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 The P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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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에도 급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이 영화를 보고나온 헐리우드 제작자들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하기는 찔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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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12-01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자라는 것은 결국 B급일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는데도, 이 영화에서 늘 이야기되는 8분이 넘는 롱테이크 오프닝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된 S급의 영화인지를 알게 된다. 거대한 연극무대에 번갈아 밝혀지는 조명을 연상시키는 이 오프닝의 유려한(그야말로 유려한) 카메한 워크에 내재된 그 정교한 계산들. 이 계산들은 이곳이 단지 기의가 없고, 기표만이 떠도는 허위의 공간임을 관객들에게 바로 인식시킨다. 모든 것은 오로지 누구누구 식의, 누구누구 영화에 나왔던 한 장면이라는 식으로만 이야기되는 곳.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은 오로지 자신과 관계된 다른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만 가능한 곳이 바로 이곳 할리우드라는 것을 말이다.

맥거핀 2011-12-01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할리우드만 그런 곳이겠는가. 하다못해 영화리뷰를 쓰는 것에서도 기표만 떠도는 글들이 있다. 이 영화의 이 장면은 어떤 감독의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을 연상시키고, 이 장면은 다른 영화의 다른 감독의 다른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식의 이야기만 가득한 리뷰.(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한 감독을 선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키 카우리스마키나 코스타 가브라스 등 이름은 들어봤으나 많이 보지는 않았을듯한 감독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긴 이름이면 금상첨화.) 그런 리뷰들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그 장면이 실제 그 장면과 비슷한지는 둘째로 놓더라도, "과연 그게 칭찬이 되는가"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소설가에게 당신 문체가 참 이문열스러워요..라고 말하면 그 소설가가 좋아할까.

맥거핀 2011-12-01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그렇고 이 알라딘 영화 정보는 도대체 어디 것을 퍼왔는지..이 영화의 주연이 그레타 스카키와 셰어? 아니, 저렇게 메인포스터에도 떡하니 버티고 있는 팀 로빈스 형님은 어쩌고..그러다 로빈스 형님한테 혼나.
 
고스포드 파크 - Gosford Park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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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이 정지해 있을 때에도 계속 움직이는 카메라는 영화에 끊임없는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여러 인물들의 동선과 배치, 구도는 단지 테크닉으로서가 아니라, 그 밑의 숨겨진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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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1-2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영화를 보시니 도움이 많이 됩니다. 리뷰도 좋구요. 일단 구체적이지 못한 뻔한 댓글로 인사드리고 갈게요, 다시 오겠습니다, 맥거핀님.^^

맥거핀 2011-11-28 23:0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아이리시스님. 글은 종종 몰래몰래 읽었었는데(영화리뷰도 그렇고) 제 서재에서 또 이렇게 인사를 드리네요. 앞으로 종종 뵙지요.

혹 이 영화 좋아하시나요? 밑의 글에서도 잠깐 쓴 것처럼, 로버트 알트만 전이 하길래 보고 온 영화입니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맞아서 예상치못하게 이 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도 꽤 좋았습니다.^^

2011-11-29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예전에 극장에서 매우 좋게 본 경험이 있어서, '제 값' 주고 디비디도 샀는데요. 다시 보니까 첨만큼 좋진 않더군요. 왠만하면 영화 2번 보는 건 (저에겐) 별로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ㅎ

맥거핀 2011-12-02 17:31   좋아요 0 | URL
저는 반대로 이 영화 DVD를 먼저 가지고 있었는데요(제 돈주고 산 것은 아니고, 잡지 부록으로요. ㅋ). 이번에 또 영화관에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특히 이 영화같은 경우는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것과 넓은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것이 매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알트먼 감독은 의도적으로 풀샷을 자주 쓰는데, 그 풀샷에서 뿜어져나오는 스케일과 구도를 보기에는 스크린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요.^^
 
머니볼 - Money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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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러 내용 있습니다.)


1.
'머니볼(Money Ball)'이라는 말은 언뜻 야구에 대한 조롱처럼 들린다. '베이스볼'은 물론이고, '빅볼', '스몰볼'은 있었지만, '머니볼'이라는 말은 없었다. 돈 야구라니, 야구 앞에 기껏 가져다가 붙일 수 있는 말이 고작(혹은 무려) 돈이라니.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야구광'들은 그 용어에서부터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튼 야구에 있어서는, 그리고 적어도 MLB(Major League Baseball)에 있어서는 그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든, 아니든간에 이미 돈이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야구에 있어서 돈은 중요한 요소였고, 애써 아닌척 해왔을 뿐이다. '머니볼'을 정확히 정의하기란 힘들다. 아주 간단하게만 말하면, 스몰 마켓의 구단이 적은 돈으로 최대한의 효율(승리)를 이끌어내는 야구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빅 마켓의 구단도 원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적은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이끌어내는 것은 야구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도 그러하다. 

