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견설 범우문고 141
이규보 / 범우사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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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적인 말이라고 하면 귀부터 막는 사람이 있다.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는 것이다. 남을 훈계하려고 하는 책들은 그러고보면 인기가 없다. 그래서 고전류가 가장 읽히지 않는 책인 듯하다. 선생의 입장에서 감나와라 대추나와라 하니, 요즘 젊은이로서는 여간 거부감 드는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편견을 날려버리는 책이 있다. 누구도 읽기 싫어하는 고전에 속하는 <슬견설>(범우사, 2003)이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저자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규보. 이 사람의 가장 유명한 글인 <슬견설>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었고, 아무도 읽지 않아 보이는, 그래서 책이름으로만 유명한 <동국이상국집>속의 <동명왕편>이 국사책에 조금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국어와 국사시간에 잠깐 듣고 영영 잊혀지는 사람이 이규보일 듯하다. 이규보라는 이름을 듣고서야 아하~ 알겠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이다. 헌데, 그 사람이 언제적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 거릴 사람이 많다. 조선시대 사람인가? 아니, 고려시대인가? 아님, 신라인가? 그렇게 대놓고 고민하면 자신의 무식이 폭발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모르면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자. 

이규보는 무신 정권 시대를 살다간 고려의 문신이다. 한 때 사극 <무인시대>가 인기를 끌던 시대보다 약간 후대의 사람이다. 서구에서 십자군 전쟁이 한 창 이던 1168년에 태어났다. 23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1193년 서사시 <동명왕편>을 발표했다. 그 후 여러 하위 직책을 전전하다가 1232년 위도로 유배를 가기도 했지만, 결국 문하시랑평장사라는 벼슬까지 오르고 정계에서 은퇴를 했다. 1237년에는 몽고침입을 불력으로 막기 위한 대장경 판각 사업에 참여하여 유명한 대장각판군신기고문을 쓰기도 했다. 

일찍이 그를 가리켜 서거정은 “동방의 시호(詩號)는 오직 규보 한 사람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고려사>집필자는 규보를 가리켜 “성질은 활달하여 생산은 돌보지 않고 술을 좋아하여 호탕하고 그 시문은 옛 사람을 본받지 않았다”고 그의 성격과 문학을 단적으로 평했다. 이 책 속에는 그의 그런 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성품과 그가 지향했던 삶의 모습이. 

근래에 와서야 수필이 하나의 문학 장르로 받아 들여 졌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수필은 문학의 범주에도 들지 못했다. 이규보가 이름을 떨치던 고려시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동방의 시호라고 까지 불린 그였지만, 오히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잡설이라는 형식으로  독창적이고 교훈적인 글을 많이 남겼다.   

<슬견설> <차마설> <이옥설> <경설> <주객설> <뇌설> 등은 수필이라는 글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그 진수를 맛볼 수 있게끔 한다. 탁월한 비유와 풍부한 소재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설’이 끝날 때 “나는 후세 사람들이 이와 같은 허탄한 말에 현혹될까 염려하여 이 글을 써서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p37)라는 문구를 자주 섰다. 자신의 반성적 사고로 깨달은 인생의 지혜를 후대에 읽히게 하기 위한 마음 씀씀이가 무척 고맙게 다가온 구절이다. 

한편, 수록된 각 에피소드의 제목을 보면 뒤에 <통제기>, <슬견설>, <슬잠> 등 기(記), 설(說), 잠(箴) 등이 붙는데, 이는 신변잡기류의 글들 중에서 이보다 격이 높은 수필양식의 글을 일컫는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오늘날 우리에게 생소한 우리 한문수필의 다양한 형식을 살펴보자.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설’(說)과 ‘기’(記)가 있다. 양자가 비슷하지만 엄밀히 구별한다면 “설은 어떤 사실을 해설한다는 뜻이요, 기는 어떤 사물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이다.” 기에는 <접과기>, <사륜정기> 등이 있는데 “자기의 이상을 모두 현실과 결부시켜서 쓴 것”이다. 설이 더 에세이 쪽에 가깝다. 특히 이규보의 설은 모두 예리한 비판과 심오한 철학을 지니고 있어 수필로서의 격조가 높다. <경설>, <슬견설>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서는 서간문이다. 특정인물에게 보낸 편지들인데, 작자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고민, 처세의 비결, 대인 관계 등등 실로 다양한 인간 프로필을 엿볼 수 있다. 끝으로 제문이 있다. 제문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혼령에게 전하는 글이다. 여기 실린 제문은 짧기도 하나 진정과 정성이 살뜰히 서려 있어서 가히 현대에도 모범이 될만한다.(pp17-20) 

