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불멸의 신화
조정우 지음 / 세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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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가의 글은 처음 읽었다. 누적 방문자 1,200만에 이르는 파워 블로거지만, 정보가 어두운 나에게는 처음이었다(참 대단하죠?). 처음 접한 단 한 권의 책이지만, 이 책을 통해, 조정우 작가 글의 특징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글은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이 간결함은 작가의 장점이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단점이기도 하다.

 

간결하기에 사건 전개가 빠르다. 그만큼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간결하기에 사건이 전부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사건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간의 심리, 배경, 암투 등 모든 것들이 생략되어 있다(물론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기에 장점이면서도 치명적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조정우 작가의 이순신에 대한 글. 이순신에 대한 글 중에서도 전투 장면을 위주로 한 글. 하지만 읽을수록 묘한 매력이 있다. 사건 전개가 빠르기에 지루하지 않고 재미나다. 전투 위주로 글이 이루어져 있기에 왠지 군대와 군대의 싸움이 등장하는 무협지(무림 고수간의 싸움이 아닌 군대의 싸움을 다루는)를 읽는 느낌마저 든다.

 

많이 읽고, 듣고, 알고 있는 이순신 이야기이지만, 저자의 손끝에서 새롭게 창작되어진 문장들 사이에 감동이 있고, 때론 소름도 돋으며, 한숨과 분노도 있으며, 마지막엔 눈물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간결한 글 안에 담겨진 저자의 필력이 아닐까 싶다.

 

요즘 이순신에 대한 모 영화로 인해, 이순신 장군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이순신 장군을 역사에 부각시킨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맞다. 군의 힘으로 정권을 잡았기에 정통성의 문제가 있었을 그로서는 군인들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그에게 분명 유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 아래에서 성장한 현 박 대통령 역시 군인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오히려 군인에 대한 흠모의 감정이 크다. 오죽하면 자신의 첫사랑이 조자룡이라고 말했을까? 그런 박 대통령이 영화를 봄으로 더 많은 논란의 말들이 있다.

 

분명, 의도적 작업들이 있음이 사실이겠지만, 그럼에도 이순신 장군이 명장이었음도 사실이고, 그의 위대함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책과 영화를 통해, 그가 품었던 마인드를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가장 크게 봤던 이순신 장군의 그 마음을 오늘 정치인들이 닮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본서에서도 저자는 이순신의 그러한 마음을 부각시킨다. 전투에서 더 큰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순간에도 백성들에게 돌아갈 아픔을 생각해 퇴각하는 모습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백성의 고통을 보며 함께 눈물 흘리는 이순신의 모습 역시 부각된다. 이는 간결한 문장들을 통한 사건 전개 중에서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저자의 메시지가 아닐까?

 

백성들의 눈물을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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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리더십 - 세계가 존경하는 인권 지도자 청소년 멘토 시리즈
유한준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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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리더십』은 “우리 아이에게 리더십을 길러주는 청소년 멘토시리즈” 16번째 도서로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며, 남아공의 대통령을 지낸 바 있으며, 작년 말에 서거하신 만델라 대통령 이야기이다.

 

남아공은 인종차별이 심하던 나라였다.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사라진지 100여년 후까지 백인과 비백인의 차별이 법적으로 보장되던 나라였다.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법으로 인해, 흑인들은 백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가게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그들의 주거 공간이 한정되었으며,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지 않았으며, 투표권조차 없었다. 한 마디로 백인들에게 이들은 동일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권이 철저히 유린되는 나라에서 비백인들 역시 동등한 인간임을 드러내며, 같은 투표권을 획득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만델라다. 무엇보다 그는 수많은 흑인들에게 자유를 선물한 위대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에 대해 자라나는 세대들이 읽고 배우고 알고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만델라의 리더십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희생의 리더십이다.

만델라는 사실 다른 흑인들과는 다른 출발을 한 사람이다.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잠시 어려움이 있었지만, 섭정왕의 양아들이 됨으로 교육의 기회를 누린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비록 평탄한 길은 아니었으나, 불굴의 의지로 변호사가 된다. 어쩌면 당시 흑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 만델라이다.