방법상으로 따지면, 그것은 선수의 보여지는 면보다 기록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라는 용어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 결국 야구란 기록의 스포츠이며, 통계의 과학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선수를 선발하거나 평가하는데 있어서 그간의 통계, 기록에 입각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확률에 거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간 2할 5푼에 꾸준히 머물렀던 타자가 올해 3할을 칠 확률에 거는 것보다는, 당연히 그간 3할을 꾸준히 쳐왔던 타자가 올해도 3할을 칠 확률에 거는 것이 승산이 높다. 이것을 머니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러나 단지 기록의 중시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머니볼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방법에 숨어 있던 빈 구석을 발견해내는 것에 달려 있다. 즉 모든 구단들이 이렇게 기록(스탯)만을 중시했다면, 당연히 좋은 기록을 가진 타자가 더 높은 몸값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머니볼에서 발견한 것은 그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괜찮은 기록을 가졌지만, 저평가되던 선수들이 있다. 머니볼은 그런 선수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2.
물론 이것에는 맹점이 있다. 야구에서는 기록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좋아하는 게임 중에 '베이스볼 모굴(Baseball Mogul)'이라는 게임이 있다. 영화 <머니볼>의 빌리 빈처럼 MLB 구단 단장이 되어 야구단을 경영하는 게임이다(비슷한 게임으로는 OOTP 같은 것이 있는데, OOTP가 Mogul보다는 훨씬 세밀하다. 그러나 물론 너무 세밀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게 만든다는 단점도 있다). 아무튼 이 게임의 목적은 실제의 현실과 같이 팀을 우승시키는 것인데, 처음에는 난이도가 꽤 높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금방 요령이 생긴다.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많은 돈을 들여 좋은 선수를 영입하면 된다. 그러나 그럴 경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돈은 바닥나고, 팀은 파산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낮은 돈으로도 점차 높은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유망주들을 많이 영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팀 페이롤(payroll: 연봉 총액)을 낮추고, 또 남는 돈으로는 FA 시장에서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으니, 당연히 팀의 성적은 올라가게 된다. 또 조금 더 악독한 방법으로는 팀의 유망주들을 빨리 장기계약으로 묶어, 오랫동안 싼 값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 다른 팀에게 약간 사기성있는 트레이드를 시도하는 방법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방법들이 통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변수가 그리 높지 않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모굴 같은 게임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수들의 능력치가 우리가 충분히 예상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게임에서의 유망주는 필시 몇 년이 지나면 스타플레이어가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정확한 그간의 기록에 의거해 어떤 선수를 스카우트했더라도, 그 선수가 팀에 와서 잘할지는 그다지 확신할 수 없는 문제다(예를 들어 책 <머니볼>에서 그야말로 '스페셜'하게 소개되었던 오클랜드의 유망주 포수 제레미 브라운은 메이저리그에서 몇 타석만을 소화하고는 사라져버렸다. 반면 비슷하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닉 스위셔는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괜찮은 커리어를 기록중이다). 마이너 기록을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신인의 경우라도 그렇고, 바로 전년도까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던 선수가 FA 영입 후 갑자기 기량이 엄청나게 저하되는 것은 흔한 경우다. 즉 현실에는 게임보다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있고, 그 변수들이 기록의 신뢰를 급격하게 저하시킨다. 물론 이러한 기량의 저하 문제는 많은 변수 중 단 한가지일 뿐이다.

또 동시에 보이는 기록이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기록은 팀 캐미스트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게임에서는 연봉이 높고, 좋은 능력치의 선수들만 잔뜩 수집해놓으면 팀의 우승은 떼놓은 당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야구는 결국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조합이 팀 전체에게 좋은 영향으로 작용하는가, 나쁜 영향으로 작용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게임에서는 1+1이 2가 되거나, 최소한 1.5는 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1이나 -10이 될 수도 있다. 스포츠의 역사에서 한 팀에 모인 여러 스타플레이어들이 팀 캐미('융화력'?)를 저하시켜 팀에 마이너스의 영향을 끼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들 수 있다. 이것은 영화에서도 보여지는데, 빌리 빈은 스탯만 생각하고 데려온 제레미 지암비를 결국 팀 캐미를 해친다는 이유로 내보내야만 했다. 이 부분은 도리어 머니볼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3.
그러므로 사실 <머니볼>은 따뜻한 이야기는 아니다. 딸과의 여러 에피소드나 선수들과의 관계, 빌리 빈(브래드 피트)과 피터 브랜드(요나 힐 - 사실 실제로는 '폴 디포데스타'라는 인물)와의 이야기 등으로 왠지 따뜻한 이야기 같다는 인상을 심지만, 그저 야구 이야기로 보면, 조금 더 잔혹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즉 그것은 다시 말해서 최소 투자에 최대 효율을 이끌어내는 경제학, 경영학의 법칙에 입각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사실 인간은 조금 밀려나 있다. 즉 이러한 경영은 거의 게임과 비슷하게 되어간다. 게임에서는 오로지 한 가지만 집중하면 된다. 그것은 팀의 우승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그런가. 예를 들어 게임에서라면 왕년에 스타였지만, 이제는 기량이 저하된 선수에게 고액연봉을 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어떠한 이유에서 - 예를 들어 팀의 프랜차이즈로 팬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면 - 고액연봉을 주고라도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다. 또 인기가 조금 없더라도, 선수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다면 데리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거나 방출할 때 오로지 할 고민은 돈에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라면 그 외에 그 선수의 기량 외적인 부분도 볼 필요가 있다. 야구는 기록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보면 <머니볼>의 경영학과 경제학은 조금 특이한 경영학이고, 경제학이다. 예를 들어 머니볼 이론에서는 오로지 기록에 의거해 신인선수를 선발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오로지 대학에서의 학점과 자격증으로만 사원을 선발한다면 어떨까. - 나는 이것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이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각본가로 <소셜 네트워크>의 아론 소킨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라 하겠다. 사실은 잔혹한 이야기를 뭔가 잔혹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삶의 성찰이 있는 것처럼 그럴 듯하게 꾸며내는 것은 이미 그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그런 면에서 아론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와 비슷한 전략을 쓴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그의 발자취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마치 한 사람의 성장담인 것처럼 이야기를 교묘하게 뒤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그의 성공이 아니라, 그의 실패를 먼저 이야기하며 관객에게 어떤 동정심을 심는다. 예를 들어 <소셜 네트워크>가 친구와의 소송 문제에 휘말려 있는 마크 주커버그로 영화를 시작하고, <머니볼>이 2001년 양키스에게 패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애슬레틱스, 그리고 주축선수의 팀 이탈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의 제목들은 <마크 주커버그>나 <빌리 빈>이 아니고, 그렇다고 <페이스북>이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도 아니고, <소셜 네트워크>와 <머니볼>이라는 사실이다.



