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기 위해 매일 하는 일

그러나 누구도 쉽게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일

매일 먹거리를 기르고 만들고 먹고 치우고 고민하는 일등등

그 사소한 일상도 사실 정치적인 일이다.

밥상을 차리는 사람, 밥상에 주인처럼 느리게 나와 앉아도 괜찮은 사람

밥상을 타박하는 사람 밥상을 걱정하는 사람

차리는 사람 뒤집어 엎는 사람 치우는 사람  모두가 가진 위치가 다르고 힘이 다르다.

밥상에서 말을 해도 괜찮은 사람이 있고 수저가 들어갈 때만 입을 열어야마나 하는 사람도 있다.

오죽하면 입닫고 밥이나 먹어... 라는 모순된 말도 있을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들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성별에 따라 계급에 따라 다른 입장이다,

내가 땀을 흘리고 몸을 써서 그 상을 차리는  사람은 정작 그 상 앞에서 아무런 권리가 없다.

그저 냉큼 와서 앉아 한마디 하고 나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권리뿐 아니라 힘도 있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은 것처럼 후다다가 밥을 우겨넣어야 하는 게 마땅하고

누군가는 혼밥자체가 애처럽고  안타까워 그의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는 캠페인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먹는 이야기에서 펼쳐지는 관계의 이야기 관계에 응당 따르는 권력의 문제 차별과 혐오의 문제, 아무렇지 않게 구별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다시 돌아본다. 모두 정치적인 문제다.

정치는 저 높은 곳에서 제  할일을 하지 않고 힘겨루기만 하면서도 따박따박  고액의 월급을 쳐잡수시는 분들의 전용물이 아니다

둘 이상 모인 사람 사이에 오가는 관계들 힘의 줄다리기 힐끔거리는 견제와 함꼐 손을 잡는 행위 모두가 정치가 된다.

함께 상을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  역시 정치의 일부다.

 

 

 

페미니즘은 관계의 학문이다. 살아가면서 점점 다짐하게 되는 삶의 태도는 "남의 입에 밥 넣기를 주저하지 말고 내 입으로 죄 짓지 말자"이다. 관계를 위한 기본이다. 우리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말을 섞으며 연결된다.

 

 

여성이라는 집단이 본질적으로 공유하는 자연스러운 취향은 없다. 치향은 온전히 자연발생적인 성질이라기 보다는 습관의 축적, 환경, 교육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여성에게 주로 맡겨진 노동과 역할을 수행하면서 여성 일반의 취향이 남성 일반의 취향과 차이를 보일 수는 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본질적인 차이라기보다. 사회화의 결과다. 또한 여성 일반의 취향이 열등한 성질로 평가받을 이유가 없다. 나아가 여성 집단 내부는 각각 취향의 종류가 다양하고 차이가 있다.

 

취향의 젠더화는 여성화된 취향을 업신여기도록 이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이라는 말이 붙으면 일단 한 수 아래의 뭔가로 취급된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책, 여자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여자들이 좋아하는 분위기, 여자들이 좋아하는 영화 등 입맛도 여자들이 좋아하는 맛이라고 할 때는 진짜 맛이 아닌 가벼운 맛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취향이란 진정한 예술도 진정한 맛도 진정한 지식도 아닌 세계다. 여성 문제는 진정한 사회 문제가 아니듯이.  

 

 

가부장제란 어머니이 밥으로 아버지의 법을 굴러가게 하는 제도다.

 

성적 대상화, 대상화란 무엇일까 느낄 줄 알며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다. 다른 주체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태도를 대상화라고 한다. 성적 대상화란 이 대상을 성적인 목적/도구로만 여긴다는 뜻이다. 대상화란 다른 말로 하면 '사물화'다. 생각하고 느끼는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화(化)는 되다라는 의미다. 여성을 사물이 되게 해 의식이 없도록 만드는 상태가 바로 성적대상화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여기기에 여성을 식재료나 음식으로 보고 먹는다. 강간을 위해 강간 약물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성을 의식이 없는 사물로 만들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서 홀로 성 관계라는 강간을 한다. 여성을 사물화하는 방식 중 하나가 상납이다. 성 상납에서 성을 남성이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 여성을 남성에게 상납한다.