 

그 자리에서 만델라는 다른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을 향해 눈을 감는다면, 평탄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와 경제력을 만끽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델라는 그럴 수 없었다. 흑인들, 비백인들이 당하는 인권유린의 현장을 보며, 만델라는 자신의 안위를 챙길 수 없었다. 민족회의 활동을 하며,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 일을 위해 매진한다. 물론, 이런 활동으로 인해 만델라는 공권력에 의해 투옥을 반복하며, 마지막에는 27년 동안이나 감옥의 신세를 지게 된다.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지 않는 이 희생의 리더십이야말로 만델라를 위대한 멘토로 세운 것이 아닐까?

 

둘째, 희망의 리더십이다.

만델라는 27년 동안이나 감옥 생활을 하며, 감옥 안에서 70의 나이를 맞았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신념을 펼치게 될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희망, 확신이 있었기에 어둡고 지난한 긴 시간을 이겨내고 결국 평등과 자유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된 것이 아닐까? 이제 그 열매는 우리들이 이 땅에서 맺어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역시 인권 유린의 현장은 여전하니까...

 

셋째, 용서와 화해의 리더십이다.

만델라는 27년의 감옥생활을 마감하고, 석방된 후, 민족의회 의장으로 평등과 자유를 위해 헌신한다. 그런 그는 클레르크 대통령(후에 만델라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수상한다)의 인종차별정책 완화를 통해, 결국 흑인들의 투표권을 얻어내게 되고, 그 첫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 권력을 이양 받게 된다.

 

흔히 생각하길 그렇다면, 이제 복수혈전이 시작되어야 할 것. 하지만, 만델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통해, 백인들이 저지른 범죄 사례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고, 가해자들을 구별하여 처리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을 다시 사면해 줌으로 그들을 용서해 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델라에게 배워야 할 용서와 화해의 리더십니다. 그동안 당한 것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복수해야 할 텐데, 오히려 용서를 택한 만델라. 그랬기에 흑인 대통령이 세워진 후에도 남아공은 혼란으로 빠져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만델라의 리더십, 오늘 우리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리더십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생각되는 것은 만델라가 지은 죄도 없는데, 그토록 긴 시간 동안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 그리고 민족회의 활동을 하던 사람들을 공권력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잡아들이는 것,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집권자들의 두려움의 발로라는 사실이다. 본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정권은 부정과 부패 위에 세워져 있음을 알기에 두려운 것. 작은 소리가 자신들의 모래성을 허물어 버릴까 두려웠던 것. 오늘 이 시대는 어떤가?

 

이 책은 자라나는 세대들, 초등 고학년, 중학생들이 보면 좋을 책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이러한 책들을 통해, 훌륭한 인격들을 만들어 가길 소망한다.

 

 

* 북 스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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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틀 스타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
배명훈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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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틀 스타일』은 중편소설이다. 책 한권 분량으로는 꽤 짧은 분량인 120페이지 가량이다. 그렇기에 일단 읽는데 부담이 없다. 그리고 내용 역시 상당히 재미나 금세 읽고 만다.

 

세계를 정복할 야욕을 품고, 가마틀이라는 로봇을 제작한 박사. 그 로봇들과의 전투에서 로봇들은 모두 제거되지만, 한 로봇이 사라졌음을 알고 추적하는 과정을 소설은 그려나간다. 그리고 이 추적 과정은 가마틀 로봇에게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마틀 로봇의 오른팔에는 무시무시한 고성능 살상용 레이저가 무기가 장착되어 있다. 하지만, 잠적한 가마틀 로봇, 그에게는 부품이 배달되는 가운데 실수로 여성들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성형용 레이저가 장착된 것. 바로 이 웃지 못 할 실수에서부터 가마틀 로봇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저자는 로봇과 기계를 다르게 생각한다. 로봇과 기계의 차이는 마음이다. 기계는 마음이 없지만, 로봇은 마음이 있다. 그렇기에 로봇은 더 나아가 정신을 소유하게 된다. 이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그리고 마음을 가지고 있는 로봇이기에 일탈을 꿈꿀 수 있다.

 

하지만, 『가마틀 스타일』에서의 가마틀 로봇은 일탈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참 자아를 찾아가는 것일 뿐. 만약 살상용 레이저가 장착되어져 있고, 공격적 마음만이 입력되어 있는데도 비공격적 성향으로 돌아선다면, 일탈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이 가마틀 로봇의 오른팔에는 공격적 성향이라곤 전혀 없는, 아니 오히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성형용 레이저가 장착되어 있다. 물론, 그 마음은 공격적 성향이 입력되어 있지만. 하지만, 마음은 움직이게 마련 아닌가. 특히, 자신의 본질을 찾아서 말이다.