4.
빌리 빈의 오클랜드는 왜 포스트시즌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까. 뭐 여러 설명들이 있다. 예를 들어 포스트시즌에서는 정규 시즌보다 득점보다는 실점, 공격보다는 수비가 중시되기 때문에 빌리 빈의 방식이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는 분석이 있다. 즉 일정 정도 이상의 강한 투수력을 갖춘 팀들만이 오르는 포스트시즌에서는 낮은 점수에서, 그리고 적은 점수차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실점을 막아주는 수비가 중시되지만, 빌리 빈은 이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도 당시 오클랜드의 아트 하우 감독은 1루 수비가 엉망이기 때문에 빌리 빈이 높은 출루율 때문에 선호하는 스캇 해티버그를 1루에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빌리 빈은 그것(수비)은 중요하지 않다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사실 스캇 해티버그는 당시 론 워싱턴 수비코치의 헌신 하에 상당한 정도로 수비력을 끌어 올렸고, 또한 당시의 오클랜드는 팀 허드슨, 배리 지토, 마크 멀더 등의 강력한 투수진을 갖춘 팀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이것을 결국 머니볼의 한계로 볼 수도 있다.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는 정규시즌보다 변수의 통제가 훨씬 어려워진다. 포스트시즌에서는 감독과 선수들 모두가 정규시즌보다 높은 중압감에 시달리며, 기록보다는 경험이 더욱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포스트시즌의 경우 한 두 가지의 돌발변수가 경기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으며, 한 게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게임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즉 변수의 출현과 그 변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확률에 대한 통제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는 말이다('머니볼'이라는 것은 결국 확률 게임이므로).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우리가 주사위를 100번을 던진다면, 1에서 6까지의 각 숫자가 나올 확률(1/6)을 예측할 수 있지만, 단 3번을 던져야 한다면, 1이 나올지 4가 나올지, 6이 나올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또 한편으로는 포스트시즌의 경우 정규시즌 이후이므로 체력의 저하가 심각한 문제로 작용할 수 있는데, 신인 선수 또는 노장 선수가 중심이었던 오클랜드의 경우(왜냐하면 신인이거나 노장이라야 싸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욱 문제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아무튼 머니볼이 먹혀들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많은 팀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어도 머니볼 야구가 인간적이지는 않아도, 혁신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빌리 빈은 아직도 오클랜드의 단장이지만, 오클랜드가 요즘에는 예전과 다르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까닭은 다른 많은 팀들이 머니볼을 활용하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빌리 빈은 예전에는 저평가된 선수를 싼값에 데려올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빌리 빈이 높게 평가한 선수를 다른 팀도 높게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리어 머니볼 이론은 그 이론의 내용보다도, 도리어 그 혁신성과 그것의 쇠퇴라는 사실 자체가 더한 시사성을 줄 것이다. 야구에 빅볼도, 스몰볼도, 머니볼도 아닌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 있을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5.
마지막 빌리 빈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직 제안을 결국 거부한다. 그는 영화 내내 구단주에게 선수 영입 예산을 더 줄 것을 요청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하며 골머리를 썩는데, 그렇다면 빅 마켓인 보스턴의 영입이 꽤나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그가 결국 보스턴의 제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영화 안에서도 모호하게 처리되지만, 사실 실제로도 조금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는 오클랜드를 그만큼 사랑했을 수도 있고,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을 도리어 매력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보스턴의 경우 빅 마켓이고, 오클랜드와 비교할 수 없는 많은 팬을 가진 팀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훨씬 더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당시 딸과 멀리 떨어질 수 없어서 오클랜드에 결국 남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영화 속 마지막에 보스턴이 머니볼 이론의 도입으로 2004년 결국 수십 년만에 우승을 차지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역시 조금은 모호한 구석도 있다. 당시 새로 부임한 보스턴의 테오 엡스타인 단장이 머니볼 이론의 신봉자였던 것은 사실이나, 그의 경영이 빌리 빈의 머니볼과 그다지 유사하지만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보스턴의 2004년 페이롤은 2003년보다 도리어 증가하였고, 이는 다른 팀의 페이롤 증가율을 넘어서는 것이었다(2003년 개막 페이롤 : $ 99,946,500 -> 2004년 개막 페이롤 : $ 125,208,542). 이를 머니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에 나온 아트 하우 감독(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빌리 빈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고집쟁이 영감처럼 그려졌지만, 그가 그렇게 실제로 대립각을 세웠는지는 확실치 않다. 책 <머니볼>에서는 도리어 약간 허수아비처럼 그려지는 측면도 있다. 확실한 것은 아트 하우 감독은 오클랜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재계약에 실패하였고, 그 뒤 뉴욕 메츠의 감독을 맡았지만,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그 뒤에는 변변한 감독 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또하나 덧붙이자면, 빌리 빈은 오클랜드에서 처음부터 단장직을 수행한 것은 아니었고, 스카우터와 부단장을 거쳐 단장이 되었다. 그의 전임자는 샌디 엘더슨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머니볼 이론의 많은 부분을 먼저 주창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빌리 빈이 그토록 부르짖는 '출루율 중시'는 사실 샌디 엘더슨이 먼저 세운 원칙이었으며, 빌리 빈은 다만 그것을 충실하게 계승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실 빌리 빈이 이 머니볼 이론의 모든 것을 고안한 것처럼 그려지는 것은 조금 지나친 부분이 있다.