수록된 짧은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렇게나 먼 과거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바로 옆에서 노 철학자가 생활의 지혜를 이야기로 들려 주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무 부담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사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무릎을 치고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그의 글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않으며, 속박을 벗어났지만 산만하지 않다. 현란하거나 무겁지 않으면서 날카롭고 반성적이다. 정열적이지 않지만 심오한 지성을 감추고 있으며, 흥미를 주지만 흥분시키지 아니한다. 미소를 띠게 하는 여운과 원숙한 삶의 지혜와 인생의 향기가 있다. 이런 글을 차와 함께 음미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인생을 사는 참 맛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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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 까치글방 84
마틴가드너 / 까치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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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과학을 다룬 책을 읽는 즐거움은 매우 크다. 프리초프 카프라의 <새로운 문명과 문명의 전환>이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그리고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으면 난해한 과학적 지식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한다. 거기다가 재미있기 까지 하다. 막 궁금증을 유발해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이런 반열에 오를만한 책이 여기 한권 더 있다. 마틴 가드너가 쓴 <양손잡이 자연세계>(까치, 1992)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 충격은 인문과학이나 문학작품을 읽을 때 받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훌륭한 자연과학 서적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세게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섹ㅖ의 이치를 생각하고 그 속의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 위치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는 습관을 훈련시켜 준다.

오른쪽과 왼쪽, 대칭과 비대칭이라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사실을 가지고 마틴 가드너는 소립자에서 우주의 대규모 구조까지, 과학에서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삼라만상의 구석구석을 관통하며 들추어내고 있다. 가드너의 글은 '들추어 낸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그는 모든 과학자들이 이론을 거론하고 동서고금의 문헌들을 뒤져서 인용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예를 찾아내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따라서 현대물리학의 가장 어려운 개념과 이론들도 풍부한 비유와 적절한 해설로 명쾌하게 우리들의 머리에 넣어준다.

더군다나 가드너는 서술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를 서슴없이 밝힌다. 그의 자신감은 좌와 우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연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비밀을 들추는 과정에서뿐 아니라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분야에서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판단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이런 분위기를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옮겨주어 우주와 자연, 그리고 세계 전반에 대해 분명한 판단을 가지라고 부추긴다.

그가 그렇게 부추기는 이유를 확인하니 더욱 놀랍다. 가드너는 이 책에서 좌우 대칭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는 듯한 자연이 물리학에 가서는 대칭이 붕괴 되는 것을 제시한다. 일명 패리티 붕괴.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완벽한 양손의 대칭구조를 보여준다는 고정불변의 자연관도 균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이 기막힌 책을 탄생시킨 마틴 가드너는 어려운 과학이론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풀어쓰는 과학 전문 저술가이다. 그의 이 책과 더불어 <상대성 폭발>은 과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쓴 명저로 손꼽힌다. 그를 오늘날 과학 대중화의 선구자로 평가하는 것은 이러한 그의 과학책들을 읽으며 장차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청소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글들은 두 세대의 저명한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현 세대의 지적 문화에 대한 마틴 가드너의 공헌은 그 영역의 넓이와 이해의 깊이, 통찰력에서 가히 독보적이다"라고 노엄 촘스키는 말한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마틴 가드너의 또 다른 이력은 <워싱턴포스트>의 표현대로 그가 "2차대전 이후 가장 저명한 사이비과학의 폭로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1976년 결성된 '초상현상 주장들에 관한 과학조사위원회의 창립 멤버로 활약하며 줄곧 우리 시대의 모든 과학적 사기에 맞서 싸워왔다. 마틴 가드너는 88세의 고령임에도 여전히 마술 트릭배우기를 즐기고, 아직도 전동타자기를 고집하며 왕성한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엘리트2000 제공] 


이 책은 대칭 - 비대칭이라는 주제만 가지고 문학, 음악, 수학, 마술, 식물, 동물, DNA, 반물질, 시간, 공간은 물론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펜로즈 등이 출몰하는 '거울의 세계'에서 '우주의 기원'까지의 좌와 우의 자연세계를 종횡무진으로 모험하는 지적 여행이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깨달음을 얻는 지적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 그 황홀경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이 책을 읽는 자만의 특권이다~


[책에 대한잡담]

이 걸작은 까치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까치출판사가 대단한 것은 진짜 주옥같은 명저들. 각 분야의 숨어있는 외국의 명저들을 잘도 발굴해서 팔리든 안팔리든 꾸준히 기획해 책으로 낸다는 사실이다.