 

이처럼 『가마틀 스타일』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한 로봇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중편소설이라는 한계 때문일까? 왠지 짜임새가 헐겁다는 기분. 뭔가 짜임새 있게 일탈한 가마틀 로봇을 추격하는 듯싶었는데, 뿐 아니라 마음이 존재하는 로봇이기에(저자의 관점) 로봇의 심리변화에 대한 묘사를 기대하게 되는데, 그저 단순한 실수로 인해 성형용 레이저 팔이 장착되어졌다는 부분에서는 허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아울러 마지막 부분, 은수와 민소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분은 연애소설의 해피엔딩 분위기마저 느끼게 함으로 이 소설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그럼에도 짧은 내용, 흥미로운 전개, 유쾌한 결말(물론 조금은 허망하기도 하지만)은 이 소설의 매력적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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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카페에서 커피가 운다면 새봄 그림책 1
조철희 지음, 이민영 그림 / 새봄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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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카페에서 커피가 운다면』은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생산 이면에는 수많은 아동 노동력이 착취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동화입니다.

 

생두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커피를 만드는 아이입니다. 생두가 만들어 주는 커피를 마신 사람들은 모두 그 맛을 칭찬할 정도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커피를 볶는데, 원두가 울고 있네요. 아니, 가게에서 커피를 마신 손님들도 모두 울고 있네요. 이게 웬일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생두는 울보 원두와 함께 원두의 고향(원산지)으로 여행을 떠났답니다. 그곳에서 생두는 도망치는 사향 고양이를 만납니다. 이 사향 고양이 역시 울고 있네요. 왜냐하면 사향 고양이가 커피원두를 먹고 배설하게 되면, 그 커피 맛이 너무나 좋거든요. 이 커피는 매우 비싼 가격에 팔린답니다. 그래서 욕심꾸러기들이 억지로 고양이에게 커피를 먹이네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고양이가 울며 도망쳤을까요?

 

그곳에서 만난 루아라는 친구는 10살인데, 커피 밭에서 매우 힘겨운 일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루아 역시 울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루아는 일보다는 공부를 해야 할 나이랍니다. 그런데, 일을 하고 있죠. 왜냐하면, 아이들은 노동력이 싸기 때문입니다. 뿐 아니라, 작은 커피를 따는 데에 작은 손들이 더 유리하다네요.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지구 곳곳에서는 어린이들이 값싼 노동력에 팔려 일을 힘든 중노동을 하고 있답니다. 이 가운데는 심지어 일한 삯을 전혀 받지 못하고 일하는 아이들도 꽤 많답니다. 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은 6살 아이도 있다네요. 이처럼 어린 아이들이 하루 12시간씩 힘든 일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농장주들이 아예 가난한 가정에서 돈 몇 푼을 부모 손에 쥐어주고 노예로 데려오는 경우도 심심찮다고 합니다. 코트디부아르의 경우에는 1만 2천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이렇게 팔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우리가 좋아하는 쵸콜렛을 만들기 위해 노예로 일하고 있답니다. 이들은 일하기 싫어할 때는 채찍에 맞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눈물 흘리며 노동 현장에서 힘겨워 하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요? 그 일을 위해서는 “공정무역 커피”, “공정무역 쵸콜렛”을 우리가 먹어야 한답니다. 공정무역이란 이토록 아동 노동력 착취를 통해 얻어진 재료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정당한 노동력을 통해 얻은 재료로 제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답니다. 우리 소비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품에 “공정무역” 표시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제품을 구입하게 된다면, 루아와 같은 어린 아이들이 노동현장에서 슬퍼하는 일은 없게 될 겁니다. 그런데, 사실, “공정무역” 표시가 있는 제품들은 거의 없답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커피나 쵸콜렛 회사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나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필요하겠죠. 무론, 정중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카페에서 커피가 운다면』과 같은 책들을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많이 보고 깨닫게 되는 것도 필요하겠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 속히 오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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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들 -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지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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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들』은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죽음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로 살던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그 뒤에 남겨진 병들었지만, 고집스러운 퇴역 군인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돌볼 책임을 맡게 된 연애소설을 쓰는 둘째 딸과 아버지간의 갈등. 화자인 둘째 딸은 엄마의 죽음을 추억하고, 또 한편 남겨진 아버지와의 갈등관계 속에서 죽음에 대해 성찰하며, 죽음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이 죽음을 바라보고, 이 죽음을 애도하고 추억하는 방식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둘째딸을 통해 펼쳐진다.