6.
영화 속 과장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지만, 야구 중계를 껐다 틀었다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빌리 빈의 모습을 보며 사실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적어도 저 동네에서는 저렇게 이기는 것에 목말라하고 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그런 반면 한국프로야구는 어떨까. 물론 이런 비교는 여러 논쟁을 낳을 수 있다. 수십개의 팀을 가진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프로야구와 이제 고작 삼십 년을 조금 넘긴 이제 9개팀뿐인 한국프로야구를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일 수 있다. 또한 미국프로야구에서도 여러 생각을 가진 구단들과 구단주들이 있으며, 한국프로야구에도 반대로 여러 생각을 가진 구단들과 구단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프로야구를 보면 여전히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 투성이다. 그것은 굳이 비교를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 현재 굴러가는 여러 일들만 보아도 그러하다. 선수협의회를 구성하였다는 이유, 혹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보복 트레이드를 당하고, 팀에서 방출당하는 선수. 상식적인 기준, 그리고 팀을 강화한다는 이유만으로 생각해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트레이드와 영입들(왜 '오캄의 면도날'을 한국프로야구에 적용할 수 없는가). 팀의 승리에 가장 필요한 조직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자체의 존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이 보이는 프런트. 팬들이 뭔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자동으로 망가져 기능을 하지 않는 팀의 온라인 게시판들. 툭하면 팀의 운영을 그만두겠다, 야구판에서 떠나겠다고 협박조로 말하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팀이 생기는 것을 은근히(때로는 대놓고) 방해하는 구단주들. 그리고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거의 분명한 자신들의 자리보전에만 힘쓰는 한국야구위원회의 여러 인사들.

이들은 이기는 것에 관심이 있을까. <머니볼>에서 결코 이야기되지도 않고, 이야기될 필요도 없는 것 - 즉 누구나가 이기는 것을 바란다는 사실 - 을 이야기해야만,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이 한국프로야구의 어떤 숨겨진 초상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보아야 하는가. 책 <머니볼>에는 이런 부제가 달려있다.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빌리 빈의 머니볼의 방점은 뒤편 "승리로 이끄는 과학"에 달려있는 데 반해, 우리의 머니볼은 여전히 그 앞에만 방점이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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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2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신랑은 프로야구에 엄청나게 열광을 합니다.
우리나라 남자분들 뿐 아니라 여자분들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열광을 하죠.

그렇게 많은 분들이 열광한다는 것은, 결국 수익과 관련짓게 되고
프로야구는 그만큼 큰 시장을 형성하게 되는거군요. 저는 워낙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방면으로는 생각해보지 못 했습니다. 그저 잘 하는 사람, 인간 승리,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면도 있겠죠?

이 영화 보고 싶네요, 하기사 제가 요즘 하고픈 일이 한두개가 아니랍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숨 푹푹.

맥거핀 2011-11-22 14:11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요즘에는 약간 야구에 시들해졌어요. 뭐 시즌이 끝나서 그런거도 있지만, 응원팀의 최근행보를 보니 그냥 다 시들해지네요. 그래서그런지 요새 팀의 주축선수들이 다 떠나는데도 뭐 그러려니 합니다.^^

사실 우리프로야구는 많은 분들이 열광하는데 비해서 아직도 조금 그닥..스러운게 많죠. 팀 운영하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팬서비스나 구장 시설도 상당히 많이 떨어지죠. 개인적으로 구단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요새 하는 짓들을 보면 별로 발전한 게 없는것 같아요. 맨날 성숙한 관중문화 어쩌구 하는데, 그 전에 자신들의 운영문화부터 돌아보는 것이..