까치출판사에서 나온 기가막힌 절판된 책들을 거들떠 보자. 허버트 리드의 <현대회화의 역사>와 그레고리 베니트슨의 <정신과 자연>, 막스피카르트의 <침묵에 대하여>, 에리히 프롬의 <존재의 기술>, 에드아르두 푹스의 <풍속의 역사>, 파울 프리샤우어의 <세계풍속사>, S.F 메이슨의 <과학의 역사>, 로버트 비 라이시의 <국가의 일>, 알브레이트의 <유럽외교사> 등 혀를 내두를 만한 책들이 즐비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유신 독재시절에 국민들의 지식 수준을 업시킬려고 만든 출판사라고 한다. 헌데 기획력만큼은 끝내준다. 정말 주옥같은 명저들만 번역해준다. 정말 읽을 맛이 나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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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 - 신과학총서 39
아서 케슬러 / 범양사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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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야누스>(범양사, 1993)의 저자인 아서 케슬러는 1905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물리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전반에 걸친 방대한 지식을 축적한 케슬러는 중동, 구소련, 스페인 등에서 기자활동을 하다 1948년 영국으로 귀화했다. 그에게는 항상 '세계적인 과학평론' '신과학의 비전을 제시한 과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과학자로서 케슬러의 이력은 특이하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독일에서 공산당 편에 서서 나치즘과 싸웠고 스페인 내란 때에는 인민전선 편에서 투쟁하기도 했다. 그는 행동하는 과학자였다. 그러나 소련 공산당의 이중성에 실망하여 1938년 공산당을 탈당, 1948년 영국으로 귀화해 많은 활동을 하다가 1983년 3월 부인과 함께 자살했다.

케슬러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소련에서의 체험을 배경으로 쓴 <한낮의 어둠>은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저작이었으며, 그의 과학적 지식을 반영한 <창조행위>, <기계속의 유령>, <환원주의를 넘어서>, <실패한 신> 등의 저서들은 잇따라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이 <야누스>가 세계에 충격을 던져준 걸작 중의 걸작이다.

'혁명적 홀론이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범양사에서 야심차게 기획했던 신과학 총서 시리즈 중 39번째 책이다. 범양사의 이 시리즈는 대부분 과학이론에 한 획을 그은 굵직굵직한 명저들을 번역해 내놓았다. 하지만 이 책을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애석하게도 절판되어 지금은 구해 볼 수가 없다. (다른 출판사에서 산발적으로 재 출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저서는 놀랄만큼 광범위한 학문체계를 넘나든다. 물리학과 생물학을 위시해서 심리학, 경제학 그리고 뇌과학과 시스템론에 이르기까지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면서, 케슬러는 현대세계와 과학이 직면하고 있는 우리의 문제들을 세세히 점검하고 새로운 세계상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이 책이 케슬러의 다른 저작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의 핵심 사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의 유기적 통합론을 열게 한 홀론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여타 과학자들에 따르면 홀론이론은 지금까지 많은 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혁명적 사상이라고 한다. 이 책은 그의 일생의 노력에 대한 요약이며 동시에 그 연장이다.

