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잊고 살았다. 첫 노트북을 내게 사 준 사람이 남편이었다는 것을. 


장롱 속에 있는 그 노트북을 보고 알았다. 고장이 나서 새 노트북을 샀음에도 그 노트북이 아까워 버리지 못했다. 약 22년 전이었고 노트북 가격이 꽤 비쌌던 때였다. 홈플러스로 기억하는데 2백 삼사십만 원의 노트북을 매장에 진열해 놓았다는 이유로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고 해서 198만원에 샀다. 그 당시 큰 금액이어서 나는 집에 컴퓨터가 있으니 사지 말라고 했는데, 당신은 글을 써야 한다면서 남편이 사 버리고 말았다. 나의 첫 노트북이었다.


그런 남편이 갑자기 고맙게 느껴져 이번에 남편의 생일 선물로 30만원을 주었다. 무지 좋아하는 남편. 


늘 남편이 내게 생일 선물을 주었고 나는 받기만 했지 남편에게 생일 선물을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남편에게 생일 선물을 주어야겠다. 나,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건가?




2.

목의 임파선이 붓곤 했다. 그때마다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생각했다. 몸이 피로하면 나타나는 증상이니까. 쉬라고 보내는 ‘몸의 신호’라 여기고 자주 누우려고 노력했다.  




3.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내게 작은애가 집에서 책만 보지 말고 외출을 좀 하라고 말했다. 안 그래도 글감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나의 활동 영역을 넓히면, 운동이 되기도 하고 글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 외출할 일을 만들었다. 매주 1회의 강좌를 수강하고, 월 2회의 독서 모임에 나가며, 월 1회의 영화 모임에도 가입했다. 게다가 글을 쓰는 사람들끼리 셋이 ‘같은 책’을 보고 ‘같은 영화’를 본 뒤에 함께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월 1회 모임을 만들기도 했고, 단편 소설 두 편을 읽고 만나는 모임도 있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자연히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4. 

평일이면 시 한 편을 골라 필사하여 사진을 찍어서 밴드에 올리고 있다 보니, 좋은 시를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어느새 시와 가까워졌다. 



.....오늘 뽑은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 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32쪽)



















..............................

추가) 중요한 정보 :

영화 관람료를 할인하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후 5시~9시에 상영하는 영화의 관람료는 5천 원~7천 원.

보통 때 영화 관람료가 1만4천 원이니 많이 할인되는 것입니다. 

할인되는 이유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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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3-27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가족이지요. 제 맘도 따뜻해집니다.

페크pek0501 2024-03-28 10:04   좋아요 0 | URL
나인 님도 느끼는군요. 가족밖에 없다는 것을.
그 당시 우리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을 때라 신용카드 할부로 노트북을 사 줘서
제가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잊고 살았네요.^^

stella.K 2024-03-27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맞아요. 문화가 있는 날. 그거 아직도 하는군요. 좋은 정보네요.
뭐 극장 가는 건 이제 꿈도 안 꾸고 살았는데 옛 습성이 남아서 혹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이용해 봐야겠네요. 하긴, 코로나 이후 밤에 돌아다니는 건
급격히 줄어서 잘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지금 노트북 20년 넘게 쓰고 있어요. 20년전 시키지도 않았는데
동생이 사 줘서 쓰고 있는데 고장도 안 나더군요. 자체 수명이 있을텐데.
적어도 내년까지는 또 쓰지 않을까 합니다. ㅎㅎ
사진 멋지네요!!

페크pek0501 2024-03-28 10:09   좋아요 2 | URL
문화가 있는 날, 아시는군요? 그럼 알려 주시지... 저는 며칠 전 메이 디셈버를 14000원에 봤답니다.
앞으로는 마지막 수욜에는 무조건 극장에 가려고요. 요즘 괜찮은 영화가 많아요.
저도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였어요. 영화 속 음악이 쾅쾅, 풍경도 멋지고 좋았어요.
노트북을 꽤 오래 사용하십니다. 험하게 쓰지 않나 봐요. 저는 고장이 나서 8년 전에 산 두 번째 노트북을 지금까지 사용하죠.
사진은 용산역 입니다.

