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주문인데, 처음만 빼고 계속 배송상황추적이 실제와 다르게 나온다.

여기는 제주인데, 제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달완료로 나오는 것이다. 오늘은 확인하니 대전에 있다. 왜 파주에서 대전으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전에서 발송한 것까지만 나오는데 벌써 내가 받은 것으로 표시된다.

지난 번에도 아직 제주집중국에 도착도 안한 물품이 배달된 것으로 나와 누가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부산을 떨었었다. 후에 추적작업으로 그날 저녁에 제주집중국에 도착한 것을 알았다. 더 웃기는 것은 도착한 직후 나에게 배달된 것처럼 나온 것이다. 실제로 내 손에 들어온 것은 다음날 오후였고.

제주여서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택배는 안하고 등기로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상관없다. 도착하자마자 읽는 것도 아니고 목을 메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지 모르겠다. 배송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본사에서 발송후 제주까지 며칠 걸리는지를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yes24(여기는 택배도 무료)와 같은 날 주문하면 이틀 정도 늦게 도착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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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열살인가 열 한살 때였다. 나는 아버지께 우리가 학교에서 읽었던 시에 대해서 물었다. 시의 한 줄이 이렇게 되어 있었다.
 "얼굴에 아직 성적 욕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젊은이."
 나는 너무 수줍어서 선생님께 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묻지 못했다.
 ----
 그래서 집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 옆에 앉아 나는 불현듯 물어 보았다.
 "아빠, 성적 욕망이란 게 뭐예요?"
 아버지는 언제나 질문에 답하실 때처럼 나를 바라보시더니 놀랍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내 머리 위 짐칸에 놓인 여행용 가방을 들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코리야, 이 짐을 들고 기차에서 내리겠니?"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그것을 집어들고 비틀거렸다. 그 가방 안에는 그날 아침에 산 시계들과 부속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너무 무거워요."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런 짐을 어린 딸에게 들고 가게 한다면 참 못된 아버지가 되겠지. 지식도 마찬가지란다. 코리야. 어떤 지식은 어린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거야. 네가 더 나이를 먹고 더 크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게 되지. 지금은 내가 들고 가도록 하고 너는 나만 의지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만족했다. 단순한 만족 이상의 평안을 얻었다. 그 대답은 그것과 다른 모든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pp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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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에서 구입한 것은 yes24에 먼저 쓴 다음 각각 상대방 및 티스토리로 복사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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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여행이다.
 때로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너무나 바쁘게 지내고, 눈앞의 관심사에 지나치게 몰두한다. 그래서 한 발 물러나 전체를 바라보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삶은 그저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일 뿐이다. 원하는 것을 전부 가졌지만 만족을 모르며 늘 공허한 사람들도 있다.
 삶이란 염주알처럼 한 줄에 꿰여 있는 서로 무관한 사건들로,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환경에 흔들려 급류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올가미에 걸려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자신은 어디에서 왔으며 왜 이곳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삶이 이렇게 되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그 분이 계획하신 우리 삶은 기쁨과 목적으로 가득하다. 가장 평범한 사건들도 그분이 세우신 계획의 일부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를 인도하시며 미래의 소망을 주기 원하신다. 무엇보다도 우리 삶의 여정에서 우리와 함께하기 원하신다. (pp13-4)

 때로 사람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강요하느냐고 묻는다.
 "너무 편협하지 않나요?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까? 종교는 다 똑같지 않나요?"
 나는 이들에게 세상의 종교들이 실제로 얼마나 다른지 설명한다. 이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종교는 유일신을 믿는다. 어떤 종교는 수많은 신을 믿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우리를 돌본다고 믿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인간에게 무관심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종교는 죽음 이후의 삶을 믿는다. 어떤 종교는 믿지 않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시간을 초월하며 우주의 주권적 통치자라고 믿는다. 어떤 종교는 인간이 만든 우상이나 동물이나 별을 믿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인자하고 사랑스럽다고 믿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거칠고 심판하길 좋아한다고 본다. (pp24-5)

