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은총의 일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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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 출판된 이책은 결코 드러낼 수 없었던 동성애로 힘들었던 남성의 시선으로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지만 결국은 자기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을 절절하게 느끼게 한다.

삶은 그냥 삶이오. 삶은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좋은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저주요 우리는 사는 거요 모니크,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특별하고 유일한 삶을,우리가 아무것도 손댈 수 없는 과거 전체에 의해 결정된 삶, 아주 작은것으로도 미래 전체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삶을 사는 거요. 자기의 삶 오로지 그 자신만의 것인, 두 번 있지 않을 스스로 온전히 이해했는지 단한 순간도 확신하지 못하는 삶 말이오. 삶 전체에 관한 이 말들은 삶의매 순간에 대해서도 똑같소, 타인은 그저 우리가 있고 움직이고 말하는 것을 볼 뿐이오.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의 삶이 이러저러하다는 데 놀라면서도 그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우리의 삶을 심판할 때 조차 우리는 여전히 그 삶속에 속해 있소. 삶을 향한 찬양도 비난도 삶의 일부인 거요. 삶은 언제나 삶을 비출 뿐이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리 각자에게 세상은 오로지 우리의 삶에 와 닿을 때에만 존재하는 거요.

- P33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장소에 너무도 많은 끈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면 우리 자신을 떠나는 것이 쉬워지리라 생각하게 되나보오. - P57

그 순간 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리라는 걸, 내 말을 듣고난 후 어머니 얼굴에 번질 표정을 감내할 수 없으리라는 걸 절감했소.
새 등잔의 옅은 불빛이 나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쓸데없는 과오를저지르지 않도록 막아준 셈이지. 속내를 털어놓는다는 건, 그대여, 다른 사람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면언제나 해로운 일이라오. - P58

낮 동안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명확한, 아마도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목표를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밤이 되면 모두 꿈속에서 걷고 있는 것 같다오 내 눈에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꿈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흐릿한 형상이었소. 어쩌면 삶 전체가 악몽이 아닌지, 지쳐 진 빠지게 하는 끝없이 이어지는 악몽이 아닌지도 알 수 없었소.  - P63

타인 안에 있는 것 중에서우리의 감정을 흔드는 것들 역시 삶이 빌려준 것에 지나지 않지. 지금나는 영혼도 육신과 똑같이 늙는다는 것을, 훌륭한 사람들에게도 영혼은 한 계절 동안만 꽃을 피운다는 것을, 젊음이 그렇듯이 그것은 하루살이 같은 짧은 기적일 뿐임을 절감하오. 그러니 그대여, 그저 흘러버리는 것에 의지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게소. - P65

이전에 난당신에게 삶이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경솔한 약속을 했소. 이제 더없이겸허하게, 당신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토록 오랫동안 곁에있었던 것에 대해서, 당신에게 사죄하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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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니샤드 - 인간의 자기 발견에 대한 기록
정창영 옮김 / 무지개다리너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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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참 자아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참 자아는 다른 어떤 근원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며다른 어떤 것을 낳지도 않는다.
참 자아는 스스로 영원불멸하는 존재이다.
육신이 죽어도 참 자아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이
자기가 진짜로 누군가를 죽인다고 생각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자기가 진짜로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모두 참 자아를 모르는 것이다.
참 자아는 죽일 수도 없고
죽임을 당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 P35

3-4. "나치케타여,
참 자아는 육체라는 수레를 타고 가는 주인공이다.
그대의 식별능력은 수레를 모는 마부이며,
그대의 마음은 말을 제어하는 고삐이다.
감각기관은 말(馬)이며,
감각이 좇는 여러 대상은 말이 달리는 길이다.
육체와 마음과 감각기관을
참 자아 주인공과 혼동하지 마라.
육체와 마음과 감각기관을 그대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는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찾아오는
번뇌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 P38

5-9. 마부인 식별능력이 어둡고
고삐인 마음이 훈련되지 않으면
감각기관은 길들지 않는 야생마처럼
이리저리 제멋대로 날뛰게 된다.
그러나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식별능력이 밝게 깨어 있으면,
그대의 감각기관은 잘 길들여진 말처럼
마부의 명령에 고분고분 순종한다.
식별력이 어둡고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며
오만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혼란한 사람은
순수하고 영원한 불멸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
그는 윤회의 길을 따라
태어남과 죽음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러나 밝은 식별력을 갖추고
마음이 고요하며
가슴이 순수한 사람은
여행의 목적지에 도달한다.
마부인 식별능력을 밝게 유지하고
고삐인 마음을 잘 제어하는 사람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여
영원한 신성과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되는
고통의 세계로 다시는 내려오지 않는다. - P39