2024-03-27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28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4-03-2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메이 디셈버 보셨군요 저도 이거 극장에서 볼까 말까 나중에 ott에 들어오면 볼까 생각 중이랍니다

댄스는 맨홀 2024-03-28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한 이야기네요. 마지막 수요일이 문화가 있는 날이였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희선 2024-03-29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노트북 컴퓨터 비싸지만, 예전엔 더 비싸다 느꼈을 것 같습니다 남편분이 사준 거여서 고장났다 해도 버리지 못하셨군요 그건 좋은 기억이 담긴 물건이네요 여러 가지 하시는군요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문화가 있는 날을 아시게 돼서 기쁘시겠습니다 그날 맞춰서 좋은 영화 보시기 바랍니다 페크 님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봄날 

                   이문재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17쪽)

- <지금 여기가 맨 앞>에서. 



















다음에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서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22~23쪽)

-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에서. 




....................

다음에 될 거야 하면서 기대했다가 다음에, 라는 말에 속곤 했지.

그래도 다음에, 라는 말을 버릴 순 없었지.

어둠 속에 있는 내게 환한 빛을 던져 주는 것이 다음에, 라는 말이었거든.

빛을 받는 동안 희망을 품고 견딜 수 있었거든.

인생이란 다음에, 라는 말에 속으며 견디는 거였어.

그러다 보면 뜻밖의 좋은 일도 생겼지.

내가 어떻게 원망할 수 있었겠어. 

다음에, 라는 말에 감사할 뿐이야.

- by 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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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15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 좋네요. 특히 언니의 시는 참..! 그렇죠. 다음에 속지만 그게 또 나를 버티게 해 주고 가늘고 길게 살게 해 줘요. ㅋ 우린 이제부터 아주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거든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만 사는 건 젊을 때나 하는 말이예요. 글쵸? ㅎㅎ

페크pek0501 2024-03-16 15:07   좋아요 1 | URL
저는 원래 가늘고 길게 살고 싶었어용ㅋㅋ 솔직히 건강만 보장된다면 걷기 운동도 발레도 안 했어요. 병들어 고통받고 싶지 않아 운동하는 거지요. 환자복 입고 병원에 누워 있는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최근 몸 고단하게 할 일이 많았어요. 소화하지 못할 스케줄을 짠 거지요.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지 왜 이리 하고 싶은 게 많은지 모를 일입니다. 극장에 간 지가 오래되어 월 1회 영화 함께 보는 모임도 만들었어요. 관람 후 맛있는 것 먹으면서 얘기 나누기예요.^^

stella.K 2024-03-16 17:52   좋아요 1 | URL
맞아요. 한동안 몸을 사리게되면 너무 사리나 해서 또 뭘하고 싶어지도라구요. 무슨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요. 암튼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내에세 즐기며 잘 하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4-03-19 12:11   좋아요 1 | URL
몸 무리가 돼서 조심하고 있어요. 독서 모임에 영화 모임에, 책 읽어가야 하는 강좌 수강까지.
바쁘다 보니 이곳 서재에 로그인해서 들어오게 되질 않네요.ㅋㅋ
10년만 젊었어도 좋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니 우습지요..히히~~

2024-03-16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16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4-03-16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밤에 찍은 사진 같은데, 색감이 독특해서 좋네요.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밖에 산책가거나 운동하기 좋은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다음에 하기로 미룬 것들이 더 좋은 때도 있고,
시간 지나서 보면 그보다 더 나은 것들이 있을 때도 있으니
조금 미루고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미루기달인이 되어 모든 걸 미루지만 않는다면요.^^

주말 잘 보내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24-03-19 12:1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어느새 겨울은 가고 봄이 왔네요.
아, 저 사진은 서울의 청계천, 이랍니다. 야경이 아름답더라고요.
저, 미루기 선수예요. 계획만 잘 세우는... ㅋ 그래서 모임을 갖게 된 거예요. 그래야 억지로라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게 되니까 말이죠.
이번 한 주도 편안한 주를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4-03-22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평년보다 기온이 더 높다고 해요.
주말 날씨가 따뜻할 것 같아요.
이제 겨울 옷 입을 날이 많이 남지 않은 시기가 되었어요.
편안한 주말 보내시고,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페크pek0501 2024-03-24 16:51   좋아요 1 | URL
이제 겨울 옷을 다 집어 넣고 봄 옷을 꺼내 입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봄은 짧고 여름은 길겠지요. 벌써부터 지구가 뜨겁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자외선이 강해요.
책을 읽느라, 이런저런 일로 외출하느라 바빠 백자 평을 써서 올릴 여유도 없네요.
좋은 봄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1.

