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인생 수업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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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시형의 인생 수업』의 저자 이시형은 '국민 의사'다. 90세라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그가 에세이를 냈다. 정신과 의사이지만 우리 국민들에게는 '전신과'란 말이 어울린다고 존경 받는 의사다. 그래서 '국민 의사'란 별칭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그가 낸 책은 대개가 치료하는 의사로서보다는 평소 건강을 유지하는 예방에 중점을 두었다. 병은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라는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그를 보면 아마 90세라는 사실을 잘 믿지 않을 듯하다. 그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 아니라는데 평생 애쓰고 힘들게 일해 왔는데 건강한 모습은 그가 평소 주장하는 '예방 의학'에 신뢰감을 주기도 한다. 그가 이번에 낸 책은 표제어에 '인생 수업'이란 문구가 있지만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적잖은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정신과 의사이자 뇌 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90년 삶을 지탱해 온 것은 '감사'이고, 살아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책의 첫 문장을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살려지고 있다."고 썼다. 삶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고, 이는 '살아가다'나 '살아내다'로 능동형으로 써야 하는 것 아닌가? 굳이 능동형이 아니더라도 '살다' 정도로 써야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는 늘 그렇게 표현했다.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을 의사 이시형이 왜 90이 되어서야 '감사'를 이야기할까? 그는 생애 10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면서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지나온 인생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감사의 마음을 이 책에 가득 담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오늘의 나를 만든 사람들」이란 제목의 〈서문(여는 글〉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를 찾아왔고, 거쳐 갔다. 멀리서, 가까이서, 혹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나를 지켜봐 준 것이다. 물어보자. 어느 인생길이 평탄하던가. 평탄하다면 그건 인생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힘주어 밝힌다.

"넘어지기도 했다. 바로 일어나야 하는데 한참 꾸물대기도 했다. 이젠 한 걸음도 더 옮길 형편이 아니다. 이대로 영영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 머리 어느 한구석엔가 '무슨 소리?' 경을 치는 소리가 엄하게 들리고 정신이 번쩍 든다."고 썼다. 그리고 희뿌연 안개에 갇힌 인생 장막이 순간 맑게 걷히고 길이 열린다고 회고한다. 살아오는 동안 이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이젠 그 일들이 '극적인 의식'으로 느껴지는 모습이다.



저자는 뒤늦게 코로나를 앓았다고 한다. 앓는 동안 할 일이 없으니 죽음 생각도 나고 온갖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고도 한다. 지난 이야기가 떠오르니 문득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기억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일들이 줄줄이 올라온 것 같다. 우리도 누구나 병원에 입원했거나 몸이 아플 때 한 번쯤 해본 생각이고 경험이다. 드물긴 하지만 때론 자부심 같은 것이 가슴 가득 차 오를 때도 있지만 대개가 "내가 이런 일도 했구나" 하는 부끄러움과 자성의 시간을 가질 때가 더 많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평생 환자를 치료하고, 글로써 마음의 위안을 주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운 '국민 의사'이지만 부끄러운 일이 더 많이 떠오른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는 '심플라이프'를 책을 통해 말하기도 했던 분으로서, 이 에세이에서도 단순하게 살기를 강조한다.

"어쩌다 헌 서랍 정리를 하다 보면 온갖 잡것들이 다 들어 있다. 도대체 이것들을 언제 쓰려고 마치 보물인 양 이렇게 귀중하게 모셨을까. 버리는 것이 참 어려울 때가 있다. 자칫 내 인생을 버리게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p.7)

서랍 안의 잡동사니처럼 내 인생 서랍에도 온갖 잡것들이 다 들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90년을 살아온 삶이 그리 간단하게 정리될 수는 없을 터다. 그러나 사람들과 공유하려면 이것들을 그냥 흩어놓아선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대충이나마 정리를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서다. 일단 뽑아 나열해 보니 이거야말로 내가 살아온 '인생 수업'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에세이에 대부분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90년을 잘 살려면 그냥 되는 대로 살아선 안 된다. 인생 계획을 잘 짜야 한다. 젊을 때는 젊다는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고령이 되면 나이가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수가 더 많다. 나이를, 연륜을 기회로 만드는 것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일찍부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나는 40세부터 준비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학창 시절 수험 공부하듯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한다. 젊은 날의 공부는 대체로 커리큘럼이 잘 짜여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냥 따라만가도 평균적인 인생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그런 체계적인 도식이 없다. 그야말로 텅 빈 벌판에 내몰린 신세가 된다. 길 잃은 양은 되지 말자. 인생에 무슨 결론이 있겠느냐만, 90을 살아온 사람의 경험을 풀어 놓았으니 해여 유용한 것이 있어 주워 담을 게 있으면 좋겠다."(p.9)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려지고 있다〉 2부 〈인생 수업 9교시〉, 3부 〈인생 수업 인터뷰〉 등이다. 1부에선 「내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를 이끌어준 세 친구」, 「열심히 길을 찾으면 돕는 이가 나타나고 길이 보였다」, 「멋진 사회인이 되려면 삶을 즐겨야 한다」, 「졸업이란 없다」 등 5개 장(章)으로 구성됐다. 각 장에는 그동안의 삶을 하나하나 특별한 에피소드와 자신의 경험을 적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나 논저가 아닌데도 가감 없는 자신의 에피소드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를 독자들이 추론할 수 있도록 썼다는 말이다. 2부는 「고통」 「존재」 「타인」 「친구」 「부모」 「자녀」 「부부」 「고독」 「행복이란?」 등의 키워드가 제목으로 주어진 사는 동안 만난 소중한 사람들의 명단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물론 「고통」 「고독」 「행복」이란 관념적 단어들은 감정이나 느낌일 것이다. 3부는 저자의 제자인 박상미 심리상담학자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묶었다. 「인생을 소중하게 만드는 관계에 관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쳐라」, 「실패라는 말은 90세가 되거든 할 것」 등의 진정성 깊은 충언과 「남은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 등의 반성과 성찰의 삶을 강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시대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도 변화한다. 이른바 '꼰대'의 시대는 저물었다. 산업화, 민주화와 함께 아날로그 세대는 저문 새대다. 그렇다고 산업화 민주화가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의 시대는 지났다는 단순한 의미로 독자가 여기에 쓴 것이다. 구세대의 종말과 함께 우리 사회는 나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혼밥, 혼여, 혼영 등이 유행하는 시대다. 흔히 MZ세대라고 일컫는 2000년 이후 출생자들의 시대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사회가 변한다고 해도 어느날 일시에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세대의 변화는 가는 세대와 오는 세대가 서로 밀접하게 관계되고 스며들면서 서서히 모습을 바꾼다. 변화의 도중에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국민 의사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아 온 이시형 박사도 인생 여정 90년에 이르러 삶을 돌아본 이유이다. 다만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있다. 저자 이시형이 돌아본 삶은 모두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살려지고 있는 것이다.’라는 이시형 박사의 말이 진실되게 다가온다.