 

 

매일 똑같은 식단을 구성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렇게 먹어도 되는 사람'인 건 아니다,

 

가난하고 배가 고픈 사람이라고 해서 욕망마저 가난해질 의무는 없다. 오직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서만 입을 벌리는 1차원적인 입은 언제나 지배권력이 원하는 입이다. 취향 따위는 아예 형성할 수 없는 그런 입, 욕망 할 줄 모르는 입 배고픔에 길들여진 입

그러나 가난한 입도 욕망할 줄 알고 기분이라는 게 있다.

 

 

인간은 기억 때문에 버티고 때로는 그 기억이 고통을 유발한다 해방의 세게인 동시에 영원한 감옥인 기억 기억의 정치화는 바로 기록과 재현이다. 고통스러운 배고픔과 죽음의 행진마저 인간이 기록하고 재현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어떤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향과 맛이 있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억, 함께 한 사람들 그 순간의 온도와 빛과 분위기 냄새가 함께 뭉실 떠오른다.

음식은 이성적으로 딱 딱 구격 맞게 정리된 기억이 아니다

그 맛이 주는 감정이 서글픔일 때도 있었고 들떠서 한 없이 몽실거리던 기분이거나 배꼽 아래가 간질간질한 설레임일 수도 있다. 그냥 꾸역구역 참고 밀어넣는 국에 만 밥같은 기억도 있다.

오래 되어 낡은 후라이 팬에서 기름이 보글거리고 그 안에서 조잡하게  모양을 낸 도나츠가 둥실 떠오르는 순간 고소한 기름냄새 끈적거리던 설탕 느낌 그리고 내가 눈독을 들여놓은 가장 동그랗고 에쁜 도나츠를 향햔 욕망까지 그렇게 맛은 몸에 새겨지고 남겨진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할머니를 맛과 냄새로 기억하고 추억한다.

그리고 그 추억이 한없이 따뜻하고 행복한 거라고만 믿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따듯하고 정감어린 할머니와 어머가지 좋아하는 음식이 무어냐고 물어온다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 얼굴과 함께 떠오르는 많은 음식이 있다

배추전과 연근전이 있고  타래과와 수제 도넛이 있고 겨울날 웃풍으로 코끝은 시려도 지글지글 끓는 구들장덕분에 뜨끈해진 엉덩이를 느끼며 넘기는 팥죽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그 음식을 좋아했을까?

김치 꽁지를 먹고 콩나물 대가리만 남은 찬거릇을 긁어 먹거나 밥알과 고축가루가 둥둥 떠오르는 밥그릇에 그냥 커피랑 프림이랑 설탕을 적당히 섞어 지금으로치면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던 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이쁜 그릇에 정성껏 담은 음식은 당신 차례가 아니었고 남아서 버리면 죄받을지도 모를 죄책감에 남김없이 먹어치우던 음식들 그리고 설겆이 거리를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그냥 먹던 그릇에 타서 사치스럽게 마셔보던 커피까지... 그걸 정말 좋아했을 리 없다.

세상 어떤 정의도 용기도  정치도 먹지 않고 이루어 질 수 없다.

먹어야 삶이 이어지고 살아야 정의도 용기도 민주도 투쟁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러게 드러내기 좋아하는 추상명사를 추구하는 동안 또 누군가는그들의 입에 들어갈 구체적인 명사들을 다듬고 삶고 끓이며 음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곳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그게 당연하고 그게 살아가는 이치라고 힘을 가진 자들은 정의를 내리고 그렇게 규칙을 만든다.

먹는 일 먹이는 일 만들어 내는 일... 모든 일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다만 누군가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당연함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앗을 뿐이다.

거기 그들이 있고 우리가 있고 내가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 스며드는 가장 익숙한 권력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서 당연하다며 만들어 낸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본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눈에 띄기를 바란다.

내 가족이 나를 맛과 냄새로 기억하는 것도 괜찮다.

그렇게 익숙하고 좋아하는 맛을 만들엇던 내가 누구인지도 관심을 함께 가지길 바란다.

그 뿐이다.

그건 단순하지만 어렵다. 늘 노력하고 애쓰지 않으면 쉽게 잊히고 쉽게 없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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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속으로 -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원도 지음 / 이후진프레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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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인생을 망치는 건 한 사람으로 족하지만  그 망가진 인생을 구원하는 건 수많은 사람의 힘이 필요한 일이야.