어느 서재에서 MBTI(성격유형검사)에 대한 글을 보고 나도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MBTI 검사를 했다. 그 결과 나는 INFJ-T(옹호자 형)으로 나왔다. 이 유형은 인구의 1프로도 안 된다고 해서 내가 검사를 잘못 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특이한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유형은 자선 활동을 하는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다니 나와 매우 달라서 검사를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런데 또 검사를 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2.

읽을 책이 많은 데다 급히 읽어야 하는 책도 있어서 바로 완독하기 어려운 책이 있다. 그런 책이 배달된 날에는 살짝 펴서 구경만 한다. 그 뒤엔 그 책을 아끼는 마음으로 건드리지 않는다. 책에 구김이 생기는 게 싫고 새 책으로 보존하고 싶어서다. 내게 그런 책이 몇 권 있다. 이에 대해 어느 서재에 댓글을 쓴 적이 있는데 답글을 쓰신 서재 님이 본인도 그렇다며 공감해 주어서 반가웠다. 내가 경험한 것은 누군가도 경험한다.


너무 아낀 나머지 펼쳐 보지 못하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바로 에드 용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라는 책이다. 
















「이 책은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지형을 파악하는 새, 광자 하나의 통과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털을 가진 귀뚜라미, 인간의 손끝보다 섬세한 돌기를 가진 악어 등 우리의 직관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동물을 소개한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내 글에 ‘동물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를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3.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 시 한 편을 필사해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밴드에 가입했었다. 하다 보면 건너뛰는 날도 있다. 그래도 오늘이 15일차가 된다니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 든다. 벌써 3월이다. 




4. 

시 두 편을 골랐다. 해석이 필요 없는 시이다. 



어떤 경우

               이문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허공 

               유안진


자라면서 기댈 곳이

허공밖에 없는 나무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나무들은 

어느 한쪽으로 가만히 기운 나무들은

끝내 기운 쪽으로

쿵, 쓰러지고야 마는 나무들은

기억한다, 일생

기대 살던 당신의 그 든든한 어깨를

당신이 떠날까봐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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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3-01 17: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날씨가 추워서인지 커피가 부드럽고 따뜻해보여요.
유안진님의 시도 오랜만이네요.
오늘부터 3월입니다. 휴일 잘 보내시고 좋은 일들 가득한 시간 되세요.^^

페크pek0501 2024-03-01 17:13   좋아요 2 | URL
카페에 갈 적마다 저런 커피를 보면 찍게 됩니다. 맛있어 보이죠? 지금 봐도 눈을 즐겁게 합니다.
행복한 3월 보내세요.^^

독서괭 2024-03-01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마지막 -T 이런 것도 있군요? 전 앞에 네개만 알았어요~ 인구의 1프로 선한 사람!! 멋집니다👍

페크pek0501 2024-03-02 23: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줄 알았다가 특이한 것도 있구나 했어요.
제가 인구의 1프로에 해당하는 건 절대 아닌 것 같고요, 제가 검사를 잘못했거나 검사가 맞지 않는 듯합니다.
선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stella.K 2024-03-02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니 같은 유형이 많아야하는데 역시 우리나라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ㅋ
저도 예전에 했는데 잊어먹었습니다. 다시 해야할 것 같은데 귀찮아 못하고 있습니다.ㅠ
저 책 좋다고 하는데 언제 읽을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노신과 신춘문예 당선집도 사셨네요.
신춘문예는 요즘 경향이 어떤지 모르겠어요.

페크pek0501 2024-03-02 23:24   좋아요 2 | URL
동물의 시각에서 쓴 책이라고 일간지의 서적 안내, 지면에서 보고 바로 구매했어요. 책을 너무 아껴서 못 보고 있어요. ㅋㅋ 독서 모임에서 월 두 권을 읽는 것도 있고 강좌에서 읽어오라는 과제도 있고 게다가 철학책을 읽는 것도 있으니 저도 언제 그 책을 읽을지 모르겠네요.
신춘문예 당선집은 오랜만에 구매했네요. 요즘 작가지망생들은 어떤 일로 고민하고 어떤 주제로 쓰는지 궁금해요. 그것을 알고 나면 예전과 다른 이 시대에 대해 잘 알게 될 것 같네요.^^

잘잘라 2024-03-01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페라떼 넓은 잔에 하트하트 찰랑찰랑 마시고 싶어집니다.