저자 이시형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아름다운 일들은 많지 않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후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정체성 혼란과 정치 제도의 변화에 따른 우리 나라 앞날처럼 암울했을 것이다. 해방 때나 반짝 목이 터져라 기뻐했을 뿐이리라. 그러나 물러가는 일본인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거나 그들을 때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삶이 닥쳐올지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당장 먹을 것부터 걱정하고 구해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저자 역시 어린 시절 "해방되고 일본 패잔병이 긴 행렬을 지어 일본으로 귀환하는데 처음으로 사람 냄새가 났으니 저자는 그때까지 종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말을 자유롭게 해도 잡혀가지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태극기를 그리곤 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짐작만 했을 뿐이다. 독립투사를 두 사람이나 배출한 집안에서 해방의 의미를 아는 수준이 이 정도였다. 아마도 아버지가 철저한 일본 관청의 관리를 받고 있어 생리적으로 한계도 있었으리라. 철이 들면서 들기 시작한 내 의식 세계의 변화다. 대한 독립 만세! 이 구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우린 목청이 터지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불렀다. 그 소리를 이젠 잘 들을 수 없게 되었다.(p.43)

독립투사를 두 명이나 배출한 가문이니 그 집안이 부유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일제 앞잡이 아니고서는 그때 모두가 가난했으니 끼니 걱정하는 게 일상이었을 때다. 저자도 잊을 수 없었던지 하우스보이로 미군 부대에서 잡일을 하다 학교 출석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학교는 교실을 계속 옮겨 다녀서 학교 가는 날은 어디서 수업하는지 몰라 헤맬 때가 많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학교는 미 5공군 사령부로 쓰였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빈 곳을 찾아야 했다. 제일 많이 신세를 진 곳은 지금의 동대구역 근처에 있는 기와굴이었다. 보리밭에 여기저기 기와굴이 많아서 거기서 수업하는 날이 많았다. 말만 수업이지 나오는 학생들은 절반도 안 되었다. 우리 학년은 군입대 대상 직전의 나이였다. 우리보다 1년 선배까지 자원입대했고 우리 학년은 당장 입대는 면했다. 내 친한 친구 세 놈은 평소에도 그랬지만 전장 한복판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p.106~107)



어찌어찌해서 어렵게, 운 좋게 들어간 예일대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저자는 자신의 '천재성'이라고 약간은 반어법을 사용하는데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시절 어떻게 예일대학교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지, 그것도 의대를···. 이 책에 적어 놓은 이유는 '운'이라고 하지만 '운도 운 나름이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간 것으로 보이지만 하여튼 '사람 운'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가 삶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살려지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예일대학교도 넉넉지 않은 예산이었는지 매우 검소하게 지낸 모양이다. 책에 그곳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글을 남겼다. 

"예일대학교는 가톨릭대학교도 아닌데 신부님이 두 분 계신다. 주임 신부는 아주 근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진짜 신부님 같다. 너무 엄해서 우리가 가까이 잘 가지도 않는다. 또 한 분, 조 신부님은 폴란드 출신인데 한마디로 장난꾸러기다. 우리 기숙사에 문제가 생기면 거기엔 반드시 조 신부가 범인이다. 토요일 밤이면 으레 휴게실에 모여 노래도 하고 흥겨운 만담도 나누고 참 즐거운 밤을 보낸다. 그 주역은 역시 조 신부님이다. 폴란드 출신이라 영어도 서툴고 발음도 독특해서 그 자체가 웃긴다. 우리가 잘 못 알아들으면 닥터 리는 한국 사람이니 그렇다치고 넌 미국 사람이면서 아직도 영어를 못 알아듣느냐고 핀잔을 준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폴란드어로 한참 떠들어대는 것 같다. 그날은 토요일 밤인데도 손님이 별로 없었다. 신부님이 나가신다. 방마다 문을 두드렸다. '야, 이 사람들이 토요일 밤에 무슨 공부를 한다고 그 모양들이냐.' 어쩔 수 없이 불려 나온다. '장작이 다 떨어졌다. 넌 오늘 지각했으니 장작 훔치는 당번이야.' 병원에서도 장작 인심이 아주 고약해서 한두 시간만 지나면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때 조 신부님이 나선다 커다란 밴 차량을 몰고 좀 한가한 집 현관에서 조 신부는 망을 보고 우린 장작을 한 아름씩 훔쳐 나온다. 그날도 무사히 잘 지나나 싶더니 갑자기 그 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주인 할머니가 인사를 했다. 신부님도 미처 피할 여유도 없이 딱 맞닥뜨린 것이다. '신부님 추운데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젊은이들 작업 끝날 때까지.' 그리고 우릴 향해 고함친다. '이보게들! 그쪽은 비를 맞아 불이 잘 안 붙을 테니 이쪽 창고 안에 있는 걸 가져가!'(p.150~151)



난 워라밸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간 마치 일 중독자처럼 일에만 매달린 생활을 하다 보니 일의 노예가 되었고 인생을 즐길 시간이 없었다. 좀 쉬어가고 즐기며 살자는 운동이 워라밸의 의미인 것 같다. 나는 그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그 이야길 자주 하는 사람을 찾아 물어봤다.

“이 사람아, 자네 보고 하는 소리야.”

나도 속으로 켕기는 게 있어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그랬다고 하는 대답이다.

한참 전의 이야기지만 미국 유학 시절에 내 주변의 친구들이 나에게 자주 던지는 충고가 있었다.

“You are killing yourself.”

넌 지금 너를 죽이고 있다는 소리다. 쉬어가며 인생을 즐겨야지 그렇게 종일 공부만 하면 그게 어찌 사는 건가. 난 그때만 해도 그런 충고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pp.286~287)


저자 : 이시형(Si Hyung Lee, 李時炯)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그리고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으며,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장, 경북의대ㆍ서울의대(외래)ㆍ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2007년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하고 국민들의 건강한 생활습관과 행복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수십 년간 연구, 저술,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어른답게 삽시다』,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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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진화 (40주년 특별 기념판) - 이기적 개인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내는 팃포탯 전략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이경식 옮김 / 시스테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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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협력의 진화』는 '호혜'를 바탕으로 하는 이타주의가 자연적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1984년 초판이 발간된 이 위대한 저서는 〈40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이번에 양장판으로 출간됐다. 이 특별판의 〈서문〉은 우리가 잘 아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가 썼다. 도킨스는 "이 책은 낙관론 그 자체다"라고 단언하며 〈서문〉의 첫 문장을 끌어낸다. 왜 협력의 진화를 말하는데 낙관론 혹은 비관론이 필요할까?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도킨스의 논리를 따라간다. 도킨스가 말하는 낙관론은 비현실적 희망 사항이나 늘어놓고 감격스러워하는 순진한 낙관론이 아니라 '믿음직스러운 낙관론'이다. '믿을 만한 낙관론'은 우선 인간뿐 아니라 전체 생명의 본성까지 포함하는 근본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도킨스는 전제한다. 여기서 생명이란 물론, 외계에도 생명이 있다면 그것들까지 아울러서, 다원적 생명을 의마한다고 덧붙인다. 다원적 세계에서는 살아남는 자가 살아남으므로(진화론은 동어반복이라는 비판을 역으로 비꼰 표현-옮긴이) 그 세계는 살아남는 데 필요한 온갖 특성들로 가득 차게 된다. 

"다원주의자로서 우리의 시작은 비관적이다. 자연선택된 뿌리 깊은 이기심으로 남의 고통에 피도 눈물도 없이 무관심하며, 남을 이용하여 야멸차게 나의 성공을 추구해 나간다. 그런데 그런 비틀린 시작으로부터,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거의 형제애나 다름없는 우애가 실제로 생겨난다. 이것이 로버트 액설로드의 비범한 책이 주는 고무적인 메시지다"라고 『협력의 진화』와 액설로드를 칭송한다. 

도킨스는 이 책의 발간 후 22년간 연구 논문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고 말한다. 초판 발간후 4년 동안 저자 액설로드가 더글러스 디온과 함께 협력의 진화로부터 직간접으로 파생되어 나온 연구논문들을 찾아 인용 논문 리스트를 작성했다. 250개도 넘는 논문이 '정치와 법', '경제학', '사회학과 인류학', '응용생물학' 등에서 인용되었다고 전한다. 이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는 이후로도 빠르게 성장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도킨스는 설명한다.(실제 도표를 책 〈서문〉에 실었다) 도킨스는 〈서문〉 마지막 단락에서 몇 문장으로 이 책의 성격과 독자를 한꺼번에 묶어 버린다. "세계의 지도자들을 모두 가두어놓고 이 책을 준 다음 다 읽을 때까지 풀어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 개인에게 기쁨이 될 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협력의 진화』는 기드온 성경을 대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p.11)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따르면 이 책은 호혜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타주의가 자연적으로 진화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협력의 진화』는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획기적인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일시에 유명해졌으며, 1984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2006년 개정판, 2024년 40주년 특별판이 출간되기까지 과학, 사회, 정치, 경제,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진화론에 의하면 생명은 경쟁을 통해 진화하며, 순수 이타주의는 진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생물계와 인간 사회에는 상호협력과 호의가 넘쳐나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류의 오랜 궁금증이 1984년에 풀렸다. 액셀로드 교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바탕으로 하는 컴퓨터 대회를 열어 다양한 전략들을 대결시켰다. 그 결과 놀랍게도 최종우승자는 가장 간단하고 협력적인 프로그램 「팃포탯」(Tit for Tat, TFT: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맞대응〉)이었다.