남편분께서 그리 야구를 좋아하신다면, 가끔 야구장도 가시고 그러겠네요. 야구도 너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즐기는 마음으로 가끔 가는 것도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일단 좋아하는 선수를 한 명 찍어서 팬이 되보시는 방법을 추천해드립니다. 잘생긴 선수로.^^

2011-11-22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2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리성은 결국 야만을 낳는다는 아도르노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게 며칠 전이라, 이 영화를 보면서 빌리 빈의 방식에 썩 몰입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차가운 이야기에 인물의 인생 역정을 씌워 따뜻하게 포장했다'는 맥거핀 님의 말에 고개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합리성에조차 도달하지 못한 한국야구 얘긴 더 한숨 나오는군요.
그나저나 저도 이런 리뷰를 쓰고 싶다는 (실현불가능한) 욕망이 드는, 알찬 리뷰입니다.

맥거핀 2011-11-28 13: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섬님. 이 '머니볼'을 저는 몇년전 책으로 먼저 접했었는데요. 이게 영화로 나온다길래 "도대체 이 경제학적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빌리 빈의 방식이라는 게 나름 혁신적이라고 볼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떻게보면 차가운 혁신성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 책이 화제가 된 이후에 많은 경영자들이 이 책을 또 참고한 것으로 아는데, 이것을 일반 경영에 도입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또 어떨지..(예를 들어, 회사내 자판기의 판매가격을 올리는 뭐 그런 방법?^^; 하기는 남들 얘기만 하기 뭐한게 저도 사실은 이 내용을 회사 프리젠테이션에 써먹기도 했었습니다만..;)

말씀하신대로 한국프로야구는 그런 것을 아예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죠. 말씀하신대로 합리적인 것이 '근대성'이라면, 우리 프로야구는 아직도 '전근대적'이니까요. 맨날 MLB와 야구 수준의 격차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선수들의 수준에서보다는 이런 데에서 훨씬 격차가 벌어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리뷰에 대한 칭찬도 감사합니다. 서재가서 살짝 보았는데, 좋은 리뷰가 가득하던데요, 뭘.^^)

Mephistopheles 2011-12-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야구의 전문성이 결여된 이윤추구가 최대 목표인 기업의 악세사리 정도로 취급받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전 요즘같은 야구열기가 조금 걱정되기도 해요. 화무십일홍이라는데, 이렇게 잘 나갈때 내실을 다져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모습은 안보이는 것 같아요. 허구연 해설위원이 강조하는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거의 보이지가 않으니까요.

얼마 전 항공사진으로 본 미 8군 야구장을 보고 한숨이 나오더군요. 해외주둔미군기지 야구장의 그 완벽한 인프라가 부러울뿐입니다.

맥거핀 2011-12-18 23: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Mephistopheles님.^^ 말씀하신대로 우리 프로야구는 확실히 태생의 한계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프로야구가 태어날 때 미국식 보다는 일본식 모델을 본따서 만들어졌고, 따라서 그 자체가 하나의 기업으로 볼 수 있는 미국보다는, 아직까지 모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겠지요. 최근 NC의 김택진 씨나 고양의 허민 씨가 새로운 방식의 구단 경영을 표방하는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될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예전에 여러 기사들을 보니, 우리 프로야구의 경우 자체야구장을 가지지 못한 것이 또 이런 프로야구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인 것 같아요. 구장은 아직까지 대부분 시의 소유이고, 따라서 매년 시에 막대한 사용료를 내야하는 구단으로서는 새로운 방식의 경영을 하기가 또 어려운 것도 사실인 듯 싶구요. 말씀대로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좀 더 되어야지요.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만 해도, 엘지나 두산이 한 구장을 쓴다는 것 자체가 좀 난센스죠.

시에서 더 투자를 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제 생각에는 시는 물론이거니와 기업에서도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맨날 적자타령하는데, 이 홍보효과라는 것이 사실 정말 막대한 건데, 기업에서는 시에서 조금 더 해달라...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는데, 시민의 세금을 그렇게 많이 쓸수도 없는 노릇이죠. 개인적으로는, 구단들이 그간의 이익에 비해서 너무 돈을 안쓰고 있다고 봅니다.(맨날 적자 타령하는데..글쎄요.)

네오 2012-02-0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에서야 이 영화를 봤네요 ㅋㅋㅋㅋ 야구광팬으로써 너무나 좋은 영화였어요 ㅋㅋㅋㅋ 한때 espn 메이저리그 들낙날락 하면서 선수들 스탯보면서 희희낙락했는데 ㅋㅋㅋㅋ 저도 마찬가지로 빌리 본의 사람장사가 영화로 이야기한다고 하면 과연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올까라고 생각했는데 ㅋㅋㅋㅋ통계학 나오는 순간 그래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서요ㅋㅋㅋㅋ 아!!!! 작년에 봤으면 베스트10에 들어갔을텐테 ㅋㅋㅋ 아쉽네요 ㅋㅋ 예일대 경제학과ㅋㅋㅋㅋ 아!!!! 거기 피터 필립스 교수가 계량경제학 지존인데 뭐 논문도 탑쓰리 들어갈정도로 쓰시고 아무튼 그 쪽 출신들이 통계에 밝죠ㅋㅋㅋㅋ 한때 우러러 보던 대학과 학과가 나오니 더 감동요 ㅋㅋㅋㅋ 완전 쓰고보니 덕후처럼 썼네요ㅋㅋㅋㅋ 메이저리그랑 우리나랑 야구랑 비교하면 안되죠 ㅋㅋㅋㅋ 맥거핀님글 읽으니 영화속 궁금한게 풀리더군요 특히 왜 안간거야 레드삭스 이부분요..저는 레드삭스팬이거든욬ㅋㅋㅋㅋ