페크pek0501 2024-03-02 23:24   좋아요 0 | URL
그렇죠? 먹음직스럽죠? 달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게 신기합니다. 지금도 마시고 싶네요.ㅋㅋ

coolcat329 2024-03-02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진짜 시간 빠르죠? ㅠㅠ
주말 커피 한 잔 마시며 페크님이 올려주신 시를 느긋하게 읽었어요.
페크님은 라떼의 저 거품처럼 포근하신 분 같아요. 저는 라떼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누군가 마시는 거 보면 너무 마시고 싶어져요. 어제 칼바람을 헤치며 광화문을 걷다가 어떤 카페 통유리 안에 어떤 여자분이 마시던 포근한 라떼를 보고 저도 충동적으로 마시러 들어갔다 자리가 없어 그냥 나왔답니다. ㅠㅠ

페크pek0501 2024-03-02 23:29   좋아요 1 | URL
해마다 시간이 빠르다는 걸 느낍니다. 왜 그런 걸까요?
커피 마시며 시를 읽으시다니 좋은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저 포근하지 않아요.하하~~ 오늘은 딸들에게 소녀 같은 엄마, 라고 해서 웃었네요. 보통 어머니, 하면 강하고 극성맞고 잔소리 많은 어머니라고 하는데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공감하지 못했대요. 제가 좀 철없는 엄마, 였나 봐요. 제가 좀 동심이 많은데 그게 튀어나올 때가 있나 봅니다. 단잠 주무십시오.^^

희선 2024-03-03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물은 사람과 다른 감각이 뛰어나죠 눈이 좋은 새가 있고 거의 소리를 잘 듣기도 하는군요 뱀은 소리보다 온도를 보고 혀로 냄새를 맡는군요 동물뿐 아니라 지구에 사는 생물은 다 놀랍죠 그런 걸 다 알지는 못해도 누군가 연구한 걸 책으로 만나면 좋을 듯합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4-03-05 11:51   좋아요 0 | URL
누군가의 연구와 노력의 결과로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이 감사한 일이지요. 좋은 책이 매우 많습니다. 읽을 시간이 모자랄 뿐입니다. 동물들의 세계에 대한 공부가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꼭 일어야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03-04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이토록 굉장한 세계>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페크pek0501 2024-03-05 11:54   좋아요 1 | URL
본문만 536쪽입니다. 벽돌책 정도의 분량은 아니니 읽을 만할 것 같아요.
고양이라디오 님이 저보다 먼저 읽을 것 같네요. 저는 요즘 과제로 읽어야 할 게 많아서 시간의 여유가 없네요.
좋은 독서가 되시길 바랍니다.^^
 



1. 

어떤 책은 읽지 않아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이 그런 책 중 하나다. 무려 1492쪽이다. 33장의 서양 철학과 33장의 동양 철학으로 나누어 총 6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으로 나눠 두 권의 책으로 출간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다. 책을 읽으려면 책을 들어야 하는데 무거운 게 단점이다. 그러나 동서양을 모두 공부할 수 있는 이 책의 내용은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전반부만 읽어 봐도 이 책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강신주, <철학 VS 철학>

  

저자의 철학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많이 시청했는데 참 재미있다. 그래서 구매하게 된 책이다. 


편의상 한자를 빼고 옮긴다.


중국 송나라의 도원이 편찬한 《경덕전등록》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 수록되어 있다. 단하(739~824) 스님이 목불을 불태운 이야기로 흔히 ‘단하소불’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에피소드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혜림사라는 사찰에 들른 단하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나무로 만든 불상을 태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혜림사의 주지는 어떻게 부처를 나타내는 불상을 태울 수 있느냐고 힐난한다. 그러자 단하는 사리를 찾으려고 이 불상을 태우고 있다고 대답한다. 이에 혜림사 주지는 나무에 무슨 사리가 있느냐고 반문하다가 마침내 자신도 모르게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도대체 혜림사 주지는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는 목불에도 부처처럼 숭배받아야 하는 본질이 있다고 맹신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기 입으로 목불이 나무에 불과하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바로 이 순간 그에게는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즉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40쪽)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목불은 부처가 아니라 나무라는 자명한 사실을 그는 자각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제부터 목불을 포함한 모든 조형물을 땔감으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 또한 본질에 대한 새로운 집착일 테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과 문맥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다. 사찰에 하루 잠자리를 빌려야 한다면 목불에 기꺼이 절을 하고, 얼어 죽을 지경이 되면 목불을 땔나무로 기꺼이 사용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본질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창조할 수 있을 때에만 자유는 가치가 있는 법이다. 어쨌든 ‘단하소불’ 에피소드에서 혜림사 주지의 깨달음은, 그가 목불의 본질이라고 가정한 해묵은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40쪽)


⇨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글이다. 쉽게 말해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고정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요즘 유모차에 의지해 걷기 위하여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을 볼 수 있는데, 유모차에 꼭 어린아이를 태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남으로써 유모차의 새 기능을 발견한 셈이다. 만약 유모차에는 반드시 어린아이를 태워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버리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상하기 어렵다. "본질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창조할 수 있을 때에만 자유는 가치가 있는 법이다." 