 

죽은 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처리할 수 없기에 남겨진 자들이 고인의 죽음에 대해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함을 고인을 다시 한 번 죽여야만 하는 것을 보는 관점이 참신하다.

 

아울러, 죽음 이후에 남겨진 자들의 현실적인 삶의 고민들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생 아내가 모든 것을 챙겨줬던 아버지의 혼자됨. 그 빈자리. 하지만, 애써 아내의 죽음을 거부하고 부정하며 도피하며 의연한 체 하려는 남성성의 허울도 고발한다.

 

또한 엄마의 죽음을 밀접하게 둘러싸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 죽음과는 동떨어져 있는 생활인들(상조회, 구급차 운전자, 간호사 등)에 대한 모습도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떠난 자를 애도하는 모습 가운데 보이는 모순을 고발하기도 한다. 상가에서 애도하는 모습.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슬퍼하지 않고, 종교인들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로, 친지들은 품앗이, 또는 대인관계에서의 도리를 다함으로. 여기에 더하여 헛된 호기심의 모습까지. 게다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고인을 애도함이 불합리하다는 저자의 관점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요식적 행위에 대해 고발한다. 이는 우리를 반성케 하고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편협한 생각이기도 하다. 덴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죽음이지만, 모든 죽음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 사람에 대해 묻고,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한 애도함이 왜 없겠나? 아니 관계없는 죽음까지는 차치하고라도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모든 이들이 형식적으로 접하는 것은 아니다. 왜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애통함이 죽음의 현장에 왜 없겠는가? 저자가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그럼에도 편향적인 견해임이 아쉽다.

 

죽음을 애도하는 종교적 갈등도 보여준다. 물론, 엄마는 기독교인이다. 감리교 권사, 그렇기에 당시 종교예식은 기독교식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장례 뒤의 애도의 방식은 어떠해야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리교 권사인 아버지, 천주교인 언니, 무종교인 여동생, 그리고 불교인 주인공. 이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애도해야 하나?

 

여기에서 저자의 견해는 우리 전통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전통인가? 그것을 과연 한국적이라 말할 수 있나? 그것 역시 유교와 불교의 습합이 아닐까? 여기에서 저자의 모순이 드러난다. 죽음에 대한 저자의 연구와 고민이 녹아들어있긴 하지만, 저자의 견해만이 옳다는 것 역시 독단 아닐까?

 

게다가 죽음을 둘러싼 모순 가운데 가장 적나라하게 고발되고 있는 것은 바로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기독교를 혐오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가운데, 몇 가지 불편함이 있었다.

 

첫째, 저자가 교회를 고발하는 내용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실제 그렇기에 부끄러운 불편함이다. 이 불편함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새기고 반성해야 할 부분으로 불편케 해 줌이 고맙다.

 

두 번째 불편함은 그럼에도 그 모습이 모든 교인들의 모습은 분명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 모습을 일반화시켰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은 저자의 수준 이하로 뭉개졌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각 이하의 모습으로 뭉개 버렸다.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모든 기독교인을 그처럼 폄하해버리는 저자의 경솔함이 불편하였다.

 

죽음에 대해 냉철하고 바른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 외에는 폄하해 버리는 모습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셋째, 끊임없이 저자는 둘째 딸을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견해와 다른 견해에 대해서 반박한다.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논지이다. 하지만, 왜 자신의 견해에 대해서는 반성함을 보이지 않는지. 왜 둘째 딸은 죽은 엄마에 대해, 남겨진 고집쟁이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호주에 있는 언니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판단하는데, 둘째 딸 자신에 대해서는 성찰함이 없는지. 이 부분 역시 불편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자신에 대한 성찰은 철저하게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불편했다.

 

또 하나 학창시절 이야기를 상당히 긴 분량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이 과연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그 고백이 작가의 경험담을 통해, 자신의 학창시절이 “상실의 시간들”이었다고 말하고자 하는 건지, 자신을 성찰하려는 의도였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을 성찰하는 회상이라기보다는 학교의 부조리, 교사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의 시간이다. 물론, 학교를 향한, 그리고 교사를 향한 저자의 견해에는 본인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나 길게 그 부분을 회상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학창 시절의 회상 모티브를 가지고 다음 기회에 다른 작품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한 작품이기에 저자에게 고맙다. 하지만, 많은 아쉬움과 불편함도 함께 안겨주고 있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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