이를 토대로 협력이 강제 없이도 자연적으로 창발한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두 개체의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는 전제이다. 장기적인 관계에서는 욕심을 부리는 편보다 도움을 주고받는 편이 이득이었다. 저자는 팃포탯의 장점을 독자들에게 설득하며 주변에도 알리라고 제언한다. 『협력의 진화』는 사회학, 정치학, 생물학, 게임이론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야 할 이 분야의 고전이 됐다.

'팃포탯 전략'은 무엇일까? 팃포탯은 미시건대 교수인 저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개인 또는 단체들 간에 어떻게 협력관계가 창발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찾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게인이론가와 컴퓨터 과학자들을 초청해 토너먼트를 벌였다. 이때 러시아 태생의 미국 수학심리학자인 아나톨 라포포트는 「팃포탯」이라는 매우 직관적며 단순한 전략을 제출하여 가장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엄청나게 길고 복잡한 지시 명령들로 이뤄진 수많은 컴퓨터 프로그램들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단 네 줄로 정리된 팃포탯 프로그램은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처음에는 무조건 협조하며 관계를 시작한 다음, 상대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하는 전략이다. '팃포탯 전략'은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살아남는 최고의 전략임을 증명했다.



책에 따르면 다윈 진화론대로라면 남을 위한 희생심, 이타주의는 진화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은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데, 남을 위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희생하는 개체는 유전자를 후세에 전하지 못하며, 이에 따라 이타주의는 진화할 수 없다.(다윈 자신도 꿀벌과 같은 사회적 생물이 보이는 집단을 위한 자기희생을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생물학자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번식을 자제하는 행동 양식을 배운 종들이 자연 선택된다는 ‘집단선택설’을 폈다. 이것은 다윈의 개체 중심 자연 선택 이론과 어긋나는 것으로, 학계의 논란거리였다. 그러다 1960년대에 윌리엄 해밀턴이 이기적인 개체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타주의적 행동이 진화될 수 있는지 ‘혈연선택이론’으로 설명했다. 사회적 생물들은 서로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 사이이기 때문에 나 대신 형제나 사촌 여럿이 번식해도 유전자 관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타주의 행동은 유전자 수준에서 보면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개념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개체는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한시적 생존 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 선택되는 것은 집단도 개체도 아니고 유전자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다.

그러나 자연계에는 피를 나눈 혈족 사이가 아니면서 이기심을 자제하고 다른 개체나 다른 종과 협동하는 예가 흔하다. 이러한 순수 이타주의를 1970년대에 사회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호혜주의이론’으로 설명했다. 호혜주의는 ‘이번에는 내가 네 등을 긁어줄 테니 다음에는 네가 내 등을 긁어다오’라는 개념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사례가 자연에서 발견됐다. 호혜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타주의가 자연적으로 진화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이 바로 로버트 액설로드다. 그는 컴퓨터 토너먼트를 이용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협력이 창발’되는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논문을 1981년 『사이언스』에 발표해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84년 이를 대중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쓴 책이 이 책 『협력의 진화』다. 이 책은 게임이론, 진화생물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됐다. 리처드 도킨스가 쓴 〈서문〉이 이 책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증언해 준다.



여럿이 식당에 가서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먹고, 다 같이 음식값을 나누어 내는 경우, 누구나 비싼 음식을 시키는 게 이득이며, 그 결과 모두가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빈 목초지에서 가축을 먹이는 마을 사람들은 각자 더 많은 가축을 방목할수록 이득이며 결국 목초지를 황폐화시키게 되는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경우다. 개인에게 논리적으로 옳은 판단이 집단에는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에 딜레마이고 이를 수학적으로 환원한 것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고전적인 예는, 공범 A와 B가 심문을 받는 경우이다. 둘 다 의리를 지켜 침묵을 지키면 1년 형(3점의 보상)을, 둘 중 하나가 배반하여 자백하면 자백한 자는 방면(5점), 의리를 지킨 자는 5년 형(0점)을, 둘 다 배신하여 자백하면 3년 형(1점)을 받는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이런 경우 상대가 협력(의리)을 하든 배신을 하든 나는 배신하는 게 이득이다. 따라서 A, B 둘 다 배신을 결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둘이 협력했을 때보다 손해를 보게 된다. 

배신이 합리적 결론이라면, 인간 사회와 자연계의 수많은 신뢰와 협동은 어떻게 진화될 수 있었을까? 말미잘과 물고기, 진딧물과 개미와 같은 다른 종 사이의 상호공생의 예를 비롯하여, 산호초의 큰 물고기들은 청소 물고기의 서비스를 받은 후 잡아먹으면 일석이조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해답은 그들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라는 데 있다. 단 한 차례 게임을 한다면 배반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나, 같은 상대와 게임을 계속 반복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점수를 많이 딸 수 있는 전략은 어떤 것일까? 로버트 액설로드가 다양한 게임이론 전문가들에게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할 프로그램을 출전시켜 달라고 하여 14개 프로그램들끼리 대적하는 토너먼트를 개최한 결과 놀랍게도 승자는 팃포탯(Tit for tat, 맞대응)이라는 이름의 가장 단순한 전략이었다. 팃포탯은 먼저 상대에게 호의를 보이고(협력), 절대 먼저 배반하지 않으며, 상대의 배반은 즉각 배반으로 보복하고, 상대의 협력에는 반드시 협력으로 대응하며, 상대의 배반은 한 차례의 응징 후 용서하는 관용성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충분히 오랜 기간 동안 함께 거래할 상대라면 팃포탯 전략을 쓰는 것이 가장 이득이다.



개인뿐 아니다. 단체, 국가 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복잡한 상황들도 결국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 상황으로 정리된다. 액설로드는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최선의 전략을 네 가지로 제안한다. 첫째, 질투하지 마라. 둘째, 먼저 배반하지 마라. 셋째, 협력이든 배반이든 그대로 되갚아라. 넷째, 너무 영악하게 굴지 마라. 죄수의 딜레마 상황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상대가 나보다 잘해도 괜찮다. 사실 상대가 잘해야 나도 잘할 수 있다. 상대가 적어도 나만큼 잘하지 않는다면, 내가 충분히 협력해 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한, 상대가 나의 다음 수를 예측할 수 없다면 상호협력이 생길 수 없다. 상대가 내 전략을 곧 알아낼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 

팃포탯은 상대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하기 때문에 몇 번만 게임해 보면, 협력을 하면 팃포탯이 자동으로 협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굳이 배반을 선택하여 나쁜 점수를 받을 이유가 없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대로 “세계의 지도자들을 모두 가두어놓고 이 책을 준 다음 다 읽을 때까지 풀어주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이 세상이 좀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이 책은 모두 5부 9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서론〉, 2부 〈협력의 창발〉, 3부 〈우정이나 지능 없이도 가능한 협력〉, 4부 〈죄수의 딜레마 참가자와 개혁가를 위한 조언〉, 5부 〈결론〉 등이다. 1부에는 「협력, 무엇인 문제인가」라는 하나의 장이 있다. 2부에는 「컴퓨터 대회에서 팃포탯이 거둔 성공」, 「협력의 연대기」 등 2개의 장이, 3부에는 「1차대전 참호전에 나타난 공존공영 시스템」, 「생물계에서의 협력의 진화」 등 2개 장이 있다. 또 4부에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을까」 등2개 장이 있고, 마지막 5부에는 「협력의 사회적 구조」와 「호혜주의의 강건함」 등이 있다. 