2.

며칠 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흰 눈이 나무에 소복소복 쌓여 있었다. 마치 나뭇잎마다 고봉밥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고봉밥으로 표현한 다음 시가 떠올랐다.



조찬 

                        나희덕


깃인가 꽃인가 밥인가

저 희디흰 눈은

누구의 허기를 채우려고

내리고 또 내리나


뱃속에 들기도 전에 스러져버릴

양식을, 그러나 손을 펴서

오늘은 받으라 한다


흰 밥을 받고 있는 언 손들


목튤립 마른 열매들도

꽃봉오리 같은 제 속을 다 비워서

송이송이 고봉밥을 받고 있다


박새들이 사흘은 쪼아먹고 가겠다(18쪽)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은수원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10~11쪽)















시요일 엮음,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소설은 제목을 모르고 읽어도 무방하나 시는 다르다. 시의 제목을 알고 읽어야 한다. 시의 제목과 연관시켜야 이해할 수 있는 시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어두워진다는 것’이란 시를 시의 제목과 연관시켜 읽으면 다음과 같이 된다. 


....................

어두워진다는 것은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어두워진다는 것은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어두워진다는 것은 

멀리서 은수원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어두워진다는 것은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

 

이 시는 시의 제목을 모르고 읽는다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시인의 발상이 기발하고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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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게우스 2024-02-25 14: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철학 vs 철학>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반갑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24-02-25 15:01   좋아요 2 | URL
깪!!! 벌써 다 읽으셨다니 깜놀, 입니다. 하긴 출간된 지 십 년도 넘은 책이니 읽으신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이처럼 좋은 책을 만나니 저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어떤 철학 강좌보다 유익한 책이라 여겨집니다.
저는 이 책의 오디오북도 갖고 있어요. 윌라 회원인데 이 책도 있더군요. 오디오북으로 먼저 접하고 반해 버렸어요.
좋은 글 발견하면 가끔씩 올리겠습니다.^^

물감 2024-02-25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은 잘 모르지만 고르라면 서양철학 쪽입니다. 동양은 어딘가 빙빙 돌려서 말하는 듯해서요 ㅋㅋㅋ

페크pek0501 2024-02-25 19:45   좋아요 1 | URL
ㅋㅋ 이 책의 구성 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서로 반대로 주장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대립시켜 설명해 놓은 부분이에요. 저자가 얼마나 애썼는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독서괭 2024-02-25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왓 목침으로도 못 쓸 두께네요! 제본만 좋다면 소장용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나희덕님 시가 참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4-02-25 19:47   좋아요 1 | URL
맞아요, 베개로는 사용 못해요. 소장용으론 멋지지요.
요즘 밴드에 시 한 편 골라 필사해 올리고 있다 보니 시집을 들출 기회가 많네요.^^

댄스는 맨홀 2024-02-25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두께가 사전입니다. 우와 저 수준의 벽돌책은 감당하기 어려운데 잘 읽으시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세요. 요즘 오디오북이 좋긴 하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4-02-25 19:51   좋아요 1 | URL
책 뒤에 인명사전, 개념어 사전, 참고문헌 등 많이 수록돼 있어요. 이런 것 빼고 나면 본문은 1300쪽이 넘는 정도예요. 13쪽씩 석 달을 읽으면 될 거예요. 드디어 저도 벽돌책을 샀네요. 벽돌책이 막 팔릴 때마다 저는 그 유혹에 안 넘어갔거든요. 읽을 자신이 없어서요. 그런데 이 책은 철학 강좌를 철학자마다 다 수강하려면 수 억이 드는데 이 책 하나로 해결되니 저렴하구나, 이러면서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오디오북 애용자예요.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2-25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음 시집 제목은 제가 좋아하는 황인찬 시 무화과 숲 구절이네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4-02-25 19:53   좋아요 0 | URL
예, 이 시집의 17쪽에 황인찬 시인의 시가 나와 있어요.
이 시집에 웬만한 시인들은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 2024-02-25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고 뿌듯할 것 같은 책이네요! 저도 작년에 사둔 <신곡>이 한 권짜리 1086쪽인데 사고 나서 보니 세 권짜리 <신곡>을 발견하고는 아차 싶었지요. 읽고 난 다음에는 아무리 두꺼운 양장본도 모양이 흐트러지니까요. 읽기 마치고 나면 책거리라도 하셔야겠네요.ㅎ 인용한 글도 좋고 시도 좋군요.
며칠 전 눈 오는 날 멀리 외출했는데 눈 풍경 구경하며 신났었지요.ㅎ
따뜻한 저녁 시간 되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4-02-25 19:55   좋아요 2 | URL
그랬군요. 저도 이걸 두 권으로 판매하는 게 있다면 그걸 사고 싶더라고요.
책을 사고 뿌듯한 것이 이 책이 최고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의외로 책이 술술 읽히고 재밌어요.
모나리자 님도 따뜻한 겨울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의 방문이시라 더 반갑군요.^^

