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TV 닥치고 진실
정규재 지음 / 베가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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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런 시사적인 책은 시간이 지나면 시의성이 떨어져 의미가 퇴색되는 느낌이다.

앞서 읽은 정규재씨의 최근 책, "국가의 자격"이 훨씬 와 닿는다.

2014년도에 출간된 책이고 아직 유튜브 개설도 안 했을 때라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데 너무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이 바뀌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2014년도면 대한민국을 아직까지도 뒤흔들고 있는 세월호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니 세월이 변화가 참 놀랍기만 하다.

더군다나 이 책에 종종 등장하는 박원순 시장이 결국에는 성추행 사건으로 자살하고 말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박원순 시장이 꿈꾸던 마을공동체나 사회적 기업의 허상을 비판하는 글들이 마치 아주 오래 전 일인 것 같아 낯설기만 하다.

대한민국 정치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것 같다.

저자의 비판적 시각에 대부분 공감했다.

이 분이 토론에 나와서 했던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인생은 원래 고달프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말이었다.

사실 2014년도면 한창 헬조선 타령이 번지던 시기였는데 진정으로 헬조선이 아직 오지도 않았던 그저 약간의 전조 증상만 보이던 시대에 너무 앞서갔던 모양이다.

이 책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인생의 행복이 뭐냐는 질문에 개인적인 소회를 말하는 주관적인 기분이나 감정 같은 것 말고 좀더 객관적은 답을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질문을 해 달라고 한다.

정말 이과적인 분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러니 궁극적으로 성공이나 완성된 행복 같은 것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규제완화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작은 정부 지향, 자유, 선별적 복지 정책 등 대체적으로 공감하지만 문제는 이런 가치들을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하고 공감을 끌어내느냐는 점이다.

단순히 비판만 가지고는 대중정치에서 표를 얻을 수 없고 더군다나 감성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좀더 실제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너무나 뜬금없이 부산 시장 선거에 나온 걸 보고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는데 보수우파 정치인들이 대중을 계도해야 할 대상으로 혹은 선심성 퍼주기로 표팔이를 할 게 아니라 어떻게 공감을 얻고 좋은 가치를 전파시킬 것인지에 대해 효율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무엇을, 보다 어떻게, 가 더 중요한 시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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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고종 -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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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자가 쓴 책이고 제목도 너무 자극적이라 대중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책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꼼꼼하게 사료를 분석하고 상당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았다.

자극적인 제목에 비하면 내용이 훨씬 점잖은 편이다.

군데군데 지나치게 감정적인 평가가 약간 거슬리기도 하지만 비전문가의 책 치고는 괜찮은 역사서라 평하고 싶다.

고종이나 민비에 대한 대중들의 환상은 옛날부터 민족주의적 시각에 가려린 잘못된 것이라는 평가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나 뮤지컬에서처럼 정말로 명성황후가 나는 조선의 국모다고 외치고 죽었을까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비참하고 끔찍한 죽음이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역사적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생각한다.

이 책은 한걸음 더 나아가 진짜로 조선 망국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우매한 리더였던 고종을 비판한다.

오히려 흥선대원군은 방향이 잘못 되긴 했으나 나름 국가에 애정을 가지고 부국강병 하려고 애쓴 노력을 인정해 준다.

제국주의 시대의 혼돈 속에서 과연 어떤 지도자가 나왔다 해도 식민 지배를 막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거의 마지막 군주인 고종은 격동의 시대를 이끌어 가기에는 너무나 함량 미달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고종은 국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해는 전근대적 전제군주였을 것이다.

국가와 왕실을 분리하지 못했게 문제였다.

저자의 비판에 따르면, 고종은 대한제국이라는 국가를 자신의 사적 소유물로 생각하고 나라의 안위가 아닌, 자신의 권력 유지와 재산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 때 협력자가 바로 민씨 일족이다.

민비에게 휘둘린 게 아니라 그들을 파트너로 생각했던 것이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도 무려 4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권력을 뺏기지 않고 재위한 것도 놀랍고 말년에도 자식을 낳고 60대까지 당시로서는 천수를 누린 셈이니 대한제국의 멸망이라는 불행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삶은 그럭저럭 잘 꾸려나갔던 모양이다.

맨 마지막에 저자는 헤이그 밀사 파견이 조선 독립운동을 했던 미국인 헐버트가 주관해 기업인에게 돈을 빌린 것으로 추정하던데 이 부분은 좀더 역사적 연구가 뒷따라야 할 듯하다.