맥거핀 2012-02-05 01:11   좋아요 0 | URL
저도 한 4-5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열심히 봤었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광분(?)했던건 콜로라도의 10월의 기적 때..) 근데 그 이후로 잘 안보다보니까, 요즘에는 신진선수들이 누가 있나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딱히 어디 팬이라고 하기는 그렇구요. (래리 워커 있던 시절부터 콜로라도를 쬐끔 좋아하긴 했어요.)

그쵸. 사실 어찌보면 야구영화라고 하기는 좀 거시기한 면이 있어요. 책도 거의 경영학 서적쪽에 가깝고..네오님이 경제학 쪽에 좀 조예가 있으신 것 같던데, 이 영화가 그런 학문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또 흥미로운 면이 상당히 많았을 것 같아요.
 
고양이 춤 - Dancing Cat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이 영화 <고양이춤>은 마하트마 간디의 말로 시작을 연다.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수준은 그 나라에서 동물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간디의 동물에 대한 이런 말은 일견 색달라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말의 배경에는 아마도 낮은 곳을 늘 뒤돌아보는 간디의 인식이 배어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사회는 불평등한 계급의 사회이고, 그 가장 밑바닥의 인간보다 더 낮은 곳에 아마도 동물들이 위치하고 있을 것이니까. 그러니까 간디의 그 말은 결국 한 국가의 수준이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을 그 국가가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일 것이며, 동시에 한편으로는 간디의 이 말에는 거의 동물과 같이 취급받았던 인도 사회의 천민들에 대한 오랜 인식이 스며들어 있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아주 오랫동안 동물은 적어도 국가적인 수준에 있어서는 소모되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철저하게 활용된 후 폐기되어야 할 자원에 불과하였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길고양이들은 그나마의 취급도 받지 못하고 우리 인식 속의 동물 계급에서마저 거의 가장 아래편에 위치하였다. <고양이 대학살>이나 <검은 고양이> 등에서 나타나는 고양이들에 대한 뿌리깊은 부정적 인식이나 늘상 악당들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로 묘사되었던(가가멜의 오랜 충복인 '아즈라엘'이 대표적..) 오랜 편견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고양이 특히 길고양이는 단지 쓰레기봉투를 뜯어낸다는 이유만으로 '도둑고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하사받아 왔다는 것이 가장 단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 <고양이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질은 그러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이야기를 전해가면서 그런 이야기들이 언뜻 내비치기는 한다. 특히 길고양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죽는) 가장 주된 이유인 로드킬(Road Kill)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나, 쓰레기봉투를 뜯는다는 이유만으로 매질을 당하고, 모든 고양이는 죽여버려야 한다,는 발언 등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그러하다. (길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뜯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길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뜯는다고 증오하면서도, 그런 길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시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아마도 그런 것이 가장 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길 위의 사람들과 길고양이들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길고양이들은 길 위에서 태어나고 길 위에서 먹고, 길 위에서 자고, 길 위에서 죽는다. 그런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교차하여 길 위에서 물건을 주워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은 그러므로 묘한 성찰을 낳고, 처음 간디의 말을 되새기게 만든다. 길 위의 고양이들과 길 위의 사람들. 그들은 오랫동안 국가에 의해서, 그리고 그런 국가관에 길들여진 우리들에 의해서 어떠한 취급을 받아왔는가.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의 전면에 흐르고 있는 것은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결국 '관계 맺기'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화자들이 보여주는대로 길고양이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던 사람들의 관계의 시작은 길고양이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었음을 깨닫고 그들을 응시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예기치않은 마주침이 이어진 후 그들을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하였고, 그들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을 붙여서 불러주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그들 각자의 마른 모습, 병든 모습, 먹을 것을 구하려다 여러 고초를 처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언젠가부터 조금씩 먹을 것을 챙겨주게 되었다. 결국 이 영화는 '관계의 시작'이란 것이 어떠한 것으로부터 비롯되는가를 짧은 영상과 사진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므로 아마도 이 영화의 홍보문구들에서, 이 영화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관객들보다 아무런 관심이 없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던 관객들이 보기를 바란다, 고 했었던 것은 이 관계의 시작을 쉽게 받아들여 영화를 보는 우리가 길고양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기를 바랬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관계란 결국 응시에서부터 시작하니까. 그것이 스크린을 통한 응시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맺었을 때만이 우리는 그들과의 이별 또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이것은 로드킬에 대한 사회적 관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 나온 말을 돌이켜보면, 집고양이는 일반적으로 15-20년의 수명이 보통인 반면에, 길고양이는 평균 3년 정도의 수명을 갖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길고양이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국 잦은 이별을 감당할 각오를 조금은 한다는 의미도 된다. 하기는 굳이 길고양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관계를 조금씩 맺어 나간다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어떠한 방식이든 간에 이별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간다는 것, 그것을 감당한 내성을 조금씩 쌓는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그리고 길고양이의 경우에는 때로는 그 내성을 쌓을 틈도 없이 급속하게 이별이란 것이 찾아와 버린다. 