 

 

드라마 <러아부>를 보면 경찰도 그냥 사람이고 직장인이었다.

취업이 힘든 세상에서 그래도 공무원이라 안정적이라는 메리트가 있고

작지만 안정적인 수입과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으로 청춘이 경찰에 몸담는다.

뭐 대단한 사명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복을 입어서 폼이 나고 그래도 뭔가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이라는 것 나름 보람있으리라는 기대가 일단 경찰학교의 빡빡한 시간표앞에서 좌절되고 그리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다시 취준생이 될 수 없다는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지구대에 발령이 나면 그냥 정신이 없다.

그나마 드라마에서도 책에서도 같은 동료끼리의 갈굼이나 갈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사람 모여있는 곳이 다 그렇듯이 빤질거리는 놈도 있고 꼰대같은 놈도 있고 의리가 있고 사명감이 있지만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다.

뉴스에서 보거나 사람의 입을 타고 전해지는 말 속의 경찰은 아니었다.

대단한 사명감으로 존경의 대상도 아니고 작은 권력하나로 마구 휘젓는 견찰도 아니고 그냥 직장인이고 생활인이었고  이웃이었고 가족이고 그냥 보통 사람이었다.

나쁜 놈을 보면 화가 나지만 이성적으로 대해야 하고 피해자가 안쓰러워도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휘두를 권력은 쥐꼬리 만하고 그것 조차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 설령 그게 가해자거나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 책임은 오롯이 경찰이 지고 배상하고 경위서를 써야 한다.

경찰도 폭력이 두렵고 미친듯이 덤비는 범죄자가  무섭고   아무 잘못도 없이 재수없이 당하는 피해자가 안쓰럽고 안타까워도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실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 죄지은 놈은 반드시 벌을 받고 작은 피해도 법으로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리라 믿었는데 세상은 참 허술하다.

관련법이 없어서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허다가호

문자빙을 넘지 못하는 법은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을  그냥 보고 있을 수 밖에 없고

내 잘못이 아닌 성폭력앞에는 무지막지한  이차가해가 기다린다.

일이 터져서 누군가가 죽어나지 않으면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허다하다.

가정폭력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내 집에 내가 가겠다는 걸 막을 수가 없고 쉽게 구속시킬 사유도 없거니와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당장 가장이 없으면 먹고 사는 일 아이들 키우는 일이 막막할텐데 하는 마음에 아무런 변화없이 고대로 도돌이표가 된다.

폭력에 방치된 아이들

찾지 못한채 잊힌 실종 아이들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어 그냥 스스로를 죽여버리는 사람들

법을 너무 잘 알아서 마음껏 휘두르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사실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건 순간적인 제복의 권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 권위도 반복되는 쉬워지고 우스워진다.

 

 

누군가를 탓하고 책임을 지우는 일은 쉽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고 해결책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자녀교육을 들으러갔을 때 딱 와닿은 문장이 있었다.

아이를 잘못되게 망치는 일은 아주 쉽지만 그렇게 망가진 아이를 되돌리는데든 아이 나이의 곱절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식을 위한답시고 했던 행동들이 아이를 망치는 건 순간이지만 그 아이를 다시 제대로 돌보고 보살펴서 되돌리는데는 아이가 나이 먹은 시간의 곱절이 필요하다고 .. 그러니 아이가 더 나이 먹기 전에 내 양육을 돌아보라는 뜻일텐데

이 책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한 사람을 망가뜨리는 건 순간이고 단 한사람이 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을 회복시키는 건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그러니 처음부터 누구도 망가지지 않아야 하는 것 그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것

순간의 실수나 사고로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단단한 안정망을 가지는 일

그것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소소한 시시비비를 전부 법으로 해결하고 경찰을 동원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은 그 말단의 공권력에게

결국 대다수는 그 말단의 공권력이라도 의지하고 믿고 싶은데 그들도 힘이 없다.

 

읽고 나면 괜히 서럽고 기운이 빠져 그만 읽고 싶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다 읽는다.