홀론(Holon)이라는 말은 본래 그리스어의 전체를 나타내는 holos라는 말과 부분을 나타내는 on이라는 말의 복합명사로 '부분적 전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홀론은 위로부터 보면 부분이되고 아래로부터 보면 전체가되는 계층적 구조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하나의 생명체는 전체이고 그 구성체인 분자는 부분이지만 분자는 또 그 구성체인 원자에 대해서 전체가되고 원자는 부분이 된다. 말하자면 어떠한 개체도 하나의 홀론으로서 전체에 대해서 부분으로 기능하는 통합적 경향과 독자의 자율성을 유지하는 자기주장적 경향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각 세포 홀론들은 각기 시각세포는 시각세포 홀론으로서, 뇌세포는 뇌세포 홀론으로서 자기 맡은 바 일, 즉 자기주장적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기보다 높은 단계, 예컨대 뇌중추로부터 내려오는 명령에 순응해서 각각 감각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어떤 세포가 위로부터 오는 전체적 조절의 합목적적 지시를 무시하고 기이한 자기주장적 경향만을 강하게 갖게 되면 암세포와 같은 이상한 자기증식 현상을 일으켜  그 생명체는 파괴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야누스>의 홀론사상은 생물계와 무생물계, 국가와 사회, 대우주와 소우주 그리고 유형적 세계와 무형적 세계 등 그 어느 것을 불문하고 모든 현상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시스템론을 제시하고 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첨단의 창조력과 상상력이 요구되는 오늘의 급변하는 시대에 있어서 전체와 부분, 부분과 전체간에 일어나는 갈등과 모순을 초극할 수 있는 철학을 <야누스>의 홀론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마틴 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와 같이 읽으면 현대과학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자력을 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처럼 궁극적 실재를 우리의 언어로 파악한다는 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인 텍스트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비류로 세월 보내기를 좋아한다. 선장은 주머니 속에 먼 바다로 나아가야만 열어 볼 수 있는 봉인된  항해지령서를 넣고 출항했다. 그는 불안감이 사라지는 순간을 고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이 왔을 때 봉투를 열어보니 거기에는 온갖 화학처리를 해보아도 글씨가 나타나지 않는 지령문이 있을 뿐이었다. 간혹 가다 글씨가 나타나기도 하고 자오선을 표시하는 숫자가 보이기도 하다가는 다시 사라져 버린다. 그는 지령문을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었다. 지령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의 임무를 저버릴 것인가마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지령문이 들어 있다는 의식은 그것을 해독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장을 유람선이나 해적선 선장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끔 만들었다.(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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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콘서트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1
팀 하포드 지음, 김명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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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를 치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아무리 교과서의 회독수를 늘리고 많이 외우고 많은 지식을 쌓아도 리걸마인드가 없으면 헛빵이라고. 그 리걸마인드가 생기면 열나게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해가 되면서 현실의 적용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근데, 그 리걸마인드라는게 하루아침에 생기는게 아니고 그걸 가르쳐 주는 책도 없이, 오로지 개인이 알아서 습득하는 것이라 한다. 누구는 학부2학년에 생기고 누구는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야 생기는게 그거라고. 음, 사시와 법대생에게 리걸마인드는 없어서는 안될 핵심이었고, 지금 사시에 합격한 사람인 변호사와 판검사는 모두 리걸마인드를 소유한 사람들일수밖에 없다나~
 
법학도와 마찬가지로 경제학도에게는 경제학적 마인드라는게 있었다. 대학4년을 마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사회를 경제학적 마인드로 본다. 참 신기했다. 경제학과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사회의 현상을 그들만의 논리로 설명하는게, 너무도 신기했다. 더군다나 수학적 수식을 동원하는 그들을 보면 약간은 존경심마저 들었다. 현상을 수식으로 표현하고 다시 그것을 그래프로 변화하는 그들의 설명방식에는 커다란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곁에서 본 경제학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다가가기 쉽지 않은 까다로운 학문이었다. 대학4년동안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교양경제학 책에 매달린거 같다. 슘페터의 <10대경제학자>에서부터 토드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와 <유쾌한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수십권은 될 듯 싶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교양경제학책은 학교 경제학 원론 시험에 아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디 까지나 맛베기 입문서의 구실로 사람들을 경제학의 구렁텅이로 유인하기 위한 미끼구실을 한다고 할까. 언제나 핵심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식과 그래프를 이해해야만 하는게 경제학의 실체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졸업후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았다. 잘나가는 경제학 강사 설명을 들으니 경제학에서 가장중요한 개념이 '한계'라는 개념이고(한계효용체감, 한계대체율 등), 그 다음이 탄력성 그리고 마지막 하나를 강조했는데, 지금 생각이 나질 않는다. 3개념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경제학은 끝난다나 뭐라나~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응용문제가 나오면 여전히 헤멘다는 사실이다. 처음 공부하는 경제학의 문제들은 마치 물리 교과서의 연습문제를 푸는 바로 그 악몽 이었다. f=ma라는 공식을 주고 수많은 문제를 풀게하는 그런 거. 그리고 못푸는 수 많은 문제들을 보며 좌절했던 기억이 경제학 문제를 풀면서 새록새록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 쉬운 수식으로 풀리는 문제가 없는 답답함.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경제학적 마인드가 없어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경제학 콘서트>(웅진닷컴, 2006)는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경제학 책과는 정말 많이 달랐다. 이건 교양경제학 책의 혁명(!)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애타게 찾던 바로 그 경제학적 직관력, 다시 말해 경제학적 마인드를 가르쳐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읽었던 <괘짜 경제학>보다 훨씬 괜찮았다.
 