제목이 나열돼 있는 목차 중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단연 '죄수의 딜레마'이다. 맞다 이 책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 이론이 협력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는 진화론에 관게된 것이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는 경쟁과 전쟁 중에 적용될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정치학자이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 안보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당초 정치학적 문제로 접근하지 않았나 추론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유야 어쨌든 협력의 진화를 다룬 것은 맞다. 진화론 가운데 다윈도 설명하지 못한 한 부분이 저자 액설로드에 의해 말끔하게 정리된 느낌이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여러 국가들은 중앙 권위제가 없는상황에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따라서 협력이 창발되는 조건은 국제 정치의 수많은 주요 쟁점들과 관련이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안보에 관한 딜레마다. 각 국가들이 자국의 안보를 구하는 수단은 흔히 다른 나라들에는 안보의 위협이 된다. 그래서 지역 갈등이 대두되고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기도 한다. 국제 관게와 관련해, 동맹국 사이의 경쟁, 관세 협상, 키프로스와 같은 지역들에서 나타나는 자치권 분쟁 등의 형태로 문제가 나타난다.

저자는 〈서론〉에서 1979년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미국에게 전형적인 선택의 딜레마를 안겨주었다고 말한다. 미국이 이전과 다름없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한다면, 구소련은 미국의 이런 태도에 고무되어 그 뒤로 더욱 비협조적으로 나올 게 분명했다. 나아가 미국 역시 협력을 축소하거나 포기한다면 양국 관계는 손상될 것이고 서로 보복이 이어지면서 적대적 관계가 형성될 게 분명했다.(p.32~33) 


저자 :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게임이론, 인공지능, 진화생물학, 수학적 모델링, 복잡성 이론 등에서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 저서 『협력의 진화 The Evolution of Cooperation』는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획기적인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일시에 유명해졌으며 1984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2006년 개정판이 출간되기까지 과학, 사회, 정치, 경제,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액설로드 교수는 뉴콤 클리블랜드 상과 맥아더 펠로 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이해의 갈등 Conflict of Interest』(1970), 『결정의 구조 Structure of Decision』(1979), 『억제에 관한 여러 가지 전망들 Perpectives on Deterrence』(1989, 공저), 『협력의 복잡성 The Complexity of Cooperation』(1997), 『복잡성 제어 Harnessing Complexity』(2001, 공저) 등이 있다.


역자 : 이경식(李慶植)


서울대 경영학과,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플랫폼 기업전략』, 『부의 감각』, 『프레즌스』,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신호와 소음』, 『승자의 뇌』, 『안데르센 자서전』, 『카사노바 자서전』, 『투자전쟁』, 『태평양 전쟁』 등 90여 권이 있다. 저서로는 에세이집 『1960년생 이경식』, 『청춘아 세상을 욕해라』, 『대한민국 깡통경제학』,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나는 아버지다』, 소설 『상인의 전쟁』, 평전 『이건희 스토리』 등이 있고,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나에게 오라」, TV 드라마 「선감도」, 연극 「동팔이의 꿈」, 「춤추는 시간여행」, 오페라 「가락국기」, 음악극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 등의 대본을 썼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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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칸트를 만나 행복해졌다
이라야 지음 / 알토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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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는 오늘 칸트를 만나 행복해졌다』의 저자 이라야는 "칸트를 알기 전과 칸트를 알고 난 뒤, 나의 삶은 달라졌다. 개안을 한 듯 칸트가 내 삶의 지평을 열어주어 주위 사람들이 달리 보이고 세상이 훨씬 넓어 보였다. 그로 인해 일상이 풍요로워졌다.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세상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칸트의 명언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 현상에 기반을 두고 문학과 예술, 과학까지 배경으로 삼아 참된 '인간'의 모습을 독자들과 함께 발견하기를 바라고 쓰인 책이란 말이다. 

살아오면서 누구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느낀다. 어쩌면 자신의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고 느낄 때 '사는 게 힘들다'고 느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삶이 가장 풍요롭고 가장 살 만하다고 생각되는 시대는 언제나 자신이 사는 세상인데도 느끼기로는 가장 어려운 시대, 특히 자신의 삶은 더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현대인들만 어려움을 느끼는 게 아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삶을 어렵게 느낀다. 삶은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따라 인생의 도착지가 달라진다. 하루하루를 사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행복, 희열도 달라진다. 어느 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걷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당장 벗어버리고픈 갈등도 만난다. 순조롭고 순탄하고 승승장구하는 길만 걸을 수는 없다. 더구나 급변하는 사회에 꿰맞추듯 적응해야 하는 것도 힘든데 경쟁에 내몰려 각자도생해야 하는 현대인은 괴로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여유를 찾아 떠난 여행조차 쉼을 얻기보다 경제적 한계, 시간의 제한 등 치열한 현실감을 맞보기 십상이다. 이런 독자들에게 칸트가 손을 내밀고 있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칸트를 만난 순간부터 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가는 여정에 숨을 내쉴 숨구멍을 찾고 삶을 밝혀줄 깊이 있는 시선을 갖추도록 훈련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칸트를 만나 인생의 방향을 돌린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칸트의 명언을 밥처럼 곱씹으며 양분을 흡수하고 삶의 가치를 살찌운 사람들이다. '행복'이 이루어지는 지점까지 저자는 칸트의 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준다.



저자는 칸트를 알게 된다는 것은 칸트가 남긴 명언들 중에서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 흔히 칸트를 어렵다고 알고 있다. 독자 역시 고등학교 때 칸트에 대해 짧게 배운 기억이 있지만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등 명저만 생각난다. 하나 더, 그의 생활 루틴에 관한 것이다. 칸트는 늘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났다고 하는데 칸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시계를 맞췄다고 할 정도로 엄격한 생활 규칙을 준수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적지 않은 칸트의 아포리즘을 한 줄의 문장으로 바꿔 여기서 이해하고 끝내는 것은 삶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저자 이라야의 주장이다. 철저한 실천을 동반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저자는 자연은 물론 문학과 예술, 과학과 사회를 직시하고 살아온 지식에 칸트의 제안을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천으로 자신의 경험이 쌓아 오늘을 살아가는 디딤돌(지혜)가 된다는 뜻이다. 저자는 한 줄의 명언이 디딤돌로 놓일 때마다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고 독자들을 격려한다. 칸트의 명언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며 단편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주장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이고 삶의 방향성에 대한 모색이 담긴 메시지로 이해할 것을 저자는 주문한다.

칸트의 말은 처음 접한 사람은 어려운 문장이 많다고 판단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칸트 철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면 하나로 연결되어 풀이가 쉽다고 저자는 말한다. 칸트의 유명한 말 하나를 예로 든다. "직관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는 말은 '직관=경험'으로 이해된다. 이는 경험이 없는 생각은 어떤 것도 얻어내지 못하며 배경 지식이 없는 경험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실생활에서도 증명된다고 한다. 이를 테면 역사적 지식 없이 유적지에 간들 얻어오는 것은 몇 장의 사진뿐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이 의미 있게 보이거나 발길을 사로잡는 것은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그것의 가치를 알고 있을 때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진귀한 유물을 보아도 그냥 지나친다. 그렇다면 경험 없는 생각은 어떤가. 아주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청춘 남녀가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질 때 기혼자들이 말한다. "현실은 달라." "네가 꿈꾸는 결혼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해." 이는 경험한 사람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개념과 관념, 관점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현명함을 위하여〉, 2장 〈바른 가치를 위하여〉, 3장 〈자신을 위하여〉, 4장 〈우리를 위하여〉, 5장 〈합리적 사고를 위하여〉, 6장 〈바라는 이상을 위하여〉 등이다. 각 장은 10개 안팎의 소항목으로 나뉘어 칸트 철학의 전반을 다룬다. 주로 저자 이라야가 칸트의 명제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우리 사회의 에피소드를 예로 들며 설명하고 있다. 독자들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나 명언 등을 우리 에피소드를 섞어 독자들은 쉽게 이해에 다다를 수 있게 해준다. 

1장에서는 '현명함'을 찾아 떠난다. 칸트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똑똑하고 야무지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지기 싫어하고 한 마디라도 더 아는 척해야 자신의 잘남이 증명된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사회는 이런 사람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상황과 문제에 맞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현명함이 당신을 돋보이게 한다."