서니데이 2024-02-25 2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신주 작가 책은 두꺼운 책이기도 하지만, 페이지가 적은 시집 옆에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더 커보이네요.
강신주 저작은 좋은 책도 많이 있지만, 저 책은 너무 두꺼워 보여서 포기해야겠어요.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2-28 20:45   좋아요 2 | URL
저도 읽고 싶은 책 중에서 두꺼워서 포기한 적이 있어요. 그래도 천 쪽이 넘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으니 으쌰, 하고 힘을 내야겠어요. 강신주 저자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을 한 것 같아요.
어제와 오늘, 외출로 바빴네요. 일을 많이 벌려 놓으니 바쁘게 살게 되네요. 서니데이 님도 즐거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Dora 2024-02-25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대철학 ~ 목침 ㅋㅋㅋ두껍긴 해도 소장가치가 있고 내용도 알차서 한 챕터씩 나눠 혼자 스터디 했던 기억이 있네요~ 포기하지 마시고 소장과 정독의 기쁨을 꼭 맛보시길 강력 추천드립니다^^

페크pek0501 2024-02-28 20:47   좋아요 1 | URL
저도 꼭 완독하고 싶습니다. 두껍긴 해도 흥미로운 내용이라 말이죠. 그런데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해서 한꺼번에 많이 읽진 못하겠더라고요. 혼자 스터디 하셨군요. 저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책이 두꺼워 같이 스터디를 할 사람을 구하지 못할 듯해요. 완독하게 되면 완독했다는 내용으로 페이퍼 올리겠습니다. 올해 상반기 안에 끝내야 할 텐데 말이죠. 추천, 감사히 접수합니다.^^

stella.K 2024-02-25 2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벽돌책! 참 이상하지요? 이젠 벽돌책 못 볼 것 같아도 여전히 관심가는 걸 보면.
전 저 책 볼 것 같지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말해 놓고 어느 날 살지도 모르죠. ㅎㅎ
요즘 <안나 카레니나>를 보고 있는데 진도가 참 안 나가더군요.
작년에 부활을 읽은 것으로 봐서 어느 지점만 가면 냅다 읽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도
아직 그 지점을 못 만나고 있어요. 안니와 브론스끼가 뜨거운 사랑을 하게되면 가독성이 붙을까요?
이 책 넘 두꺼워요.ㅠ

아무리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어도 겨울은 겨울인가 봐요.
봄 다 되서 눈이라니 했는데 생각해 보면 상대적으로 적은 눈이 오는 서울이지만
겨울이 안쓰럽게도 느껴지더군요. 암튼 겨울은 언제부턴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오늘도 의외로 쌀쌀하던데 3월이 코 앞이어도 2월은 엄연한 겨울이다 싶네요.

페크pek0501 2024-02-28 20:51   좋아요 2 | URL
벽돌책을 분할해 생각하면 좀 쉬어집니다. 5백쪽짜리 세 권이다, 뭐 이렇게요.ㅋㅋ
안나~ 가 세권이죠? 이름이 길어서 그럴 거예요. 러시아 문학은 이름이 길어서 불편해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참 안타까운 결말로 끝나죠.