10-11. "의식이 흔들리지 않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감각기관의 활동도 멈춘다.
현자들은 이런 상태를
최상의 단계라고 부른다.
감각기관의 활동이 정지하고
생각의 흐름이 멎은 "
이런 완벽한 정지와 합일상태를
‘요가‘라고 부른다.
흔들리지 않고 이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합일에 대한 느낌과
분별에 대한 느낌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된다."
- P56

5. "참 자아를 완전히 깨달은 사람은
삶에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그들은 에고의 의지를 내버림으로써
완전한 평화의 상태에 머문다.
그들은 모든 것 속에서 브라만을 보며
무슨 일을 하든지 브라만을 위해서 한다.
그들은 브라만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그와 하나가 된다." - P88

9-10. ‘죽음의 순간에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마지막 생각": <바가바드기타>에서 크리슈나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의 존재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점을 의심하지 말고 믿기 바란다. 죽음의 순간에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 그의 다음 생을 결정한다. 죽는 사람은 마지막에 품고 있던 생각에 상응하는존재의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나를 생각하며 그대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라. 힘을 다해 마음과 생각을 나에게 기울이면 반드시 나의 상태에 이를 것이다. 규칙적인 명상을 통해 얻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힘으로 나만을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면 지고한 신적인 차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제8장 5-8절) - P164

5. "참 자아는 브라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지로 인하여 자신의 영혼을 지성, 마음, 감각, 정열 등과 혼동합니다. 또는 자신을 흙,
물, 불, 바람, 허공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착각합니다. 참 자아는 브라만이기 때문에 자신 안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것으로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타난 어떤 것을 참 자아라고 착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WHOLE사람은 행하는 그대로 됩니다. 선한 행위를 하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행위를 하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선한 행위는 사람을 순수하게 만들고, 악한 행위는 사람을 더럽힙니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이바라는 대로 되는 존재입니다. 바라는 대로 의지가 형성되고, 의지는행위를 낳고, 행위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행위에 따라 그에 걸맞는 결과가 따라옵니다." - P197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에 따라행동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이 다음 생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그 욕망의 힘에 끌려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망의 힘에서 벗어난 사람은 참 자아 안에 모든 성취가있음을 깨닫고 진정으로 자유로워집니다. 이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어디로도 가지 않고 브라만 속에 머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 P198

요가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지우는 것이다. 그러면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본성에 머무르게 된다. - P359

모든 인식 작용은 ‘내가 이것을 안다‘는 식의 예고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에고이지 참 자아인 아트만이아니다. 에고 의식은 마음이나 감각 등을 참 자아와 동일시하는 데서 생긴다. 마음이나 감각은 마야의 영역에 속해 있다.
외부로부터 어떤 사건이나 사물이 감각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마음속에서 생각이 일어난다. 에고 의식은 그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즐거운 생각이 들면, 에고 의식은 ‘나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반대로 즐겁지 않은 생각이 들면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 그릇된 동일시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즐거운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런 일시적인 예고의 즐거움은 즐거움을 주는 대상에 집착하도록 만들어서 결국은 대상의 변화에 따라 불행하게 될 가능성을 준비하는 것이다.
참 자아 아트만은 에고의 생각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영원히순수하고 자유로운 상태에 머물고 있다. 개체로서의 ‘나‘라는 에고 의식이 있는 동안, 곧 생각의 흐름과 자기자신을 동일시하는 동안에는결코 참 자아 아트만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참 자아 아트만을깨닫기 위해서는, 생각의 흐름을 통제하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내 생각이라는 그릇된 에고 의식을 깨뜨려 버려야 한다. 파탄잘리는 이렇게 에고 의식을 소멸시켜 아트만 자리에 머무는 것을 ‘요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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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 - 요가 수련의 참의미를 찾아가는 여행
배런 뱁티스트 지음, 이강혜 옮김 / 터치아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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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가를 통해서 배웠거나 느꼈던 점들에 공감되는 글들이 많았고 내가 읽은 요가책들 중에는 최고였다.

지금, 매트위에 선 여러분은 깊고 규칙적인우짜이 호흡에 대하여 ‘예스‘ 인가 ‘노‘인가?
‘예스‘라면 그 태도가 호흡을 한결 편안하게 해줄 것이다.
수련 내내 시선을 유지하는 것에 대하여
‘예스‘인가 ‘노‘인가? ‘예스‘라면 그 태도가의도와 의지를 불러와 집중력을 높여 줄 것이다.