첫장부터 나를 사로잡은 이 책은 경제학적 마인드로 사회현상을 볼 수 있는 강력한 마인드 형성을 돕고 있었다. 스타벅스 커피를  데이비드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으로 매끄럽게 설명하는 저자의 설명에 빠져들면서 나는 이 책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가격결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경제학교과서들은 그리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며 서술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단 몇페이지로 그 진실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혼잡세, 중고차시장, 주식, 게임이론, 비교우위, 무역 등 경제학의 주요 쟁점들을 간결하게 설명하면서 그 이론의 이면을 움직이는 맥을 짚고 있다. 어떤 사회적 현상을 보면서 그 이면을 흐르는 시각을 경제학적 마인드로 설명 가능하게끔 하는 사고의 변화를 훈련시키고 있었다. 교양경제학책에서 이런 포스를 갖는 책은 이 책이 유일한 거 같다.

대부분의 교양 경제학 책은 경제 이론을 현실에 쉽게 적용시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예를 들어 탄력성이론이라면 실물경제의 예를 들어 알기쉽게 이해시키는게 대부분의 설명 방식인데, 이 책은 거기에다가 사고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 점이다. 어떻게 사고를 확장시키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총10개의 챕터로 이루어 졌지만 미시와 거시의 중요 이론들이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챕터 말미에는 '경제학자의 노트'라고 해서 핵심 경제이론 10개를 설명해 놓고 있다. 총 10장의 본문은 각 장 말미의 경제이론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놓은 일종의 경제 사례집이라 할 만 하다. 챕터와 그 이론의 관련을 살펴보면..


챕터 1. 스타벅스의 경영전략 - 차액지대론
챕터 2. 슈퍼마켓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 - 가격차별화: 가격탄력성
챕터 3. 경제학자가 꿈꾸는 세상, 완전시장 - 완전시장: 독점, 시장실패
챕터 4. 출퇴근의 경제학 - 외부효과: 외부경제와 외부불경제(시장실패와 정부실패)
챕터 5. 좋은 중고차는 중고차 시장에서 팔지 않는다 - 정보의 비대칭: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스펜스와 스티글리츠 이론)
챕터 6. 주식으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 주가의 희소성: 희소성, 규모의 경제
챕터 7. 인생도, 세상도 게임이다 - 게임이론:폰노이면&모르겐슈타인, 존 내쉬
챕터 8. 정부가 도둑인 나라 - 합리적 무시:맨커 올슨
챕터 9. 다함께 잘사는 방법 - 비교우위: 데이비드 리카도
챕터 10. 중국, 무엇이든 기회가 되는 곳 - 중국식 사회주의 이념: 잡초론고 흑묘백묘론


책은 주로 미시경제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1,2,3장은 가격이론이고 4,5장은 후생경제학 이론들이다. 9,10장이 국제경제학의 핵심인 무역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거시는 학파별 이론의 전개이기에 이 책에서 다루기는 좀 버겁긴 했지만 거시경제학을 조망해볼 수 있는 하나의 장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아마도 2권에서 다뤄줄 거 같은 예감이 든다.

한편, 책을 빨리 읽어 내기는 쉽지 않다. 흥미있는 설명이 도처에 있고 재미 있지만 결코 소설처럼 휘리릭넘길 수 있는 책이 절대 아니다. 그만큼 행간을 읽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한 책이다. 얼마만큼 가져갈 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제학적 마인드를 길러준다고는 하지만 누구나 이 책을 읽고 경제학적 마인드가 생기는 건 아닌 거 같다. 과거의 내가 그렇듯이 경제학과 담쌓고 지낸 사람이나 경제학에 관한 책을 한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바로 경제학적 마인드가 생긴다는건 아니다. 물론 그럴수도 있다. 숨은 잠재력을 일깨운다면. 하지만 그런 사람을 논외로 친다면,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고민을 좀 많이 해 본 사람이 즉시 효과를 나타낼 수 있게끔 구성돼 있다. 적어도 학부때 경제학원론을 수강한 분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애타게 원하는 그 경제학적 마인드를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책을 읽은 지 꽤 되기에 어제는 서점에 가서 이 책이 어느 정도 인기가 있는지 살펴봤다. 경제학 서적 치고는 매우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었고, 얼마 전에는 2권까지 출간된 것을 보면 매우 궁금했다. 어느 정도 팔렸는지. 펼쳐보는 순간 경악을 했다! 130쇄를 넘었다!! 참고로 경제학 베스트 셀러였던 토드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가 10년 이상 줄기차게 출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100쇄를 아직 못찍었는데, 정말 대단하다. 좋은 책은 대중이 먼저 알아보나보다.