아직 봄 옷을 입기엔 이른 듯합니다. 저녁이 되면 추워요. 곧 꽃샘 추위도 올 것이니 봄이 따뜻하다는 건 어쩌면 우리의 환상일지도... 4월은 되어야 따뜻할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십시오.^^

페넬로페 2024-02-26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내린 눈은 습기가 많아서 너무 예뻤어요. 올해 내린 눈 중에 제일 예뻤던 것 같아요.
철학이 어려워 접근하기는 힘들어도 관심은 늘 있는데 이 책이 일고 싶어 지네요.
근데 책이 넘 두꺼워 불편하면 조금 화가 나기도 하더라고요^^

페크pek0501 2024-02-28 20:54   좋아요 2 | URL
저도 이번에 눈을 실컷 봤네요. 눈이 오면 거의 녹곤 했는데 이번에 쌓여 있었죠.
철학은 꼭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사 보곤 했는데 이 책은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이것부터 읽고서 흥미롭게 느껴지는 철학자의 저작을 찾아 읽으면 될 듯합니다.
책 두꺼우면 무거워요.ㅋ 저도 팔 힘이 약해서 불편해요. 그래도 완독하고 나면 기쁨이 두 배, 될 것 같아요.
좋은 날들 보내세요.^^
 



24개월간의 칼럼 연재를 끝내고 나면 뿌듯할 줄 알았다. 연재를 해 봤다는 것이 보람으로 남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예상이 실제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법.) 글이 써지지 않았고 계속 써지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걱정을 덜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지난 1월부터 ‘철학과 문학’ 오프라인 강좌를 주 1회 수강하고 있다. 한 달에 책 두 권을 읽고 두 번 모이는 독서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이달에는 하루에 시 한 편을 필사해 올리는 네이버 밴드 모임에도 가입했다. 매일 시 한 편을 골라 쓰고 사진을 찍어 올린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들을 벌이게 될 줄은 몰랐다. 인간은 자신을 모른다. 나도 나 자신을 알아 가고 있는 중이다.)


집에서 온라인 강좌나 오디오 북을 듣는 것도 즐기지만, 오프라인 강좌의 수강자가 되고 독서 동아리에 들고 나니 이점이 있었다. 사람들을 사귀게 되고 많이 걷게 된다는 점이다. 밖에 나간 김에 일부러 많이 걸으려고 노력한다.


독서 동아리에서 함께 읽기로 선정한 책 두 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라서 서둘러 완독했다. 이 와중에 또 완독한 책이 있으니 위화의 <인생>이다. 둘 다 재미있게 읽은 장편 소설이다. 

















“대장님.”

대장은 눈꺼풀을 치켜들어 우리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곧장 자기 집으로 돌아가 내리 이틀을 잠만 잤다네. 사흘째 되던 날 호미를 들고 밭에 나왔기에 가서 보니 얼굴의 부은 기는 많이 가셨더라구.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몸이 아프지 않느냐고 하니까,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

“아픈 데는 없었는데 잠을 못 자게 하니 제기랄, 아픈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렵더군.”

대장은 그 말을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네.

“내 이번에 알아봤네. 평소에 나는 내 아들 돌보듯 당신들을 보호했는데, 내가 재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는 구해주는 사람 하나 없더군.”

대장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감히 그를 똑바로 보지 못했지. 대장은 그래도 운이 좋은 셈이었어. 성안으로 끌려가 사흘 동안 얻어터지는 걸로 끝났으니 말일세. 하지만 춘성은 성안에 살았으니 지독하게 당한 모양이야.

위화, <인생>, 243쪽.


⇨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 대혁명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치사상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모모야, 그 사람들은 나를 억지로 살게 할 거다. 병원에서는 언제나 그렇게 한단다. 병원에는 그런 원칙이 세워져 있어. 나는 필요 이상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한계가 있단다. 그들은 날 죽지 않게 하려고 온갖 학대를 다할 거다. 고의적으로 의학적 처방이라는 것을 쓸 거다. 그리고 거품을 뿜어댈 때까지 못살게 굴며 죽을 권리도 주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특권이 되는 거니까 말이다. 내 친구가 있었는데, 유대인도 아니면서 교통사고로 팔다리가 다 달아나버렸지. 그런데 병원에서는 혈액 순환을 조사한다고 그 친구를 10년 이상이나 고생을 시켰단다. 모모야, 나는 단지 의학이란 것을 위해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정신이 나가곤 하는 것을 알고 있단다. 그렇지만 혼수 상태로 의학에 공헌하기 위해 몇 년 더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만일 오를레앙에서 온 사람들이 나를 병원에 데려갈 거라는 소문을 들으면 네 친구에게 가서 나한테 주사 한 대를 놔주라고 해라. 그리고 내 시체는 시골에 갖다버려라.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숲 속에다가 버려라.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열흘 동안 시골에 가 있었지. 그렇게 공기가 좋을 수가 없었단다. 그곳은 도시보다 내 천식에 더 좋단다. 나는 내 엉덩이를 35년 동안이나 손님들한테 주었는데, 지금에 와서 또 의사들에게 주고 싶지는 않단다. 약속해주겠니?”