알고 기억하는 일

어디선가 누군가는 비리를 저지르고 그 작은 권력을 휘두르며 상처를 입힐테지만 그가 전체는 아니라는 것 여전히 묵묵히 자기 자기를 지키는 보통의 경찰이 더 많을 거라는 믿음

그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그게 참 분하고 분하다.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든 읽어볼 가치가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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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 힘껏 굴러가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
최필조 지음 / 알파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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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제목이 내 속에 스며들어서..

사실 사진을 잘 모른다.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그만큼 그냥 눈으로 오래오래 보고싶을 뿐이라고 변명을 한다.

사실 손재주가 신통찮아서 어떻게 찍어도 내가 본 게 아닌 이상하고 조금음 맥이 빠진 사진이 남아서였다. 내가 본 장면은 저렇게 뭉클하고 저렇게 저릿한데 막상 화면에 찍힌 건 흔하고 아무런 맥락도 없고 어딘가 본듯하고 없어도 그만인게 나타나니.. 차라리 눈으로 보는게 낫다 싶었다.

 

내 속을 내 마음을 다 보여줄 수 없어 말이 필요하고

내 말이 모든 걸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 넘치는 게 있어서 보여줄 게 필요하다.

사실 글 읽는게 더 익숙해서 사진보다는 글에 더 오래 머물고 더 마음이 스민다.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면 그 말이 그 글이 사진과 더해져거 다시 스며든다.

 

그냥 스쳐지나도 하나도 이상할 거 없는 풍경들 사람들을

내가 이렇게 오래 보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냥 거리에서 어딘가에서 마주했다면 의미없이 눈 길 한 번 스치고 말았거나

게으른 천성때문에 결코 마주치지 않았을 풍경들과 사람들을 본다.

누군가 이렇게 기록을 남겨서 내가 보는 구나

 

예전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상계동의 시간을 찍은 사진들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람보다는 골목들 집들 사진이었다.

살던 주민들은 다 떠나고 빈 집만 남아서 햇살을 받고 바람을 받고 그렇게 하나둘 낡아가고 사라져 가던 풍경을 보면서 저릿했었다.

내가 아는 상계동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고 학원가가 유명하고 뭐 그런 곳인데 그 너머 어딘가 아직 재개발이 시작되지 않은 .. 하지만 곧 시작될 그 곳 풍경들이 낯설면서 따끔따끔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최필조님의 밤골의 풍경과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그때의 감각을 떠올린다.

이제 이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사람들은 어디 있을까

순간의 감상일 뿐이겠지만 아릿하다.

 

어쩌면 사진 자체는 그다지 새롭거나 대단하지 않다.

어쩌면 그 대단하지 않고 익숙하고 뻔한 사진들이 주는 느낌이 있다.

그 느낌이 차마 다 보여주지 못해 덧붙인 글에서 오는 감각일 수도 있다.

골목의 풍경들

풍경속의 사람들

사람속의 손들 몸짓들 미소 눈빛들이 훅 들어온다.

 

그림이 아닌 사진을 보는 건  나름 상징적인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적이어서

헉~ 하는 마음이 앞선다.

알고 있었는데 한 번도 자세히 오래 바라본 적이 없는 모습에 조금 죄스럽고 안타깝고 그리고 마냥 남의 일도 아닌 것 같은...

무심한 손길이나 시선들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구나  나는 몰랐다.

 

책을 덮으며

안녕하세요 가 아니라  안녕하셨어요~ 라는 인사.. 이제 나도 그래야겠다.마음 먹는다.

일단 더 늦기 전에 엄마의 사진을 찍어야 겠다고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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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희망 2019-11-25 17:43   좋아요 0 | URL
그래볼려구요. 지나면 아쉬운 것들이 자꾸 늘어갑니다. 촛점이 안 맞거나 이상한 표정 도데체 왜 찍었나 싶은 사진도 일단 그 순간을 돌아보는데는 없는 것보다 좋더군요.
엄마랑 많이 찍고싶어졌어요
이책 유레카님 리뷰보고 읽게 됐거든요. 좋은 책 알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대식가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8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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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다못해 나른한 경관 해미시의 사건수첩이랄까

사실 사건을 풀어나가는 건 해미시지만  온 마을이 함께 문제를 풀어간다고도 할 수 있다.

무심하게 뱉는 말이나 생각들이 어떤 단서를 보여주기도 하고 실마리를 찾게 한다.