1장에서 '사후 천국'보다 현세의 '오늘'을 누리라는 말을 한다. 기독교나 가톨릭 등 종교계에서 들으면 기겁할 일이다. 실제로 칸트는 무신론적 경향을 드러내는 바람에 당시 교황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로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독자는 알고 있다. 저자는 칸트의 격언에 설명을 더하고 있다. "자신이 오롯이 행복할 수 있고, 뿌듯함이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자신이 정한 '정언명령'을 따라 사는 삶이다. 오롯이 자기 선의지에 의해 행하는 행동이나 말,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를 실현하며 사는 것이다.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 행위 자체가 선(善)인 까닭에 그 도덕적 명령을 수행하면서 자기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며 살면 된다. 이는 신의 명령이나 권위자의 제시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오직 자기 의지, 양심, 도덕법칙에 따라 자의적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삶을 의미한다. 

2장의 '바른 가치'도 삶의 중요한 요인이다. 사고의 폭이 넓은 사람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현상에 관한 판단이 남다르다. 이를 아는 우리는 자기 생각과 사고에 깊이를 더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고 만나는 사람도 특정되어 있다. 자신의 틀을 깨기가 어렵다. 저자는 서서히 관심의 분야를 확장하고, 자기 영역 밖의 문제나 분야에 관심을 가져볼 것을 제안한다. 다만 처음부터 사고를 키우고 넓히겠다는 의도로 접근하지 말라고 저자는 경계한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관계와 조직에서 ‘나’의 위치와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가 많은 똑똑한 사람보다 경험과 합리적 사고가 뒷받침되는 지혜가 현명함으로 작용한다고 저자는 괴테의 격언을 강조한다. 



3장 〈자신을 위하여〉, 4장 〈우리를 위하여〉에서는 '자신'과 '우리'에 대해 짚어본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의 무게는 막중하다. 한없이 작아지고 볼품없이 느껴지는 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우리에 속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한다. 당차고 매력있는 자신을 찾고 싶다면 당장 독자들은 이 챕터를 펼쳐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5장 〈합리적 사고를 위하여〉, 6장 〈바라는 이상을 위하여〉는 합리적인 사고와 이상에 대해 논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념이나 관점이 양극화되는 사회로 치닫고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선인들의 말은 현대사회에서는 개념 없는 사람이 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바른 이치에 합당한 이성적 사고는 어떻게 가능할까. 이 점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지식 습득을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을 것을 주문한다. 무엇을 이상으로 삼아 전진하고 나아갈 것인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 잡을 묘안이 여기에 숨어있다. 이들 5, 6장에 실려 있다.

‘철학의 콜럼버스’로 불리는 칸트가 기존의 철학 개념을 비판하고 내놓은 이성과 경험의 개념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것만큼이나 철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한다. 그동안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초월론적 차원을 발견하고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전복시킨 사상이다. 이는 감각적인 발견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생각의 출발선에서 사회와 관계, 현상과 법, 양심과 도덕, 경험과 사고 등 한 사람에 대한 탐구가 집대성된 결과이다. 칸트가 그 일을 선봉에 서서 해냈다는 점이 칸트의 철학을 높이 산 이유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지럽고 혼란하고 어려운 상황은 계속된다. 지나고 보면 역사에 남는 굵직한 사건만 기억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자 비슷하지만 다른 고통과 역경, 시련을 마주하면서 극한 진통을 겪어낸다. "살아야 한다, 버텨야 한다, 끝까지 달려야 한다"고 이를 악물지만 흔들리는 세상의 파고에 바로 설 자신을 잃는 일이 다반사다. 이 시점에서 이 책은 칸트처럼, 칸트와 함께 해답 없는 질문을 쏟아낸다. ‘어떻게 살 것인가?’ 백사장에 뿌려진 한 톨의 모래에 불과한 ‘나’이지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세상을 똑바로 살아가야 한다는 고전적 주제가 다시 대두된다. 누구나 인간은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어디를 바라보고 무엇에 기대야 하는가? 그 답을 찾고 싶다면 ‘인간’에 집중하여 다양한 층위를 분석하고 조망하고 정리하여 내놓은 칸트식 해법에 집중해보자. 이 책에 해법이 제시돼 있다.



질서가 무너진 현장에는 ‘나 하나쯤이야.’라는 의식이 쓰레기처럼 쌓여있다. 나사 하나를 잘못 조이면 기차가 멈추고 다리가 무너진다. 그러기에 ‘나 하나’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잔뿌리들이 없으면 어떤 식물도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다. 성장이 정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열매 맺지 못한다.(p.170)


윤리 ‘도덕’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자라온 환경이나 교육에 영향을 받고 경험이나 관계에서 완성되는 내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고차원적일 수 있고 누군가는 단순하지만, 폭이 넓을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더 낫다, 우월하다, 월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할 수 없다. 자신이 추구하고 발견한 삶의 가치를 기준으로 정해지기에 타인이 어떠한 문제 제기해서도 안 된다. 그 ‘도덕’ 자체가 행복의 비결이기 때문이다.(p.211)


어떤 일이건 하고 싶은 의욕이 발동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다. 자신이 도전하고 땀 흘릴 만한 가치를 가진 일을 찾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사는 삶이 아닌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 준비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얼마나 쉽게 일할 수 있는지 평가하지 말자.(p.244)


저자 : 이라야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15년 동안 논술지도를 했다. 동화 쓰기를 즐기며 단행본의 문장 다듬는 일에 매력을 느낀다.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몸속 어딘가에 내재되어 있음을 믿고 그것을 증명하고자 애쓰며 살고 있다.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는 평을 자주 듣지만, 충전은 따로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믿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생기에 열광하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인물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 삶을 배우려 한다. 유한한 삶에 무한한 가치를 담겠다는 거대한 포부가 있다. 그 무한을 글로 일궈낼 생각이다.

지은 책으로 『올드 보이 선생님』, 『미확인 바이러스』, 『가짜 정우 진짜 정우』, 『수상한 캠프』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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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차린 식탁 -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50가지 음식 인문학
우타 제부르크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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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에서는 현생 인류의 등장을 약 3만 년 전으로,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으로 꼽고 있다. '신인류'로 일컬어지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등장한 시기다. 이보다 훨씬 전인 30만년 전에는 몇몇 형질적 특징에서 현대인에 보다 가까이 접근한 고인류 화석이 발견됨으로써 현생 인류의 출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냥을 하던 구석기 시대와는 달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농경과 목축이 가능했던 신석기 시대로의 변화를 보여 준다. 이후 인류는 계급사회와 문명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인류와 비슷한 유인원 수준의 인류는 약 200만 년 전 출현한 직립원인, '선 사람'이란 뜻의 호모 에렉투스다. 이들은 불을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도 사냥을 위해 돌을 깨뜨려 만든 각종 무기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지능도 꽤 발달한 상태의 인류 조상인 셈이다. 

사냥으로 먹을 것을 구하느냐, 농사를 지어 재배하느냐는 인류학의 분류상 굉장히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집단 생활을 하기 시작한 구석기시대의 호모 에렉투스와 농경 시대의 막을 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는 거의 200만 년의 차이가 있다. 또,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시기에는 상당한 시간 동안 공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는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먹을 것을 구해 섭취해야 한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는 먹을 것의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주변 움직이는 작은 동물을 잡아 불에 구워 먹는 생활을 오랫동안 해온 인류는 식물을 재배해 먹기 시작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된다. 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큰 적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집단화해간다. 정착 집단화는 인류 문명 발달에 결정적 요인이 된다. 곡식을 재배한다는 것은 비·기온·바람 등 기후의 변화도 인지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또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의 원시 공산 사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집단에는 반드시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와 지시를 이행해야 집단의 유지·지속이 가능하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가장 중요한 분배에 있어서 평등하게 분배하는 원칙은 맞지만, 계급이 생기고 소유와 저장의 의미를 인식하고부터는 계급에 따른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계급의 차이는 일상 생활이 계급에 따라 주어지는 여러 혜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인류가 출현한 지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진화를 거쳤지만 어느 시대든 먹을 것이 모자랐다. 현대 사회를 제외하고는 수백 만 년 동안 인류는 식량 소비량이 생산량을 늘 앞섰다고 한다. 식량 부족을 겪으면서 사냥법의 발달, 곡물 재배법에도 발전을 가져왔지만 전 인류를 먹여 살리기에는 항상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집단 전체가 식량 부족 상태가 지속되면 먹을 것을 이웃 집단에서 빌려와야 하지만 선뜻 빌려줄 정도로 식량이 넘쳐나는 집단은 없을 터, 결국에는 전쟁으로 악화된다. 이웃 약한 집단을 힘으로 제압하고 먹을 것을 빼앗아 오는 것은 물론 노에도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듯 인류는 식량(먹을 것) 부족으로 항상 굶주려 왔다. 이 책 『인류가 차린 식탁』은 인류가 살아오면서 먹은 음식을 모아 음식이 발전해 온 과정을 재미 있게 설명해준다. 유사 이전 '매머드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BC 10,000년 전후해서 시작된 음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 우타 제부르크는 몸집이 작고 몸이 연약해 크고 날렵하고 사나운 짐승과의 싸움은 아예 시작도 못한 '겁쟁이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구석기 시대 수십만 년 전 이야기다.