내면의 나침반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의식적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수있기 때문이다. 불평과 저항에 ‘노‘를 가리키도록 나침반을세팅해 두지 않으면 무언가를 자꾸 미루는 습관에 자동으로 ‘예스‘라고 하게 된다. 지금까지 줄곧 미루는 습관에 ‘예스‘라고 해왔다면 그 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점검해보자. 요가수련이나 명상을 미루는 습관 때문에 활력이나생기를 잃지는 않았는가?
기억하자. ‘예스‘는 실천한다는 뜻이다. ‘예스‘라는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과 습관을 단호하게 거부하기 위해 용기와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다. - P36

요가 자세를 할 때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한다. 하나는 ‘활력‘이고 다른 하나는 ‘활력을 가로막는 습‘이다. 여러 가지 습이 사라지거나 떨어져 나감에 따라 자세에서 머뭇거림이 사라지고, 동작과 동작 사이의 흐름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노‘의 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저항의 패턴에서 빠져나와 ‘예스‘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다짐으로 수련에 임하면 신기하게도 수련이 알아서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환상적으로 맞아 들어가는 것이다. - P41

숨과 숨 사이의 찰나에는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을 곧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이 곧 나‘라는 동일시 현상이 깨짐으로써 생각과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생각이 나를 소유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숨이 들고 날 때마다 생각이 호흡과 나란히 움직이는 것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생각과 호흡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대립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요가자세를 하는 동안 호흡을 지켜보면 육체의 활동인 움직임과 정신의 활동인 명상이 한데 어우러지게 된다. - P76

단 하나의 지점을 집중해서 응시하면 각종 편견과 생각의 광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드리시티는 모든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는 장인 리시빙 포즈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그리고 요가의 여덟 번째 수행법이자 ‘치우침 없는 시각‘이라 번역되는 사마디 samadhi에 도달하도록 문을 열어 준다. ‘사마sama‘는 ‘공평하고 중립적‘이라는 뜻이고, ‘dhi"는
‘시각‘이나 ‘본다‘는 뜻이다. 즉, 치우침 없는 시각은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의미다. 선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사마디는 우리의 경험을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된 백미러를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얼룩 한 점 없는 투명한 렌즈로 바라보는 행위다.  - P83

그러나 드리시티 수련에 담긴 가장 큰 의미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에너지가 흐른다는 것이다. 인생의 힘든 점만 곱씹으며 그것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신의 일부로 만든다면 계속해서 힘든 일만 생길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흐름에 맞는 일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아사나라는 신체적 활동을 통해 시선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옮겨 가면서 우리는 흔들림 없는 시선과 정렬된 신체를 유지하는 법을 익히고, 깨어 있는 의식을 기른다. 깨어 있는의식을 기르면 매트 밖의 삶에도 큰 도움이 된다. 드리시티수련은 삶에서 하는 모든 경험을 깊은 곳까지 크게 변화시킨다. - P84

요가에서든 인생에서든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을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전할 때, 스승이나 타인이뭔가 통찰을 던져 주면 그로부터 새로운 시선이 생겨나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게 되는 경험 말이다. 우리는 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리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행동은 분명히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행동은 전적으로 우리가 가진 ‘시각‘에 따라 좌우된다. 행동보다 관점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 P91

다시 말해, 우리가 허용하기만 하면 사바아사나는 가장순수한 형태의 존재 방식이 된다. 애쓰거나 생각하거나 노력하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써 성장하는 것, 사바아사나는 그것을 가능케 한다. 우리는 살면서 이처럼 달콤한 선물을 얼마나 자주 받을까?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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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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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그건 불가능해. 아이들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거야. 당신과 나는, 휴우, 우린 이미 과거야. 한순간의 분노,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 그게 바로 우리라고.이 땅, 이 붉은 땅이 우리야. 지금까지 있었던 홍수, 흙먼지 바람, 가뭄이다 우리야.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없어. 고물상한테 우리가 팔아넘긴 쓰라린 심정, 고물상이 그 심정까지 가져갔는데도 우린 여전히 속이 쓰리잖아. 지주한테이제 떠나라는 소리나 듣는 신세, 그게 바로 우리야, 트랙터가 우리 집을 들이받은 것처럼, 우린 죽을 때까지 그런신세일 거야. 캘리포니아로 가든 어디로 가든 우린 모두 쓰라린 심정을 안고 행진하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맨 앞에 서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사람들이 쓰라린 심정을안고 똑같은 길을 지나겠지. 그 사람들이 군대처럼 발맞춰지나가면, 그 자리에 무시무시한 공포가 생겨날 거야.
- P183

"난 이 나라를 걸어서 돌아다녀 봤습니다. 다들 똑같은질문을 하더군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내가 보기에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항상 무엇을 향해 가고 있을 뿐. 사람들은 왜 그걸 생각하지 않죠? 지금도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이유도 알고 방법도 알아요. 움직여야 하니까 움직이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움직이는 겁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좋은 걸 원하니까 움직입니다. 뭔가 좋은 걸 얻으려면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요. 뭔가를 얻고 싶다면 직접나가서 얻어야죠. 사람들이 화가 나서 싸우려 드는 건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난 이 나라를 걸어서 돌아다니면서 당신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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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매 시간 나로 살 수 있는 순간은 별로 없다.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디쯤 내가 서 있는지도 모를지경이다. 최진영이란 작가를 통해 과거의 나와 미래, 그리고 현재의 나를 다시 본다.
나는 지금 뭘로 살고 있을까?