한창 빠져 있는 드라마속 옹벤져스처럼 늘 그 고장에 붙박이처럼 배경처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풍경을 만들고 이야기를 엮어간다.

문제는 항상 그게 그거같은 평화롭고 따분한 풍경같은 마을에 늘 이방인들이 찾아와서 갈등을 만들고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다가 누군가 죽어간다는 거.

 

이번 작품도 다르지 않다.

속물적이면서 적당히 순박하고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괴로운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그래도 매번 누군가 이방인이 올 때 마다 살인이 일어난다는 건

평화롭다는 것과 많이 멀어서 원....

 

결혼정보회사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단체로 짝을 찾으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각각의 회원들은 프로필에 적힌 모습 (그러니까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정작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 은연중에 속셈이 드러나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마리아가  열심히 각자의 프로필을 읽고 고민해서 매칭했을 테지만 그들의 속내까지 알 수는 없으니까  계속 갈등하고 충돌하는데 설상가상 나타나지 말았으면 하는 인물까지 나타나고

급기야 살인 충동을 일으키더니 정말 죽어버렸다.

 

누군가의 행동이 예의없고 무례하고 역겨워서 미워할 수 있다. 피할 수도 있고 뒷담화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죽어마땅한 건 아닌데 ...

그것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이상한 사람에게 그렇게 되다니..

좀 씁쓸하다.

 

우리의 경관 해미시는 프리실라에게 너무 튕기는 거 아닌가 몰라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오는 여자 막을 생각도 없고 프리실라에게도 막대하는게 자꾸 미워질려고 하네...

긴장과 스트레스  해야할 많은 일거리를 앞에두고 에라 모르겠다하고 도망치는 방법

그건 이런 추리소설을 읽는 일이다. 범죄가 있고 살인이 있고 인물들마다 다른 면모가 드러나는 이야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잠깐의 일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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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가 우는 섬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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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하고 슬픈 민담  '바늘상자에 넣어 둔 눈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계모와 살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대나무가 유명한 섬 호죽도에 여덟명의 사람이 모여든다.

새로 지은 연수원은 이용해보고 모니터링을 한다는게 표면적인 이유다.

대학생, 웹툰작가, 역사소설가, 가수, 회사원, 택시기사 영화기획자, 그리고 기자

제각각 다른 직업을 가진 이전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간도 크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초대에 응해 섬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얄궃게도 딱 그때 태풍이 몰아쳐서 모두가 섬에 갇히게 되고 그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누가 죽였는가

어떻게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

그리고 이 제각각의 인물들이 어떻게 선택되어 이 섬으로 모여들게 되었나?

 

내가 기다리던 작가중 한명인 송시우의 새로운 소설이다.

사회파 미스테리를 내용으로 하면서 아주 고전적인 클로스드 서클을 가져왔다.

고립된 섬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사건을 해결해나가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인물들은 참 송시우 스럽다.

어딘가 허당같고 동시에 기괴하고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건을 풀어간다.

고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느라 더 기운이 빠지고 에너지를 쏟게 되지만 송시우는 그렇지 않다. 그냥 다들 머리를 맞대고 함께  문제를 푼다. 물론 전작과 다르지 않게 그 과정에서 좌충우돌도 있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다른 성향의 인물들이 부딪치기도 하고 슬립스틱 코메디도 이어지지만 그래서 우직하게 해결을 향해 나아간다.

 

내가 송시우의 작품을 좋아하는 건 사건도 매력적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참 독특하고 재미있다.

이전 조사관들의 캐릭터도 좋았고 장편의 인물들도 좋았다.

젠체하지 않고 속물적이고 조금 음침하기도 한 복합적인 면이 좋았다

이번에도 날카롭지만 어딘가 불쾌하기도 하고 허당스러운 임하랑과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모두가 유쾌하고 아슬아슬하다.

 

이야기의 힘을 믿고 사건을 시작되었고 그 마무리도 이야기가 해줄 것이다.

사실은 쉽게 잊혀지지만 이야기는 오래오래 전달되고 덧입혀지고 조금씩 바뀌어도 그 이야기가 전달하고 싶은 단순한 주제는 오래오래 머문다. 그리고 오래 멀리 퍼진다.

이야기의 힘이다.

 

다음 작품이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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