이때 먹을 것을 취하는 인간의 모습은 말 그대로 '흑역사'다. "검치호랑이 몇 마리가 들소 한 마리를 잡아먹더니 뒤이어 하이에나 떼가 달려들어 남은 살을 뜯어먹는다. 하이에나마저 배를 채우고 가면 드디어 인근 검불 밑에 몸을 숨기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인간의 차례다. 주먹도끼로 뼈다귀를 내리쳐 속에 든 골수를 조금도 남김없이 후루룩 빨아먹는다. 대단찮아 보이는 저 피조물은 이렇게 음식을 섭취하여 마침내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올라간다."(p.13~14)

2만년 전쯤 빙하기는 바다까지 얼어붙어 베링해라 불리는 바다의 표면마저 얼어붙었다. 이로 인해 모험심 넘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 쪽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저자의 글은 상상처럼 표현하지만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이를 입증할 만한 인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다다른 이들은 대단히 훌륭한 사냥꾼으로 발전했다. 매머드, 고대의 거대 사슴 그리고 나무늘보를 닮은 거대한 땅늘보 같은 동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은 어쩌면 이들 사냥꾼의 거리낌 없는 육식 애호 습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들 사냥꾼들의 문화를 돌로 만든 창촉이 처음 발견된 곳의 이름을 따서 '클로비스 문화'라 부른다. 저자는 추측과 상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이야기를 가로지르는 주제는 음식이다. 음식으로 저자의 입맛에 맞는 식탁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식을 통한 인류사 산책」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통해 "당초 책의 구상은 "인류사를 관통하는 미식 산책'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곧바로 생각이 달라졌다. '식사'라는 주제는 처음에는 그저 인간의 가장 실존적인 욕구로 보일 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목소리를 지닌 놀라운 메뉴가 되기 때문이다. 음식은 사회의 토대이면서 공동체 형성을 부추기는 요소이지만, 그 속에는 권력과 무자비한 계층 구조도 들어 있다. 음식은 열과 성을 다해 지켜낸 민족자산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음식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정치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심지어 시민불복종의 수단이 될 수도 있으며, 인류사의 가장 암울한 장면은 먹을 것의 부재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5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한두 가지 음식이 소개되며 '매머드 스테이크'를 다룬 1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음식이 역사 시대에 발전된 음식들이다. 1장의 내용이 앞서 언급한 베링해를 넘은 사냥꾼들 이야기다. 2장 「곡물죽과 외알밀로 만든 빵」은 기원전 5500년경 중유럽에서 사방에 널린 짐승을 잡아먹다가 숲에서 풍성하게 자라나는 과일이나 곡식의 열매도 있었을 것이다. 빙하기가 지나면서 지구는 점차 따뜻해졌고, 대지 곳곳에서 곡식이 싹을 틔웠고 사람들은 점차 곡식을 수확해 가공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곡식을 대규모로 경작하게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사에서 이 시점에 인간의 실존은 온통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인간의 모든 일상을 규정한 것은 오로지 양식을 잘 챙기고, 경작하고, 수확하고 또 가공하는 일이었다. 집을 지을 때조차도 먹을거리 보관과 상 차리기에 쓸모가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결국 집이란 부엌 딸린 저장고였으며, 인간이 다만 거기에서 기거할 뿐이었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주거지는 대개 작은 호수를 따라 여러 채의 집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선 형태였다. 이들 집은 꽤나 커서 깊이가 20m쯤 되었으므로, 그 각각의 집에는 많게는 30명쯤 살았을 것이다. 그런 집은 굵은 목재로 된 튼튼한 골조를 갖추고 있었다. 햇빛은 바닥 근처까지 이어진 지붕 끝자락의 문을 통해서만 안으로 들어왔다. 

집의 중심에 불이 있었다. 바로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음식 만드는 곳은 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아마도 밥 먹는 시간이 되면 그 불을 에워싸고 앉았을 것이다. 부엌이 집의 심장이라는, 이제는 뻔한 말이 되어버린 표현은 신석기 시대, 즉 인류의 주거 양식 초창기에 그 뿌리가 있다. 집은 마을에서 가장 물기가 없는 곳이므로 거기에는 여분의 곡식을 저장해두는 방이 적어도 하나는 있었다.