 내가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나에 관해 뭔가 알 수 있을 것이다.(당신은 최소한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나에 관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려면 나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눠야 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분은 정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p27)

 우리가 정교한 동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교한 동물처럼 행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영혼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동물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를 특별한 인간이 되게 하며, 모든 인간의 생명에 존엄과 가치를 부여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5)" 인간의 생명이 결코 멸시를 받거나 학대를 받거나 무자비하게 파괴되어서는 안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어리든 많든 간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p38)

 하나님이 주신 일곱가지 선물
1. 우리 삶을 그리스도께 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선물은 새로운 관계이다. 그분은 이제 사랑이시며 하늘에 계신 당신의 아버지이며, 당신은 이제 그분의 자녀, 영적으로 그분의 가족으로 다시 태어난 자녀이다.
2. 두 번째 선물은 새로운 시민권이다.
3. 세 번째 선물은 새로운 가족, 하나님의 가족이다. 성경은 이러한 영적 가족을 '교회'라고 부른다.
4. 네 번째 선물은 새로운 목적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에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여 하심이니라"(엡2:10)
5. 다섯 번째 선물은 새로운 능력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목적을 주셨다. 하지만 새로운 능력이 없이는 결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6. 여섯 번째 선물은 새로운 운명이다. '회심'은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올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운명을 주신다. 영생은 선물이다. 많은 사람들이(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것을 오해한다. 이들은 아직도 자신이 선행을 통해 구원을 따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자신의 힘으로 천국에 갈 자격을 얻을 만큼 선할 수 없다.
7. 마지막 선물은 새로운 여정, 즉 그분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때까지 따라갈 전혀 새로운 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요구하시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이기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pp72-81)

 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의심할까? 왜 우리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가?
 첫째, 여전히 죄를 짓고 있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거절하실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냉정을 잃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어떻게 여전히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면서 이런저런 짓들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가 죄를 지을 대라도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시145:8)고 말한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감정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된 겸손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편지했다. "교만한 사람만이 천국에 갈 만큼 선하다고 말할 거예요. 교만은 죄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천국에 갈지 안 갈지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겁니다."
 한 가지 면에서 그는 옳다. 교만은 죄이며, 교만한 그리스도인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거나 얼마나 선한가 때문이 아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pp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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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그녀의 손이 가슴의 따뜻함을 가지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큰 풍랑이 일고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내 앞에 놓인 푸른 하늘은, 폭풍이 검은 구름을 쫓아내고 있는 지금처럼 아름답게 보인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당신은 왜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건가요?"
 그녀는 이 결정적인 순간은 좀더 지연시키려는 듯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왜냐구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어째서 태어났는지 물어보십시오. 꽃에게 왜 피었느냐고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대답이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여기 있는, 당신이 좋아하는 이 책이 대신하여 말해 줄 것입니다.

 가장 선한 것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랑 속에는 유용성이나 무용성, 이익이나 손해, 얻음이나 상실, 명예나 불명예, 칭찬이나 비난, 그밖에 그런 종류의 모든 것들을 고려해 넣어서는 안 된다. 가장 고귀하고, 가장 선한 것은 다만 그 고귀함과 선함 때문에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이에 따라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그 삶을 규제할 수 있다. 외면적이라고 함은, 모든 피조물에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어 영원한 선은 다른 것보다 더 반짝인다. 그리하여 영원한 선이 가장 빛난고 반짝이고 활동하고 알려지고 또한 사랑받는 것은, 이것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용이 가장 적은 것은 가장 악한 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을 다루고 이와 사귐에 있어 이러한 구별을 알고 있으면 가장 선한 피조물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될 것이니, 그와 사귀고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pp14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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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 2008-07-27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앞에 놓인 푸른 하늘은(이), 폭풍이 검은 구름을 쫓아내고 있는 지금처럼 아름답게 보인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왜냐구(고)요? == 괄호 안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용절 중 밑에서 세 번째 줄의 '가장 악한 선'은 혹시 '가장 악한 것'의 오자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