건 기억난다. 나도 잘 넘어갔나보다. 나에게는 우정이 사랑보다 강했나보다. 녀석은 남아있지만, 그 시절의 그녀는 기억조차 없으니까. 아사히와 히카리는 영원했을까? 궁금해진다. 동판화가 나가노 준코의 그림도 한 몫을 차지했던 소설, 이시다 이라의 [시간의 정원]을 읽고 떠올린 상념이다. 원제목은  ぼくとひかりと園庭で ;나와 히카리와 정원에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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