7장 「빵과 포도주」에서는 AD 30년경 로마제국 치하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느 봄날 저녁, 로마에 점령당한 예루살렘에서 기독교 세계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만찬이 벌어진다. 유월절(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로, 유대인들이 이집트 신왕국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사건을 기념한 데서 유래한 날-역자 주) 잔치를 목전에 둔 때다. 유대 땅 산지에 자리 잡은 이 화려한 도시에서 골목마다 희생양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장사꾼은 희생 짐승을 팔려고 내놓는다. 먼 길 오느라 먼지를 뒤집어쓴 수많은 지친 순례자들은 가장 멋진 짐승을 두고 벌써부터 값을 흥정한다. 늘어선 지붕 위로 우뚝 솟은 신전의 하얀 대리석이 환히 빛난다. 열 세명의 남자들이 이른 유월절 식사를 하려고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란 명화의 모습이다. 저자가 상상한 것인지, 어느 그림을 보고 꾸며서 쓴 것인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최후의 만찬에 오른 음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서 시대에는 큰 음식 그릇 하나를 놓고 만찬을 한다. 이 그릇을 식탁 한가운데에 둔 다음 하나씩 받은 납작빵을 마치 숟가락처럼 사용해 그릇에 담긴 것을 떠먹거나 적셔 먹었다." 이 최후의 만찬에 오른 음식 그릇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성서에 나와 있지 않다. 어쩌면 깍지 있는 콩, 예컨대 렌틸콩 같은 것을 양파에 올리브유 그리고 약간의 석류즙을 함께 넣고 끓인 간단한 채식일 수도 있다. 게다가 그날을 경축하는 양고기 구이가 틀림없이 식탁에 오를 것이다. 유월절의 양은 먼저 털가죽을 벗겨낸 다음 흙으로 만든 화덕의 이글거리는 불에 완전히 태워버린다. 복음서 저자가 직접 이 음식을 언급하지 않은 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날 저녁 상에 오르는 가장 간단한 두 음식, 즉 빵과 포도주가 결국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납작빵은 고대 이스라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인들은 아침마다 두 개의 돌로 이루어진 수동식 분쇄기, 즉 맷돌을 이용해 곡물을 빻는다. 거칠게 빵은 가루를 체로 걸러낸 다음 물과 소금을 넣고 반죽해 둥글넓적한 모양으로 만든다. 동틀 무렵이면 이제 따뜻한 빵 향기가 온 집 안을 가득 채운다. 빵은 공용 오븐에 피워 돌과 내벽을 뜨겁게 데운 다음 반죽을 그 돌 위에 얹어 숯의 잔열로 빵을 굽는다. 포도주도 날마다 먹는 음식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 포도주를 샘물과 섞어 마신다. 텁텁한 맛을 좀 줄이기 위해서다. 위생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살균을 위해 물을 끓여 먹는 것을 아직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음식 중 대부분은 먹어보진 않았지만 이름을 들어본 음식들이다. 그러나 한 시대 한 지역의 특정한 이유로 생긴 음식은 대중화되지 않은 채 아직도 그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음식도 꽤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서야 처음 알았다. 26장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음식」, 40장 「반미 샌드위치」, 45장 「개츠비 샌드위치」, 그리고 49장의 「노무라 해파리 샐러드」 등이다. 이름도 처음 듣고 물론 먹어본 적은 더더욱 없다. 물론 '비스마르크'란 인물 이름과 '개츠비'라는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그들의 이름을 인용해 음식에 이름을 붙인다. 이유는 금세 추측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알기 위해선 이 책에서 읽을 일이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아직 프로이센이라는 이름과 왕정으로 존재하던 시절, 비스마르크라는 독일의 강력한 재상이 나타난다. 그는 독일제국이 번영의 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터를 닦고 강력한 정책을 실현시키며 유럽의 강력한 나라로 독일을 우뚝 세운 재상이다. 독일인에게 존경의 대상이고, 도드라진 콧수염의 소유자로, 우리에겐 '철혈 재상'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시기는 로마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최후까지 종족과 땅 지켜낸 고트족(게르마니아족)과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이 영광을 재현하는 시기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비스마르크 재상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에 그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고 한다. 하물며 풍성한 식사에 집착한 건장한 체구의 비스마르크였으니 비스마르크 색, 비스마르크 군도, 비누, 전함뿐만 아니라 수많은 음식에도 그이 이름을 내걸었다. 비스마르크의 이름을 갖다 붙여 품격을 드높인 이들 음식은 비스마르크 사진의 미식 애호와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것으로 저자는 추정하고 있다. 묵직한 식재료의 거리낌 없는 사용과 독일적인 남성성을 지니고 있는 '비스마르크 오크'를 우선 꼽는다. 본디 이 음식은 롤케이크인데, 겉에 버터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카카오가루를 뿌려 갈색을 낸 다음, 눈속임용으로 작은 네모꼴로 썰어 설탕에 절인 레몬 껍질이나 피스타치오를 박아 넣었다. 이 롤케이크는 마치 이끼로 뒤덮인 오돌토돌한 참나무 모양 같았다. 뿐만 아니라 비스마르크 식이라는 뜻의 '알라 비스마르크'라는 것도 있다. 본디 스테이크나 저민 살코기 구이에 반숙 달걀을 고명으로 엊은 것을 일컫지만, 오늘날엔 오히려 이탈이아 음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리법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로마 시대의 유명한 집안 잔치에는 상상 불가의 창작 요리가 식탁에 오르곤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구운 멧돼지의 배 속에 살아 있는 새들을 숨겨 놓았다가 손님들을 놀라게 만들곤 했다. 중세는 기적과 마법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소용돌이친 시대였는데 약초에 함유된 마술에 가까운 힘은 보양 수프 등의 레시피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앞서 잠깐 살펴본 대로 19세기 말 프로이센은 먹을거리가 넘쳐났으며 제국의 총리인 비스마르크에 대한 숭배가 절정에 달해 비스마르크 오크, 알라 비스마르크, 비스마르크 청어 등 다양한 먹을거리에 그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

또한 영국의 BBC는 창립 초창기 프랑스의 요리사 마르셀 불레스탱을 초빙하여 생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때 만든 음식이 바로 달걀, 버터, 소금만으로 요리하는 오믈렛이었다. 진정한 능력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 드러나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저자 우타 제부르크는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삶을 떠받치는 근본 토대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실은 코로나로 인한 전면 봉쇄가 시행되는 동안 예전보다 더 뚜렷해졌다고 강조한다. 대부분 집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자 사람들은 팬데믹 속에서 하나가 되어 다시 식탁 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음식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짚어보는 일은 인류 역사의 핵심부에서 우리의 삶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우칠 수 있었다. 


저자 : 우타 제부르크(Uta Seeburg)


베를린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독문학, 비교문학, 미술사를 공부해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건축 전문 잡지 의 기자로 여러 해 동안 활동하면서 디자인 및 여행 관련 기사를 주로 작성했으며, 음식 관련 에세이도 다수 집필했다. 지금은 역사를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을 쓰는 데 전념하고 있다.


역자 : 류동수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독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에서 독어학 및 일반언어학을 수학했다. 지은 책으로 『브랜드 네이밍 백과사전』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거짓말에 흔들리는 사람들』 『지구와 바꾼 휴대폰』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흐르는 시간이 나에게 알려주는 것들』 『0.1% 억만장자 제국』 『나는 아직도 사랑이 필요하다』 『내 인생 나를 위해서만』 『국가부도』 『태고의 유전자』 『내 안의 돌고래를 찾아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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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섬과 박혜람 - 제2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임택수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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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김섬과 박혜람』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자화상으로 알려진 〈상처 입은 남자〉(아래 그림)에 대한 묘사와 그림 설명으로 시작한다. "쿠르베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혜람은 상처를 입은 채 쓰러질 듯 나무에 기대어 누워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따금 사내가 반쯤 잠긴 눈으로 그림 앞에 선 사람이 자신을 연민하는지 혹은 조롱하거나 불신하는 눈빛인지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사내의 가슴에 한 손을 얹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베고 누웠던 그의 연인을 상상해 보았다. 화가는 떠나간 연인이 남긴 아픔을 칼과 사내의 흰 셔츠에 묻은 붉은 피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만약 전 연인이 모습이 삭제되지 않고 원본 그대로 남겨졌다면 그림은 상상의 여지를 해치게 됐을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혜람은 생각했다."(p.7~8)

혜람은 미술 해설사(도슨트)다. 이 소설 속 두 여주인공 중 한 명이다. 혜람은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막 해설을 마친 쿠르베의 〈상처 입은 남자〉는 쿠르베가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팔지 않고 말년까지 소장한 작품이라고 한다. 원래 자화상을 그린 것이 아니고, 그의 연인이었던 바르지니 비네가 곁에 있었지만 연인이 떠나자 고쳐 그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비네가 4살 된 아들을 데리고 떠나버리자 이후 십여 년에 걸쳐 고쳐 그리는 과정에서 연인의 모습은 지워졌고, 쿠르베는 가슴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모습이 되었다. 화면의 칼자루로 보아 그림 속의 남자는 결투를 하여 중상을 입은 후 홀로 누워 잠이 든 (혹은 죽은) 듯하다. 이는 당대 문학에 자주 등장했던 사랑을 위한 결투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영웅적으로 고통 받는 예술가상이라는 낭만적인 주제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미술사가들은 평하고 있다. 이 작품을 그의 개인사와 연관해서 보면, 그림이 최종적으로 완성되기 2년 전인 1852년에 비네가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4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이때 입은 상처를 기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평이다. 쿠르베는 기존 자화상의 관습을 뛰어넘는 허구적인 내러티브를 작품에 도입해, 사적이 경험이 담긴 자화상도 보편적인 주제의 인물화로 읽힐 수 있게 했다고 서양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혜람은 이날 유난히 쉴 새 없이 떠들어서 갈증도 심했다. 미술관에서 오가며 얼굴을 익힌 한국 사람들이 눈인사하며 스쳐 지나간다.



                                            쿠르베의 〈상처 입은 남자〉

쿠르베의 상처는 매우 상징적 표현으로 여기에서 박혜람의 시선으로 묘사되고 있다. 주인공 혜람도 연인을 떠나온(떠나버린) 경험이 있음을 암시한다.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관념을 다루는 작가(임택수)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매, 이 소설을 여는 쿠르베의 자화상 〈상처 입은 남자〉(오르세)는 상징적이다. 지독하게 자유를 사랑한 화가의 자기애를 보여주는 이 그림이 구경(究竟), 함께 자유로운 비-의존(非依存)에 이르는 두 주인공의 운명을 표상하는 것도 그렇지만, 식물적 상상력 또한 종요롭다. 우듬지들은 이웃 나무들과 빛을 골고루 나눈다는 '꼭대기의 수줍음'을 상기컨대, 일체중생의 근본적 상호의존성에 대한 식물적 수락이야말로 두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동력이거니, 소설의 처음과 끝을 둥그렇게 감싸는 소나무허리노린재는 그 살아 있는 화두일 것"(p.274~275)이라고 추천평을 썼다.