뻔한 대답을 듣지 않으려면 뻔한 질문을 피해야한다. 뻔한 질문을 하지 않으려면 시간과 정성을들여야 한다. 아빠에게는 내게 들일 시간과 정성이 없다. 그래서 나름 지름길을 선택한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대신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해 놓고 그 틀 안에서만 나를 생각하는지름길. 내가 그 틀을 벗어나면 ‘네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라고 말하면서 틀을 벗어난 나를 비정상으로 잘라 버리는 거다. 아빠가 생각하는 틀 안의 자식은 공부 열심히 하고 말썽 부리지 않고 예의 바르고 싹싹하고 정직한 사람. 아빠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신경을 써야 하니까. 골치가 아플테니까. 자기 일이나 존재 말고 ‘자식‘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니까. 아빠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자식‘이란 믿음을 선택했고 내가 그 믿음에세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자기 믿음을 의심하는 대신 나를 탓했다. 놀랍도록 편한 방식이지. 아빠는 자기 자신도 그런 틀 안에 가둔다. 진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사람을 자기라고 단정해 버린다. 내가 보는 아빠와 아빠 본인이 믿는 아빠는 너무 다르다. - P54

나는 요즘 만사 짜증 나고 귀찮고 다 망했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렇다고 뭔가를 새로 시작할 자신
도 없습니다. 어릴 때 나는 그런 어른들을 알았어요참을성도 배려도 없이 화부터 내는 어른들 말입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끔찍합니다. 중요한 건・・・・・・ 큰 고통이 아니라는 거예요. 거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나는 미루고만 있어요. 알기 때문입니다. 눈앞의어려움을 해결한다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란 사실을 어질러진 방을 내 손으로 치우고나는 다시 방을 어지르겠죠. 먼지는 쌓이고 벽지는 낡아가고 어딘가에서 계속 나쁜 냄새가 올라오겠죠. 나는 구제불능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겠죠. 이 권태와 환멸, 손쓸 수 없다는 우울과 허무,계속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대체 어디에서 흘러오는 겁니까. - P71

물은 물이 되고 물은 다시 물이 된다는 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나밖에 될수 없다는 게? 물고기는 물고기로만 살고 새는 새로만 사는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자 너무 갑갑했다. 어째서 그래야만 하지? 신은 신으로만 살까?신은 우주인가? 우주는 우주로만 존재할까? 우주조차 우주로만 존재한다면 우주도 갑갑하다. 너무따분하다. 세상은 칙칙한 해변과 먹먹한 하늘과거대한 바다와 곧 바다가 될 빗줄기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살면서 봤던 찬란하고 눈부신 것들은 모두 환상 같았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싶었다. 고함을 집어 던져서 눈앞의 풍경을 깨트리고 싶었다. 깨트릴 수 없다면 금이라도 내고 싶었다. 금을 향해 내 몸을 내던지고 싶었다. 내 안에갇힌 나를 꺼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는 나겠지. 마트료시카처럼
나는 계속 나일뿐이지.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 같고, 이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 같고, 포기를 위해 꿈꾸는 것만 같다. 가방에 국어사전이 있었다면 ‘허무‘가 딱 들어맞는 단어인지 확인해 봤을 거다. - P166

‘나는 한 명뿐‘이라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이 삶을 혼자서 책잏져야 한단 말인가? 그럴 때 여러 나이의 나를 떠올린다. 일곱 살, 열다섯 살, 스물세살, 서른여섯과 마흔여덟 살, 쉰아홉 살, 기타등등의 나를. 스스로가 너무 못마땅해서 끈적끈적하고 희뿌연 기분에 잠겨 버릴 때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여기 나는 무겁게 지쳐 있으나 거기 나는 상심을 털어 내고 웃고 있구나.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힘이 난다. 책임감이 조금씩 단단해진다.
다양한 시간, 다양한 공간, 다양한 우주에 내가존재한다면.. 어떤 세계에서 내가 슬퍼할 때 다른 세계에서 나는 기쁘다. 저 세계에서 내가 삶의경이로움에 빠져있을 때 그 세계에서 나는 전력을 다해 삶을 저주한다. 무수한 나는 나라고 말할수 없고 유일한 나는 찰나의 찰나, 우주는 아주 넓고 깊고 신비로우므로 내가 유일하는 무수하든 상관없을 테고, 허무하긴 마찬가지다. 허무를 잊지않으면 낙관할 수 있다.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담대해진다. 괴팍한 불안이혼자 지껄이도록 내버려두고 소설을 쓸 수 있다.쓰다보면 견딜 수 있다
<작가의 말 중>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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