 

읽다가 너무 재미난 대목이 있어 발췌해 본다..(55-57페이지)
스타벅스 가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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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초콜릿               2.2달러
카푸치노                2.55달러
카페모카                2.75달러
화이트 초콜릿 모카  3.2달러
20온스 카푸치노      3.4달러
***************************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옳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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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초콜릿-가식없음                            2.2달러
카푸치노-가식없음                             2.55달러
이들을 혼합한 것-나는 특별해              2.75달러
색다른 파우더 추가-나는 아주 특별해    3.2달러
엄청 많이 줘-나는 식탐이 많아             3.4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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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바뀐 가격표를 보자. 색칠한 부분이 너무 웃겨 배가 아플 정도였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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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1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역시 전경린! 이전에 보여줬던 전경린의 파괴적이고 우울한 작품과는 다른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그 포스는 간직하고 있었다.

야사속에나 등장하던 그 황진이를 전경린은 완전히 부활시켰다. 고뇌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하나의 자유로운 여자로서.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어둡고 우울한 포스의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황진이 자체가 어느정도 역사적 실증성을 부여받기에 그럴것이다.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시들..소세양과의 관계, 서화담과의 관계가 문헌속에서 명확히 존재하기에...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조선 중기를 불꽃같이 살다간 황진이. 김미진의 말대로 황진이는 팜므메탈의 선구자(최초는 미실이 있다- 김별아 저)였을 것이다.

인습과 사회적 굴레 그리고 법과 도덕을 초월해서 "16세기를 불꽃같이 살다간 21세기의 여자". 소설 <황진이>(이룸, 2007)을 읽고난 지금, 황진이를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이 표현은 김영하의 산문집에서 빌려와 봤다.

여기서 잠깐 김영하의 산문집 <포스트 잇>에 있는 글을 한 번 보자. 거기에 '19세기에 태어난 20세기의 여자'란 글이 있다. 존 파울즈의 1969년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논평한 부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사라 우드러프는 난파당한 프랑스 배에서 표류중인 한 장교를 보살피다가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은 불과 하룻 밤에 불과했지만 그것으로 그녀는 고뇌하기 시작한다. 그녀를 사랑한 귀족 스미스의 연정을 뿌리치며 그가 프랑스 중위를 사랑했던 걸 찰스에게 고백한다.

 "제가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것은 수치심과 다른 여자와 다르다는 자각입니다. 다른 여자들처럼 결혼해서 남편, 자식, 순결한 행복 따위는 결코 갖지 못할 거에요. 대신 나는 그들이 갖고 있지 못한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모욕이나 비난도 자극할 수 없는 그  경계를 넘어선 곳에 나 자신을 두고 있기에. 난 아무것도 아니고 더 이상 인간도 아닙니다. 그저 프랑스 중위의 창녀일 뿐"

이 멋진 사라 우드러프의 고백은 황진이가 황진사 집에서 나와 신분이 수직하강하여 창기가 되기로 결심한 부분과 매우 비슷하다. 머리올리는 날 진이 창기로서 자기소개하는 대목(p217)을 보자.

 "인사드려요 저는 진입니다. 오늘 밤 나의 뜻은 내게서 내용을 전부 버리는 것이에요. 호리병 같이 쓰러져 텅 비워질 거에요. 무아의 빈 그릇으로 남아 다시는 나로 인해 울지 않을 거에요. 사람이 자기를 버릴때...자기몸의 영욕을 버리고...천애고아가 되고...도덕과 관습, 규제를 버리고...오직 제 경험속에서 윤리를 발견하며...지침을 삼습니다...세상이 내게 허용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우드러프는 단지 프랑스 중위의 창녀라 고백하지만 진은 자기몸을 버리고, 세상이 내게 허용하지 않는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지고 더 철학적인가.