사랑과 관계, 만남과 이별,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상처와의 대면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여정이다. 혜람은 진지한 눈빛으로 수백, 수천 가닥의 중첩된 선으로 채워진 그림을 본다. 안팎이 따로 없고, 공간의 구분도 사라진 선 앞에서 혜람은 어떤 사랑도 모든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숨겨진 그 무엇이 진실이라고. 혜람과 함께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김섬은 타투이스트다. 저자 임택수는 〈작가의 말〉을 통해 "김섬은 상처로 상처를 가린다. 그것은 부활이고, 타투는 그녀의 조언에 다름 아니다."고 썼다. 두 여주인공은 오랜 친구이자 룸메이트였다. 김섬과 박혜람은 각자 사랑과 이별, 공포와 상처를 겪으며 '커다란 바위의 안쪽 같은 어둠'을 경험하지만 종국에는 '기억과 재생'의 자기만의 빛을 만들어간다. 

소설가 은희경은 "김섬과 박혜람이라는 두 인물의 사랑에 대한 원근법.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공간과 문화의 변주. 도슨트와 타투이스트의 서로 다른 프로페셔널한 미적 탐험.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둘러싼 채 만남과 이별을 직조하는 관계들. 이 소설은 사랑과 관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한편 그 디테일한 여정에 흥미롭게 동참하도록 만든다."고 평가하며 사랑과 관계에 대한 작품의 성격에 중점을 둔다.



소설 속에서는 김섬과 박혜람, 그들의 남편과 연인인 최준오와 홍지표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짧은 인연을 나누고 헤어지거나 다시 만난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곳의 공간과 문화는 여러 작중 인물의 삶 속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프랑스 유학이라는 저자의 경험이 공간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폭설이라는 재난이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은 또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모양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이어간다. 이렇게 등장 인물은 유기적 관계를 이루며 소설의 구성을 긴밀하게 도와준다. 소설이 끝에 이르면 비록 우리 모두가 '우주를 떠도는 외톨이 별' 같은 존재일지라도 '단지 가깝게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수렴되는 과정을 거친다. 소설은 결국 '그 하나하나가 한데 어울려' 마침내 성운처럼 장관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이끌어낼 수 있게 한다.

임택수 작가는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오랜 날 오랜 밤」이 당선되며 작가로 데뷔한 뒤 연달아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김섬과 박혜람』을 통해 “실패한 사람들, 어떤 중단된 삶을 사는 사람들, 계획과는 좀 어긋나게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위로를 건네고픈 마음이었다”면서 “중간에 꺾이더라도 계속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독자에게 전했다. 이제 개화하기 시작한 그의 문학이 활짝 피어나는 모습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게 한다.

폭설로 샤를 드골 공항이 마비된다. 승객들은 항공사가 제공한 호텔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여러 인물의 만남이 발생한다. 파리의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일하는 혜람도 발이 묶인다. 일과,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자 했던 지난 십여 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한국에는 오랜 시간 그녀의 단짝이었던 김섬이 있다. 혜람은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지만 자신의 짐이 분실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녀는 예전에 김섬과 함께 살았던 집에 머물면서 김섬의 달라진 일상을 알아챈다. 



김섬은 프랑스로 떠났다가 태연히 돌아온 혜람에게 오래 묵혔던 감정을 드러내고, 떨어져 있던 동안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마침내 김섬과 홍지표의 연애 사건으로 두 친구의 갈등은 심화하고, 그날 밤 혜람은 그 집을 나간다. 이후 그녀는 강원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김섬은 동료 소방관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홍지표에게 마음을 조금씩 내주게 된다. 그의 어깨에 있는 화상 자국을 타투로 가려주며 그에게 동거인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관계를 이어간다. 홍지표는 우연히 본 영화에서 어린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에게 가해진 폭력과 죽음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은 그를 급작스레 무너뜨린다. 김섬은 그런 홍지표를 지켜보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홍지표와 헤어지고, 뒤늦게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김섬은 십 년 만에 본가가 있는 슬구포로 내려가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오랜 고민 끝에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

두 여주인공은 혜람의 옛 연인 최준오의 부름을 받고 프랑스로 떠나면서 갈라진다. 혜람은 오직 준오 하나만 보고 프랑스로 떠났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꾼다. 혜람보다 먼저 프랑스로 건너가 중학교 미술교사로 일하던 준오는 혜람이 오자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하게 그녀의 적응을 돕는다. 자신의 보호와 도움 아래서만 혜람이 살아갈 수 있다는 듯이. 그러다 혜람이 어학 과정을 마치고 문화해설사 자격증을 취득해 일을 시작하자 태도가 돌변한다.

누구에게나 오류의 어둠이 시작되는 지점이 있다.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제대로 깨달았을 때는 이미 어둠에 빠진 다음이다. 준오만을 생각하고 프랑스로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김섬은 극구 반대했었다.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준오의 욕망은 의심과 불안을 낳고 오래지 않아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번 시작된 폭력은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혜람은 작문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고작 두 개일 뿐인 마음인데 왜 서로 못 맞추고 엇갈리는지” 괴로워하던 혜람은 한국에 돌아오지만 김섬과의 관계마저 손상되고 만다. 우정보다 더 진했던 관계가 깨어진 뒤 혜람은 설악산 자락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해간다.



김섬과 홍지표의 관계도 일반적인 궤도로 진입하지 못한다. 친구 이상으로 생각했던 박혜람이 떠난 후 혼자가 된 시간을 버티기 위해 일상에 최선을 다했던 그녀는 강단 있는 기질로 통념을 위반하며 결핍을 채우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세계는 여전히 불편하고 불완전하다. 김섬은 자신이 미래를 꿈꾸며 홍지표와의 만남을 이어 온 것이 아니며, 그가 동거녀와 헤어지길 바란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료의 죽음과 현장 업무에서 비롯된 외상으로 고통받는 홍지표는 김섬과 새로운 출발을 원하지만, 청소년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인 균형을 잃는다. 그와 헤어진 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김섬은 아이를 지우려 생각했다가 결국 마음을 바꾼다. “지금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독립된 생을 꾸려 가게 될” 존재, “비록 자신이 품고 있지만 아이는 이미 하나의 개별적 존재”라는 각성 때문이다. 또 하나의 섬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오래 거닌 끝에 재회한다. 오늘의 나무가 어제의 그 나무가 아니듯 천천히 변화한 모습으로.


외국에서 혼자 오래 지낸 남자는 중독된 게 많았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사람에게도 금방 중독되는 것 같았다. 그는 혜람에게 너무 사랑한다면서 혜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술은 그렇다 쳐도 애정이 지나치면 집착이 된다.”

김섬이 말했다.

혜람은 그의 관심이 남들보다 좀 유별난 방식으로 표현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과 행동이 가끔은 연기처럼 느껴져 별로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류의 어둠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p.157)



“목련 알지? 정말 이삼일 만에 진다.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인간의 삶도 그렇겠지?”

“그런 생각 한 적 있어. 꽃은 며칠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생명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다 하잖아.”

“계획 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 또한 나쁠 게 없겠지.”

“돈도 지나치게 많으면 무감각해지고, 예쁜 얼굴도 늘 보면 별거 아니잖아?”

“모자라고 결핍된 것 속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는데.”

디디에가 휴대전화로 꽃을 찍었다.

“우리 모두의 존재 자체가 그렇지 않을까?”

혜람이 말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왜냐하면 그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까”라고 말했다.(p.205)


저자 : 임택수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열네 살까지 살았다. 이후, 서울과 프랑스의 몇몇 도시에서 일과 학업을 이어갔다. 프랑스 폴 베를렌 메스 대학(Paul Verlaine de Metz)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오랜 날 오랜 밤」이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장편소설 『김섬과 박혜람』으로 제20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롯이 혼자이고 싶을 때, 노트북을 챙겨 공항으로 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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