예를 들어 영화 속 길고양이 '바람이'와의 갑작스런 이별이 그런 것일 것이다. 그렇게 공들여 묘사되지 않았음에도, 무심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도, 이 '바람이'와의 이별 장면은 이상하게 울컥하게 만든다. 영화라는 것을 수많은 사람이 아주 어렵게 정의하기 위해서 노력해왔지만, 그저 최대한 간단하게만 말한다면, 영화란 그것을 보는 사람이 울컥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예술일 것이다. 단언하건대, 어떤 사람에게든간에 단 한 순간씩만이라도 울컥한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영화는 좋은 영화일 것이다. 물론 그 울컥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 누군가는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었기 때문에 울컥하지만, 누군가는 그 영화가 다른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울컥한다. 누군가는 정밀하게 구성된 숏과 숏의 연결, 씬과 씬의 환상적 접붙임으로 울컥하지만, 누군가는 단지 카메라가 어떤 순간 그것을 그 각도에서 찍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울컥한다. 누군가는 어떤 배우가 환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울컥하지만, 누군가는 그 배우가 단지 자신의 어머니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울컥한다. 그렇다면 이 '바람이'와의 마지막이 만들어낸 울컥거림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그 전까지 만들어낸 여러 길고양이들과의 관계의 시작을 그것이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처음의 응시를. 단지 잠깐의 호기심이 전부였던 그 응시를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길고양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의 마지막에서 결국은 그 처음의 시작을 되돌아 응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됨이,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 영화 <고양이춤>은 쉬운 다큐멘터리이다. 굳이 문법이라 이야기할 것도 없지만, 아주 쉬운 이야기 방법을 가지고 있고, 산뜻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이끌고 간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것은 TV에서 하는 자연 다큐멘터리들보다도 훨씬 못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며,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극장에서 보아야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바람이', '희봉이, '깜냥이', '예삐' 등 수많은 길고양이들 중에서의 몇몇의 길 위에서의 단편적인 삶일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길거리를 나서게 되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반수 이상은 그간 있었으나 보이지 않던 것들을 길 위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딘가에 숨어서 먹이를 먹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거나, 차를 피해 조심스럽게 도로 가장자리에 숨어 있는 길고양이들이다. 그것을 응시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들과의 관계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영화는 묻는다.


 

(왠지 이 사진은 작가들이 '저자 소개'에 걸어놓기 좋아하는 사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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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2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2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의뢰인 - The Clien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의 결말부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뒤늦게 <의뢰인>을 보았다. 보고 나니, 역시 손영성 감독답군,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의아한 점은 초반의 정황증거를 거의 마지막까지 끌고간다는 점이다. 중요한 정황증거들은 영화의 초반 브로커(성동일)나 사무장(김성령), 또는 강변호사(하정우)의 입을 통해, 혹은 감독의 장면 제시로 인해 친절하게 이미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아내가 살해당했고, 남편은 살해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 남편이 들어오는 것을 본 목격자의 진술도 있으며, 아내는 심지어 며칠 전 남편에 대한 심한 공포심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오로지 정황증거일 뿐이라는 것. 흉기도 사라졌으며, 무엇보다도 사체가 없다. 실제 증거가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대부분 이런 영화, 장르물에서는 중간에 무엇인가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며, 사건의 급박한 전개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사체가 발견되거나, 보다 직접적인 증언을 해줄 목격자가 나타나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흉기라도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안검사(박희순)가 최후진술에서 이런 말로 발언을 시작한다. 인정한다고. 정황증거 외에 아무런 증거가 없음을 인정한다고 말이다. 아마 장르영화 팬이라면 여기서 "장난해?" 정도를 속으로 외쳤을 법도 하다. 도대체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 동안 무엇을 한걸까. 우리는 도대체 이 시간 동안 무엇을 보고 앉아있던 것일까.

그 빈 러닝타임을 이 영화는 맥거핀들로 채운다. 영화의 중간중간 무엇인가 결정적인 것이 출현한다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 촛불, CCTV, 교통사고 목격자, 사라진 가짜시체(더미)...그러나 이것들은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면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이들 중 어느 것도 사건의 향방을 뒤엎을 만한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화 내내 감독이 던져주는 떡밥들에 차례로 낚여 긴 시간동안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드디어 반전이 발생한다. 범인이 아님을 눈물로서 항변하고, 어떠한 물적 증거 없이 오로지 정황과 인상만으로 범인으로 지목된 남자가 재판에서 결국 무죄판결을 받지만, 사실은 그가 진범이라는 그런 반전이. 이것을 과연 반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는 조금 옆으로 밀어놓고라도, 그러니까 단순히 이것만 놓고 보면, 우리는 떡밥들을 물다 못해, 결국은 2시간 동안 거짓말만 본 셈이다. 거짓으로 만들어 놓은 대담한 법정극의 전말, 신기루와 같은 성들. 우리는 이 신기루 오아시스들을 앞에 놓고 물을 마시지 못하는 허망함만을 느껴야 하는 걸까.

