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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리본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움베르토 에코와 같은 시대를 살아서 너무 했복하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세상의 시름을 잊고 재미있는 지식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여기 또 한사람의 작가로 인해 항상 우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것도 중독성 높은 마약을 동시대에 언제나 공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정신적 환각 상태를 체험할수록 삶의 이면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경린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고적하고 따뜻한 장소에 다다른다. 추억을 되살리는 시골길 풍경, 한적한 농촌, 적막한 사색의 공간에 쓸쓸함과 아늑함 그리고 풍요로움과 우울함이 교차한다. 사진을 보는듯한 느낌이 아니라 글이 감각적으로 수채화적 풍경을 일깨우는 것이 참 신기했다.
“…가난한 남자가 가슴에 소중히 담고 있던 귀한 시 <왜 지나간 일을 생각면>을 외워주던 시간이 정말 꿈같다. 허수경 시인이 행복한지, 허수경 시인의 시를 외우는 남자를 잠시 만난 내가 행복한지. 얼마전 <소풍갑시다>란 허수경의 근작 시를 읽었다. 나에게 올 해 최고의 시였다." (p116)
라고 그녀가 섰던 것처럼 이 수상집은 내가 읽었던 수상집 중에서 최고의 글이었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장르 이전에 예술의 목표는 우리의 머릿속을 춤추게 하는데 있다. 막힌 물꼬를 살살 간질여 꼬불꼬불 흐르게 하는 것이며, 기억과 상상력의 섬모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며, 대뇌 비질을 똑똑 두드려 무한 겹의 문들을 여는 것이다. … 로댕 미술관에서 나와 시립미술관을 향해 걸을 때 공중으로 얼굴을 높이 들고 지른 탄성” (pp108~109)
바로 그 탄성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쏟아 진다. 머릿속을 춤추게 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렬함이 있다. 영혼의 울렁거림이랄까.
확실히 전경린 작품들은 실존, 욕망, 의지 등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 글 속의 공통된 화두랄까. 거의 모든 장편과 중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시골을 배경으로 한 고독한 여인이다. 작품들 속에서 그 여인들이 말하는 것 또한 실존과 욕망에의 의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들은 바로 작가 자신이 살아온 또 다른 분신들이었다. 이 수상집을 읽으면서 단박에 깨달은 사실이다.
<박씨전>과 카프카의 <변신>이 어린 시절 전경린의 문학적 감수성을 어떻게 강타했는지 생생하게 들어난 곳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직감적이다. 13살짜리가 <변신>의 첫 부분에서 그런 강렬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직감적이기에 그녀의 글들은 가식이 없다. 역겨운 평론가들의 작위적이고 현학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다. 존재 자체를 온전히 표현하고, 그 순수한 존재의 결정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글을 읽고 있으면 글이 존재의 옷을 입고 현현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녀의 글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놓치기 아까운 글]
어른이 된 후에 가장 심각한 공포는 무엇이었을까? 소유했다고 안심했던 것이 허방 디딘 듯 천 길 나락으로 사라져버리는, 상실과 부재의 공포가 아닐까. 그것이 사람이든 물질이든 좁고 긴 틈으로 영원히 하나의 희망이 빨려 들어가는 실제의 공포. (p18)
이 시대는 외로움이 보편화되어 있다. 존재가 평등하듯 외로움도 평등해졌고, 거리와 공원을 공유하듯 모두가 시민의식과 같이 외로움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외로움은 정신의 세련과 정밀함과 정직성을 재는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pp69~70)
당신은 단 한번도 자신의 삶을 산 적이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생의 방향을 바꿀때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점검할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느냐는 것이다. 정화된 욕망의 눈을 통해 미래를 보면 바로 오늘 해야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알 수 있다.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