“약속해요, 로자 아줌마.”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185~186쪽.


⇨ 안락사가 불법이라 비밀리에 안락사를 시켜 달라는 로자 아줌마에게 모모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로자 아줌마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사느니 차라리 안락사가 낫다고 여긴다. 안락사의 입법화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 둘은 같은 사람이다.)




..............................


* 오늘 뽑은 시



방을 얻다 

                              나희덕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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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2-15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이 달 나머지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4-02-15 19:19   좋아요 1 | URL
앞으로 시 자주 올리겠습니다. 올 한 해는 시 많이 읽은 해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은오 2024-02-15 19: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년동안 칼럼을 연재한다는게....부담감도 있을 테고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페크님~💕
오프라인 강좌에 독서동아리에 필사모임까지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왠지 게으른 저도 좀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넘 멋지세요...🥹

페크pek0501 2024-02-17 11:07   좋아요 1 | URL
저야말로 게으르게 살았어요. 그 결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있어요.ㅋㅋ
은오 님은 책 많이 읽으시니 게으른 게 아니지요. 저도 분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멋진 분은 은오 님!!

stella.K 2024-02-15 2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하셨네요. 그게 그렇더라구요.
안하면 되게 편할 줄 알았는데 자꾸 쳐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근데 넘 바쁘신 거 아니예요? ㅎㅎ

근데 사진은 어딘가요?

페크pek0501 2024-02-17 11:12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은 그 느낌을 아시는군요.
만약 제가 돈 받고 가르치는 일이라면 당연히 부담스러울 텐데, 제가 돈을 내고 수강하는거라 결석해도 되고 부담없어요. 독서 모임도 한 달에 두 번만 가면 되는 거라서... 그동안 게으르게 살았던 것 같아요.
사진은 명동에 있는 레스토랑이에요. 이름은 생각 안 남. 맨 뒤 산 위의 불빛 탑이 남산이에요. 족욕하는 시설도 갖춰 있어서 족욕도 했어요.(이건 무료) 음식도 맛있고 가격은 그리 비싸도 않았어요. 딸이 데려가서 가 봤답니다.^^

coolcat329 2024-02-16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연재 시작하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나 됐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원섭섭하시지요?
독서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신 페크님이 봄의 기운을 저에게 전해주시네요. 앞으로 독서모임에서 읽게 될 책들이 저도 기대됩니다. 화이팅하세요!

페크pek0501 2024-02-17 11:14   좋아요 2 | URL
2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짧답니다. 시원섭섭, 맞습니다.
제가 독서 편식을 하는 편이라 이 기회에 남들이 정한 리스트대로 책을 읽어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리뷰는 못 쓰더라도 독서 모임으로 읽은 책은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coolcat329 님도 파이팅!!!

2024-02-17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20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4-02-18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짝 축하드립니다. 페크님....후련하시면서 섭섭...저도 그러시겠다 생각했는데 coolcat님의 말씀 댓글로 같은 심경을 서주셨네요^^

페크pek0501 2024-02-20 12:22   좋아요 1 | URL
끝남은 다른 일의 시작이이라고 여기고 새 계획을 세워 실천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고 싶군요.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있는 법.
공기가 맑아 좋은 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물감 2024-02-18 1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느 정도 채찍질이 필요하다고 보는 쪽이지만... 스케줄 너무 빡빡한거 아니세요?ㅋㅋㅋ
2년간의 연재도 성공하셨으니 뭐든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로맹 가리는 한 권도 안 읽었어요. 다들 재밌다 재밌다 그러는데 왜 저는 손이 안가는건지 원...

페크pek0501 2024-02-20 12:27   좋아요 1 | URL
저로선 스케줄 빡빡한 편이지만, 다른 알라디너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꾸준히 책 읽고 리뷰 올리시는 물감 님 같은 분들이 많잖아요. 연재 성공이라 말씀하시니(말이 안 돼서) 웃음이 나지만 감사히 접수하겠습니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으니 당연히 읽은 적 없는 작가가 있을 수밖에요. 저도 로맹 가리의 책은 처음 읽은 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집에 책이 있었는데 읽게 되지 않더라고요. 독서 모임 때문에 이번에 읽었습니다.
책이 있어 늘 행복하시길... 더불어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