손영성 감독은 아마도 이 모든 것을 기꺼이 계획했을 것이다. 일단 먼저, 그는 전작 <약탈자들>에서 전력이 있다. <약탈자들>은 여러 거짓(혹은 진실)들이 촘촘하게 얽힌 거대한 미로와도 같은 영화였다. 우리는 그 영화에서 곳곳에 놓인 허방다리들을 만났고, 기꺼이 그 허방다리들을 밟고 어둡고 막막한 어지러움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결국 목적은 그 복잡한 미로 속에서 길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목적은 그것이 얼마나 거대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미로인지를 깨닫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이번 영화 <의뢰인>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변호사는 영화의 시작 부분에 이야기한다. 사건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실외에서 일어났는가, 실내에서 일어났는가. 그리고 (이번 사건과 같은) 실내 사건의 경우 증거가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중요한 포인트는 '스토리'를 잘 짜맞추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랬다. 문제는 그 '스토리'였다. 스토리를 얼마나 잘 만들어 관객(배심원)들을 그 스토리 속에 빠뜨릴 수 있는가의 여부. 그것을 간파한 강변호사는 중간에 약간 위험하고 대담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범인으로 의심받는 한철민(장혁)을 도리어 자신이 자극하여 스토리의 결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왜냐하면 스토리에서는 결국 감동이 중요하고, 개연성이라는 것이 중요해지는 법이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놓고보면 사실 마지막의 반전은 반전이 아닌 셈이다. 즉 그 반전의 목적은 관객을 다른 결말로 이끌기 위함이 아니라, 이 2시간 동안 본 이야기 자체조차도 결국은 거대한 거짓말, 혹은 만들어진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반전 그 자체의 전개 과정만 놓고 보아도 알 수 있다. 범인으로 의심받는 남자가 있고, 그에게는 정황증거밖에 없다. 그러나 그 범죄를 입증하려는 쪽은 무엇인가 영화내내 수상쩍은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남자는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계속 항변한다. 이 영화에 어떤 반전이 있다고 할 때 당신이 익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남자가 결국 범인이 아닌 것은 당연히 반전이 될 수 없다(그게 반전이라면 검사측에게 영화 내내 그렇게 뭔가 미심쩍은 뉘앙스들을 켜켜이 쌓을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상가능한 선택지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예상가능한 선택지는 물론 반전으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예상가능한 선택지를 고의로 하나밖에 남겨두지 않은 이 이야기를 <프라이멀 피어>나 여타의 반전극과 비교하는 것 또한 조금은 민망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영화가 대중영화가 아니었다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에 그 친절한 설명적인 결말보다는, 강변호사의 쇼가 펼쳐질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떠한 미동도 없이 살짝 미소만 짓는 한철민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영화를 끝내는 것은 어땠을까. 진실은 저 너머에...)

결국 이 영화는 진실이라는 것은, (정황적인) 이야기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증명할 아무 실체가 없이 오로지 이야기만으로 이야기되는 것의 무서움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 속 강변호사는 재판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패배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승리했다. 정황증거로만 판단하는 것이 어떤 잘못된 판단을 야기할 수 있음을 스스로의 행위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의 식대로라면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 - 범인이 아닌데, 범인으로 형을 받는 경우 - 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보다 무서운 점은 우리는 그런 속에서도 무엇인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조금 돌려 질문을 한 가지 해보면, 만약 우리가 이 영화의 배심원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배심원이라면 이 영화를 본 관객들보다 더욱 제한적으로 사건을 알 수 밖에 없다. 그 제한적인 사실만을 놓고, 배심원은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어떤 특정의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아주 작은 문제에서부터 한 사람의 생과 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떤 판단을 내린다. 그 판단들에서 생겨나는 어지러운 균열들을 전작 <약탈자들>에서부터 이 영화 <의뢰인>에 이르기까지 감독은 흥미로운 이야기의 외피를 두르고 그려나간다. 본인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대중영화로 자연스럽게 안착하는 좋은 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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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11-1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계속 뭔가를 쓸까말까 고민하던 차에, 뭔가 불편함을 느끼던 내 심경을 표현해주는 글을 '한겨레21' 이번 호를 읽다가 보았다. 아..그런 것이었구나 생각했다.

"사회평론가 박권일씨는 한 사이트에 연재하는 '표준 시민'이라는 글에서 지금의 국면을 "이명박과 한나라당이라는 절대악과 동지(우리 편)를 구분하는 적대의 정치"라고 표현했는데, 트위터상에서는 '적대의 정치'가 140자로 좀더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냥 소소한 블로거로 영화평이나 가끔 써야겠다.

2011-11-16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8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0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