계속해서 김영하가 우드러프를 평가한 부분을 보자. "사라는 존재 그 자체로 현대소설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선택했으며 그 사랑이 너무도 한심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긍정하고 받아들였으며 그 이후의 시련에 대해서도 의연했다. 그 와중에서도 자신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는가를 생각했다. 당대의 어떤 여성보다도 지적이었스며 문학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교육받을 수 있는 귀족이나 부르주아 딸들은 그녀와 같은 고뇌를 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름없는 그러나 위대한 개인이었던 것이다.(김영하, <포스트 잇>,pp144-145)

그런데 황진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사라 우드러프가 한 남자의 사랑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에 저항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의 자기애를 통해 자유를 획득했다면 황진이는 자기애를 버림으로써 자유를 획득했다는 점이다. 사라는 프랑스 중위의 창녀였지만 진은 모든 남성의 창녀였기에 뭇 남성의 사랑을 받을 수는 있을 지언정 그들을 사랑할 수는 없었다.

자, 비교해 보자. 어떤 여자가 더 자유로운 여자였을까?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와 자기를 비우고 모든 남자를 사랑한 여자. 자유는 안정과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진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한 여자로 보인다. 우드러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냉철히 비교해보자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사라우드러프와 16세기 중종대의 황진이를.

 어떤 개체가 그 자체로 현대소설인가? 김영하는 "사라우드러프라는 소설의 인물 자체가 곧 이 소설인 셈"이라 했다. "그녀는 19세기라는 시대가 갖고 있는 관습적 도덕률과 다가올 20세기 해체적 양상을 동시에 내장한 인물이며 따라서 그녀를 통해 소멸해가는 19세기적 도덕률과 20세기이 사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되는 것".(포스트잇, pp145-146)이라 했다. 

한편, 진은 자애를 버림으로써 천하에 고루 사랑을 나누어 주고 천하의 사랑을 모두 받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진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으니, 전경린은 이를 "자신을 버리고 다른 것과 바꾼 사람이 얻는 삶의 궁극적 조건이 되고 그로부터 이 세계와 타자를 향한 진정한 사랑의 실제적 삶이 실현된다"고 표현했다.

그녀는 16세기 중엽의 시대가 갖고 있는 도덕률과 20세기의 해체적 양상을 뛰어넘어 21세기의 사상을 몸으로 펼치면서 죽어간 인물이었다. 솔직히 우드러프에게 '해체적 양상을 동시에 내장한 인물'이라고 한 김영하의 이 평가는 황진이에게 주어져야할 평가라는게 더 적절한 듯 싶다.

홍경화가 진을 자신의 소실로 삼을 것을 제안했을때 진은 대답한다. "(기생의 길을 간다는 것이) 잘못한 일일 수도 있으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였던 이제와서 무엇이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어떤 길이든 뜻대로, 예상대로 편편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잘못된 길이라해도 내 의지대로 선택했기에 세상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며 지극히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길에서 벗어난다해도 남의 힘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일에 불과하니까요. 이곳에서 나가면 나는 오직 나 자신에게로 옮겨갈 것입니다...이 시대가 낯설고 당황스러울 뿐입니다."(2권 p155)

화담은 금강산 유랑길에서 돌아온 진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네게 있어 몸은 무엇이더냐?" 진은 대답한다. "제게 몸은 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밟으면서 길을 버리고 온 것처럼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제 몸을 버리고 여기 이르렀습니다. 사내들이 제 몸을 지나 제 길로 갔듯이 저 역시 제 몸을 지나 나의 길로 끈힘없이 왔습니다. 길이 이렇듯 어느누가 몸을 목적으로 삼고 누가 몸을 소유할 수 있으며 어찌 몸에 담을 치겠습니까? 길이 그렇듯, 몸 역시 우리 것이 아니지요. 단지 우리가 돌아가는 방법이지요."(2권 p276)

이처럼 전경린은 황진이를 통해 그 가공할 포스를 다시 한번 발휘하고 있다. 머리올리는 날, 홍경화에 답한 말, 그리고 화담에 답한 진의 말 등을 통해서 볼 때 진이 얼마나 거침없고 철학적인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전작과는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본질은 동일한 거 같다. 책 전체를 통해 진이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늘의 창녀가 아닌 조선의 기생 진이를 통해 억압받는 몸의 철학을 운명론과 결부시켜 풀어낸 소설이 <황진이>였기 때문이다.(순전히 개인적인 생각~) 

전경린은 아직도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여자로서의 굴레를 다시 한번 진을 통해 표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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