이준은 헤이그에서 사망하고 이상설은 러시아에서 병사했으며 이위종은 적군파에 가담했다가 사형당한다.

세 열사들의 말년이 안타깝다.

합방 후 이왕가는 일본 황실에 편입되어 어쨌든 왕족으로 우대받았으니 왜 대한제국이 총 한 번 쏴 보지 못하고 일본에게 먹혔느냐에 대한 비판은 아무래도 고종이 받아야 할 몫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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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리더 : 영조 그리고 정조 - 조선 르네상스를 연 두 군주의 빛과 그림자
노혜경 지음 / 뜨인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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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영조와 정조를 비교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어 보니 그냥 제목만 단순 비교를 해 놓은 것이고 각 챕터들이 산발적으로 독립되어 있어 별 관계가 없어 아쉽다.

어떤 싸이트에 정기 연재를 했던 글인 모양이다.

전부터 관심있게 보던 저자라 재밌게 읽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연재물로 기고한 글이라 한 권의 책으로서는 밀도가 떨어지는 듯하다.

또 무리하게 현대 기업의 리더십과 연결짓는 것도 약간 어색했다.

그럼에도 영조와 정조라는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적 군주를 무조건 찬양하지 않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비판하고 분석한 점은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영조는 아버지 숙종을 닮아 다혈질에 성격도 급하고 사람을 들들 볶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고 아들인 사도세자도 광증으로 내시들에게 칼을 휘두를 정도였으며, 그 손자인 정조도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자부심에 넘치는 매우 독선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한 성격인 듯하다.

어쩐지 이 삼부자는 다 비슷한 성격을 가진 듯하다.

권력욕 강하고 드센 성격은 장희빈을 어머니로 둔 경종이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영조가 아버지를 닮아 매우 다혈질이고 급했던 듯하다.

다만 영조와 정조는 자신을 잘 조절하고 정치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뛰어나 치세를 안정시킨 반면, 중간에 낀 사도세자는 결국 비운에 가고 만다.

인간의 불완전함이야 당연한 전제인 걸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결과로 말해주는 것 같다.

영조가 늘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청계천 준설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었는데 이 결정이 얼마나 큰 결단이고 힘든 과정이었느지 상세히 나와 이해가 된다.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도 없던 시절 사람의 손으로 강바닥의 토사물을 퍼 내야 했으니 궁궐 건설 못지 않은 대역사였을 것이다.

궁궐은 왕만 좋았겠지만 청계천 준설은 한양 시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었으니 과연 영조가 업적으로 자찬할 만하다.

이런 영조도 형 독살설이라는 음모론에 시달렸으니 자신의 출신 컴플렉스와 함께 인간적으로는 참 힘들었을 듯하다.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보통의 군주라면 노론과 손을 잡고 소론 세력을 싹쓸이 했을텐데 영조는 뜻밖에도 박문수 등의 소론을 내세워 이들을 진압한 후 탕평책이라는 협치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탕평책은 궁극적인 협치라기 보다는 할당제에 불과했다는 게 저자의 냉정한 평가다.

노소론으로 갈라진 조선의 정치 세계는 마치 오늘날의 진영 논리를 보는 것처럼 본질은 사라지고 상대에 대한 극렬한 미움만 남아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단지 역사책에서만 보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끔찍한 괴물 같은 느낌이다.

저자는 사치를 단속하는 영조의 절약정책을 에둘러 비판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모든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어쩐지 오늘날 정치판에도 적용해도 될 말 같다.

못 갖게 하면 더욱 갖고 싶은 것, 수량을 제한하면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것.

비단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해도 소유에 대한 인간의 강렬한 욕망을 법으로 억제할 수 있을까?

같은 실패가 지속되는 걸 보면 딱히 역사에서 뭘 배우지도 못하는 것 같다.


<오류>

64p

태자를 자결하게 만든 한무제의 충신, 안금장이나 차천추 같은 신하가 곁에 있어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을 말렸더라면

-> 안금장은 당 예종이 태자로 있을 때 측천무후 앞에서 태자의 무고함을 주장한 사람이고, 차천추는 한무제 때 여태자의 무고함을 알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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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중국사 - 한 상 가득 펼쳐진 오천 년 미식의 역사
장징 지음, 장은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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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신청한 책인데 계속 미루다가 드디어 읽게 됐다.

중국에서 다양한 책이 번역되어 읽을거리가 많아져 참 좋다.

역시 중국 출신의 저자가 써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중국 관련 책보다 훨씬 상세하고 흥미롭다.

다만 언급된 요리들을 거의 알지 못해 직관적으로 확 와 닿지는 않는다.

항상 역사서를 읽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당시 시대 배경과 한계인 듯하다.

이를테면 고대 중국에서는 조기 같은 바다 고기는 거의 먹지 못하고 잉어나 붕어 같은 민물고기를 먹었다.

내륙으로 생선을 저장해 운반할 기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요리들도 거의 대부분은 근대의 산물인 것 같다.

중국 역사서에는 생선구이가 자주 등장하지만 오늘날 현대 중국에서는 생선을 통구이로 먹지 않는다고 한다.

생선구이는 한국 식탁에도 자주 오르는 아주 대중적인 요리법인데 왜 안 먹게 됐는지 궁금하다.

중국 요리 변천사의 특징은 유목민의 다양한 음식들이 유입됐다는 점일 것이다.

후추 같은 향신료도 그렇고 양고기를 잘라 양의 위에 넣은 후 진흙을 발라 냄비 없이 직접 굽는 요리들이 그렇다.

재밌는 것은 고대 중국인들은 무려 신석기 시대부터 개를 식용으로 키웠는데 사냥견으로 개를 키우던 유목민들이 중원으로 진출한 뒤 이 습속이 사라졌다고 한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개고리를 먹는데 현대 중국은 생선구이처럼 아예 안 먹는 것인지 궁금하다.

신석기 시대부터 돼지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가축이 개였다니 놀랍다.

어쩌면 지금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유대인과 이슬람들이 돼지를 안 먹는 것처럼 그냥 문화적 관습에 불과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확실히 음식은 문화적 관습과 밀접한 영향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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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 - 조선인들의 북경 체험
손성욱 지음 / 푸른역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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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이고 내용도 아주 재밌다.

일전에 읽은 연행록 관련 책처럼 뻔한 조선 사신 루트 나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무척 재밌다.

서문에 단국대 심재훈 교수가 글을 읽어 보고 출판을 의뢰해 줬다고 하는데 이해가 된다.

저자는 북경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중국 대학에서 강의한 독특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중국측 관점까지 책에 잘 녹여 내어 입체적인 글이 된 듯하다.

보통 연행록이라고 하면 김재업, 홍대용, 박지원 이 세 분의 글을 언급하지만 저자는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조선이 독립국이 되어 대등한 근대 조약을 맺어 공사관을 파견한 후까지 기술해 더욱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조선 세자의 책봉 문제였다.

내치에는 간섭하지 않는 형식적인 조공 관계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세자 주청을 올리면 바로 승인을 해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청나라에서는 숙종, 경종, 영조 때까지 책봉에 애를 먹였다.

청나라는 따로 황태자를 정하지 않는 풍습 때문이었을까?

국왕 부부가 50은 되어야 후계자를 세운다는 명의 법전을 들먹이며 어린 세자의 책봉을 거부하는 바람에 조선 사신들은 어떻게든 책봉 교서를 받아 오려고 애를 썼다.

인신무외교 원칙에 따라 신하는 감히 외교를 할 수 없다는 전통적인 관념 때문에 사신들이 실제로 외교전을 펼친 게 아니고 중국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힘을 써달라는 사적인 청탁이라 더 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이건명은 경종 때 연잉군의 왕세제 책봉을 어렵사리 받아오지만 국경을 넘어오는 순간 붙잡혀 위리안치 되고 결국 사사당하기까지 했다.

오며가며 반년이나 길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 약간은 비정상적인 왕세제 책봉이라는 결과물을 얻어 왔건만 의주에 들어서는 순간 붙잡혀 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사형이라니.

이래서 책봉사는 다들 꺼렸다고 한다.

이런 속사정들이 아주 흥미롭게 기술되어 당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글은 마지막에 실린 주요섭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유명한 이 분은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는데 국제 달리기 대회에 나가 5000미터 중국 신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손기정 선수를 봐도 그렇고 의외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 달리기에 능한 모양이다.


<오류>

169p

강희제의 첫째 아들인 승호가 일찍 죽은 까닭이었다.

-> 강희제의 큰 아들은 승서이고 승호는 둘째 아들이다.

179p

왕비 심씨는 영조보다 두 살 많았다.

->영조의 왕비는 심씨가 아니라 서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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